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2023.10.8~ 기록

2024.2.19.(월)-3.3(일)

현담 2024. 3. 4. 01:43

2024.2.19.()-3.3()

 

*2.24() : 코어 멘토링 프로그램 멘토였던 분과 저녁식사를 했다. 대화 중 인상 깊었던 내용과 내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1) 자기 전공이 꼭 자기가 가장 재미있어 하는 분야일 필요는 없다. 재미가 아예 없으면 그것도 문제이지만, 어느 정도 재미가 있으면 자기가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전공하는 게 좀 더 맞지 않나 싶다. 멘토는 주희를 가장 재미있어 하지만 이이를 전공하는데, 주희 말이 너무 맞다고 느껴져서 주희에 대해서 글을 쓰면 자기 목소리가 사라지고 주희의 목소리만 남게 되어 좋은 글이 안 써진다고 말했다. 오히려 멘토는 이이의 철학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않은데, 그래서 왜 이이가 주희의 적통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는지, 이이의 철학에 어떤 문제가 발견되는지 등의 연구거리가 보이고 연구자로서 자기 목소리를 담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나도 사실 텍스트를 읽는 재미는 고대철학 텍스트가 현상학 텍스트보다 훨씬 재밌다. 그렇지만 현상학을 전공하는 이유는 현상학적 사고가 내가 사고하는 방식과 잘 맞으면서 또한 철학의 여러 문제들을 접근하는 데에 유용한 길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철학을 업으로 삼고 계속 해나가기 위한 추동력을 얻기 위해서 재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철학함을 통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 내지는 철학자로서의 소명의식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멘토는 자신이 윤리학을 하는 이유는, 종래에 지식이나 의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윤리를 그로부터 해방시키키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똑똑한 사람이나 의지력이 강한 사람만이 윤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 일종의 윤리적 엘리트주의처럼 느껴졌고, 평범한 사람도 윤리적일 수 있는 윤리학을 마련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멘토에게 윤리학을 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윤리적 고양을 위해 힘쓴다는 의미를 가진다. 나는 어떤 미션을 위해 현상학적 철학을 하는가? 멘토처럼 한마디로 말할 수 있을만큼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세상과 만나는지, 아니 나와 세상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의미를 가진 모든 것이 어떻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모든 것이 공하더라도 공한 것은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다. 그리고 이 의미들의 향연 혹은 무의미의 공허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찰나와 같은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삶이 행복에 이르기 위한 가장 자유롭고 즐거운 놀이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동체는 어떠해야 할까? 나는 이런 질문들에 나름의 설득력 있는 대답을 제시해보기 위해 철학을 하는 것 같다.

  3) 멘토는 재미와 의미에 하나가 더 필요하다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에 빠져야 한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이 좋은 예다. 고대철학하시는 교수님들은 덕후처럼 고대철학에 몹시 빠져 있어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 당대의 지리와 역사 등을 꿰고 있다. 현상학자인 우리 지도교수님도 후설 덕후임이 분명한데, ‘시대를 바꾼 나의 스승에게라는 대학신문 시리즈 기획물 중 하나로 교수님이 기고하신 후설에게 쓰는 편지가 그 증거다. 나는 어떤가? 나는 현상학을 하게 된 근본경험 같은 것이 있다. 현상학 수업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항상 보아오던 나무를 보고 새삼 그것이 그렇게 보이는 나무라는 데에서 느꼈던 신비로움, 동굴에서 세상이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는 와중에도 느껴지던 신체의 감각들에 대한 놀라움.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하기는 멋쩍으나 세상을 경이롭게 경험하도록 하는 현상학에 나는 매혹당했다. 나는 석사 입학을 위한 자기소개서에 다음과 같이 썼었다: 병원에서 간호사의 보살핌만 받던 아기가 부모의 품에서 병원을 나올 때 자기 앞에 펼쳐지는 전혀 새로운 풍경에 놀라는 것처럼 저는 현상학의 품에서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고 놀랍니다. 평생 현상학의 손을 잡고 세상을 탐구하면서 아기처럼 놀라고 또 즐거워하며 연구하고 싶습니다.”

  4) 멘토는 비전공자 일반인에게 자기가 하는 연구를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잘 전달하지 못한다면 자기 연구에 대한 자기의 이해가 완벽하지 못하거나 전반적인 맥을 못잡고 지엽적인 부분에 매달려 있기 때문일 확률이 크다고 했다. 나는 그것도 맞지만 잘 전달함을 넘어 잘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 연구에 어느 정도 흥미를 가지는 비전공자 대화상대가 내 연구에 관해 질문을 제기하거나 내 연구 주제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의견을 개진할 때 간혹 생각지도 못한 좋은 아디어를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철학이 저세상 개소리가 아니라 이 세상을 같이 사는 사람들이 가질 법한 의문에 대해 대답하는 활동이라면, 상식적인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철학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으며 유의미한 직관을 가지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다.

  5) 이사 얘기를 하면서 책이 짐이라 책을 작작 사야겠다고 말했다. 이제는 나도 아이패드가 있으니 굳이 물질 책을 소유해야할만큼 훌륭하거나 긴요한 책이 아니라면 파일로 읽으면 될 노릇이다. 멘토는 소유할만한 좋은 책을 사기 위해서는 먼저 책을 읽고 그 다음에 그 책을 사야한다는 팁을 알려주었다. 좋은 책을 사서 그것을 읽는다는 건 순서가 잘못 되었다.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그게 좋은 책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좋은 책을 읽고 그게 살만큼 좋은 책이라면 그때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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