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고대철학 일차문헌

아리스토텔레스, 「제2권」 7-9장, 『니코마코스 윤리학』

현담 2023. 2. 8. 20:41

<2권 목차>

 

1장 탁월성의 기원

2장 성격과 습관

3장 성격적 탁월성은 즐거움과 고통에 관련한다.

4장 품성상태와 행위

5장 탁월성의 유 : 품성상태

6장 탁월성의 종차 : 중용

7장 성격적 탁월성들의 소묘

8장 중용과 극단

9장 중용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적 지침

 

7장 성격적 탁월성들의 소묘 (1107a28-1108b10)

 

하지만 이것은 이렇게 일반적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에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행위와 관련한 논의들 가운데 일반적인 논의는 더욱 널리 적용되는 반면, 더욱 참된 것은 그 부분들에 대한 논의이다. 행위들은 개별적인 것들에 관련하며, 우리의 논의는 이러한 것들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도표에서 취해 보도록 하자.”(11107a28-34)

 

5, 6장에서 탁월성을 중용()의 품성상태()라고 일반적으로 설명. 이제 이 설명을 개별적 탁월성에 적용하고 개별적 탁월성에 관련하는 행위들에 부합하는지 살핌으로써 그것이 참인지 확인할 것.

 

1. 감정(pathos)의 영역

 

  지나침 중용 모자람
두려움과 대담함 무모(thrasytēs) 용기(andreia) 비겁(deilia)
즐거움과 고통 무절제(akolasia) 절제(sōphrosynē) 목석같음(anaisthesia)
노여움 성마름(orgilotēs) 온화(praotēs) 화낼 줄 모름(aorgēsia)

 

1-1. 용기 (2)

 

  지나침 중용 모자람
두려움 비겁함 용기 [이름 없음]
대담함 무모함 용기 비겁함

 

Q : “‘두려움 없음쪽으로 지나친 사람은 이름이 없지만(실제로 많은 경우에 이름이 없다), 대담함 쪽으로 지나친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다.” 왜 전자는 이름이 없을까? 그리고 두려움이 지나친 사람과 대담함이 모자란 사람은 같이 비겁한 사람인데, 왜 두려움 없음으로 지나친 사람과 대담함이 지나친 사람은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닐까?

A : 이름 없음에 대해서는 절제에 대한 바로 아래 Q 참고. 두려움 없음이 지나친 사람은 용기가 관련하는 두려운 것인 (전쟁터에서의) 죽음에 관계를 거의 맺지 않고 있지만, 대담함이 지나친 사람은 죽음에 관계를 맺고 있지만 허풍쟁이이거나 과장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으로 보임.

 

1-2. 절제 (3)

 

  지나침 중용 모자람
(육체적) 즐거움/고통 무절제 절제 [이름 없음] 목석 같음

 

Q : 왜 여기서는 사람들이 즐거움이 모자란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없어서 목석 같음으로 이름을 붙이지만, 위에서는 두려움이 모자란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대로 둘까?

A : 우선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그러한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 그러한 사람이 실제로 거의 없으니 사람들이 부를 일이 없고 그래서 부를 이름도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이 모자란 사람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런 사람이 아예 없진 않고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보임. 그러나 두려움이 모자란 사람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은 그런 사람이 있을 법하지 않고 그래서 검토해 볼 필요가 굳이 없다는 것으로 보임. 왜냐하면 용기가 관련하는 두려움은 전쟁에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데,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움이 정말 없는 인간은 없을 것이기 때문.

 

Q : 절제 또한 용기가 두려움과 대담함이라는 두 가지 감정과 관련하는 것처럼 (육체적) 즐거움과 고통에 관련하는 것인가? () 고통에 있어서 중용은 무엇인가? 고통을 지나치게 추구하거나 모자라게 추구하는 것은 무절제이고, 고통을 적당히 추구하는 것은 중용인가? 그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D)

A : 즐거움은 추구하는 방식으로, 고통은 회피하는 방식으로 관련하는 것. 그래서 즐거움은 과하게 추구하는 데에서, 그리고 고통은 과하게 회피하는 데에서 무절제가 있을 것. (“그렇지만 특히 고통과 관련해 덜 그럼”. 아리스토텔레스는 고통에는 다소 관대함.) 반대로 즐거움을 모자라게 추구하는 데에서, 그리고 고통은 모자라게 회피하는 데에서 목석 같음이 있을 것. 행군하면서 군가를 부르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일종의 고통 분담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교수님, 내가 재구성)

  ↔ 교수님 설명이 잘못됨. 절제에서 다뤄지는 고통은 즐거움의 부재에 따른 고통이지 육체적 고통이 아님. 육체적 고통은 오히려 용기에서 다룸. In the extended treatment at . 10-11 the continuum for moderation is physical pleasure, and physical pain is dealt with in the discussion of courage. (B&R, 307-308) 그래서 용기는 두려움과 대담함이라는 두 가지 감정과 관계하지만, 절제는 즐거움과만 관계하고, 절제에 있어 고통은 즐거움의 스펙트럼 속에서 즐거움의 부재에 따른 부적절한 부산물로서 다뤄질 뿐 즐거움과 대등한 감정으로 관계하는 것이 아님. “즐거운 것이 없음에도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즐거운 것을 삼가고서도 고통스러워하지 않기에 절제 있는 사람이다.”(1118b33-34)

 

1-3. 온화 (10)

 

2. 외적인 좋음의 영역

 

  지나침 중용 모자람
재물(보통) 낭비(asōtia) 자유인다움(eleuthritotēs) 인색(aneleutheria)
재물(큰 규모) 품위 없음(apeirokalia) 통이 큼(megaloprepeia) 좀스러움(mikroprepeia)
명예(보통) 명예욕(philotimia) [이름 없음] 명예에 대한 무관심
(aphilotimia)
명예(큰 규모) 허영심(chaunotēs) 포부의 큼(megalopsychia) 포부의 작음[소심함]
(mikropsychia)

 

2-1. 자유인다움 (4)

 

*자유인다움 : 원래 정치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말인 자유인다움은 경제적인 태도에까지 전이되어 재물을 제대로 쓰는 것과 관련된 품성상태, 노예처럼 재물을 받거나 쓰지 않는 품성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됨. (역자주)

 

*인색 : 원어는 자유인답지 못함을 의미하는 안엘레우테리아’(aneleutheria). 내용상의 의미를 따라 인색으로 번역. 우리말의 인색은 주로 지출과 관련된 태도를 가리키지만, 원어는 깨끗하지 못한 받음에 관련된 태도까지 가리킴. (역자주)

 

2-2. 통이 큼 (6)

 

*품위 없음 = 속물 성향

 

2-3. [이름 없음] (8)

 

이 욕구에서 지나친 사람이 명예욕을 가진 사람으로, 모자라는 사람이 명예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불리는데, 그 중간인 사람에게는 이름이 없다. [...]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양 끝에 있는 사람들이 중간 자리에 대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우리 또한 중간인 사람을 어떤 때는 명예욕을 가진 사람이라 부르고, 어떤 때는 명예에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명예욕을 가진 사람을, 또 다른 어떤 때는 명예에 무관심한 사람을 칭찬하기도 한다.”(1107b28-1108a1)

 

This comment explains why Aristotle thinks it important to identify virtues that have no name to distinguish them clearly from the extremes. The absence of a clear way to distinguish them from the extremes leads to two mistakes. (1) The person at the extreme claims to have the virtue. When Aristotle says the extreme people lay claim to the intermediate area, he means not (a) they agree that virtue is a mean and claim ‘We have the mean state’, but (b) they claim that the virtue (which Aristotle takes to be a mean state) is the state (in fact extreme) they have. (2) We (not the extreme people) refer to the intermediate person by the name of one of the extremes. In case (1) the speaker does not correctly identify the genuinely virtuous state. In case (2) we correctly identify it, but we use a misleading name. Cf. not on iv 4.4. (Irwin, 199)

 

Q : 이 중용에 대한 이런 혼란이 발생하는데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중용에 대해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일까?

A : 탁월한 사람은 큰 명예에 관계하지 보통 혹은 작은 명예에 관계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 , 1) 포부의 큼이라는 탁월성에 비해 전혀 중요하지 않은 탁월성이기에, 혹은 탁월한 사람이 관계하지 않아 탁월성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탁월성이라 이름이 없거나, 2) 만약 이름을 붙여준다면, 탁월한 사람이 포부의 큼과 이 중용 둘 다 취해야 하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는데,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함일 수도 있음.

 

2-4. 포부의 큼 (7)

 

3. 사회적 삶

 

이것들 모두 말과 행위를 서로 나누는 것(koinōnia)에 관련하지만, 그중 하나는 그것들 안에 있는 참에, 나머지 둘은 즐거움에 관련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즐거움은 다시 놀이 안에 있는 즐거움과 삶에 따르는 모든 것 안에 있는 즐거움으로 나뉜다.”(1108a12-14)

 

  지나침 중용 모자람
진실 허풍(alazoneia) 진실성(alētheia) 자기비하(eirōneia)
즐거움(놀이) [저급] 익살(bōmolochia) 재치(eutrapelia) 촌스러움(agroikia)
즐거움(일상) 아첨(kolakeia)
속없이 친하려 함(areskeia)
친애(?)(philia) 뿌루퉁함(dyskolia)
/ 곁없음 (수업)

 

3-1. 진실성 (12)

 

Q : 참이 아닌 것은 거짓이다. 어떻게 두 가지 다른 태도가 성립할 수 있는가? 진실성의 반대는 거짓성(?)이 아닌가? (지훈)

A : 여기서 진실성은 단지 참을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 여기서 중용과 악덕은 참에 관련한 것, 혹은 사실에 대한 태도임. 예컨대, A+이라는 성적을 받았을 때, 허풍쟁이는 , A+ 받았어, 나 엄청 똑똑한 듯. 혹시 나는 아인슈타인 아닐까?” 이렇게 말한다면, 자기비하하는 사람은 나 진짜 엄청 멍청하고, 시험도 망쳤고, A+ 받을 자격도 없는데 받았다ㅜㅜ 교수님이 불쌍해서 주신 듯이렇게 말함. 진실한 사람은 내가 A+ 받았네. 수강생 중에서 적어도 상위 30% 안에는 들었을 것이고, 고생한 만큼 보람찬 성적이다.”라고 말할 것. (두현, 교수님, 두현 재구성)

 

3-2. 재치 (13)

 

3-3. 친애 (13)

 

*만약 그가 아무 목적 없이 그러하다면, ‘속없이 친하려는 사람이며,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그러하다면, ‘아첨꾼이다.

 

*이 점에서 모자라 어떤 상황에서나 불쾌한 사람은 일종의 싸움꾼이요, ‘뿌루퉁한 사람이다.

 

4. 탁월성은 아닌 감정

 

  지나침 중용 모자람
부끄러움 숫기 없음(kataplēxis) 부끄러워할 줄 앎(aidōs) 파렴치(anaischyntia)
이웃의 상황 시샘(phthonos) 의분(nemesis) 심술(epichairekakia)

 

4-1. 부끄러워할 줄 앎 (14)

 

4-2. 의분 (15)

 

이것들은 이웃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생겨나는 고통과 즐거움에 관련하는 것들이다.”(1108b2-3)

 

*의분 : 어떤 사람이 가당치 않게 잘되는 모습을 보고 고통을 느낌

 

*시샘 : 자신을 능가해서 [이웃이 잘되는] 모든 일에서 고통을 느낌

 

*심술 : [이웃의 불행에] 고통을 느끼는 것에 한참 모자라서 기뻐하기까지 함.

 

5. 기타 : 정의, 지적 탁월성 (1108b7-10)

 

정의에 관해서는 그것이 단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탁월성들에 관한 논의를 마친 후 정의의 의미를 구별하고, 어떻게 정의가 그 두 의미 각각에서 중용인지를 논할 것이다. (5) 마찬가지로 이지적 탁월성들에 대해서도 논할 것이다. (6)”(1108b8-10)

 

8장 중용과 극단 (1108b11-1109a19)

 

1. 지나침, 중용, 모자람 간의 대립 (1108b11-31)

 

세 가지 성향 : 지나침에 따른 악덕, 모자람에 따른 악덕, 중용이라는 탁월성

 

1) 양극단의 성향(악덕)의 관점 : 중간의 성향에 대해 대립적이며 자기들끼리도 대립

2) 중간(탁월성)의 관점 : 양극단에 대해 대립

 

이런 까닭에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중간에 있는 사람을 각기 반대쪽 극단으로 밀어내고, 비겁한 사람은 용감한 사람을 무모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무모한 사람은 그를 비겁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른 경우에도 유비적으로 그러하다.”(1108b23-25)

 

ex. 용감한 사람은 비겁한 사람에 비해서는 무모해 보이고 무모한 사람에 비해서는 비겁해 보이니까.

 

자왈, 유인자 능호인 능오인(04里仁03). 그 이유가 여기 드러남. 극단에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극단도 극단으로 보이지만 중용도 극단으로 보임. but 역시 가장 큰 대립관계는 양극단이 중간에 대해 가지는 것보다 상대방에 대해 가지는 것에서 성립

 

2. 중간의 것에 대한 유사성 (1108b32-1109a19)

 

또 어떤 극단들의 경우에는, [...] 중간의 것에 대한 일종의 유사성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극단들의 경우 서로 간에 가장 큰 비유사성을 가진다. [...] 어떤 경우에는 그 모자람이 [지나침보다] 중간의 것에 더 많이 대립하고, 또 다른 어떤 경우에는 지나침이 [모자람보다] 중간의 것에 더 많이 대립하기도 한다.”(1108b32-1109a2)

 

ex. 무모함의 경우 용기에 대해, 낭비의 경우 자유인다움에 대해 유사함

ex. 용기에 더 많이 대립하는 것은 지나침인 무모함이 아니라 모자람인 비겁이며, 절제에 더 많이 대립하는 것은 모자람인 목석같음이 아니라 지나침인 무절제

 

Q : 왜 어떤 극단들은 중간의 것에 대한 일종의 유사성을 보이는가?(=왜 어떤 경우에 한 극단은 다른 극단보다 중간의 것에 더 적게 대립하는가?) 왜 어떤 경우에 한 극단은 다른 극단보다 중간의 것에 더 많이 대립하는가?

A : “이런 일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일어나는데,”

 

1) 사물 자체에서 나오는 이유

  : 양극단 중 하나가 중간에 더 가깝고 더 비슷하므로, 우리가 이 가까운 극단이 아니라 그 반대 극단을 더 대립적인 것으로 놓는 것

  ex. 무모함은 용기에 더 비슷하고 더 가깝게 보이는 반면, 비겁함은 비슷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므로, 비겁함을 더 대립적인 것으로 놓는 것

 

2)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이유

  : 우리들의 본성상 더 끌리게 마련인 것들이 중간에 더 대립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

  ex. 우리들은 본성상 즐거움으로 더 끌리기 마련이며, 그런 까닭에 질서 정연보다는 무절제로 더 쉽게 기우는 것. 그래서 우리는 이끌림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무절제)(절제에) 더 대립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

 

Q : 두 가지 이유들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인가? 가령 용기와 무모함의 관계가 용기와 비겁함의 관계보다 덜 대립적이어 보이는 것은 우리의 본성상 두려움으로 인하여 비겁함 쪽으로 끌리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해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물 자체에 의한 이유의 사례로 제시된 것 역시 우리 자신에 의한 것으로서 설명 가능하지 않은가? (D)

A : 우리는, 가령 용기의 경우, 본성상 두려움 혹은 두려운 것, 전쟁에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끌리지는 않음. 그리고 일단 무모함은 두려움 자체를 어떤 식으로든 이겨낸 것이기에 일단 두려움을 이겨낸 이후에 성립할 수 있는 용기에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비겁함보다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임.

  물론, 가령 용기의 경우 죽음이라는 사건, 또 자유인다움의 경우 돈이라는 사물이 결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사건과 사물에 대한 우리의 배척과 끌림이 있게 마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용에 가까워지는 매커니즘 상 중용과 가까운 극단이 있고 먼 극단이 있는 것으로 보임. ()

 

9장 중용에 도달하기 실천적 지침 (1109a20-1109b28)

 

각각의 경우마다 중간을 잡아내기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화를 내는 일, 돈을 주거나 써 버리는 일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마땅히 주어야 할 사람에게, 마땅한 만큼, 마땅한 때에, 마땅한 목적을 위해, 그리고 마땅한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쉬운 일도 아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이런 일을 잘하는 것은 드물고, 칭찬받을 만한 일이며, 고귀한 일이다.”(1109a25-28)

 

감정을 가지고 행위를 하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지만, 각 경우마다 중간에 맞춰 감정을 가지고 행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 후자가 어려운 만큼 후자는 드물고, 칭찬받을 만하고, 고귀함.

 

Main Question : 그렇다면 그 어려운 중용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Answer 1 : 중간에 더 대립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라. (3-4)

 

두 극단 가운데 하나는 더 잘못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덜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간을 맞추는 것은 극도로 어려우므로, 이른바 2의 항해에 따라 악덕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을 취해야만 할 것이다.”(1109a33-36)

 

Answer 2 : 쉽게 기울어지는 방향과 반대 방항으로 가라. (4-5)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것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니까. 이것은 우리를 둘러싼 즐거움과 고통들로부터 알 수 있을 것이다. [...] 사람이 비틀어진 나무를 곧게 펴려고 할 때 하는 것처럼.”(1109b3-5)

 

Answer 3 : 즐거운 것들과 즐거움을 경계하라. (6)

 

Q : Answer 2Answer 3가 겹치지 않나?

A : 즐겁지 않더라도 우리가 습관적으로나 기질적으로나 쉽게 기울어지는 것이 있을 수 있음. , 보통 즐거운 것으로 쉽게 기울어지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즐거움과 고통으로부터 자신이 무엇에 쉽게 기울어지는지 자가진단 해보라고 했던 것.

 

Q : 중용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적 지침 세 가지가 과연 지침의 역할을 하는가? 예컨대, 즐거운 것들과 즐거움을 경계한다고 해서 용감한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D)

A :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지침은 그 자체로 중용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나침반 같은 지침이 아니다. 하지만 중용에 도달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 예컨대, 주식 투자로 수익을 내기 위한 지침서에서 저자들은 1) 너무 싼 주식은 사지 마라. 2)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회사의 주식은 사지 마라. 3) 이름이 자주 바뀌는 회사의 주식은 사지 마라. 같은 지침을 준다. 이런 지침들은 그 자체로 좋은 주식을 발굴하고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쁜 주식을 피하게 함으로써 좋은 주식을 발굴하고 수익을 내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교수님)

 

현실적인 답변과 위로 : 중용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난받지 않는다.

 

물론 이것도 어렵겠지만, 아마도 개별적인 경우들에서 중간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 (1109b14)

 

우리가 개별적인 경우에서 중간을 맞추는 것도 어렵고, 타인이 개별적인 경우에서 중간을 맞췄는지 평가하기도 힘듦 (1109b15-18)

 

하지만 잘함에서 지나치는 쪽으로든 모자라는 쪽으로든 조금만 벗어나는 사람은 비난을 받지 않는다. 비난은 많이 벗어나는 사람이 받는 것이다.”(1109b19-20)

 

그러나 비난을 받는 기준을 말(logos)로 정하기 쉽지 않음. 개별적인 경우에 따라 다르고, 그에 대한 판단은 (감각에 의한) 지각(āisthēsis)에 의존하기 때문. (1109b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