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현상학 일차문헌

[후설] "시각적 [영역] 그리고 촉각적 영역 사이의 차이들" (『이념들2』2부 3장 37절) (2/3)

현담 2022. 11. 30. 17:13

   Das Auge nämlich ist auch Lokalisationsfeld, aber nur für Berührungsempfindungen und wie jedes vom Subjekt “frei bewegliche” Organ ein solches für Muskelempfindungen.

   Actually, the eye, too, is a field of localization but only for touch sensations, and, like every organ "freely moved" by the subject, it is a field of localized muscle sensations.

   더 자세히 말하자면, 눈도 위치화된 장이다, 그러나 촉감각들만에 대해서[을 통해서]만이고, 주체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모든 기관과 같이 근육감각들에 대해서 그러하다[위치화된 장이다].

 

*nämlich : «언급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열거함» , 더 자세히 말하자면 / beweglich : moveable (bewegen : 움직이다) / ein solcher : 그러한

 

*근육감각들(Muskelempfindungen)은 무엇인가? 주체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여지는 모든 기관이라는 말을 봐서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각으로 이해된다. (G)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만이 키네스테제감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지해있는 상태에서도 키네스테제감각이 있을 수 있다. (교수님) 그렇다면 키네스테제감각과 근육감각의 관계는 무엇인가? (B) 키네스테제감각은 촉감각과 근육감각을 포섭하는 것 아닐까? (E) 적어도 촉감각을 포섭할 수는 없다. 앞선 논의에 따르면 촉감각은 키네스테제를 토대로 성립할 수 있는 징표감각이다. (F) 각 감각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정리하는 것은 차차 해보자.

  한 가지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음과 근육감각이 연관된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관(frei bewegliche Organ)”을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감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관에만 해당되는가? 주체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관과 근감은 어떤 관계인가? 자유롭게 움질 수 있는 기관만이 근육감각의 담지자라고 할 수 있을까? 걸을 때 다리에 근육감각을 느낀다. 그것은 분명하다. 근데 문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고 해서 근육감각이 없다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교수님) 심장은 불수의근인데도 뛰는 감각이 느껴진다. (K) , 운동하다가 쥐가 났을 경우, 병이 났을 경우, 신체기관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때도 근육 움직임을 다 느낀다.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데에 따옴표를 쳐놓았는데, 이런 사례가 존재하니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을 잘 좀 이해해달라고 그런 것 같다. 본래적인 의미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 포함하여 생명체가 기계와 달리 움직일 수 있다는 넓은 의미에서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 팔을 만질 때 촉감각을 통해 위치지어짐을 알고, 내 팔의 근육감각을 통해서 느끼면서도 위치지어짐을 안다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불편한 것은, 문장 앞에서는 촉감각들(nur)’에 대해서 위치화된다고 했는데, 문장 뒤에서는 근육감각들에 대해서 그러하다(ein solches fur)’고 한 것이다. 앞에서 이라고 했으면, 뒤에서 촉감각 이외의 것을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왜 뒤에서 또 근육감각을 이야기할까? 촉감각(Berührungsempfindung)과 근육감각(Muskelempfindung)의 관계는 무엇일까? (교수님)

  넓은 의미에서의 촉감각(Berührungsempfindung)은 근육감각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근육감각이 아닌 촉감각이 뭐냐고 묻는다면 더듬는 촉감각(Tastempfindung)을 이야기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촉감각은 더듬는 감각과 근육감각을 포함한다고 보면 문장이 일관적이다. (A) 근육감각이라는 것이 꼭 접촉이 되어야 하나? 쥐나면 접촉하지 않아도 근육 뒤틀리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면 촉감각과 근육감각을 다른 걸로 분류해야 되지 않나? (교수님) 근감은 핵심은 긴장감(tension)으로 보인다. 그러면 촉감각이 긴장감과 같냐고 물을 수 있는데, 접촉면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얘기할 수 없지만, 수축이완의 측면에서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G) 뒤에 다른 이야기도 있으니까 일단 의문을 가지고 더 읽어보자. (교수님)

 

Es ist ein Tastobjekt für die Hand, es gehört ursprünglich zu den bloß getasteten und nicht gesehenen Objekten.

It is an Object of touch for the hand; it belongs originally to the merely touched, and not seen, Objects.

그것은[눈은] 손에 대한 촉각적 대상이다, 그것은 단지 만져진 [대상]들에 기원적으로 속하고 보여진 대상들에는 속하지 않는다.

 

*우리 눈은 근원적으로는 단지 만져만 지고, 즉 촉감만 가능하고, 보여지지는 않는 대상들에 속한다. 단지 만져만 지고 보여지지는 않는 대상들에는 또 무엇이 있는가? (교수님) 정수리나 등이 있다. (A) 눈과 정수리나 등이 감각되는 양상들이 너무 다르지 않는가? 여러 가지 딴 예들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보자. (교수님)

 

Ursprünglich besagt hier nichts Zeitlich-kausales, es handelt sich um eine Urgruppe von Objekten, die sich direkt anschaulich konstituieren.

"Originally" is not used here in a temporal-causal sense; it has to do with a primal group of Objects constituted directly in intuition.

원칙적으로 여기서 아무것도 시간-인과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or “기원적은 여기서 아무런 시간적-인과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직접 직관적으로 구성된 대상들의 어떤 근원집단을 논하는 것이다.

 

*handeln : 논하다 / es handelt sich um et. : ~이 문제다(중요하다) / die Gruppe : group

 

*영역에서는 “Originally”로 해석하였다. (E) 불역본도 영역본이랑 똑같이 따옴표 해놓았다. (F) 원문에는 따옴표가 없다. 번역자들이 따옴표 붙여서 해석한 건데, 따옴표가 붙어 있다면 그렇게 번역할 수 있다. (교수님)

 

*시간적-인과적인 것(Zeitlich-kausales)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교수님) 만져짐과 보여짐 사이에 시간적 선후관계를 얘기하는게 아니다. 만져짐이 보여짐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는 게 아니다. (E) 근원적을 원칙적으로라고 읽어도 될 것 같다. 시간적-인과적인 것을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았을 때, 지금의 논의는 현상학적 컨텍스트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의 구별 필요 없이, 직관적으로 구성되는 대상들의 근원집단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는게 더 편할 것 같다. 그런데 영역/불역에 따르면 근원적의 의미를 해명하면서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의 구별까지 염두에 두는 것처럼 여기서는 발생적 현상학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게 되는데 그럴 수도 있긴 하다. 그 구별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을 구별할 때 상호주관성의 현상학1유고를 많이 인용했었다. 그런데 이념들2에서도 그런 구별을 발견하는 해석을 시도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좋은 해석이고 깊은 해석이다. 그러나 과연 여기 맥락에서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교수님)

 

Das Auge wird getastet und liefert selbst Tast- und Bewegungsempfindungen ; darum wird es notwendig als zum Leib gehörig apperzipiert.

The eye can be touched, and it itself provides touch and kinetic sensations ; that is why it is necessarily apperceived as belonging to the Body.

눈은 만져지고, - 그리고 운동감각을 자신에게 제공한다[낳는다] ; 그러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육체에 속한 것으로서 통각된다.

 

*handeln : 논하다 / es handelt sich um et. : ~이 문제다(중요하다) / die Gruppe : group / liefern : provide, deliver / notwendig : 필수불가결한 / darum : 그 때문에, 그러므로 / apperzipieren : 통각하다

 

*여기서 갑자기 운동감각이 나오는데 나온 이유를 잘 모르겠다. (C) 손으로 눈을 만지는 경우의 단순한 사태 기술 아닐까. (A) 운동감각이 촉감각의 가능조건인데 가능조건이니 당연히 따라오는 거라 같이 써준 거 아닐까. (E) 가능조건이라 말할 때는 운동하는 기관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운동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현출되는 자신이라서 그 맥락이 아닌 것 같다. (A) 눈도 운동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눈도 우리가 돌려볼 수 있다. 눈에도 운동감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C)

 

*통각하다(apperzipieren)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칸트 공부할 때도 통각 개념이 너무 어려웠다. (A) 김태희 선생님 책에 따르면, 통각과 해석(deuten)은 혼을 불어넣는다(beseelen)와 동일하다. 지금 맥락 속에서 지각과 구성이 동일하게 표현되고 있어서 지각하다, 구성하다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본다. (C) 후설의 통각 개념을 잘 설명했다. 일단 논리연구와 그 이후의 쓰임이 다른데, 좀 넓어지는데, 논리연구에서는 감각자료(empfindung)이 있고, 그것이 비지향적 체험이라고 말한다. 이 감각자료를 지향적 체험이 통각(apperzipieren)해서 지향적 대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아까 혼을 불어넣는다고 했는데, 감각자료는 대상이 안 되었으니깐 혼이 없는데, 혼을 불어넣어서 대상이 된다. 이 과정을 통각이라 하는데 이 도식이 이후로 깨진다. 지난 시간에 얘기했듯이 노에시스-노에마가 층층이, 맨 아래층부터, 그 다음 층 그 다음 층 올라가는데, 올라가는 매 과정 과정이 전부 통각이다. 생활세계적 대상을 토대로 해서 과학적 대상을 경험하는데 그것도 통각이다. 그러니까 대상에 대한 우리의 그 어떤 파악, 이해가 일종의 통각이다. (교수님) 상호주관성 맥락에서 타인지각도 통각이라 할 수 있는가? (E) 그렇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파악작용이 일어나지 않는가? 제스처, 목소리 등을 통해서 의미 파악이 일어나는데 그것도 통각이다. 나의 상태에 대한 파악도 통각이다. 저기 시계를 보고 세시 오분이라 생각하는 것도 파악, 통각이다. 어디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보며 이게 어떤 작품이구나 하는 것도 파악이고 통각이다. 우리 모든 지향적 체험이 다 통각이고, 해석이자, 구성이고, 경험이다. (교수님) 다른 구성 작용과 통각이 갈라지는 지점이 있나? (A) 없다. (교수님) 칸트랑 다른가? 표상이 나의 것이라는 인지가 칸트에게서는 통각이다. (A) 칸트 철학의 콘텍스트가 따로 있다. 다음 기회에 얘기해보기로 하자. 후설에게서 통각은 반성적 자기지각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포함된다. (교수님) 외연이 같은데 굳이 이 단어를 왜 쓰는지 모르겠다. (A) 칸트의 통각 개념과 같지 않다.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perception에 더해졌다(ap), 그래서 apperzeption인데, sensation에 더해지는 것이 통각이다. 더 높은 단계를 구성할 때 모두 통각이 된다. (교수님) 통각 개념을 현상학 사전에 검색해봤는데, 통각은 파악과 기본적으로 같지만, 이념들1에서는 나의 의식과 신체와의 결합이라는 맥락에서, 데카르트적 성찰에서는 두 신체의 타자구성론 속에 도입되어 나의 신체와 타자의 신체의 유비화하는 맥락에서 사용된다고 한다. 부대현전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무언가와 무언가의 결합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부여받고 있다고 한다. (E) 예를 두 군데에서 들었다. 나의 의식과 신체의 결합, 그리고 타인지각. 그 자체로는 맞는 얘기지만 통각을 특정한 작용과 동일시할 우려가 있어서 설명이 우려스럽다. 우리가 앞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경험이 일어나는 모든 것이 통각이다. 내가 설명한 일반적 설명의 예시로 그 둘을 이해하자. (교수님)

 

Das alles vom Standpunkt der schlichten Erfahrungsanschauung gesprochen.

All this is said from the standpoint of straightforward empirical intuition.

이 모든 것들은 소박한[단적인] 경험직관의 견지[관점]에서 말해진 것이다.

 

*schlicht : 소박한, simple (schlichten : settle) / der Standpunkt : 견지 (=der Stand + der Punkt)

 

Man wird nicht die Beziehung der gesehenen Dingfarbe auf das sehend Auge, “mit” dem wir sehen, das “Gerichtetsein” des offenen Auges auf das gesehene Ding, den Rückweis auf diese Augenrichtung, der im Haben der Gesichtserscheinungen liegt, und dann das Verhältnis der Farbenemfindungen zum Auge, das daraus erwächst, vermengen mit dem Gegebenhaben dieser Empfindungen in der Weise eines lokalisierten “Empfindnisses”.

The relation of the seen color of the thing to the seeing eye, the eye "with which" we see, the "being directed" of the open eye onto the seen thing, the reference back to this direction of the eye which is part of having visual appearances, and, furthermore, growing out of this, the relation of the color sensations to the eye - all that will not be confused with the given ness of these sensations in the manner of localized “sensings.”

누군가 [다음의 두 가지를] 혼동하지는(vermengen) 않을 것이다. [첫째] [1] 보여진 사물의 색과 보는 눈과의 연관을, [그 눈은] 우리가 그것으로써 보는 [눈이다], [2] 열린[] 눈의 방향지어져 있음, 보여진 사물 위로, [3] 이러한 눈의 방향 위에서 뒤로 지시를, [뒤로 지시는] 시각현출들을 가짐 안에 깔린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4] 눈에 대한 색감각들의 관계를, 그곳에서[눈의 방향 위에서 뒤로지시] 불러일으켜지는. [둘째] [5] 위치화된 “[위치]감각들의 방식으로 이러한 []감각들의 소여와 [혼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auf et. Beziehung haben : ~와 관련되다 / gerichtet : ~로 방향 잡은 (richten : 바로잡다, 향하게 하다) / offen : opened (öffnen : open) / Rückweis : 뒤로 지시 (=rück- : 뒤로 + weisen : 가리키다) / liegen in : ~에 누워 있다 / dann : then / das Verhältnis (zu) : 관계 (=ver- + halten : keep) / erwachen : awake, arouse (=er- : 밖으로 + wachen : 깨어있다, 감독하다) / vermengen : 혼동하다 (=ver- : 착오 + mengen : mix) / gegebenhaben : 주어짐, 소여(have given) / in der Weise 2: in the manner of ~

 

*본 문장의 일차적 내용이 무엇인가? 앞에 것과 뒤에 것을 혼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1) 보여진 사물의 색이 보고 있는 눈과의 관계. 이를테면 갈색이 있으면 갈색과 보는 눈과의 관계. 2) 뜨고 있는 눈이 보여진 대상을 향해 있음. 3) 시각현출을 가지고 있을 때, 거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눈의 방향으로의 소급지시. 4) 그로부터 생기는 바, 색감각이 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계. 이것을 무엇과 혼동하면 안 되느냐. 5) 위치지어진 감각이라는 방식으로 이러한 감각을 가지고 있음. 이를테면 위치감각이란 방식 속에서 갈색감을 가짐. (교수님) “Gerichtetsein”이 무엇인가? (E) 지향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님) 5)는 불가능한 것 같다. (A) 색감각이 비본래적, 간접적인 방식으로 위치와 장소를 가진다고 얘기를 할 수 있으니 5)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닌 듯하다. (C) 간접적인 방식과 직접적인 방식을 논의할 때 위치감각을 다르게 정의하는 거 같다. 처음에는 책상을 만지면 감각이 손가락 어디로 느껴지는지 안다, 하지만 색감각은 눈 어디로 보는지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위치지어짐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제 비본래적으로 위치지어진다는 것은, 내 눈을 만지고 여기쯤 내 눈이 있구나.’하는 것처럼, 내 신체 부위가 내 신체 어디쯤에 위치지어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B) 그러니까 비본래적인 위치화 아닌가? 시감각은 여기쯤 있는 거라고 대충 이야기할 수 있지만, 촉감각은 비교적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다. 눈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적할 수 있고, 그것은 비본래적으로 위치지어져서 가능하다. (교수님)

 

*앞에 것 네 가지, 1) ~ 4)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교수님) 1)2)3)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있고, 1)4)가 같고, 1), 2), 3), 4)5)와 다르다. 이렇게 이해했다. (A) 2)는 눈 대상, 3)은 대상 눈 방향을 얘기한 것 같다. (D) 1)은 사물-눈 관계이다. 그리고 4)에서 daraus는 소급지시로 생겨나는 바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색감각이 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계이다. 4)3)과는 다르다. 그다음으로(und dann)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3)2)를 염두에 두면서 그것의 소급지시라고 했으니 3)2)와 다르다. 1)에서 한 번은 사물 쪽, 2)에서 다른 한 번은 눈 쪽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1)2)는 같은 내용을 저쪽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느냐 이쪽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3)은 이 지향적 관계로 소급지시된다. 이 지향적 관계가 관건이고 핵심이다. 시각 현출을 가지고 있을 때 거기에 놓여있는 바 눈의 방향으로의 소급지시. 그 다음에 4) 색감각이 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1) ~ 4)5) 위치지어진 감각의 방식에서 색감각이 경험됨과 다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런데 4)가 불투명하게 느껴진다. 앞에 1), 2)에서는 사물의 색(Dingfarbe)이라고 이야기했다. 앞에서 이렇게 사물과 눈의 관계를 이야기햇다면, 4)에서는 사물이 문제가 아니라, 색감각들이 문제가 된다. 색감각과 눈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4)에서 색감각들(Farbenempfindungen)은 무엇인가? 그리고 앞에 3)에서 시각현출들(Gesichtserscheinungen)은 무엇인가? (교수님)

  Dingfarbe는 동일자다. 그러나 색감각들은 Dingfarbe로 구성될 여러 음영들 중 하나이거나 다양체이다. (A) 시각현출(3)과 색감각(4)과 색(1, 2)을 구별해보자. (교수님) 시각현출과 색감각은 내포만 다르고 외연은 같다. (A) 그러면 Rückweisdaraus는 어떻게 해석하는가? 논의를 편하게 하기 위해 시각현출을 색현출(color appearances)이라 부르겠다. 책상의 색현출은 어떠한가, 갈색이지만 어떠한가, 멀리서 봤을 때와 가까이 봤을 때가 다르다. 아까 학생이 음영지어진다고 했다. 그게 거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색현출을 우리가 가지고 있을 때 거기에 놓여있는, 눈의 방향 속에 여러 방향이 있고 그 중 색현출이 경험되는 거고, 늘 대상의 음영진 측면들이, 그때그때 드러나는 측면들이 새롭게 경험된다. 그것이 바로 대상의 색을 규정해주는 출처, 궁극적인 원천이라는 것이다. 눈의 방향이라고 했는데, 사물의 색을 향한 눈의 방향을 뜯어보면, 그 속에는 말하자면 색 현출을 쭉 가지고 있을 때, 동일한 색을 향한 눈의 방향이 놓여있구나 하는 것이다. 1)2)는 출처가 3)에 있는 것이다. 3)은 근원을 추적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und dann)’라고 했으니까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색감각(color sensations)과 눈의 관계는 어떠한가. 일단 감각(sensations)은 여기서 비지향적 체험, 감각내용이라 생각하자. 낮은 단계의 지향적 체험과 대상이라고까지 생각하지 말자. 비지향적 체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눈과 관련해서 가지는 것이다. 눈이 있으니 그걸 갖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음영들이 주어지는데 그 주어지는 출처는 우리가 가지는 비지향적 체험으로서 감각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할 때 하나 문제는 관계가 그로부터 생겨난다(das daraus erwächst)’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강하다. 그보다는 거기서 확인할 수 있는, 관찰할 수 있는 관계이다. (교수님) darausdaAuge, 그냥 눈일 수는 없나? (A) da는 굳이 얘기하면 3)이라 봐야하는데, 3)을 가만히 고찰해보면 ‘erwächst’라는 표현이 너무 강하다. 소급지시를 들여다보면, 색감각과 눈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정도로 이야기하면 어떤가. (교수님) daAuge로 해석하는 게 문법적으로 어색하지 않다면 Auge로 해석해서 그런 문제를 피하면 되지 않는가. (A) 만약 Auge를 받는다면 ‘heraus’로 쓰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해봐도 후설이 자세히 써놓지 않아서 결론이 안 난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첫 번째, 객관적 층위의 사물과 눈의 관계. 두 번째, 그때그때 주어지는 현출들과 눈의 관계. 세 번째, 색감각과 눈의 관계. 이 셋을 구별해보자. 이것들은 또 무엇과 다른가 하면, 위치화된 감각과 다르다. 다음과 같은 세 층위를 나눌 수 있다. thing color / color appearances / color sensations. (교수님) appearancessensations를 왜 나누는가? (A) ‘und dann’이라고 쓰여 있으니 새로운 내용이 쓰여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교수님) appearancessensations의 내용이 어떻게 다른가? (A) appearances는 저쪽에 있다. appearances of the thing이다. sensations는 내실적 소여이다. 비지향적 체험이라고 하니까. (교수님) 1), 2) 객관적 지향적 체험, 4) 비지향적 체험이면, 3)은 무엇인가? (E) 3)은 아직 지향적 체험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 그러나 저쪽에 자기동일적인 것으로 구성된 사물의 색은 사실 매순간 다르게 현출한다, 그래서 어쨌든 대상쪽에 있다. 예컨대, 책상을 똑같은 갈색으로 파악하는 건 1), 2) 단계이다. 3)에서는 이렇게 보면 이런 갈색, 저렇게 보면 저런 갈색으로 보이는 단계이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 위해서는 4) 비지향적 체험으로서 감각이 있어야 한다. (교수님) 3)을 통각해야 1), 2)가 되는가? (E) 맞다. 그리고 3)이 있기 위해서는 4)가 있어야 한다. (교수님)

 

   Ebenso verhält es sich mit dem Hören.

   The same applies to hearing.

   듣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사정에 있다.

 

*das Hören : 듣기

 

Das Ohr ist “mit dabei”, aber der empfundene Ton ist nicht im Ohr lokalisiert.

The ear is "involved," but the sensed tone is not localized in the ear.

귀는 거기에 함께있다, 하지만 감각된 음은 귀에 위치지어지지 않는다.

 

*das Ohr : , 청각 / dabei : included / der Ton : tone

 

*‘der empfunden Ton’은 가능한 말인가, 가능하지 않은 말인가? (교수님) Tonempfindungen을 쓰고 싶었던 것 아닌가? 어쩔 수 없는 언어 선택 아닌가? (A) 그렇다면 ‘die Tonempfindungen’이라고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아까 감각을 비지향적 체험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감각을 비지향적 체험이 아니라 어떻게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거기에도 지향적 대상과 지향적 체험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듯이, 낮은 단계의 지향적 체험과 대상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낮은 단계의 체험은 ‘das Empfinden’, 즉 감각이고, 낮은 단계의 대상은 ‘das Empfundene’, 즉 감각된 것이다. 하나는 ‘the sensing’이고, 다른 하나는 ‘the sensed’. 근데 지금은 the sensed라고 쓴 것. 바로 전에는 지향적 체험 모델이었다가, 여기서는 낮은 단계 지향적 체험 모델이 사용된다. 이쪽 틀, 저쪽 틀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앞 문단에서 4)의 정체가 왔다갔다하는 것 같다. 여기서 the sensed tone이 앞에 문단에서 3)에 해당하는지 4)에 해당하는지 왔다갔다한다. 여기 써있는 대로는 3)과 같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대상적 소여, appearances로 봐야한다.

  정리하자면, 감각은 비지향적 체험인데, 여기서 감각된 음이라고 말하면서 체험된 것이랑 체험이랑 나누는 것 같다. 감각작용과 감각내용을 나누고 있다. 논리연구에서 나온 감각 개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밑으로 층층이 새로운 것들이 나온다고 했는데, 여기가 그렇다. 지금은 이행기이다. (교수님)

 

(Selbst den Fall des “Ohrenrauschens” und ähnlicher subjektiv im Ohr befindlicher Töne möchte ich nicht hierher rechnen.

(I would not even say that the case of the "buzzing" in the ears and similar tones

subjectively sensed in the ear are exceptions.

(“귀의 사각거림그리고 [그와] 유사한 주관적으로 귀 안에 있는 음들의 경우마저도 나는 여기 이쪽으로[귀에 위치지어진 음으로]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selbst : ~마저 / Ohren- : auricular(귀의) / rauschen : 바삭(버석, 부스럭, 사각, 살랑) 소리를 내다(swish, whoosh) / ähnlich : similar / befindlicher : (어떤 곳에) 있는, (어떤 상태에) 처해있는 (=be- + findlich : 찾아낼 수 있는) / hierher : 여기 이쪽으로

 

Sie liegen im Ohr wie Geigentöne draußen im Raume liegen, sie haben aber darum noch nicht den eigentümlichen Charakter von Empfindnissen und die diesen eigentümliche Lokalisation1)).

1) Vgl. Beilage , S. 311. (편집자 주)

They are in the ear just as tones of a violin are outside in space, but, for all that,

they do not yet have the proper character of sen sings and the localization proper to them.1))

1) Cf. Supplement , p. 324.

그것들[사각거림과 그와 유사한 음들]은 바이올린 음들이 공간 안에서 바깥에 놓여 있는 것처럼 귀 안에[서 바깥에] 놓여 있다. 그것들은 그런데 그 때문에 아직 위치감각들의 고유한 성격과 이것에 독특한 위치지어짐을 갖지 않는다.)

1) 부록 , 324페이지를 참조하라!

 

*die Geige : 바이올린 / draußen : 밖에서 / eigentümlich : 독특한 (=eigen- : 자기의 + tümlich : 신분, 속성) / die Beilage : 부록 (bei- : 곁의 + liegen : 누워 있다)

 

*연주장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 연주가 바이올린이 연주자가 있는 무대 저쪽에서 감상자에게 들려오는 것이지 연주자 자리에서 들리는 것이 아님. 마찬가지로 귀 안[청각장]에서 어떤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는 저쪽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지 귀 자체[청각 기관]에서 들리는 것이 아님. (위치지어짐x) 참고로 사물과 공간에 따르면, 청각은 사물의 징표가 아직은 되지 못함. 이건 시감각과 또 다름. (사견)

 

Es wäre eine wichtige Aufgabe, die verschiedenen Sinnesempfindungsgruppen in dieser Hinsicht zu durchforschen.

It would be an important task to thoroughly examine in this regard the groups of sensations of the various senses.

[다음은] 하나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상이한 감관감각 집단들을 이러한 관점에서 철저히 연구하는 것은.

 

*die Aufgabe : 과제 (=auf- : 위로 + die Gabe : 주어진 것) / der Sinn : 감관, 감각 / durchforschen : 철저히 연구하다, examine (=durch : through + forschen : 연구하다, 조사하다)

 

*감관감각(Sinnesempfindung)이 아닌 감각이 있을까? 아니면 감각이면 무조건 감관감각일까? (교수님) 운동감각은 감관감각과는 좀 다르지 않은가? (F) 저번에 운동감각을 촉감각 밑으로 놓았었는데, 운동감각이 촉감각이고, 촉감각이 감관감각이라면, 운동감각도 감관감각이다. (D) 운동감각과 근육감각은 따로 접촉을 하지는 않아서 촉감각인가 싶다. 잠정적으로 감각에는 감관감각과 비감관감각이 있고, 비감관감각에는 운동감각과 근육감각이 있다고 하고 넘어가자. (교수님)

 

So wichtig dergleichen für eine durchgeführte Lehre von der phänomenologischen Konstitution der materiellen Dinglichkeit auf der einen und des Leibes auf der anderen Seite wäre, für uns genügt die allgemeine Unterscheidung.

However important that would be for a completely elaborated theory of the phenomenological constitution of material thinghood, on the one hand, and of the Body, on the other hand, for us now the broad distinctions will suffice.

그와 같은 것[상이한 감관들의 감각 집단들을 철저히 연구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 지라도. 하나의 완성된 학설을 위하여. 한편으로는 물질적 사물성의 현상학적 구성에 관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몸에 관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일반적인 구별로 충분하다.

 

*durchführen : 수행하다, 성취하다 (=durch + führen : 데리고 가다) / die Lehre : lesson, theory / ~ auf der einen, ~ auf der anderen Seite : ~ on the one hand, ~ on the other hand / genügen : suffice / allgemein : general (=all + gemein : common)

 

Uns ihrer zu versichern, müssen wir uns völlig klar darüber sein, daß Lokalisation von Empfindnissen in der Tat etwas prinzipiell anderes ist als Extension aller materiellen Dingbestimmungen.

To make ourselves sure of them, we must be perfectly clear on the fact that localization of sensings is in fact something in principle different from the extension of all material determinations of a thing.

우리에게 그것의[일반적인 구별의] 확언을 위해, 우리는 다음의 것에 대하여 완전히 명료해져야 한다. 위치감각들의 위치지어짐이 실로 원칙적으로 다른 어떤 것임에 대해 말이다. 모든 물질적 사물 규정들의 연장과는.

 

*versichern : 확언하다 (=ver + sichern : secure) / in der Tat : in fact / etwas : somewhat

 

*ihrer는 왜 2격으로 쓰였나? (B) 옥스퍼드 사전에 versichern2격을 받기도 한다고 되어 있다. (L) 검색 결과, 문어체로 2격 썼다고 하지만, 현재 소멸하는 추세라고 한다. (E)

 

Sie breiten sich zwar im Raume aus, bedecken in ihrer Art Raumflächen, durchlaufen sie u.dgl.

The sensings do indeed spread out in space, cover, in their way, spatial surfaces, run through them, etc.

그것들은[위치감각들은] 공간들 안에서 자신들을 밖으로 펼치긴 하고, 그것들의[위치감각들의] 성질대로 공간평면들을 덮으며, 그것들을[공간평면들을] 통과해서 나아가고, 그러하긴 하다.

 

*bedecken : 덮다 / die Fläche : surface / durchlaufen : run through

 

Aber diese Ausbreitung und Hinbreitung ist eben etwas wesentlich anderes als Ausdehnung im Sinne all der Bestimmungen, die die res extensa charakterisieren.

But this spreading out and spreading into are precisely something that differs essentially from extension in the sense of all the determinations that characterize the res extensa.

하지만 이러한 밖으로 펼쳐짐과 향하여 펼쳐짐은 정확하게는 [다음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것이다. 모든 규정들의 의미에서의 연장과는 [말이다.] [그 규정들은] 연장적인 것을 특징짓는[.]

 

*eben : precisely / die Ausdehnung : 연장 (ausdehnen : 늘이다)

 

*’Ausdehnung’technical term인가? (E) 그렇다. ‘Extension’은 라틴어식 표현이고, 독어식 표현은 ‘Ausdehnung’이다. (교수님)

 

Das Empfindnis, das sich über die Handfläche und in sie hinein verbreitet, ist nicht eine reale Dingbeschaffenheit (immer im Rahmen der Anschauungen und ihrer Gegebenheiten gesprochen) so wie die Rauhigkeit der Hand, ihre Farbe usw.

The sensing which spreads over the surface of the hand and extends into it is not a real quality of a thing (speaking always within the frame of intuitions and their givenness) such as, for example, the roughness of the hand, its color, etc.

위치감각은, 손바닥 위에서 그리고 그것[손바닥] 내로 퍼지는 [위치감각은], 하나의 실제적인 (항상 직관들과 그것들의[직관들의] 소여들로 말해진) 사물 성질이 아니다. 가령 손의 거침, 그것의[손의] 색 등과 같은.

 

*verbreiten : spread / hinein : (adv.) (rämlich) in, (zeitlich) into / die Beschaffenheit : 성질 / so wie : such as / die Rauhigkeit = Rauheit : roughness (rauh : rough)

 

*überhinein으로 같은 사태를 다르게 표현한 거 아닐까? 펼쳐지려면 방향성이 있게 펼쳐지니까. (교수님) 위에서 그리고 안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다른 사태를 표현한 거 아닐까? (A, D, E)

 

Die letzteren realen Dingeigenscahften konstituieren sich durch sinnliches Schema und Abschattungsmannigfaltigkeiten.

These real properties of a thing are constituted through a sensuous schema and manifolds of adumbrations.

후자의 실제적 사물 속성들은 구성된다, 감각적 도식과 음영다양체들을 통해서.

 

*음영다양체들(Abschattungsmannigfaltigkeiten)은 무엇인가? 예컨대, 그때그때 달라지는, 움직임 등에 따라서 달라져서 드러나는 색들이다. (수업)

 

*감각적 도식(sinnliches Schema)은 무엇인가? 이 말을 이념들2에서만 보고 다른 데서는 못 본 것 같다. 사물의 객관적 속성과 음영다양체 중간쯤에 놓여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념들237쪽에서는 환영(Phantom)이라 한다. 형태는 있지만 실제성이 없는 것이다. 실제성까지 있어야 사물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파악하는데 그까지는 못간 상태이다. 물질성이라고 하는 파악 층이 없이 순수하게 공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물통을 환영을 통해 실제 사물로 파악했을 때, 물통과 환영은 어떻게 다른가. 물통은 물질성이 있다. 물질성이 있을 때는 저항이 있을 것이다. 환영은 물질성이라는 파악의 층이 있는데 그것이 없는 상태이다. 사물이라고 하는 파악의 층이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 환영도 음영을 통해서 주어진다. 그렇게 주어지는데 실제적 사물의 층 이전의 층, 즉 물질성을 빼버린 층인 것이다. 여기서 환영과 같은 것으로 감각적 도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둘에게서는 실제하는 사물이라는 파악 속성은 없다. (교수님)

 

Für das Empfindnis hat es von dergleichen zu sprechen gar keinen Sinn.

To speak in a similar way of sensings would be quite absurd.

위치감각에 대해 그와 같은 것[감각적 도식과 음영다양체들을 통해서 실제적 사물 속성들이 구성된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Drehe ich die Hand, nähere ich oder entferne ich sie, so ist mir z.B. die unveränderte Farbe der Hand immer wieder anders gegeben, sie stellt sich eben dar, und die erst konstituierte Farbe (die des sinnlichen Schemas) bekundet eine reale optische Eigenschaft der Hand.

If I turn my hand, bring it closer or take it away, then, for one, the unchanged color of the hand is given to me as constantly different. Yet the color itself presents itself, and the color constituted first (that of the sensuous schema) manifests a real optical property of the hand.

내가 손을 돌린다면, 내가 그것을[손을] 가까이하거나 멀리한다면, 나에게는 예를 들어 손의 변하지 않는 색이 거듭 다르게 주어진다. 그것은[손의 변하지 않는 색은] 그야말로 나타난다. 그리고 비로소 구성된 색은 (, 감각적 도식의 색은) 손의 어떤 실제적인 시각적 속성을 분명히 나타낸다.

 

*drehen : turn / nähern : 가까이하다 / entfernen : 멀리하다 / unverändert : unchanged / immer wieder : again and again / sich darstellen : 나타나다 / bekunden : manifest (=be- + künden : announce, herald)

 

*<음영다양체 감각도식 객관적인 손의 색> 이런 층위로 구성된다고 말하고 있다. (교수님) 감각도식(sinnichen Schema)의 지위가 무엇인가? (F) 실제 우리가 사물을 경험할 때 그런 층이 있는가 자문하면 그런 것이 있는지 찾기 어렵다. 그냥 음영다양체가 있고 그 다양체를 통해서 그때그때 객관적인 대상, 대상의 색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님) 자비로운 독해를 하나 제시하자면, 음영들을 하나의 대상으로 구성할 적에 칸트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개념을 부여한다. 색에 대한 암묵적인 이해가 아닐까? (A) 자비로운 독해를 심화시켜보자. 칸트 얘기를 끌여들여보자. 칸트에게서 도식은 무엇인가? (교수님) 개념을 직관의 잡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A) 개념을 현상에 적용할 때, 도식이라고 하는 것은 개념화된 직관, 직관화된 개념, 양쪽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매개자인 것이다. 후설이 칸트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중간에 매개가 있어야 한다고. 그 매개를 감각적 도식으로 놓는다. 도식에는 감성적인 요소도 있고 지성적인 요소도 있다. 그렇다면 도식에도 지성적인 요소가 있고, 객관적 사물에도 지성적 요소가 있다. 두 지성적 요소 중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건 객관적 사물에 들어있는 지성적 요소다. 객관적 사물을 구성하는 파악작용이라는 지향성이 있다. 감각적 도식이라는 층을 넣어놓으면 매개를 하는 것이니 거기에도 지성적인 요소, 지향성이 들어있다. 다양체에는 없다.

  지금 지향성 개념의 확장과 관련해서 읽고 싶다. 원래 지향성은 객관적인 맨 위층에 있다. 그런데 도식을 얘기하면서 두 번째 층, 감각도식 층에도 말하자면 지향성이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볼 수 있다. 아까 감각된 음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감각된 음은 논리연구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얘기다. 감각은 비지향적 체험이니까. 그런데 감각된 음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감각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 이미 그 층에서도 노에시스-노에마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저 위에 지각층뿐만 아니라, 지각층에도 있듯이 감각층에도 노에시스-노에마가 있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감각도식 층에도 노에시스-노에마가 있다. 노에마는 환영(Phantom)이고, 노에시스는 그에 가는 지향성이다. 그런데 음영다양체 차원은 주객 미분화 상태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후설은 후기 현상학에서는 계속 양파껍질 까듯이 내려간다. 층층이 계속 노에시스-노에마 관계가 내려간다. 위는 능동적 종합이고, 아래는 수동적 종합이다. 1915년 이후가 되면 후설은 수동적 영역에 대한 분석을 수행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목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교수님)

  그렇다면 감각도식은 감각내용-파악작용 도식이 깨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까? (E) 맞다. 감각된 음이라는 말도 그 과정에서 나왔다. 후기 아이디어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에 나온 현상이다. 비로소 구성된, 처음 구성된 색이 감각적 도식의 색인데, 그 이전에는 구성된 것이 없었다. 음영다양체인 경우에는. 구성 안 되었고 지향성이 없다. 그런데 도식 단계로 오면 구성이 된다는 것이고, 거기에는 낮은 단계의 지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저 밑으로 내려가도 끝까지 지향성이다. 지향성 개념이 확장되고 더 될 수 있다. (교수님) 여기서 지향성 개념이 확장되는지 잘 모르겠다. 관여되는 항이 세 개밖에 안 나온다. 도식이나 환영은 구성물이 아니라 구성에 있어서 적용되기 위해 사용된 것 아닌가. 도식은 실제성이 없다. (A) 도식이 실제성이 아예 없다거나 혹은 질료가 아예 없는지 모르겠다. 물론 엄밀한 의미의 실제성에 이르진 못했다. 하지만 그 첩경에서 만들어진 구성물이거나 매개자이고 음영다양체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면 실제성이나 질료가 아예 없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 (D)

 

Auch die Rauhigkeit stellt sich dar, taktuell in mannigfaltigen stetig ineinander übergehenden Tastempfindungen, zu deren jeder eine Ausbreitung gehört.

Roughness, too, presents itself and does so tactually in manifolds of touch sensations which constantly flow into one another and to each of which a spreading-out belongs.

거침 또한 나타난다, 촉각적으로 다양한 부단히 서로 속으로 넘어가는 촉감각들 속에서, 그 각각에는[촉감각들 각각에는] 하나의 펼쳐짐이 속한다.

 

*stetig : steady, continuous / ineinander : in/into/inside one another/each other / übergehen : go over, change/merge/become/pass into

 

Die Tastemfindnisse aber, die Empfindungen, die stetig wechselnd auf der tastenden Fingerfläche liegen, sind, so wie sie da flächenverbreitet liegen, nichts durch Abschattung und Schematisierung Gegebenes.

The touch-sensings, however, the sensations which, constantly varying, lie on the surface of the touching finger, are, such as they are lying there spread out over the surface, nothing given through adumbration and schematization.

그러나 촉각적 위치감각들은, 즉 감각들, 부단히 변화하면서 만지는 손가락 표면에 놓여있는 [감각들은], 가령 그것들은[위치감각들은] 거기에[손가락 표면에] 표면 [위로] 펼쳐져 있는데, 음영과 도식화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둘을 대비시키고 있음. 손의 거침은 음영과 도식화를 통해 주어짐. 거기에 비해서 위치감각은 그런 걸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수님) 위치감각은 음영과 동일한 층위에 있는가? (C) 질문이 불분명하다. 위치감각이 음영으로 주어진다는 것인가? 음영과는 별개의 것이지만 같은 층위에 있는 병렬적이라는 말인가? 음영은 주어지는 방식, 방식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음영은 대상 쪽이고, 위치감각은 나 쪽이다. (교수님) 음영과는 별개의 것이지만 병렬적인 것으로 보인다. 위치감각은 단일하고 개념무매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A) 음영이란 건 다양체인데 위치감각은 단편적인 것 혹은 단순자라면, 위치감각은 음영체에 속에 있는 것인가? (C) 그렇다면 위치감각에서도 지향성과 지향적인 대상을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교수님) 위치와 위치를 감각하는 작용으로? 그런데 음영을 의식의 한 국면으로 정의한다면, 위치감각도 음영일 것 같다. (A) 위치감각이 음영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맞다고 하더라도 위치감각이 음영이냐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C)

 

Sie gehören gar nicht in das sinnliche Schema hinein.

They have nothing at all to do with the sensuous schema.

그것들은[위치감각들은] 감각적 도식 안으로 속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Das Tastempfindnis ist nicht Zustand des materiellen Dinges Hand.

The touch-sensing is not a state of the material thing, hand,

촉각적 위치감각은 물질적 사물[로서] 손의 상태가 아니다.

 

Sondern eben die Hand selbst, die für uns mehr ist als materielles Ding, und die Art, in der sie an mir ist, bringt es mit sich, daß ich, das “Subjekt des Leibes”, sage: was Sache des materiellen Dinges ist, ist seine und nicht meine Sache.

but is precisely the hand itself, which for us is more than a material thing, and the way in which it is mine entails that I, the" subject of the Body," can say that what belongs to the material thing is its, not mine.

오히려 정확하게는 손 자체는, 우리에게 있어 물질적 사물 이상인 [손 자체], 그리고 그 방식은, 그것이[손 자체가] 나에게 있는 [그 방식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함축한다, 내가, “육체의 주관[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물질적 사물의 사태인 것은 물질적 사물의 사태이지 내 사태가 아니다.

 

*etw. mit sich bringen : 필연적으로 따르다, 함축하다

 

Alle Empfindnisse gehören zu meiner Seele, alles Extendierte zum materiellen Ding.

All sensings pertain to my soul; everything extended to the material thing.

모든 위치감각들은 내 영혼에 속한다, 모든 연장적인 것은 물질적 사물에 [속한다.]

 

Auf dieser Handfläche empfinde ich Berührungsempfindungen u.dgl.

On this surface of the hand I sense the sensations of touch, etc.

이 손바닥 위에서 나는 접촉감각들을 감각한다, 등등.

 

Und eben damit bekundet sie sich unmittelbar als mein Leib.

And it is precisely thereby that this surface manifests itself immediately as my Body.

그리고 바로 이와 더불어 그것이[손바닥이] 나의 육체로서 무매개적으로 분명히 나타난다.

 

Man kann auch hinzufügen : überzeuge ich mich, daß ein wahrgenommenes Ding nicht ist, unterliege ich einer Täuschung, so ist mit dem Ding alles in seiner Extension Extendierte weggestrichen.

One can add here as well: if I convince myself that a perceived thing does not exist, that I am subject to an illusion, then, along with the thing, everything extended in its extension is stricken out too.

누군가는 또한 부언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지각된 사물이 없다는 것을 납득한다면, 내가 어떤 착각에 내맡겨져 있다면, 사물과 함께 자신의 연장 속에서 연장된 것들이 지워진다고.

 

*hinzufügen : 첨가하다, 부언하다 / überzeugen : convince / unterliegen : be subject to, be liable to / die Täuschung : deception, delusion / wegstreichen : 쓸어 없애다, (줄을 그어) 지우다

 

Aber die Empfindnisse verschwinden nicht.

But the sen sings do not disappear.

그러나 위치감각은 사라지지 않다.

 

Nur das Reale verschwindet aus dem Sein.

Only what is real vanishes from being.

오직 실제적인 것이 존재로부터 사라진다.

 

(수업 : 이남인, <서양현대철학연습> (2022-2))

(영역 : Richard Rojcewicz and Andre Schuwer(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