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고대철학 일차문헌

플라톤, 「크리톤의 탈옥 권유」(44b-46a), 『크리톤』

현담 2023. 2. 15. 00:32

<목차>

 

1. 도입부 (43a-44b)

 

2. 크리톤의 탈옥 권유 (44b-46a)

  2-1. 나는 소중한 친구를 잃게 될 것이네. (44b)

  2-2. 나는 친구보다 돈을 중시한다는 평판을 얻게 될 것이네. (44b-d)

  2-3. 나와 친구들은 기꺼이 자네를 위해 재산상 피해를 감수할 것이네. (44e-45b)

  2-4. 자네가 아테네에서 추방되어도 자네는 잘 지낼 수 있네. (45b-c)

  2-5. 자네 자신을 구하길 포기하고 적들에게 해를 입는 일은 정의롭지 못하네. (45c)

  2-6. 자네는 아들들을 버리는 것이네. (45c-d)

  2-7. 우리는 용기가 없다는 평판을 얻게 될 것이네. (45d-46a)

 

3. 크리톤의 권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응수 (46b-50a)

4. 의인화한 법률의 연설 (50a-54d)

5. 종결부 (54d-e)

 

2. 크리톤의 탈옥 권유 (44b-46a)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작품 안내, 71) (아래에서는 역자인 이기백의 분류를 따르지만, 제목과 구체적인 내용은 참고하되 스스로 구성할 것이다.)

 

2-1. 나는 소중한 친구를 잃게 될 것이네. (44b)

 

크리톤 : 자네가 죽으면, 그것은 내게 하나의 불운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네. 나는 결코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그런 친구를 잃게 될뿐더러, [...] (44b)

 

크리톤 개인이 가장 친한 친구를 잃게 되는 불운을 겪게 될 것이라는 이유이다. 그런데 크리톤은 이 이유가 이미 그전까지의 대화에서도 충분히 드러났고(e.g. “이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견뎌내기에 가장 참담한 소식일 걸세.”) 소크라테스도 이를 주지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이유로 내세우기보다는 이런 이유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도 많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수단적인 이유로 사용한다.

 

2-2. 나는 친구보다 돈을 중시한다는 평판을 얻게 될 것이네. (44b-d)

 

크리톤 : [...] 나와 자네를 확실히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은 내가 돈을 쓰고자 했다면 자네를 구할 수 있었는데도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판단할 것이네. 그런데 친구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고 생각되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평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다수의 사람은 우리가 애썼는데도 불구하고 자네 자신이 이곳에서 떠나고자 하지 않았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네. (44c)

 

*다수의 사람(hoi polloi) : ‘hoi epeikestatoi’(아주 훌륭한 사람들)와 대비되어 쓰이고 있다. 그러니까 ‘hoi polloi’는 단순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소수의 훌륭한 사람들, 47a-48a에서 쓰이는 용어로는 분별 있는’(phronimos) 혹은 전문 지식을 가진’(epaiōn) 사람들과 구분되는 보통 사람들 혹은 대중들을 가리킨다. (역자주, 54)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와 자신의 돈독한 친애 관계를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은 크리톤이 돈이든 뭐든 신경쓰지 않고 소크라테스를 구하려 했지만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탈옥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말해도) 믿지 않고, 크리톤이 돈이 아까워서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도와주지 않았다고 믿어, 크리톤이 친구보다 돈을 중시하는 쓰레기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소크라테스가 탈옥하지 않으면 대중들은 크리톤을 돈벌레로 간주할 것이고, 크리톤은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는 불운을 겪게 됨(2-1.)과 더불어 친애와 관련한 나쁜 평판(다수의 판단)을 갖게 될 것이다.

 

2-2-1. 소크라테스의 반박

 

소크라테스 : 그런데 여보게! 크리톤, 왜 우리는 다수의 판단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건가? 우리가 더 주목할 만한 아주 훌륭한 사람들은 우리가 한 일을 실제로 있었던 대로 생각할 것이네. (44c)

 

(1. 다수는 실제로 있었던 대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2. 실제로 있었던 대로 생각하지 않고 내리는 판단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3. 따라서, 다수가 내리는 판단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but. 훌륭한 사람은 실제로 있었던 대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훌륭한 판단을 내릴 것이며, 따라서 훌륭한 사람의 판단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2-2-2. 크리톤의 재반박

 

크리톤 : 하지만 소크라테스, 불가피하게 다수의 판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자네는 물론 알고 있네. 바로 현재의 자네 상황은 이 점을 분명히 해 주네. 다수의 사람은 [...] 사실상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네. (44d)

 

1. 다수는 실제로 있었던 대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2. 그러나 다수는 그 판단을 토대로 (그 판단의 대상에게) 사실상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다.

3. 사실상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는 것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4. 따라서, 다수가 내리는 판단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반박에서 1. 2.를 공격한다.

 

2-2-3. 소크라테스의 재재반박

 

소크라테스 : 크리톤, 다수의 사람이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었으면 하네. 그러면 그들은 가장 큰 이로움도 줄 수 있을 테니까. 그건 훌륭한 일일 것이네. 하지만 실상 그들은 이 둘 가운데 어느 것도 할 수 없다네. 그들은 사람을 분별 있게도 무분별하게도 만들 수 없고,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기 때문이네. (44d)

 

1.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다면, 가장 큰 이로움을 줄 수 있다.

2. 다수는 (자신의 판단을 토대로) 가장 큰 이로움을 줄 수 없다.

  (2-1. 누군가 무언가를 주려면,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2-2. 다수는 가장 큰 이로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2-3. 따라서, 다수는 가장 큰 이로움을 줄 수 없다.)

3. 따라서, 다수의 가장 큰 해를 줄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재반박에서 2.를 공격한다. 그리고 아마 3.은 받아들일 것이고, 3.에 해당하는 것은 가장 큰 이로움과 해로움이 무엇인지 아는 그래서 그것들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의 판단일 것이다.

 

(1. 사실상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는 것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2.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다면, 가장 큰 이로움을 줄 수 있다.

3. 훌륭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토대로 가장 큰 이로움을 줄 수 있다.

  3-1. 누군가 무언가를 주려면,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3-2. 훌륭한 사람은 가장 큰 이로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3-3. 따라서, 훌륭한 사람은 가장 큰 이로움을 줄 수 없다.

4.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은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다.

5. 따라서, 훌륭한 사람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크리톤이 다수의 사람이 누군가에게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다고 말할 때, 그 가장 큰 해(나쁜 것)란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의 말을 받아 해와 이로움을 무분별과 분별과 연관시키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분별과 무분별, 혹은 지혜(지식)와 무지야말로 진정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cf. 카르미데스174b11-c3, 에우튀데모스281d2-e5, 메논87d2-89a5) (역자주, 55)

 

2-3. 나와 친구들은 자네를 위해 기꺼이 재산상 피해를 감수할 것이네. (44e-45b)

 

(1. 소크라테스를 탈옥시키는 것이 친구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2. 재산상 피해를 입는 것은 곧 돈을 잃는 것이다.)

3.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돈을 잃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다.

4. 나와 친구들은 어떤 것이든 정의로운 것을 행할 것다.

5. 따라서, 나와 친구들은 소크라테스를 탈옥시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재산상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친구를 살리는 것이 돈을 잃음으로써 가능하다면, 기꺼이 돈을 잃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 맞다. 하지만 친구를 살리는 것이 비단 돈을 잃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부정의한 탈옥이라는 방식으로써만 가능하다면, 친구를 살리는 것이 꼭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친구들이 어떤 것이든 정의로운 것을 행하는 사람들이라면(4.), 자신을 탈옥시키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2-3-1. 소크라테스의 염려

 

소크라테스 : 크리톤, 나는 그것뿐만 아니라 그 밖의 많은 것도 염려하고 있네. (45a)

 

그 밖의 많은 것이 무엇인지는 대화편의 말미에서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거기서 의인화한 법률이 소크라테스에게 당신이 탈옥한다면 당신 친구들의 경우는, 그 자신들이 추방되고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재산을 잃을 위험에 처하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오.”(53b)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안내, 72)

 

2-3-2. 크리톤의 염려 불식

 

- 소크라테스를 탈옥시키는 데에 드는 돈은 큰 돈이 아니다.

- 소크라테스를 탈옥시키고 추후에 기소를 일삼는 자들에 의한 공격을 무마시키는 데에 드는 돈 또한 큰 돈이 아니다.

- 심지어 a.b.에 드는 돈은 내 돈이라 염려된다면, 심미아스와 케베스 등 외국 손님들이 돈을 들일 것이다.

 

앞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심각한 문제들이 생긴다는 식으로 탈옥을 권유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리고 바로 밑에서(2-4.)는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하면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는데 그런 문제들은 사실 문제도 아니라는 식으로 탈옥을 권유한다.

 

2-4. 자네가 아테네에서 추방되어도 자네는 잘 지낼 수 있네. (45b-c)

 

크리톤 : 그러니 내가 말하듯이, 그런 것이 두려워서 자신을 구하는 데 주저하지도 말고, 자네가 법정에서 한 말, 즉 자네가 추방되면 어떻게 지낼지 알 수 없다고 한 말에 구애받지도 말게나. (45b)

 

⇒ 『변명37c-38b에서 [...] 그는 추방형을 제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 그가 추방되어 아테네에서처럼 논의를 하며 다닌다면, 아테네 사람들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신의 논의를 견뎌내지 못하고 그의 말을 듣는 젊은이들을 위해 그 자신을 쫓아낼 것이다. 2) 그렇다고 추방되어 말없이 조용히 산다면, 그것은 신께 불복종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역자주, 56)

 

2-5. 자네 자신을 구하길 포기하고 적들에게 해를 입는 일은 정의롭지 못하네. (45c)

 

크리톤 : [...] 자신을 구할 수 있는데도 자신을 포기하는 일은 정의롭지도 못하네. 자네는 자신의 적들이 자네를 없애고 싶어서 서둘렀던, 그리고 그들이 서두를 그런 일이 자네 자신에게 일어나도록 서두르고 있는 것이네. (45c)

 

이는 친구들은 이롭게 하되 적들은 해롭게 하는 것”(메논71e1-5)이 정의로운 것이라는 전통적 도덕관을 반영한 것이겠는데, 소크라테스는 아예 이런 도덕관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정의관을 확립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3. 크리톤의 권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응수에서 다룬다. (작품 안내, 73)

 

2-6. 자네는 아들들을 버리는 것이네. (45c-d)

 

크리톤 : 게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는 자신의 아들들도 버리는 것이네. (45c)

 

1. 소크라테스가 탈옥하지 않으면, 아들들을 양육하고 교육하고 관여할 수 없다.

2. 아들들을 양육하고 교육하고 관여하지 않으면, 아들들은 되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3. 아들들이 되는 대로 살아간다면, 그들은 고아들이 고아 처지에서 갖곤 하는 그러한 운명을 가질 법하다.

(4. 아들들이 고아 처지의 운명을 가지는 것은 옳지 않다.

5.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탈옥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1. 자식들을 낳질 말거나, 자식들을 낳았다면 그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며 그들과 함께 끝까지 고난을 견뎌야 한다.

(2. 소크라테스는 자식들을 낳았다.

3.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자식들과 함께 끝까지 고난을 견뎌야 한다.

4. 소크라테스가 자식들과 함께 끝까지 고난을 견디기 위해서는 탈옥해야 한다.

5.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탈옥해야 한다.)

 

1. 견뎌야 할 고난을 견디지 않는 것은 안이한(훌륭하지 않은) 길을 택하는 것이다(비겁하다).

1*. 견뎌야 할 고난을 견디는 것은 훌륭한 길을 택하는 것이다(용감하다).

2. 소크라테스가 탈옥하지 않는 것은 곧 견뎌야 할 고난을 견디지 않는 것이다.

2*. 소크라테스가 탈옥하는 것은 곧 견뎌야 할 고난을 견디는 것이다.

3. 평생 덕에 마음을 써 왔노라고 주장해 온 사람은 훌륭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택하지 않을 길을 택하면 안 된다.

3*. 평생 덕에 마음을 써 왔노라고 주장해 온 사람은 훌륭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택할 길을 택해야 한다.

4. 소크라테스는 평생 덕에 마음을 써 왔노라고 주장해 온 사람이다.

5.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탈옥하지 않으면 안 된다.

5*.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탈옥해야 한다.

 

⇒ 4. : 소크라테스는 날마다 덕에 관하여 논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일이라고 보았다(변명38a), 인간의 좋은 삶, 즉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부, 건강, 아름다움, 권력, 명예와 같은 이른바 좋은 것들보다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와 같은 덕들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인들에게 덕에 마음 쓰도록 설득하고 다니는 데 평생을 바쳤다. 소크라테스는 혼에 마음을 쓰도록 하라’(혼을 돌봐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했는데, 이 말도 덕에 마음을 쓰라는 말과 사실상 같은 취지의 말이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주된 관심사인 덕의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나름대로 폐부를 찌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자주, 56-57)

 

2-7. 우리는 용기가 없다는 평판을 얻게 될 것이네.  (45d-46a)

 

크리톤 : 나로서는 자네와 자네의 친구들인 우리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부끄러워하고 있다네. 자네와 관련된 모든 일이 우리 쪽이 용기가 없어서 벌어진 것이라고 사람들이 판단하지나 않을까 해서지. (45d-e)

 

“2-2. 나는 친구보다 돈을 중시한다는 평판을 얻게 될 것이네.”와 다른 점은 1) 크리톤과 소크라테스를 포함한 모든 우리편이 평판의 대상이며, 2) 용기가 없다, 즉 덕이 없다는 것이 평판의 내용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3) 다수의 판단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를테면 소송사건이 재판에 회부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회부된 일과 재판 자체가 이루어진 과정”)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점과 4) 크리톤은 이러한 판단이 틀리다고 보지 않는 점도 주요한 차이점이다. 그러므로, 2-7.은 단순히 2-2.의 변주라기보다는, 앞서 말했던 이유를 집대성한 이유로 보이며,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한 크리톤의 씁쓸한 후회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다면 자네를 구할 수 있을 텐데도 우리가 자네를 구하지도 자네가 자신을 구하지도 못했으니 말이네.”(46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