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논/연구법

이기상(2020), 「독일 유학시절 회상 - ‘알바’하면서는 공부하기 불가능하다!」 전문

현담 2022. 7. 11. 13:47

독일 유학시절 회상 - ‘알바하면서는 공부하기 불가능하다!

 

  독일에서는 등록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한국 학생이 독일로 많이 온다. 영국과 미국은 등록금이 어마어마하다. 그 정도의 등록금이라면 그것을 생활비로 충당할 수 있다. 독일은 거기에다가 모든 학사과정이 자율적이다. 스스로 자기 능력에 맞추어 강의 듣고 세미나 참석해 발표하고, 석사·박사학위 청구논문을 언제 써서 제출해야 할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 맞추어 나간다. 그래서 좀 자신 있게 좋은 논문 쓰려는 욕심이 생기다 보니 준비하는 과정이 마냥 길어진다.

 

  생활비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방값이 비싸다. 한국처럼 전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전부 월세인 셈이다. 웬만한 사람들 봉급의 반 가량이 월세로 나가는 셈이다. 그래서 죽기살기로 기숙사에 들어가려 애쓴다. 그런데 거기에는 다양한 학사과정과 지도교수 추천서 등이 걸려 있다. 그리고 기간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꽤 많은 유학생들이 방학 때를 이용해 알바를 한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유학생들은 물론 고참에 운이 좋은 사람들에 한에서지만- 그 지역에 있는 벤츠 자동차 공장에서 알바자리를 구할 수 있다. 거기는 보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알바자리는 몸으로 때워야 하는 힘든 막노동들이다.

 

  뮌헨대학교 독문학과로 유학 온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시집도 낸 감수성이 뛰어난 젊은 학도였다. 한국에서 독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독일서 박사과정을 등록하고 있었다. 한국 집에서는 교육비를 대줄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경제는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러니 방학 때만이 아니라 수시로 자리가 있으면 알바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일하면서는 여기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다.

 

  내가 하는 세미나와 강독회에 열심히 참석한 서울대 철학과 출신의 대학원생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내 제자임을 천명한 사람이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마친 다음 독일로 유학 가서 박사과정에 등록했다. 일이년 지났을 즈음에 내게 편지해서 이렇게 고백했다. 자기가 나름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여기 독일의 공부 강도는 한국의 세 배에 해당한다고.

 

  독일 학생들과 경쟁하려면 최소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두 배는커녕 알바하면서 그들만큼도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 한국 유학생은 해가 갈수록 몸도 망가지고 정신력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가톨릭 신자라 가톨릭 교우회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나는 한 동안 뮌헨 가톨릭 교우회회장직을 맡았었다. 일요일 모임에 참석하면 모처럼 준비된 한식을 먹을 수 있고, 유학생들과 모여 맥주도 마시며 그동안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학생은 그렇게 술을 마시게 되면, 어느 순간 정신줄이 풀리게 된다. 말이 거칠어지며 막말 가까이 되기 시작하면서 주사가 시작된다. 술병을 벽에 던지면서 이 병 깨지는 소리가 얼마나 황홀한지 들어봐!” 식으로 시적인 표현까지 섞어가며 모처럼 순수한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다.

 

  독일 가톨릭 단체에서 운영하는 학생 기숙사 지하에 있는 바에서 술을 마시며 그런 난동을 펼치니 거기 있는 유학생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이것을 신고하면 독일 경찰이 올 테고, 그러면 주사로 깽판을 친 그 유학생은 아마 유학 생활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몇 후배 학생이 완력으로 제압해서 그날의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황당한 것은 술이 깨어난 뒤, 그 유학생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기 얼굴에 난 멍 자국으로 자기가 얻어맞은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는 식으로 섭섭함을 표시했다. 얼마 뒤 사과의 뜻으로 자기가 한 잔 사겠다 해서 몇몇이 모였다. 그런데 그날도 몇 잔이 오고 간 뒤 지난번의 억울함에 대한 분풀이까지 겹쳐 또 한 번 심한 난동이 벌어졌다. 결국 이번에도 몇 사람이 완력으로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소문이 나서 아무도 그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는 폐인이 돼갔다. 나중에는 누군가 자기를 감시하며 미행한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약간의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다. 뮌헨 가톨릭 교우회의 담당신부님이 독일 분도회 소속 신부님이셨는데, 이 분이 나서서 몰래 일을 진행해 모든 비용을 떠맡아서 그 유학생을 한국으로 되돌려 보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사람을 외대 대학원 건물 계단에서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어서 나도 덩달아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이 학교 선생이겠거니 하면서. 그런데 나 몰라요 나!” 하면서 이름을 대며 자기를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옛 모습이 떠올랐다. 뮌헨의 그 유학생이었다. 어쨌든 반가웠다. 그때는 교육대학원 교학과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로 가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귀국해서 좀 힘들긴 했지만 지금은 결혼도 하고 대학에 강의도 하면서 잘 지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반가웠다. 꼭 학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 사람은 대단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시적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니 시인으로 시 지으며 살면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의 그가 내 연구실로 찾아왔다. 마누라가 아들을 데리고 자기를 떠났다고 신세 한탄을 했다. 그리고 또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연구실로 찾아왔다. 아들 생일이 내일인데 아들에게 선물이라도 사주고 싶다고 조금 도와줄 수 없느냐고 한다. 십만 원을 건네주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또 한 차례 찾아오고. 그러다 결국은 내가 이제 그만 찾아오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는 절절한 사연의 신앙 편지를 보내왔다.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더 편지가 오더니 편지도 끊겼다.

 

  알바하면서는 독일서 공부를 좇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유학생활을 혼자 해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인이라 계속 주목받으며 살아가느라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그걸 전혀 풀지 못하고 꾹꾹 눌러 압축해놓으면 언젠가는 무섭게 폭발한다. 대부분의 독일 사람은 친절하고 예의바르다. 독일 학생들도 대부분은 그렇다. 그러나 오래 지내다 보면 그 친절과 예의바름 뒤편에 숨겨진 우월감[오만]과 편견을 느끼게 된다. 거리를 둔 예의바름이다.

 

-이기상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출처 : https://m.blog.naver.com/saiculture/222012676228)

 

  이번 사람은 한국에서 독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독일로 와 박사 과정을 밟게 되었는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생활비를 홀로 마련해야 할 상황에 부닥쳤다고 한다. 그래서 방학뿐만 아니라 학기 중에도 수시로 알바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이 망가지더니 나중에는 정신착란 증세까지 일으키더라는 것이다. 결국 뮌헨 가톨릭 교우회 담당 신부가 조용히 일을 처리해서 그 사람은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이 사람 또한 귀국해서도 불행이 이어졌는데 처음에는 결혼도 하고 강의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이혼당하고 주변에 돈 빌리고 다니는 궁색한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번 사례에서는 해당 유학생의 개인적인 정신적 불안정성도 유학 실패의 큰 요인에 해당하지만, 이기상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독일 학생들과 경쟁하려면 최소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두 배는커녕 알바하면서 그들만큼도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국 생활의 스트레스를 적절히 풀어내야 함도 언급한다. “유학생활을 혼자 해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인이라 계속 주목받으며 살아가느라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그걸 전혀 풀지 못하고 꾹꾹 눌러 압축해놓으면 언젠가는 무섭게 폭발한다.”

 

  유학 비용은 유학 전에 이미 해결이 된 상태여야 한다. 해외 유학 장학금을 타든가 집에서 돈을 타든가 해서 말이다. 집에서 경제적으로 지원해줄 수 없는 형편인데 해외 유학 장학금에도 떨어졌다면, 국내 장학금을 타거나 조교 생활을 하면서 국내 박사 과정을 밟든지 학문의 길을 접든지 해야 할 것이다. 알바를 하면서 유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가상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부도 못하면서 돈도 제대로 못 버는 미련한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