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권 목차>
제1장 즐거움
제2장 즐거움에 관한 통념들
제3장 즐거움에 관한 통념들의 검토
제4장 활동으로서의 즐거움
제5장 즐거움의 종류
제6장 행복 : 지금까지 논의의 요약
제7장 관조적 활동으로서의 행복
제8장 정의된 행복과 통념의 부합
제9장 윤리학, 입법, 정치체제
제7장 행복 : 관조적 활동으로서의 행복 (1177a12-1178a8)
1. 관조적 활동으로서 행복 (1177a12-1177b26)
행복의 정의 : 행복은 완전한 삶 안에서 가장 완전한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다. (1권 7장 참고)
(Q : 최고의 탁월성(최선의 것의 탁월성)(가장 완전한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은 무엇인가?)
Q-1 : 우선, 최선의 것(highest/best element)은 무엇인가?
A-1 : “지성(nous, intelligence – B&R, understanding – Irwin)이건 혹은 다른 어떤 것이건, 이것은 본성상 우리를 지배하고 이끌며, 고귀하고 신적인 것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지성이 최고이며, 지성이 상대하는 대상 또한 앎의 대상들 중 최고이니까” 지성이 최선의 것의 가장 유력한 후보이며, 암묵적으로 최선의 것과 동일시.
수정된 행복의 정의 : 행복은 완전한 삶 안에서 지성의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다.
Q-2 : 그렇다면 최선의 것의 탁월성은 무엇인가?
A-2 : 지성의 탁월성은 지혜(sophia, intellectual accomplishment – B&R, wisdom – Irwin)이다.
수정된 행복의 정의 : 행복은 완전한 삶 안에서 지혜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다.
Q-3 : 그렇다면 최선의 것의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은 무엇인가?
A-3 : 지성의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은 관조적 활동(reflective activity – B&R, activity of (theoretical) study – Irwin)이다.
수정된 행복의 정의 : 행복은 완전한 삶 안에서 관조적 활동이다.
(Q : 관조적 활동은 행복의 조건을 가장 완전하게 만족하는가?)
A :
1) 가장 연속적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행위하는 것보다 더 연속적으로 관조할 수 있다.
2) 가장 즐거운 것이다.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철학’(philosophia)은 그 순수성이나 견실성에서 놀랄 만한 즐거움을 가지지만, 앎을 추구하는 사람(철학자)보다 앎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관조에서 더 즐겁게 삶을 영위할 것이다.
3) 가장 자족적이다. 철학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나 다른 탁월성을 가진 사람 모두 삶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탁월성을 가진 사람이 상대방이나 동반자가 필요로 할 때, 철학적 지혜를 가진 사람은 (지혜로우면 지혜로울수록 더욱 잘) 혼자 있어도 관조할 수 있다. (동반자를 가지면 아마 더 잘 관조할 수도 있겠지만)
4) 가장 자체목적적(여가적)이다. 관조적 활동으로부터는 관조한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지만, 실천적(행위와 관련된) 활동으로부터는 행위 자체 외의 무엇인가를 다소간 얻고자 한다.
4-1) 전쟁은 평화를 얻기 위해 한다.
4-2) 정치적 행위들 자체 이외에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하거나 자신과 동료 시민들에게 행복을 마련해 주려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정치적 행위와 실로 다른 것이고, 그것들을 다른 것으로 추구한다.
4-3) 실천적 탁월성의 활동은 정치나 전쟁에서 성립하는 것이며, 이것들에 관련한 행위는 비록 고귀함이나 위대함에 있어 뛰어나지만, 여가와 거리가 먼 목적을 지향한다.
“이 활동(관조적 활동)이 삶의 완전한 길이를 다 받아들이는 한, 이 활동이야말로 인간의 완전한 행복일 것이다. 행복에 속하는 것들 중 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1177b25-26) (=수정된 행복의 정의)
⇒ Aristotle appeals to his previous criteria for happiness, and argues; (1) Study is the single activity that best fits the criteria for happiness. (2) Hence, if happiness must be some single activity, study is the best candidate. (3) If happiness includes more than one activity, study will be the most important. These conclusions do not imply: (4) Study is the whole of happiness. It is open to dispute whether Aristotle accepts (4). (Irwin, 309)
2. 관조적 삶, 신적이면서 인간적인 삶 (1177a12-1177b26)
“이것(highest element) 자체가 신적인 것이든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신적인 것이든 [...]”(1177a16-17)
“그러나 이러한 삶은 인간적 차원보다 높은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인 한 이렇게 살 수 있다기보다는 인간 안에 신적인 어떤 것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177b27-28)
“만약 지성이 인간에 비해 신적인 것이라면, 지성을 따르는 삶 또한 인간적인 삶에 비해 신적인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니 인간적인 것을 생각하라.’ 혹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하라’라고 권고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들이 불사불멸의 존재가 되도록, 또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최고의 것에 따라 살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1177b30-35)
⇒ A paradox. The completely happy human life is higher than human, because the human being is not just human, since the best element in us is similar to the divine (just as a slave is not only a slave, but human). However, human beings tend to identify with their best and ruling explains that this part of us, though mainly occupied with practical things, is most truly itself when detached and purely reflective, we may look upon this activity as godlike, but we cannot consistently regard it as not our human business too.
1. 인간 안에 (인간에 비해) 신적인 어떤 것(최고의 것)이 존재하면, 인간은 인간적 차원보다 높은 삶을 살 수 있다(그 어떤 것을 따르는 삶은 인간적인 삶에 비해 신적인 삶이다).
2. 인간 안에 지성이 존재한다.
3. 따라서, 지성이 인간에 비해 신적인 (어떤) 것이라면, 지성을 따르는 삶은 인간적인 삶에 비해 신적인 것(삶)이다.
“그런데 각 개인은 바로 이 최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지배적이고 더 좋은 것인 한. 그렇기에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의 삶을 선택한다면, 사리에 맞지 않게 될 것이다. [...] 각각에게 고유한 것이 본성적으로 각각에게 가장 좋고 가장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지성이 ‘인간’인 한, 인간에게 있어서도 지성을 따르는 삶이 가장 좋고 가장 즐거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기도 하다.”(1178a1-8)
1. (각 개인에게/인간에게) 최고의 것(지성)이 지배적이고 더 좋은 것이라면, 각 개인(인간)은 바로 이 최고의 것이다.
2. 각각에게(각 개인에게/인간에게) 고유한 것(을 따르는 삶)이 (각각에게) 본성적으로 가장 좋고 가장 즐거운 것(삶)이다.
3. 따라서, 각 개인(인간)이 지성이라면, 인간에게 지성을 따르는 삶이 가장 좋고 즐겁고, 그러므로 가장 행복한 삶이다.
⇒ [...] the life of study is (in one respect) superhuman [...] it is (in another respect) most truly human. Previously Aristotle has identified a person with his understanding because of its practical role(우리를 지배하고 이끌며). He now suggest that if we identify the understanding with a person, we must identify the theoretical understanding(고귀하고 신적인 것들에 대한 이해) with the person. (Irwin, 310)
제8장 정의된 행복과 통념의 부합 (1178a9-1179a33)
1. 이차적 의미에서 행복한 삶 (1178a9-23)
Q : 인간적인 것(부정적 의미에서 인간적인 것 – 나현)들은 무엇인가?
A :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7장 1177b35), “계약과 봉사, 또 온갖 종류의 행위들에 있어서, 그리고 그 감정들에 있어서”, “실제로 어떤 감정들은 육체로부터도 연유” - 육체가 핵심으로 보여 육체적인 것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음.
1. (지성의 탁월성 이외) 다른 종류의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들은 인간적인 것들이다.
(2. 인간적인 것들은 신적인 것들에 비해 이차적으로 행복한 삶을 구성한다.)
3. 따라서, 다른 종류의 탁월성에 따르는 삶은 이차적으로 행복한 삶이다.
1. 실천적 지혜는 성격적 탁월성에 결부되고, 성격적 탁월성 또한 실천적 지혜에 결부된다.
2. 성격적 탁월성은 감정들과 연결되고, 따라서 복합적인 것과 관련한다.
3. 복합적인 것의(복합적인 것과 관련한/결부된) 탁월성은 인간적인 것이다.
4. 그러므로, 실천적 지혜와 성격적 탁월성은 인간적인 것이다.
(5. 인간적인 것은 신적인 것에 비해 이차적으로 행복한 삶을 구성한다.)
6. 따라서, 실천적 지혜와 성격적 탁월성에 따르는 삶은 이차적으로 행복한 삶이다.
⇒ Aristotle now supports his defense of the superiority of study as part of happiness. The activities of the other virtues depend on human and nondivine parts of the compound, and hence are subject to some of the limitations of human beings and their external circumstances. (Irwin, 310)
“반면 지성의 탁월성은 분리된 것이다.”(1178b22)
⇒ 지성의 탁월성은 ‘인간적인 것’과 분리되어 있고, 불사불멸과 관련되어 있는 신적인 것
Q : 실천적 탁월성 혹은 이차적인 행복의 위치가 무엇일까?
A : 이차적인 행복은 부차적인 행복이 아님. 인간의 완전한 행복을 위해서는 이차적 행복까지 요구됨. 다만, 지성의 탁월성 혹은 일차적인 행복이 인간의 완전한 행복 내에서 가장 완전한 행복일 뿐.
Q : ‘인간적인 것’이 지칭하는 바가 비일관적으로, 즉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로 혼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N)
A : 아리스토텔레스는 신과 동물 사이에 위치한 인간의 “인간적인 것에 관한 철학”(1181b17)을 전개하고 있다. 인간은 이성을 자신의 본질로 가진다. 그런데 이성은 신적인 것과 관련된 이성과 동물적인 것과 관련된 이성으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인간적인 것이 지칭하는 바가 비일관적일 수밖에 없다. 각 이성에서 지성의 탁월성과 실천적 탁월성이 성립하고, 각 탁월성이 일차적으로 행복한 삶과 이차적인 행복한 삶을 구성한다. 인간은 인간인 한, 두 차원에서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야 온전히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D)
2. 외적인 수단의 필요 (1178a24-1178b5, 1178b32-1179a16)
2-1. 필수적인 것의 필요와 활동을 위해 필요한 것의 구분
“먼저 지성의 탁월성이나 성격의 탁월성 모두 필수적인 것을 필요로 하며 동일한 양을 필요로 한다고 하자. [...] 그러나 그 활동을 위해 필요한 것에서는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1178a24-28)
“물론 행복한 자도 인간이라 외적인 유복함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관조를 하기 위한 자족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관조를 하려면] 육체도 건강해야 하고 음식이나 여타의 보살핌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1178b33-35)
a. 지성의 탁월성이든 성격의 탁월성이든 인간의 활동인 한 필수적인 것의 필요
: 건강한 육체, 음식이나 여타 보살핌
b. 성격의 탁월성에 따른 활동을 위해 필요한 것
: 자유인다움 – 돈, 용기 – 힘, 절제 - [절제를 발휘할] 기회 등
⇒ 관조적 활동을 위해서는 외적인 수단이 필요하지만, 관조적 활동 자체는 본질적으로 외적인 수단을 필요로 하지 않음. (오히려 관조를 위해서는 외적인 것들이 장애물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임) 그러나 성격의 탁월성에 따른 활동은 그것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 자체로도 본질적으로 외적인 수단을 필요로 함. 왜냐하면 성격적 탁월성의 완성은 합리적 선택과 행위에 모두 의존하는데, 행위를 위해서 많은 외적인 수단이, 위대하고 고귀한 행위일수록 더 많은 외적인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
2-2. 필수적인 것의 필요의 정도
“비록 외적인 좋음들이 없이 지극히 복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장차 행복하게 되기 위해 많고 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족이나 행위는 지나침에 의존하지 않으며, [...] 또 적당한 정도의 외적 조건들로부터도 탁월성에 따라 행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1179a1-5)
⇒ 없으면 안 되지만, 지나치치 않게, 적당히
3. 신들의 활동 (1178b6-1179a15, 23-33)
1. 신들은 가장 지극하게 복되며 가장 행복하다(행복한 활동을 하고 삶을 산다).
2. 행위와 관련된 것들(거래의 필요, 두려움, 나쁜 욕망 등 인간적 불완전성)은 작고 신들에게 어울리는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가장 지극하게 복되며 가장 행복한 삶에 어울리지 않는다).
(3. 그러므로, 신들은 행위하지 않는다.)
4. 살아 있는(삶을 사는) 존재에게서 행위함을 떼어 내고, 더 나아가 제작함까지 뗴어 낸다면, 관조가 남는다. (=신들은 행위하거나 제작하거나 관조한다.)
(5. 제작함과 관련된 것들 또한 신들에게 어울리는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
6. 그러므로, 신들은 제작하지 않는다.)
7. 따라서, 지복의 관점에서 빼어난 것으로서 신의 활동은 관조적 활동일 것이다. (신들은 관조할 뿐이다.)
1. 인간적인 활동들 중에서 신들의 활동과 가장 닮은 활동은 행복의 특성을 가장 많이 가진다.
2. 신들의 활동은 (신의) 삶 전체 동안의(영원한 – 신은 불사불멸) 관조이다.
3. 인간적인 활동들 중에서 신들의 활동과 가장 닮은 활동은 (유한한 인간 삶 속에서의) 관조이다.
4. 따라서, (유한한 인간 삶 속에서의) 관조가 지속되는 만큼 행복도 지속된다.
⇒ 신들의 활동(삶)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관조적 활동(삶)은 행복함
1. 신들이 인간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면, 신들은 가장 뛰어나고 그들을 닮은 것(지성)에서 기뻐할 것이다.
2. 신들은 자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자신들이 기뻐하는 것)을 (더 많이) 아끼는 사람일수록 옳고도 고귀하게 행위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그에게 더 많은) 응분의 보답을 한다(사랑을 준다).
3. 지성을 가장 아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sophos)이다.
4. 그러므로, 신들이 인간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신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다.
(5. 신들이 주는 사랑은 행복이다.)
6. 따라서, 신들이 인간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 신들의 자신들과의 유사성에 기반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근거로 지혜로운 사람은 행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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