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현상학 이차문헌

석사 논문 계획서

현담 2023. 7. 31. 22:45

Keywords : 공간, 현상학, 후설, 사물, 신체, 촉각

 

  석사과정 진학 이후 줄곧 저의 학문적 관심은 공간의 현상학에 있었습니다. 공간의 현상학, 즉 공간이 무엇인가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는 우리가 공간을 경험하는 사태 자체로 돌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원초적인 공간 경험으로부터 어떻게 그 이상의 공간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구성적으로 탐구하는 철학적 작업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걸어 올라가는 계단은 우리가 그것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조금씩 전진하며 위로 올라가게 해주는 사물입니다. 우리 모두는 계단이 너비와 높이와 깊이를 가진 삼차원적 공간사물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단을 눈으로 보는 사태 자체로 돌아갔을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것의 전면이 전부입니다. 즉 그것의 측면과 후면은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보이는 것으로만 따지면 그것을 밟고 전진할 수 있는 사물로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사물과 공간(Hua ⅩⅥ)에서 후설의 현상학적 연구 성과를 빌려와 이러한 원초적 경험과 일상적 경험 사이의 괴리를 해명하자면, 우리는 우리에게 원초적으로 주어지는 계단의 이차원적 모습들과 우리의 운동에 대한 감각을 서로 조응시켜 일상적인 삼차원적 공간사물로서 계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신체를 움직이면서 우리 자신이 움직인다는 것을 감각하고 그와 동시에 그러한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계단의 모습들을 감각하는데, 이러한 감각들의 연관을 토대로 우리는 우리에게 당장 주어지는 전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움직였을 때 주어질 측면과 후면을 기대할 수 있고 비로소 계단을 너비와 높이와 깊이를 가진 사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공간 경험은 공간사물(예컨대, 계단)을 신체(예컨대, )를 통하여 지각하는 경험(예컨대, 보는 사태)입니다. 그래서 공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간사물에 관한 신체적 지각의 구성적 분석이 필수불가결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공간사물의 지각을 수행하는 우리 신체 또한 마찬가지로 공간사물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공간사물의 구성적 연구를 철저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사물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동시에 지각과 같은 체험을 한다는 점에서 정신적이기도 한 특수한 공간사물로서 신체의 구성까지 같이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석사논문 작성을 앞두고 공간에 대한 현상학적 관심의 연장에서 저는 사물과 신체를 현상학적으로 연구하고자 합니다.

 

  저의 보다 구체적인 문제의식은 후설의 사물과 신체에 관한 현상학적 분석의 결론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념들 Ⅱ』(Hua )에서 후설에 따르면, 사물과 신체의 구성에 있어 촉각은 우선적(bevorzugt)(Hua , 70) 내지는 근원적(ursprünglich)(Hua , 150)입니다. 여기서 촉각의 우선성 내지는 근원성의 의미는 촉각 경험이 사물과 신체 경험의 가장 근저에 있고 그것에 관계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물과 신체 경험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만지는 경험을 토대로 무언가를 사물이나 신체로서 경험한다는 것이 곧 후설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는 사물과 공간에서 붉음과 같은 시각 규정과 맨질맨질함과 같은 촉각 규정이 사물의 공간성을 이중으로 구성한다는 후설의 분석과 상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Hua ⅩⅥ, 156). 나아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눈으로 보기만 해서도 계단과 같은 사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손과 같은 신체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시각만으로 사물과 신체를 경험할 수 있고 그러한 경험에 있어 외려 시각이 촉각에 우선한다는 인지과학적 연구들도 제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부 현상학 연구자들은 이러한 일상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촉각의 근원성을 주장하는 후설의 현상학적 분석이 틀렸거나, 좋게 말하면 일면적인 분석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 구성에서 촉각의 근원성을 받아들이면 후설의 현상학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신체 구성에서 촉각에 특권성을 부여하는 바람에 어쨌든 나머지 감각을 모두 담지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적인 신체가 구성될 수 없다든지, 물질성을 전혀 결여한 의식과 그것이 촉각을 통해 구성한 물질적인 신체를 무리하게 구별하는 이원론에 빠진다는 비판입니다. 결국 후설의 사물과 신체 분석에서 비롯되는 문제와 비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후설은 사물 구성에 있어 한편으로는 촉각의 근원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촉각과 시각의 등근원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비일관적이다, 2) 일상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비추어보았을 때 사물과 신체 구성에 있어 시각은 적어도 촉각과 함께 등근원적이므로 후설은 틀렸다, 3) 신체 구성에 있어 촉각의 근원성을 인정할 때, 후설의 현상학적 분석은 해결하기 힘든 철학적 문제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저는 촉각이 사물과 신체 구성에 있어서 근원적이라는 후설의 결론이 참이며, 위와 같은 문제와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옹호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촉각은 다른 감각은 가지고 있지 않은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이 점에 기초하여 후설은 촉각의 근원성을 내세웁니다. 촉각은 위치지어집니다. 위치지어진다는 것은 나의 어딘가가 다른 것의 어딘가와 어떤 특정한 위치에서 만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손으로 책상을 문지른다면, 책상을 손바닥에서 느끼고, 또 책상의 맨질맨질한 면을 느끼게 됩니다. 손과 책상은 특정한 여기에서 동시에 공간적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기가 실재적 공간성, 즉 나와 동떨어지지 않은 현실적인 공간적 성격을 사물에 부여합니다. 그러나 촉각과 달리 시각은 자체적으로는 위치지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눈으로 붉은 책을 본다면 우리는 책의 붉음을 느끼지만 그것을 눈에서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책상의 사례에서와 달리, 책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붉게 주어질 뿐 여기에서 눈과 함께 공간적으로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혹자는 우리가 빨간 책을 얼굴 상층부에 달린 눈으로 본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지 않냐고 물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직관적인 앎을 시각 경험 자체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컨대 시각을 담당하는 눈이 눈꺼풀에 의해 가려지는 동시에 만져지는 것과 같은 촉각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획득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혹자는 우리가 햇볕을 볼 때 눈에 따가움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기 때문에 시각이 위치지어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햇볕의 색 때문에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모종의 이유로 따가움이라는 촉각을 눈에서 느끼게 하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는 것입니다. 한편 촉각과 시각이 공유하는 특징도 있습니다. 시각과 촉각은 펼쳐집니다. 맨질맨질함은 어떤 식으로든 펼쳐져서 맨질맨질한 것이고, 붉음 또한 어떤 식으로든 펼쳐져서 붉은 것입니다. 이러한 기초적인 고찰을 토대로 위에서 제기된 문제와 비판들에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1) 사물의 연장적인 공간성의 구성에 있어 시각과 촉각은 동등하게 근원적이지만, 사물의 실재적인 공간성의 구성에 있어서는 촉각만이 근원적이다. 2) 사태 자체로 돌아가서 분석할 때 촉각만이 위치감각을 가지고 따라서 근원적이며, 시각은 촉각적인 경험에 기반한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나 과학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실재적인 사물과 신체를 구성할 수 있다. 3) 촉각에 의해 매개적으로 다른 감각들이 위치감각을 획득하여 감각의 담지자로서 신체가 구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의식인 내가 스스로를 신체라는 물질적 사물로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다름아닌 촉각이기 때문에 오히려 후설의 분석과 결론은 이원론을 해소하는 데에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