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현상학 일차문헌

[후설] "다른 물질적 사물들과 상반되는 물질적 사물로서 육체의 구성" (『이념들2』 2부 3장 41절) (3/3)

현담 2022. 12. 13. 04:01

c) Der Leib als Glied des Kausalzusammenhanges.

c) The Body as integral part of the causal nexus

c) 인과연관의 항으로서 신체

 

   Wenn wir ihn trotzdem als ein reales Ding auffassen, so liegt das daran, daß wir ihn in den Kausalzusammenhang der materiellen Natur eigengliedert finden.

   If, despite all this, we apprehend the Body as a real thing, it is because we find it integrated into the causal nexus of material nature.

   만약 우리가 그것을[육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실제적인 사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다음 이유에서다. 우리가 그것을[육체를] 물질적 자연의 인과연관 안으로 편입된 것으로 발견하기 때문이다.

 

*trotzdem : 그럼에도 불구하고 / das liegt daran, dass ~ : that is because ~ / eigengliedern : incorporate, integrate

 

Wir sprachen von der Eigentümlichkeit des Leibes (als Leibes), durch den Willen des Ich “spontan” oder “frei” bewegt zu werden.

We spoke of the peculiarity the Body has (as Body) of being moved "spontaneously" or "freely" by the will of the Ego.

우리는 말했다, (육체로서) 육체의 특성에 관해, 자아의 의지를 통하여 자발적으로”, 자유롭게움직여질 수 있다고.

 

*oder : 혹은,

 

Neben diesen freien kinaesthetischen Verläufen treten andere auf, die statt als “Getanes” als “Angetanes” charakterisiert sind, als passive Abläufe, an denen die Spontaneität keinen Anteil hat.

Besides these free kinesthetic processes, others emerge which, instead of being "done by," are characterized as being "done to," i.e., as passive processes in which spontaneity plays no part.

이러한 자유로운 키네스테제적 진행들 이외에도, 다른 것들[키네스테제적 진행들]이 출현한다, [다른 것들은] “행해진 것으로서 대신에 행해져진[가해진] 으로서 특징지워진다. 수동적인 경과로서. 거기[수동적인 경과]에는 자발성은 참여하지 않는다.

 

*neben : besides / der Verlauf : (시간의) 경과 진행, 발전 / Anteil an etw. haben : 한몫하다, 참여하다

 

*능동적인 키네스테제적 경과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키네스테제적 경과들도 나타난다. (수업)

 

In diesem Fall haben wir zugleich ein Erfahren von dem mechanischen Vorgang der Leibesbewegung und eine Gegebenheit dieses Vorgangs im “seelischen” Charakter des Erleidens

In that case, we have at the same time an experiencing of the mechanical process of the movement of the Body and a givenness of this process with the "psychic" character of enduring something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가진다, 동시에 하나의 경험을, 육체운동의 기계적인 과정에 관한, 그리고 이러한 과정의 소여를, 당함의 영혼적인특성 내에서.

 

*die Vorgang : 선행(先行), 우선(), 우위 선례, 모범 경과, 과정 - 사건 / erleiden : (변경, 개정 따위를) 당하다, (, 악 따위를) 입다

 

*‘이러한 경우(diesem Fall)’은 무슨 경우를 가리키는가? 수동적인 키네스테제가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수업)

 

*‘동시에(zugleich)’는 여기서 어떤 두 가지를 가리키는가? 하나는 신체운동의 기계적 과정에 관한 경험, 다른 하나는 당함의 성격 속에서 이러한 과정의 소여이다. (수업)

 

; nicht im Sinne eines Schmerzes, eines Widerwillens verstanden, sondern einfach in dem Sinn des “meine Hand wird bewegt, mein Fuß wird gestoßen, geschoben” usw.

- not as if it were something painful or repugnant but simply in the sense that "my hand is moved, my foot is struck, pushed," etc.

어떤 고통, 어떤 꺼림의 의미 속에서 이해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내 손이 움직여졌다, 나의 발이 부딪혀졌다, 밀려졌다등의 의미 속에서 [당함이라는 영혼적 특성을 우리는 가지는 것이다.]

 

*der Widerwille : 꺼림, 혐오, 적의

 

Ähnlich erfahre ich die mechanische Bewegung des Leibes als materiellen Dinges wie eines Dinges überhaupt auch im Falle der Spontaneität und finde sie zugleich charakterisiert als eine spontane in dem Sinn “ich bewege meine Hand” usw.

Similarly, I experience the mechanical movement of the Body as the movement of a material thing like any other thing even in the case of spontaneity, and I find it characterized at the same time as a spontaneous movement in the sense, "I move my hand," etc.

유사하게 나는 경험한다, 육체의 기계적인 운동을, 물질적 사물의 것[운동]으로서, 하나의 사물의 것[운동]처럼, 일반적으로 자발성의 경우 속에서마저도. 그리고 [나는] 그것을[육체의 기계적인 운동을] 발견한다, 동시에 특징적으로, 하나의 자발적인 것[운동]으로서, [예컨대] “나는 나의 손을 움직인다라는 의미 속에서.

 

*물리적 사건과 영혼적 사건 사이의 관계를 무엇이라고 명명해야 할까? 그 양자 사이의 관계가 인과관계는 아닐 것 같다. 영혼적 사건은 자연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C) 한 논문에서 기초 주기와 기초 받기 관계라고 이야기한다. (E) 영혼적 사건은 물리적 사건에 반응한다. (A) 후설은 뒤에서 조건적 관계라고 말하면서, 둘 사이에 전환점이 있다고 말한다. 영혼적 사건이 물리적으로 환원되지는 않을 것이다. (D) 대응관계는 있을까? (교수님) 상당히 정합적 대응 관계로 보인다. (B) 어떤 관계인지 추후에 더 생각해보자. (교수님)

 

*지금 작업은 자연적 태도에서도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인 것 같다. , 초월론적 환원을 거치지 않고서도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것 같다. 지금 작업은 꼭 초월론적 현상학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맥락이 아니더라도 논의될 수 있는 것인가? 그 맥락이 아니더라도 논의될 수 있다면, 자연적 태도에서 하는 작업과 초월론적 태도에서 하는 작업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하나 덧붙이자면, 만약 자연적 태도에서도 동일한 종류의 작업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면, 초월론적 환원을 사소하게 만드는 것 같다. (A) 지금 논의를 물리적 현상과 심리적 현상 사이에 평행관계 혹은 대응관계가 있다는 논의로 해석할 수 있다. 심신 평행론, 혹은 -이때 신체는 살아있는 신체가 아니라 물리적인 신체이기 때문에- 심물평행론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심물평행론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을 수행해야 하는 건가 아닌가? (교수님) 주제에 대한 논의 자체는 꼭 초월론적 환원을 수행해야 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D) 그렇다면 지금 이 논의는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을 한 후의 논의인가? (교수님) 그렇다. 23장 초반에 얘기했다. (D) 그렇다면 왜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을 하고서 논의해야 하나? (교수님) 신체를 구성된 것으로서 받아들이기 위해 그렇다. 초월론적 환원 없이는 신체 분석 자체를 할 수는 있어도 신체를 구성된 것으로 분석할 수는 없다. (B)

  결국 이 주제에 대해 더 근본적인 해명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심물평행론은 후설 이전의 근대철학에서도 다뤄왔다.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 없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월론적 현상학적 차원까지 내려가지 않은 그러한 분석은 자연적 태도 중에서 현상학적 심리학적 태도 혹은 생활세계적 태도에서의 분석이었다. , 근대철학은 후설이 보기엔 현상학적 심리학적 태도에서 이뤄진 것이다. 후설은 흔히 흄, 로크, 버클리 얘기할 때 현상학적 심리학이라는 틀 속에서 규정하려고 한다. 신체에 대해서 첫 번째로 자연과학적 태도, 혹은 자연주의적 태도에서 분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물질적 연관이 어떠한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물질적 자연의 한 구성요소로 분석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현상학적 심리학적 태도에서 신체를 분석할 수 있다. 현상학적 심리학에서 신체는 현상학적 심리학적 주관의 한 구성요소로 분석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초월론적 태도에서 분석할 수 있다. 그 경우에 신체는 초월론적 주관의 한 구성요소로 분석되는 것이다.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을 하면 현상학적 심리학에서 보이지 않던 층까지 보이게 된다. 맨 밑에 있는 초월론적 주관의 신체, 그리고 현상학적 심리학적 신체, 그리고 자연과학적 신체, 이 사이에 평행성이 있다. 단지 한 종류의 평행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세 종류의 평행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말하자면 평행성의 정체가 구체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교수님)

 

   Es werden also Bewegungen meines Leibes als mechanische Vorgänge aufgefaßt gleich denen äußerer Dinge, der Leib selbst als ein Ding, das auf andere wirkt und auf das andere wirken.

   Thus movements of my Body are apprehended as mechanical processes like those of external things, and the Body itself is apprehended as a thing which affects others and upon which the others have effects.

   이처럼 나의 육체의 움직임들은 기계적인 과정들로 파악된다, 외부적 사물들의 그것들[기계적인 경과들]과 같게. 육체 자체는 하나의 사물로서, [] 다른 것들[사물들] 위로 행하고 그 위로 다른 것들[사물들]이 행하는 [사물로서 파악된다].

 

*gleich : 같은, 같게 / wirken : 일하다, 행하다, 영향을 미치다

 

Auch all die früher erwähnten Fälle konditionaler Beziehung zwischen Ding und Leib lassen Auffassungsänderungen zu, vermöge deren die betreffenden Vorgänge als bloß physische erscheinen.

All the cases mentioned earlier of conditional relations between things and the Body also admit of changes in apprehension, thanks to which the processes in question appear as merely physical ones.

또한 사물과 육체 사이의 조건적인 관계의 모든 전에 언급된 경우들은, 파악변화들을 허용한다. 그것은[파악변화들의 허용은] 순전한 물리적 현출로서 고려되는 과정들 덕분이다.

 

*früher : previously / zulassen : admit, allow, permit / betreffen : concern

 

*조건적인 관계(konditionale Beziehung)는 무엇인가? 꼭 물리적 사물과 심리적 육체 사이의 관계가 아닐 수 있다. 똑같은 조건적 과정이 자연과학적으로, 현상학적 심리학적으로, 더 나아가서는 초월론적 현상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초월론적 현상학이 자연과학을 부정한다고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러한 다양한 조건적인 관계들을 인정한다.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의 차이는 무엇인가. 양적 연구는 자연과학적 연구를 생각하면 된다. 질적 연구는 비자연과학적 연구 일체다. 그러므로 현상학적 심리학적 연구나 초월론적 현상학적 연구는 질적 연구이다. 질적 연구는 다차원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럼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의 관계는 배타적인가? 아니다. 현상학이 질적 연구를 강조한다고 해서 양적 연구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떤 현상을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연구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연구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 양적 연구만으로도 안 되고, 질적 연구만으로도 안 되고, 다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상학은 자연과학적 연구방식이 틀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방식으로 여기는 사조, 물리학적 실증주의가 틀렸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 텍스트의 논의는 양적 연구, 질적 연구 논의와 연결될 수 있다. (교수님)

 

Ruht ein schwerer Körper auf meiner Hand (ev. die eine Hand auf der anderen) so habe ich unter Absehung von der auftretenden Druck-, bzw. Schmerzempfindung das physische Phänomen, daß ein Körper auf einen anderen drückt, ev. ihn durch Stoß deformiert.

If a heavy body is resting on my hand (or perhaps the one hand on the other) then I have, abstracting from the resultant sensation of pressure or pain, the physical phenomenon of one body pressing on another, perhaps deforming it by its pressure.

만약 어떤 무거운 물체가 내 손 위에 (어쩌면 한 손이 다른 손 위에) 놓여있다면, 나는 가진다, 출현하는 압력- 내지는 고통감각의 도외시 하에서, 물리적 현상을. [그 물리적 현상은] 어떤 물체가 어떤 다른 것[물체] 위로 누르는, 어쩌면 그것을[다른 물체를] 밀침을 통해 변형하는 [물리적 현상이다].

 

*ruhen : rest / ev. = eventuell : perhaps / von et.3 absehen : ~을 도외시하다 / der Stoß : 밀침, 찌름 / deformieren : 변형시키다

 

*일상적 자연적 태도 혹은 현상학적 심리학적 태도에서 우리는 압력감각이나 고통감각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가 오히려 핵심이다. 그런 감각을 도외시하면 물리적 현상을 가지게 되는데, 한 물체가 다른 물체를 누르고 있다던가, 충격을 통해서 변형한다든가 이런 물리현상을 가진다. (교수님) 이 예시도 파악방식의 다양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E)

 

Schneide ich mit einem Messer in meinen Finger, so wird ein physischer Körper durch Eintreiben eines Keils gespalten, die darin enthaltene Flüssigkeit sickert heraus usw.

If I cut my finger with a knife, then a physical body is split by the driving into it of a wedge, the fluid contained in it trickles out, etc.

만약 내가 하나의 칼을 가지고 내 손가락을 벤다면, 하나의 물리적 물체는 하나의 쐐기의 때려 박음을 통해서 쪼개진다, 그 안에 포함된 액체가 이로부터 새어 나온다 등.

 

*schneiden : cut / sich4/3 in den Finger schneiden : 손가락을 베다 / eintreiben : (못을) 때려 박다 (=ein : 안으로 + treiben : 몰다) / der Keil : 쐐기 / spalten : split / enthalten : contain / Flüssigkeit : 액체, 유동성 / sickern : 새어 나오다, 스며들다

 

*자연과학적 태도에서 손을 베는 현상을 고찰하고 있다. (수업)

 

Ebenso : das physische Ding “mein Leib” wird durch Berührung mit warmen oder kalten Körpern erwärmt oder abgekühlt, es kann durch Einschaltung in einen elektrischen Strom elektrisch geladen werden, bei wechselnder Beleuchtung nimmt es verschiedene Farben an, man kann ihm durch Anschlagen Geräusche entlocken.

Likewise, the physical thing, "my Body," is heated or cooled through contact with hot or cold bodies; it can become electrically charged through contact with an electric current; it assumes different colors under changing illumination; and one can elicit noises from it by striking it.

마찬가지로, 물리적 사물 내 육체는 따뜻한 혹은 차가운 물체들과의 접촉을 통해 데워지거나 식혀진다. 그것은[물리적 사물로서 내 육체] 어떤 전류와의 접속을 통해 충전될 수 있다. 바뀌는 조명에 의해 그것은 다양한 색깔들을 띤다. 누군가는 때림을 통해 그것에서 소리를 산출할 수 있다.

 

*ebenso : equally, likewise / erwärmen : 따뜻하게 하다 / abkühlen : 식히다 / die Einschaltung : (전등, 모터 등의) 켜짐, (전기) 연결, 접속 / laden : charge, load / beleuchten : illuminate / annehmen : take on, accept, adopt / verschieden : different / Anschlag : , 때림 / das Geräusch : noise / entlocken : elicit (꾀어내다, 산출하다)

 

Die beiden letzten Fälle unterscheiden sich aber von den früheren.

The last two cases, however, are different from the earlier ones

마지막 두 경우는, 하지만 구별된다, 앞선 것들[두 경우].

 

*beiden : the two / sich von et.3 unterscheiden : ~와 구별되다

 

Dort hatte ich einen psychophysischen Prozess, den ich abstraktiv in einen physischen Vorgang und seine “psychische” Folge (oder umgekehrt) zerlegen kann.

where there was a psychophysical process that could be split apart abstractively into a physical process and its "psychical" consequence (or vice versa).

거기[앞선 두 경우]에서 나는 하나의 심리물리적 과정을 가졌다, [그 과정을] 내가 추상적으로 하나의 물리적 과정과 그것의 심리적결과로 (그 반대도[“심리적과정과 그것의 물리적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zerlegen : 분해하다, 분석하다 (zer- : 분리 + legen : 놓다)

 

Auf den physischen Vorgang “rote Beleuchtung meiner Hand” folgt nicht die Rot-Empfindung in derselben Weise wie auf die Erwärmung meiner Hand die Wärmeempfindung folgt, und der physische Prozess, an den sich die Farbenempfindung knüpft daß rote Lichtstrahlen meine Augen treffen ist mir überhaupt nicht gegeben.

But the physical process, "red illumination of my hand," is not followed by the sensation of red in the same way that the sensation of warmth follows the heating of my hand, and the physical process to which the sensation of the color is linked -red light rays striking my eyes- is not given to me at all.

물리적 과정 내 손의 붉은 조명[내 손이 붉게 비춰짐]”에 따라오지 않는다, 붉음-감각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손의 가온(加溫)에 온감각이 따라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색감각과 연결된 물리적 과정이 -붉은 광선이 내 눈을 때리는 [물리적 과정이]- 내게 전혀 소여되지 않는다.

 

*auf ~ folgen : follow on ~ / sich an et. knüpfen : ~에 묶이다, ~과 결합되다 (knüpfen : tie) / der Lichtstrahl : light beam (=das Licht : light + der Strahl : beam) / treffen : strike

 

*후설은 앞선 네 가지 경우에서 마지막 경우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마지막 경우는 어떤가? (교수님) 때려서 아픈 촉감각은 위치지어지는데 소리는 위치지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 설명하고 있는 세 번째 경우와 본질적으로 같다. (E) 그렇다면 앞선 손 베는 경우, 손 눌리는 경우는 어떤가? (교수님) 그것들은 여기서 첫 번째(따뜻하거나 차가운 물체를 접촉하고 데워지거나 식혀지기) 및 두 번째 경우(전류에 접속하기)와 같은 것이다. (D)

 

Es fehlt der im Leibe gelegene “Umschlagspunkt” zwischen kausalem und konditionalem Vorgang.

The "turning point," which lies in the Body, the point of the transformation from causal to conditional process, is hidden from me.

육체 내에 놓인 전환점이 없다, 인과적 [과정]과 조건적 과정 사이의.

 

*der Umschlag : (sudden) change / es fehlt (3) : (~에게) 없다/모자라다

 

*전환(Umschlag)이 무엇인가? (교수님) 문장으로 보면 인과적 과정과 조건적 과정 사이의 전환으로 보인다. 내용적으로는 물리적 과정과 물리적 과정으로 조건지워진 심리적 과정 사이의 전환으로 보인다. (A) 인과적 과정은 무엇이고 조건적 과정은 무엇인가? 그에 앞서 인과적(kausal)’이 무엇이고 조건적(konditional)’이 무엇인가? (교수님) 인과는 물리적 인과를 말하는 것 같다. (D)

  후설의 용어 사용이 혼란스러워서 오해가 일어나는 것 같다. 어떤 현상을, 이런 물리적 사건이 있으면, 저런 물리적 사건이 생긴다는 식의 자연인과적인 방식으로 조건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칼로 손을 베니깐 손이 아팠다, 이건 물리적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얘기하자면 이것도 일종의 원인결과이기는 하고 조건적인 설명이다. 이를 후설은 자연인과가 아니라 동기인과(motivationale Kausalitat)라 부른다. 여기서 언급한 두 경우다 인과적이고 조건적이다. 그런데 여기 텍스트에서 하나는 인과적’, 다른 하나는 조건적이라 하고, 그 사이에 전환을 얘기했는데, 후설의 용법이 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자연인과적 과정과 동기인과적 과정 사이의 전환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손에 불빛을 비추면 거기에는 물리적 인과밖에 없다. 동기 인과가 없다. 그런데 데워지거나 식혀지거나 전기에 접속되면 거기에는 물리적 인과와 동기적 인과의 전환이 있다. (교수님)

 
 

(수업 : 이남인, <서양현대철학연습> (2022-2))

(영역 : Richard Rojcewicz and Andre Schuwer(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