철학/현대실천철학

Liezl(2013) 전반부 논평

현담 2022. 4. 3. 19:38

  Liezl(2013)은 옳은 행위에 관한 덕윤리적 설명 중 하나인 Hursthouse의 자격 있는 행위자(qualified-agent account) 설명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다른 윤리학적 설명과 구별되는지를 보이기 위해 비극적 딜레마에 대한 그것의 대응을 서술한다. 본 논평문에서는 1절에서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이 무엇이고, 그것이 비극적 딜레마에 어떻게 대응하며, 이를 통해 드러나는 그것의 특징을 살펴본다. 2절에서는 1절에서의 덕윤리적 대응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어떻게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의 장점을 계속 살려 나갈 수 있을지 검토해본다.

 

1. 비극적 딜레마에 대한 덕윤리적 대응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은 옳은 행위를 어떤 상황에서 덕스러운 행위자가 특징적으로 수행할 행위로 정의한다. 이 설명은 이유를 밝히는 설명(explanatory account)이 아니라 실질적인 설명(substantive account)인데, 덕스러운 행위자가 수행할 행위여서 옳은 행위라고 설명하기보다는 덕스러운 행위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올바른 이유를 찾아 수행할 행위를 옳은 행위로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적 특징은 모든 옳은 행위를 옳게 만드는 공통적인 단 하나의 속성이 있다고 보지 않고 그런 속성이 여럿일 수 있다는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비롯한다.

  Ross식의 의무론은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과 함께 위와 같은 다원주의적 관점을 공유하지만, 비극적 딜레마를 마주했을 때 둘의 차이가 드러난다. 여기서 비극적 딜레마란 행위자가 두 개 이상의 끔찍한 행위 –예를 들어, 큰 고통을 야기하거나, 약속을 깨뜨리거나, 사람을 죽여야 하는 등의 행위-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을 뜻한다. Liezl(2013)은 비극적 딜레마의 대표적 사례로 Jim이 처한 상황을 서술한다. Jim은 한 명의 소작농을 직접 죽이든지, 직접 죽이기를 거부하고 스무 명의 소작농이 죽도록 허용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이 옳은 행위의 정의와 짝을 이루는 그른 행위의 정의-그른 행위란 어떤 상황에서 사악한 행위자가 특징적으로 수행할 행위이다-를 따른다면, 그 설명은 Jim이 그른 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Jim은 어쨌든 직간접적으로 사람을 죽여야 하고–다만, Jim의 선택할 행위는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상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해당 상황에서 사악한 행위자가 수행할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윤리적 설명은 Jim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사악한 행위자가 수행하는 것처럼 무심하거나 즐거이 수행되기보다는 엄청난 회한과 고통과 함께 수행될 것이기 때문에 그른 행위는 아니라고 해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행위도 아닌데, 해당 상황에서 덕스러운 행위자가 선택할 옳은 결정에 따른 행위일 수는 있지만, 삶에 큰 상처를 남기는 행위이자 덕스러운 행위자가 노력을 기울여 추구하고자 하는 행위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Ross식 의무론과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은 결별하는데, Ross식 의무론에 따르면, 어떤 의무가 다른 의무보다 앞서면 그 앞서는 의무에 따르는 행위는 해야만 하는 행위이자 옳은 행위이고, 따라서 Jim이 하나의 앞서는 의무를 토대로 사람을 죽인다면 그 행위는 옳은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은 옳은 행위가 해야만 하는 행위와 구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Liezl(2013)은 비극적 딜레마의 또다른 사례로 난봉꾼이 처한 상황을 서술한다. 난봉꾼 X는 A와 B를 동시에 임신시켰는데, B는 결혼해서 B와 B의 아이를 부양할 구혼자가 있는 상황이다. X는 어찌 됐든 자신이 임신시킨 두 여자 중 하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에 Jim과 마찬가지로 끔찍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딜레마에 처해 있지만, 차이점이라면 X는 이 상황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덕스러운 행위자라면 이런 상황을 자초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이 이 상황에 적용될 수 없다고도 보지만, Hursthouse는 덕스러운 행위자라면 이런 상황을 자초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바로 그 점에서 옳은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설명이 이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Johnson은 덕스럽지 않은 행위자가 자신을 덕스럽게 만들려는 행위를 옳은 행위로 보아야 하지 않냐는 직관을 가지고 Hursthouse의 대응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을 유지하면서 반박하자면, 그러한 행위는 사악한 행위자가 하지 않을 행위라는 점에서 그른 행위는 아니고 또한 덕스러운 행위자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용기 있지만 여전히 옳은 행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은 옳은 행위와 그른 행위 사이의 연속성을 허용하여 양자를 배타적으로 보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나아가 덕스럽지 않은 행위자가 그 연속선상의 덕을 지향하는 행위를 통해 덕스러운 행위자로 도덕적 발전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윤리학적 설명들과 차별된다.

 

2. 비판적 고찰 : ‘실질적 설명’ 이면의 ‘이유를 밝히는 설명’


  Liezl(2013)은 결론에서,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에는 옳은 행위에 대한 이유를 밝히는 설명이 요구되며, 만약 그런 설명이 마련될 수 없다면 왜 마련될 수 없는지에 대한 근거를 적어도 제공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비판한다. Liezl의 이러한 요구는 타당한데 실질적인 설명은 옳은 행위를 옳게 만드는 속성이 여럿일 수 있다는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비롯되고 이러한 다원주의적 입장 자체는 그렇게 직관적이지 않은, 어쩌면 직관에서 벗어난 입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에 제기될 수 있다: “옳은 행위에 대한 이유를 밝힐 수 없다면, 아니 옳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이유가 있다면, 왜 여러 이유가 있는가?”

  또한 Hursthouse는 어떤 비극적 딜레마는 덕스러운 행위자가 한 대안보다 다른 대안이 선호될 만함을 보아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비극적 딜레마는 행위자가 딜레마 상황을 벗어나 옳은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은 이처럼 해결될 수 있는 딜레마와 위에서 다루었던 어떤 행위를 하든 옳은 행위를 하지 못하는 해결될 수 없는 딜레마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덕스럽지 않은 행위자들이 해결될 수 있는 딜레마에서 고뇌할 때 그들을 올바른 윤리적 판단으로 인도하기 위해 해당 상황에서 덕스러운 행위자가 내릴 판단을 설명할 필요도 존재한다.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도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에 제기될 수 있다: “해결 가능한 딜레마와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덕스러운 행위자가 딜레마 상황에서 한 대안보다 다른 대안을 선호함으로써 딜레마를 해결할 때, 그 선호의 원리는 무엇인가?”

  나는 위에서 제기한 여러 질문에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이 답할 수 있는 실마리가 그것의 비극적 딜레마의 대응에서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런 실마리를 모아 실질적 설명의 이면에 있는 이유를 밝히는 설명을 대강이라도 재구성할 때, 위에서 제기한 질문에 답함과 동시에 덕윤리적 설명이 지니는 다른 윤리학적 설명과 구별되는 특징들이 진정한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절의 두 사례가 해결될 수 없는 딜레마로 제시되었다는 것은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이 옳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여러 이유가 존재한다고 보는 다원주의적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유들이 충족되는 행위가 두 사례에서 전혀 가능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두 사례의 공통점을 파악하면 적어도 옳음을 불가능하게 하는 어떤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Jim의 사례에서 Jim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자기 삶을 손상시키고 타인의 삶을 파괴해야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난봉꾼 X의 사례에서 X는 어떤 선택을 내리든 A와 B 중 적어도 하나의 삶은 책임지지 못하게 되고 배신의 상처를 남겨야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과 타자의 삶의 온전성을 해친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의 온전성은 그 자체로 설명이 필요한 개념이지만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는 생명, 사랑, 신뢰 등이다.

  Hursthouse가 덕을 인간이 번성하거나 잘 살기 위해 필요한 성격적 특성이라고 정의한 점을 고려하여, 엉성하지만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을 이유를 밝히는 설명으로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옳은 행위는 자신과 타인의 삶의 온전성을 가득 채우거나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앞선 질문에 대해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옳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없고, 여러 이유가 있는 이유는 삶의 온전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다양하고 서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결 가능한 딜레마는 자신과 타인의 삶의 온전성을 조금이라도 보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딜레마이며, 그렇지 못한 딜레마는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이다.”, “덕스러운 행위자는 딜레마 상황에서 삶의 온전성을 조금이라도 보존하는 방향으로 한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난다.” (해결 가능한 딜레마의 가능한 예시로 문 앞에 선 살인자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살인자로부터 무고한 사람의 삶을 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살인자가 자신의 삶에서 더 이상의 살인을 피하게 한다면, 진실성보다 생명의 보호가 앞서야 할 것이다.) 또한 자격 있는 행위자 설명의 다른 윤리학적 설명과 구별되는 특성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삶의 온전성을 보존하고 채우는 행위(옳은 행위)와 딜레마 상황에서 삶의 온전성을 가능한 덜 해치는 행위(해야만 하는 행위)를 구별할 수 있다. 삶의 온전성을 꽃 피우는 행위와 삶의 온전성을 해치는 행위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하고, 자신의 특성을 삶의 온전성을 꽃 피우는 쪽으로 인도하는 행위를 하는 행위자는 덕스러운 행위자로 발전할 수 있다.

 

*논평문에 대한 반성 1 (negative)

 - 사용 단어들의 일치(ex. 가득 채우다, 꽃 피우다 등)를 다소 놓친듯 함

 - '설명의 장점을 살리다'가 왜 '설명의 다른 윤리학적 설명과 구별되는 특성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다'인지가 명시되지 않음. 

 - 물론 Liezl(2013)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첫 번째 딜레마에서처럼 두 번째 딜레마에서 행위자에게 제시된 선택지를 언급했으면 더 좋았을 것

 - Liezl(2013)의 글 자체에서 Hursthouse가 딜레마의 해결을 옳은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을지 그른 행위를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을지가 불분명. 만약 후자였다면, 논평문에서 Hursthouse에게 대답을 요구한 몇 질문들은 비극적 딜레마에 대한 대응 속에서 이미 해결됨. 그러나 전자라면, 같은 질문들은 논평문과 같은 대답이 필요함. 그래서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수도.

 - 재구성한 이유를 밝히는 설명에서 행위자의 즐거움이나 동기와 같은 실질적 설명에서 드러날 수 있는 덕윤리적 옳음을 구성하는 계기들이 드러나지 않음. 다만, 논지 전개에 필요할만큼 재구성하는 것은 성공. 

 

*논평문에 대한 반성 2 (positive)

 - substantive account와 explanatory account의 번역 및 구별이 명료

 - 논지가 명료

 - 다소 도전적이지만 explanatory account를 재구성하는 방식이 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