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현대대륙철학 일차문헌

[니체] 「왜소하게 만드는 덕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5장)

현담 2023. 5. 19. 22:31

*왜소하게 만드는 덕(the virtue that makes small, der verkleinernden Tugend) :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에 비해 너무나도 왜소해져 버린 인간들을 목도한다. 그들을 왜소하게 만든 것은 선의, 연민, 정의 등을 덕목으로 삼는 현대 도덕이다. (J3 발제문)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과 극복해야 할 덕의 특징이 제시되는 텍스트다. 인간을 건강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다. 건강해야 영원회귀 사유 앞에서 위버멘쉬로 살기로 결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건강하게 만드는 덕을 의욕할 수 있는(wollen können) 자가 되어라!”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라!”의 형태로 제시하고, 건강성을 파괴해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덕을 무리-대중의 덕으로 제시한다. (역주)

  니체는 동정, 친절함을 중시하는 근대의 도덕이 기독교적 도덕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기독교에서 덕이라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로마의 귀족들이 덕이라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그들은 용기, 지혜, 절제 등을 덕이라 생각하고 이런 덕을 갖춘 사람은 긍지를 가진다. 그러나 기독교는 긍지보다는 겸손/겸허함을, 우정보다는 동정/친절함을, 명령보다는 복종/순종을 덕으로 가르친다. 이런 것들이 인간들을 왜소하게 만드는 덕들이다. (교수님)

 

여기서 나는 낯선 농가에 들어선 수탉 같다. 암닭들마저 수탉을 쪼아대지. 그렇다고 내가 암탉들을 나쁘게 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 사소하게 불쾌한 일 일체에 대해 그러하듯 나는 암닭들도 점잖게 대한다. 사소한 것에 대해 가시 돋쳐 있는 것은 고슴도치의 지혜일 것이니.

Here am I still like a cock in a strange farm-yard, at which even the hens peck: but on that account I am not unfriendly to the hens. // I am courteous towards them, as towards all small annoyances; to be prickly towards what is small, seems to me wisdom for hedgehogs.

Noch gleiche ich dem Hahn hier auf fremdem Gehöfte, nach dem auch die Hennen beissen; doch darob bin ich diesen Hennen nicht ungut. // Ich bin höflich gegen sie wie gegen alles kleine Ärgerniss; gegen das Kleine stachlicht zu sein dünkt mich eine Weisheit für Igel.

: 현대 도덕을 추종하는 자들은 차라투스트라를 비롯한 모두가 현대 도덕을 추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대 도덕을 추종하지 않는 차라투스트라를 비난한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에게 보복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의 비난은 그들이 자기 무리와 다른 주장을 하는 차라투스트라에게 무비판적 비난을 가하는 사소한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J3 발제문)

 

저들은 나를 유혹하고 칭찬하여 저들의 왜소한 덕으로 끌어가려 한다. 작은 행복의 똑딱거림으로 향하라고 내 발을 설득하려 하는 것이다.

To small virtues would they rather lure and laud me; to the ticktack of small happiness would they rather persuade my foot.

Zur kleinen Tugend möchten sie mich locken und loben; zum Tiktak des kleinen Glücks möchten sie meinen Fuss überreden.

: 현대 도덕을 추종하는 자들은 차라투스트라의 사상을 원천 차단하며 외면하려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차라투스트라를 떠받들면서 칭찬이라는 행위를 통해 선의와 같은 자기들 현대 도덕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기도 한다. 현대 도덕을 추종하는 자들의 그런 선의는 차라투스트라처럼 바삐 가는 자들에게 방해가 된다. (J3 발제문) 대중은 그를 무리의 평균성과 대중성의 일원으로 만들어, 대중의 틀에 맞는 왜소한 삶에 안주시키려 한다. 대중이 차라투스트라를 외면하고 물어뜯는 대신, 그를 잡거나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일 때(‘유혹’, ‘칭찬’)는 바로 이런 목적 때문이다. (역주) 나아가 칭찬하는 자는 그 댓가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한다. 자기가 칭찬하는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역으로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말세인으로부터 칭찬받는 것은 차라투스트라에게 달갑지 않다. 자기들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자기와 동급의 사람의 칭찬은 받아들이겠지만, 말세인의 칭찬은 어떻게 저런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지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긍지의 찬 인간, 그리스로마의 기풍있는 귀족들이 취하는 태도와 똑같은 것이다. 긍지에 찬 인간은 자기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에게서 상이나 칭찬을 거부한다. (교수님)

 

저들 중 몇몇은 의욕하지만, 대다수는 의욕의 대상일 뿐이다. 저들 중 몇몇은 진짜지만, 대다수는 서툰 배우다. // 저들 중에는 자신의 앎에 반해 배우가 된 자도 있고, 자신의 의지에 반해 배우가 된 자도 있다. 늘 그렇듯 진짜는 드물다. 진짜 배우는 특히 그렇다.

Some of them will, but most of them are willed. Some of them are genuine, but most of them are bad actors. // There are actors without knowing it among them, and actors without intending it-, the genuine ones are always rare, especially the genuine actors.

Einige von ihnen wollen, aber die Meisten werden nur gewollt. Einige von ihnen sind ächt, aber die Meisten sind schlechte Schauspieler. // Es giebt Schauspieler wider Wissen unter ihnen und Schauspieler wider Willen -, die Ächten sind immer selten, sonderlich die ächten Schauspieler.

: 현대 도덕을 추종하는 자들 가운데서는 선의에 사로잡혀 자신의 앎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현대 도덕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된 자들이 대부분이다. (J3 발제문) “배우이웃사랑에 대하여장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이웃사랑을 하면서 훌륭한 척을 한다는 말인데, “앎에 반해 배우가 된 자는 자신이 전혀 보잘 것 없는 사람임을 알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 배우가 된 자이고, “의지에 반해 배우가 된 자는 자기 자신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힘에의 의지를 왜곡된 형식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배우가 된 자로 보인다. 이에 반해 진짜 배우벗에 대하여장에서 다뤄졌던, 벗 앞에서 옷을 입고 치장하는 자로 보인다. 그는 벗이자 적인 상대와 함께 서로에 대한 연민 없이 서로를 고양시키는 방식으로 투쟁을 벌이기 위해서 훌륭하게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견)

 

여기에는 사내다운 사내가 드물다. 그래서 저들의 여자들이 사내처럼 되어가고 있다. 충분히 사내다운 자만이 여자 속에 있는 여자를 구원할 수 있으니.

Of man there is little here: therefore do their women masculinise themselves. For only he who is man enough, will - save the woman in woman.

Des Mannes ist hier wenig: darum vermännlichen sich ihre Weiber. Denn nur wer Mannes genug ist, wird im Weibe _das_Weib_ - erlösen.

: 이 대목에서 저들의 여자들이 사내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게 좋은 뜻일까? 여기서 말하는 뉘앙스는 부정적이다. (D) 굉장히 부정적인 뜻이다. “남자다운 남자는 여자로부터 외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남자를 말한다. 하지만 남자들이 여성화되어가다보니 여자들이 남자처럼 되어가고 있다.” 이는 여성해방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조르주 상드 같이 남자처럼 하고 다니며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여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 니체는 여성해방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며 여러 군데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니체에 따르면, 여성해방은 사실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여성에게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니체는 근대 이전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복속되었다고 보는 게 아니라 여성들이 여성 나름대로 남성들을 지배했다 본다. 하지만 여성해방운동은 여성적 매력을 전혀 못 느끼게 만든다. “충분히 사내다운 자만이 여자 속에 있는 여자를 구원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자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다. “충분히 사내다운 자는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게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남자이다. (교수님) 니체는 여자 이야기만 나오면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 극성 유저처럼 성차별적인 생각을 뱉어내는데 여기서도 그러고 있다. (사견)

 

나는 섬긴다. 너는 섬긴다. 우리는 섬긴다.” 여기서는 지배하는 자들의 위선도 이렇게 염원한다. , 이런! 으뜸가는 주인이 그저 으뜸가는 종복에 불과하다니!

"I serve, you serve, we serve" - so chants here even the hypocrisy of the rulers - and Alas. if the first lord be only the first servant!

"Ich diene, du dienst, wir dienen" - so betet hier auch die Heuchelei der Herrschenden, - und wehe, wenn der erste Herr nur der erste Diener ist!

: 현대 도덕은 그들 무리의 모두를 종복으로 만들며, 특히 지배자들까지도 그저 으뜸가는 종복이 될 뿐이다. 그들은 강약의 진실을 은폐하면서까지 누구로부터도 고통받지 않는 것을 목표로할 뿐이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것 앞에서 비겁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자신을 가축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J3 발제문)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자신을 두고 국가[신민]의 으뜸가는 종복이라고 한 말을 빗댄 것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볼테르의 영향으로 계몽적 전제 군주가 되고자 했지만, 마키아벨리에게서 강력한 군주의 덕목을 보았던 니체에게 그의 태도는 위선에 불과하다. 자신의 위엄을 대중들의 지지와 신망에서 확보하여 권력을 유지하려는 치사함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 결과는 파리떼의 행복이다. (역주)

  기독교식 덕에 지배자들까지도 사로잡혀서 이들이 나는 명령하는 자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복종하는 자다. 국민들의 뜻을 따르는 자다.”라고 말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지배자들조차 겸허, 겸양, 순종 같은 덕들을 가장하다보니 모든 인간들이 왜소해진다. 이제 나폴레옹 같은 인간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니체에게 있어 나폴레옹은 근대적 덕에 의해 왜소해질 대로 왜소한 인간들을 압도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었다. 나폴레옹은 자기에 대한 긍지가 상당한 인간이었으며 스스로를 황제로 선포했다. (교수님)

 

우리는 우리의 의자를 중간 지점에 놓았다.” 내게 저들은 싱글거리며 말한다. “죽어가는 검투사로부터도, 만족해하는 돼지로부터도 똑같이 멀리 떨어진 중간에.” // 그런데 이것은 범용이다. 이미 중용이라 불리고 있어도.

"We set our chair in the midst" - so says their smirking to me - "and as far from dying gladiators as from satisfied swine." // That, however, is - mediocrity, though it be called moderation.

"Wir setzten unsern Stuhl in die Mitte - das sagt mir ihr Schmunzeln - und ebenso weit weg von sterbenden Fechtern wie von vergnügten Säuen." // Diess aber ist - Mittelmässigkeit: ob es schon Mässigkeit heisst. -

: 니체의 멋진 수사를 잘 살린 백승영의 번역이 돋보인다. 현대인들은 죽어가는 검투사처럼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서 싸우지도 않지만, “만족해하는 돼지처럼 목숨만 부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적당히 도전하고 적당히 안주한다. 이런 현대인의 행태는 탁월성으로서의 중용이 아니라 평범성으로서의 범용이다. (사견)

 

저절로 주어진다.” 이것도 순종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나는 그대, 안일에 젖어 있는 자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은 저절로 빼앗긴다. 점점 더 많이 빼앗기게 된다!”

"It gives itself" - that is also a doctrine of submission. But I say to you, you comfortable ones, that it takes to itself, and will ever take more and more from you!

"Es giebt sich" - das ist auch eine Lehre der Ergebung. Aber ich sage euch, ihr Behaglichen: _es_nimmt_sich_ und wird immer mehr noch von euch nehmen!

: 그러나 그렇게 순종을 통해 얻게 된 것, 즉 자신의 의지로 얻어 내지 않은 것은 결국 빼앗길지도 모를 것, 아니 나아가 빼앗겨도 무방한 것이다. (역주, J3 발제문) 그대가 강자에게 머리를 조아려 받은 것은 그대가 아닌 강자가 노력을 기울여 구한 것이기에 공짜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공짜로 받은 것을 강자는 언제든 다시 가져갈 수 있으며 언제 다시 가져갈지 모른다. 나아가 강자는 그대가 공짜로 받은 것보다 그대에게서 더 많은 것을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그것은 비단 그대의 물질적인 소유물뿐만이 아니다. 긍지와 힘을 그대에게서 앗아갈 것이다. (사견)

 

, 그대들이 나의 이 말들을 이해하게 되기를.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언제든 행하라, 그보다 먼저 의욕할 수 있는 자가 되어라!” // “그대들의 이웃을 항상 자신처럼 사랑하라. 그러나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라! // 위대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위대한 경멸로 사랑하라!” 이렇게 신을 부정하는 자, 차라투스트라가 말한다.

Ah, that you understood my word: "Do ever what you will - but first be such as can will. // Love ever your neighbour as yourselves - but first be such as love

themselves- // -Such as love with great love, such as love with great contempt!" Thus speaks Zarathustra the godless.-

Ach, dass ihr mein Wort verstündet: "thut immerhin, was ihr wollt, - aber seid erst Solche, die _wollen_können_!" // "Liebt immerhin euren Nächsten gleich euch, - aber seid mir erst solche, die _sich_selber_lieben_ - // - mit der grossen Liebe lieben, mit der grossen Verachtung lieben!" Also spricht Zarathustra, der Gottlose. -

: 차라투스트라는 그리하여 각자가 스스로 의욕할 수 있는 자, 이웃 사랑 이전에 자기 사랑을 할 줄 아는 자, ‘위대한 경멸로써 사랑할 줄 아는 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차라투스트라의 이런 가르침은 현대 도덕을 추종하는 당장의 사람들에게 이른 것이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추종이 전복될 위대한 정오’(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가 도래할 것이다. (J3 발제문)

  “의욕하는 것을 언제든 행하라, 그러나 먼저 의욕할 수 있는 자가 되어라.”라고 번역해야 이 문장 안에서 대구도 맞고 이후에 이어지는 문장과 대구도 맞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여기서 의욕하는 것을 행하고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기 전에 제대로 의욕하고 제대로 사랑하는 자가 되도록 촉구한다.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하고,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경멸할 줄 알며, 자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의욕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견)

 

 

(수업 : 박찬국, <존재론연습> (2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