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목차>
제1장 좋음과 목적
제2장 최고선과 정치학
제3장 논의의 방법
제4장 최고선에 관한 통념들
제5장 행복과 세 가지 삶의 유형
제6장 좋음의 이데아 비판
제7장 우리가 추구하는 좋음과 행복
제8장 정의된 행복과 통념의 부합
제9장 행복을 성취하는 방법
제10장 행복과 운명
제11장 행복과 죽음 이후
제12장 칭찬과 명예
제13장 영혼의 탁월성
제10장 행복과 운명 (1100a10-1101a21)
1. 솔론의 문제 제기에 대한 첫 번째 대응 (1100a10-21)
솔론 : “인간은 죽은 다음에야 행복하다.”
1.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온갖 악들과 불운들을 겪는다.
(2. 악들과 불운들을 겪는 것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3. 따라서,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1. 인간은 죽었을 때에야 비로소 온갖 악들과 불운들을 벗어난다.
(2. 악들과 불운을 벗어나야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3. 따라서, 인간은 죽었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번째 논증의 1.을 공격.
1. 살아 있되 인지는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좋음과 나쁨이 있다면, 죽은 사람에게도 좋음과 나쁨이 있다.
(2. 살아 있되 인지는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좋음과 나쁨이 있다.)
3. 따라서, 죽은 사람에게도 좋음과 나쁨이 있다.
(=따라서, 인간은 죽었을 때에도 온갖 악들과 불운들을 살아 있는 동안과 마찬가지로 겪는다.)
“죽은 사람에게도 가령 명예나, 불명예, 또 자식들 혹은 일반적으로 후손들의 번성이나 불운처럼 어떤 좋음과 나쁨이 공히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1100a21)
2. 죽은 사람의 행복에 관한 딜레마 (1100a22-30)
“그러나 이 생각도 역시 문제를 야기한다.”(1100a22)
1. 후손들의 일이 조상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조상은 어떤 때는 행복하다가 어떤 때는 도로 비참하게 되는데, 이는 이상하다.
2. 그렇다고 후손들의 일이 조상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하다.
⇒ 죽은 사람에게도 좋음과 나쁨이 있다는 명제의 수용은 1.에서 보듯 이상한 결론까지 수용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해당 명제의 거부는 1100a21에서 언급했던 사례를 부정해야 하므로 또한 2.에서 말하듯 이상함. 죽은 사람에게도 좋음과 나쁨이 있다/없다는 따라서 딜레마를 야기하는 것으로 보임.
(⇒ 아리스토텔레스는 1권 11장에서 해당 딜레마를 첫 번째 horn(1.)을 grab하면서 해결. “후손들의 일이 조상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조상은 어떤 때는 행복하고 어떤 때는 도로 비참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를 보임.)
3. 솔론의 문제 제기에 대한 두 번째 대응 (1100a31-1100b22)
⇒ 이제 아리스토텔레스는 솔론의 두 가지 논증 각각에서 둘째 전제들, 즉 “악들과 불운을 겪는 것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와 “악들과 불운을 벗어나야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임. 이 전제들을 하나의 명제로 압축하면 “행복은 운을 따른다.”임.
1. 행복이 운을 따른다면, (우리는) 동일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비참한 사람으로 부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할 것이며, 그로써 행복한 사람을 일종의 ‘카멜레온으로, 취약한 기반을 가진 사람’으로 드러낼 것이다. (1100b5-7)
(2. 우리는 동일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비참한 사람으로 부르지 않으며, 행복한 사람을 일종의 ‘카멜레온으로, 취약한 기반을 가진 사람’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3. 따라서, 행복은 운을 따르지 않는다.)
⇒ 일종의 귀류법. 그렇다면 왜 우리는 동일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비참한 사람으로 부르지 않는가? “어떤 사람의 운을 좇아 자신의 행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1100b8)인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위에서 솔론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지 ‘비참하다’고 말했던 것은 아님. 이 문제는 “비참하게 되지는 않을 것‘ 파트에서 더 살펴볼 것.)
“인간적 삶은 다만 이런 것들(운)을 추가적으로 필요로 할 뿐이며, 행복에 결정적인 것은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이고, 그 반대의 활동은 불행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1100b9-10)
“인간적인 성취(ergon)들 중에서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들만큼 안정성(bebaiotēs)을 갖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1100b14)
1. 행복에 결정적인 것은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이다.
2.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은 안정적이다.
3. 그러므로, 행복에 결정적인 것은 안정적이다.
4. 따라서, 행복한 사람은 우리가 추구하는 안정성을 갖게 될 것이며, 그의 일생 내내 행복한 사람으로 살 것이다.
⇒ 행복에 결정적인 것은 안정적이더라도, 행복에 추가적으로 불안정한 운이 기여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안정성을 갖게 된다는 것은 여전히 거짓일 수 있지 않은가?(3.→4.가 문제)
“갖가지 운들을 가장 훌륭하게, 모든 점에서 전적으로 적절하게 견뎌 낼 테니까.”(1100b22)
⇒ 행복한 사람은 운을 훌륭하고 적절하게 견뎌내는 사람으로 묘사됨. 즉, 행복한 사람의 행복은 운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음. 아리스토텔레스는 1권 9장 마지막에서 살펴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음.
4. 비참하게 되지는 않을 것 (1100b22-1101a22)
문제 : 큰일들이 나쁜 쪽으로 많이 일어나면 지극한 복을 짓누르고 상하게 한다. (1100b29)
대응 : 행복한 사람은, 물론 프리아모스가 당한 것과 같은 비운이 덮친다면야(큰일들이 나쁜 쪽으로 많이 일어나면) 지극히 복될 수도 없겠지만, 결코 비참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1101a6-8)
⇒ 여기서 ‘품위 있게 견뎌냄’과 ‘비참’ 개념을 고려하여 행복과 불행이 어떤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때, 다음과 같이 이해해볼 수 있을 것:
불행 | 행복(지극히 복됨) | |
비참 | 품위 있게 견뎌 냄 | 인간인 한 지극히 복됨 ~ 전 생애에 있어 복됨 |
큰 불운, 탁월성x | 큰 불운, 탁월성o | 작은 불운/행운 ~ 큰 행운 ~ 완전한 생애, 탁월성o |
불행한 사람 | 행복한 사람 | |
비참 | 품위 있게 견뎌 냄 | 인간인 한 지극히 복됨 ~ 전 생애에 있어 복됨 |
큰 불운, 탁월성x | 큰 불운, 탁월성o | 작은 불운/행운 ~ 큰 행운 ~ 완전한 생애, 탁월성o |
Q : 행복한 사람이 불행하다는 것은 형용모순 아닌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A : De dicto로는 형용모순이지만, De re로는 형용모순이 아니다. (앉은뱅이는 설 수 없다 – 앉은뱅이의 정의상 그렇지만, 실제 앉은뱅이가 치료를 받는다면 설 수 있음) 큰 불운이 작용하였기에 불행해진 상태는 맞지만, 탁월성이 있기에 큰 불운을 극복하고 행복해질 수 있으므로 행복한 사람. “건강한 사람이 코로나로 건강이 좋지 않다.” 같이 이해해도 좋을 듯? (탁월성을 외부 인풋에 어떻게 반응하여 행위할 지를 결정하는 필터와 같이 이해해도 좋을 듯 – 나현)
⇒ 결국 솔론의 문제 제기는 1) 행복에는 탁월성이 결정적임을 놓친 점, 2) 그래서 행복은 어떤 불운에도 취약하다고 간주한 점, 3) 죽으면 불운으로부터 벗어난다고 간주한 점에서 비판 가능. ~1) 행복에는 탁월성이 결정적이며, ~2) 그래서 행복은 웬만한 불운에도 취약하지 않고 (심지어 큰 불운에서도 회복될 수 있음), ~3) 죽으면 불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아님. 솔론의 문제 제기의 의의는 행복에 운이 영향을 미치긴 한다는 점, 즉 행복에 있어 ‘인간인 한’을 지적한 것.
제11장 행복과 죽음 이후 (1100a22-1101b9)
1. Grabbing the horns
후손들의 일이 조상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조상은 어떤 때는 행복하다가 어떤 때는 도로 비참하게 되는데, 이는 이상하다.
2. Resolving the dilemma
1. 후손들의 일은 조상에게 영향을 미친다.
2. 어떤 일은 A에게 영향을 더 많이 미치고, 다른 어떤 일은 영향을 덜 미친다.
2-1. 자기 자신과 관련한 불운들의 영향력 차이가 있는 것처럼, 친구에 관련한 불운들도 영향력 차이가 있다.
2-2. 불운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 관계할 때와 죽은 사람들과 관계할 때 영향력 차이가 있다.
3. A에게 영향을 덜 미치는 일은 A의 행복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4. 후손들의 일은 조상에게 영향을 덜 미치는 일이다.
5. 따라서, 후손들의 일은 조상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조상의 행복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 2.에서 불운한 사건 자체의 크기와 불운한 사건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불운한 사건이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임.
⇒ 도대체 죽은 사람들이 어떤 좋음이나 그 반대의 것에 참여할 수 있는가라는 난제가 제기되지만(1101a35),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난제를 따로 해결하고자 시도하지는 않음.
“그러므로 친구들이 잘하고 못하는 것은 죽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을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거나 이런 종류이 어떤 다른 일을 만들어 낼 성질의 것도 아니며, 그럴 정도도 아니다.”(1101b6-9)
제12장 칭찬과 명예 (1101b10-1102a4)
Main Question : 행복은 칭찬받을 만한 것인가, 아니면 명예로운 것인가?
1. 칭찬받을 만한 것 (1101b13-26, 1101b31-35)
“칭찬은 탁월성에 관련한 것이다.”(1101b31)
“칭찬받을 만한 것은 모두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에 대해 특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칭찬받는 것으로 보인다.”(1101b13-14)
⇒ 탁월한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성질(탁월성)을 갖추고 있고, 그들의 행위나 성취(어떤 좋고 신실한 것에 대한 관계) 때문에 칭찬한다.
1. 칭찬은 탁월성과 행위나 성취에 관련되는 것이다.
(2. 탁월성과 행위나 성취는 최고의 것이 아니다.)
3. 따라서, 칭찬은 최고의 것들에 관련되지 않는다.
⇒ 최고의 것들(신들, 인간들 중에서 가장 신적인 인간들, 행복)에는 칭찬보다 더 크고 더 좋은 무엇이 관련된다. 실제로도 [...] 칭찬하지는 않고 [칭찬받는 어떤 것보다] 더 신적인 것이며 더 나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지극히 복된 것’이라고 부른다.
2. 명예로운 것 (1102a1-4)
“행복이란 명예로우며 완전한 것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1102a1)
1. 좋은 것들의 원리이자 원인인 것은 명예롭고 신적인 어떤 것이다.
2. 행복이야말로 그것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이 행해지는 원리이자 최고의 것이다.
3. 따라서, 행복은 명예롭고 신적인 어떤 것이다.
Main Answer : 행복은 명예로운 것이다.
Q : Main Question 같은 질문은 왜 던졌는가?
A : Eudoxus(1101b27-30) had built an argument for hedonism on the doctrine that the chief good is a per se good beyond praise. According to Eudoxus, the chief good, and god, have this status, because it is to them that other goods (including the objects of praise) ‘are referred’. Ar. accepts the Eudoxan rule, adds one further ingredient, and shows that the resulting criterion is satisfied by happiness as defined by himself. The further ingredient is the assumption that the category of things ‘superior to the praise-worthy’ is the category of the honourable. [...] human happiness is godlike [...] advantage against Eudoxus’ candidate for highest good, since it might be hard to show that pleasure as such is honourable. (B&R 289-290)
A :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체 목적적인 최고선의 후보에서 즐거움(놀이 등)을 배제하고 나아가 자신의 철학이 쾌락주의로 빠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 명예나 신실함(진지함) 등을 일종의 방어기제로 두는 것으로 보임. (나현)
제13장 영혼의 탁월성 (1102a5-1103a10)
1. 행복에 관해 더 잘 알기 (1102a5-1102a26)
“행복은 완전한 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어떤 활동이기 때문에, 탁월성에 관해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행복에 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1102a5-8)
Q : 행복은 완전한 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어떤 활동이다. 여기서 탁월성이란 무엇일까?
- 우리가 추구해 왔던 좋음도 인간적인 좋음이고, 행복도 인간적인 행복이었으니, 탁월성도 인간적인 탁월성을 말하는 것
- 인간적인 탁월성을 말할 때는 육체의 탁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탁월성을 말하는 것, 행복 또한 영혼의 활동이라고 말함
Main Question : 영혼의 탁월성은 무엇일까?
- 영혼의 탁월성을 알려면 영혼을 알아야 함
- 그렇다면 정치학자 또한 영혼에 관해 연구해야 하지만, 문제되는 사안들을 해결할 목적으로, 또 탐구 주제에 충분할 정도만큼만 연구해야 할 것
Subordinate Question : 영혼은 무엇인가?
2. 영혼의 세 부분 (1102a27-1103a12)
영혼 | |||
이성을 가진 부분 | 이성이 없는 부분 | ||
Ⓐ 일차적인 의미의 이성 : 자체 안에 이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 |
Ⓑ 욕구적인 부분 : 이성에 설복/저항하는 부분 |
Ⓒ 식물적인 부분 : 영양과 성장의 원인 |
|
Ⓐ` 지적 탁월성이 관계하는 영역 | Ⓑ` 성격적 탁월성이 관계하는 영역 |
Ⓒ 식물적인 부분
- 모든 생물에 공통적인 어떤 것이지, 특별히 인간에게만 있는 것 같지는 않음
- 수면 중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부분 (수면 중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해 내기가 어려움) (꿈의 경우 예외)
- 본성상 인간적인 탁월성에는 아무런 몫을 가지고 있지 않게끔 되어 있음
Ⓑ 욕구적인 부분
- 우리는 ‘자제력 있는 사람’과 ‘자제력 없는 사람’의 이성과 그들의 영혼의 이성을 가진 부분을 칭찬하고 격려하지만, 그들 안에서 이성과는 별개인 어떤 다른 것이 이성과 싸우고 이성에 맞서고 있음.
- 이 부분 또한 이성에 참여는 하는 것처럼 보임. 어쨌거나 자제력 있는 사람의 이 부분은 이성에 설복되고, 절제 있는 사람과 용감한 사람의 이 부분은 이성의 말에 훨씬 더 잘 귀를 기울이며 모든 점에서 이성과 한목소리를 냄.
- “[...] it is the way one is reasonable when one takes account of advice from one’s father or loved ones, not when one has an account of things, as for example in mathematics.”(1102b32-33) → 아버지의 말을 듣듯 그렇게 이성을 듣고 따를 수 있는 어떤 것
Ⓐ 일차적인 의미의 이성
Subordinate Answer : 영혼은 Ⓐ, Ⓑ, Ⓒ로 구성된 것이다.
Main Answer : 영혼의 탁월성은 Ⓐ의 탁월성과 Ⓑ의 탁월성이다.
Ⓑ 성격적 탁월성
- 자유인다움, 절제 등
- 어떤 사람의 품성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그가 지혜롭다거나 이해력이 있다고 하지 않고, 온화하다거나 절제 있다고 말함
Ⓐ 지성적 탁월성
- 지혜(sophia), 이해력, 실천적 지혜 등
- 지혜로운 사람을 칭찬하는 것도 역시 영혼의 상태에 근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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