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논/연구법

김영민(2020), 정독하는 법

현담 2022. 10. 7. 05:31

1. 정독할 글 찾기

 

이 짧은 인생에 책만 읽다가 죽으란 말인가요? 그럴 리가. 살면서는 책 읽기 말고도, 출근하기, 설거지하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멍 때리기, 실없는 얘기 하기, 개소리 참고 들어주기, 가려운 데 긁기 등 다른 할 일들이 많다. 그 와중에 책을 정독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빠른 속도로 다독을 하여 정독의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읽는다.”

 

정독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문장들이 바로 정독할 부분들이다. 평소에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살고 있으며, 질문에 답하는 문장을 찾아낼 감식안이 아예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감식안을 갖춘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 선생이 있으라고 만든 곳이 학교다. 만약 자신의 학교에 그런 선생이 아무도 없다면, 그 학교를 떠나는 것이 좋다.”

 

2. 정독하는 법

 

A. 저자가 침묵하는 내용을 읽어내기

 

저자들은 대개 관심종자이고, 불치의 관심종자일수록 아무에게나 자기 이야기를 펼쳐놓지 않는다. 진짜 관심종자는 드러내기보다는 숨긴다. 알아들을 만한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모호하게 숨겨놓거나, 은근히 암시만 해둔 진짜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독자는 더 많은 관심을 책에 기울여야 한다. [...] 저자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유혹하며 독자의 적극적인 관심을 희구한다. 당신의 적극적인 해석 속에서 내 모호함을 분명함으로 바꿔주세요, 침묵을 발화로 바꾸어주세요, 라고.”

 

B. 근저의 전제를 재구성하기

 

모든 언명은 그 언명을 가능케 하는 전제가 있으며,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면 그 언명이 담고 있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전제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많지 않기에, 독자는 은연중 저자와 자신이 같은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시대에 쓰인 책은 종종 다른 전제를 갖고 있는 법, 다른 문화권의 상식은 종종 자신의 상식과는 다른 법, 독특한 저자는 종종 독특한 전제를 가지고 있는 법.”

 

C. 비판적 독해하기

 

어느 한 주장만 접하면, 그 주장이 온통 타당한 것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비판적 독해를 위해서는 같은 문제에 대해 경쟁하는 다른 주장들을 접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진리처럼 느껴졌던 주장도 기껏 일리있는 주장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경쟁하는 주장들까지 정성을 들여 전면에 드러내놓는 책은 많지 않기에, 독자는 경쟁하는 다른 주장들을 스스로 재구성해가며 읽어야 한다. 그래야 주장의 타당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by. 김영민

(서울대학교 정치학 교수)

(출처 :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서울: 어크로스, 2020, 139-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