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근대철학 일차문헌

루소(1762), 「4권」, 『사회계약론』

현담 2022. 4. 11. 00:52

아래 내용에는 근대서양정치사상(서울대학교 2022-1 김주형) 강의 및 토론 내용, 역자주(장-자크 루소, 김영욱 역, 『사회계약론』, 후마니타스, 2018), 개인적 생각 등이 섞여 있음

 

<목차>

 

1장 일반의지는 파괴될 수 없다

2장 투표에 대해

3장 선출에 대해

4장 로마 민회에 대해

5장 호민관 제도에 대해

6장 독재관 제도에 대해

7장 감찰관 제도에 대해

8장 정치종교에 대해

9장 결론

 

*논의 전개 : 1권의 논의 대상이 사회계약, 즉 정치체의 형성이었다면, 2권은 주권행위로서의 입법을, 3원 주권자의 자기관계 실현의 필수적 매개체로서 정부를 다룸. 4권의 논의 대상은 [...] 루소는 [...] “정치법을 계속 다루면서 국가의 구성을 공고하게 만드는 수단들을 진술하는 것이라고 말함. 루소의 이런 용약은 분명하게 실현됨. 42장부터 4장에서는 [...] 입법과 정부 구성 등의 실제적인 정치체 운영에 대한 검토 [...] 5장부터 9장까지는 주권자나 정부의 구성과는 별개로 정치체의 갈등과 위기를 조정하고 여론과 종교를 통해 정치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안들이 논의됨.

  그런데 4권 전체의 구도와 정서를 설정하는 것은 1[...] 1장에서 루소는 인간사회의 필연적 퇴화 과정을 묘사함. [...] 현재 사회는 일반의지가 무리 없이 실현되는 조건을 이미 상실함. [...] 또한 현대 정치와 사회의 여러 증상들은 개별이익의 난립을 입증하며, 정치체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중.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의지를 발견하고 추종하는 것이 공동체의 완전한 파괴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정치적 심의를 통해 일반의지를 추정하는 기술이 설명되어야 할 것이고, 시민들의 풍속과 덕이 더 빨리 타락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에 주의해야 할 것. 이로써 4권의 논의들이 필요한 이유가 확인됨. 우리가 이제 투표와 민회를 통한 의사결정의 기술적 요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 그리고 엄밀히 말해 정치법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풍속과 여론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면, 그것은 1, 2, 3권에서 규명된 원리적 모델로서의 합의가 자연스럽게 실현되는 조건이 상실되었기 때문. (역자주)

 

pp.127-129. (1)

 

*1장의 논의 전개 : 루소는 우선 풍속과 이해관계가 단순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 법이 별로 필요하지 않고 별다른 논의 없이 쉽게 법이 통과되는 사회를 상상. 루소는 이런 사회의 구성원들이 심지어 낮은 수준의 이성적 능력만을 가진다고 말함. 이런 조건에서 심의는 거의 필요하지 않고, 일반의지는 언제나 분명하게 확인됨.

  하지만 사회가 분화되고 인간의 능력이 발달하면, 더 이상 일반의지의 이상적인 실현은 가능하지 않음. 일반의지는 개별이익에 의해 왜곡되고, 사회적 갈등은 좀처럼 합리적으로 해소되지 않음. 이 진행은 국가가 몰락할 때까지 계속됨. 이렇게 루소는 일반의지가 별다른 장애물 없이 실현되는 과거의 어느 시점과, 일반의지가 거의 실현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몰락의 세계를 대조함. (역자주)

  루소가 묘사하는 사회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음. 1장 초반에 묘사되는 사회는 타락 이전의 사회로, 작고 단순한 농민들의 사회. 1장 중후반에 묘사되는 사회는 타락 이후 변질된 사회로, 개별이익이 의식되고 다툼과 항변과 논쟁이 일어나는 사회. 1장 후반에 묘사되는 사회는 몰락을 앞둔 사회로, 일반의지는 찾아볼 수도 없고 사회적 결합이 끊어져 개별이익만이 난립하는 사회. 이 세 가지 사회에 적합한 정치제도가 다르고, 루소의 이후 정치제도에 대한 논의도 이런 구분에 입각하여 타락 이후의 사회에 적합한 정치제도로 이해해야 함. 만약 이러한 루소의 논의 전개를 타락 이전의 사회의 조건을 재창출하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곤란함. (수업)

 

여러 사람이 모여 스스로를 단 하나의 단체로 간주하는 한, 그들은 공동의 보존과 일반의 안녕에 연관된 단 하나의 의지만을 가진다. 이때 국가의 동력은 강력하고 단순하며, 그 원칙들은 명확하고 자명하기에, 이해관계가 얽히고 모순되는 일이 없으며, 공동선은 어디에서나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므로 상식만 있으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 평화, 단결, 평등이 있다면 영악한 정치는 발을 붙이기 어렵다.” (127)

 

바르고 단순한 사람들은 그들이 단순하기 때문에 속이기 어렵고, 속임수와 교묘한 핑계에도 현혹되지 않는다. 그들은 속아 넘어갈 만큼 영리하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민이 사는 곳에서 농민들이 떡갈나무 아래 모여 국가의 일을 결정하고 항상 지혜롭게 자신을 인도 [...]” (127)

 

이런 식으로 통치되는 국가에는 법이 아주 조금만 있어도 된다. 새로운 법을 공포할 필요가 생기면 모두가 그 필요성을 볼 수 있다. 새 법을 제안하는 첫 번째 사람은 모두가 이미 느꼈던 것을 말할 뿐이다.” (127)

 

*떡갈나무는 공동체는 무균 상태의 이상사회인가? : 그것은 아닌 것 같음. 평화, 단결, 평등이라는 미덕이 자리 잡은 사회. 평화는 내외부적 긴장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단결은 내부적 와해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평등은 빈부격차의 가능성을 전제한 미덕임. 또한 법이 아주 조금만 있어도 되고 법이 아주 쉽게 통과하지만, 법 자체는 있어야 하고 법의 공포 필요성도 종종 생김.

  개인적으로, 떡갈나무 공동체를 타락 이전의 사회로 이해하면서 타락 이후의 사회와 구별 짓는 해석이 나쁘진 않지만, 하나의 모범적 사회로 이해하면서 현실적 사회와 구별 짓는 해석도 괜찮다고 생각함. 아무리 떡갈나무 공동체로 현실 사회가 돌아갈 수 없고 그것의 존재 조건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 재창출할 수 없다고 해도, 현실 사회가 추구할만한 모범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 예를 들어, 평화, 단결, 평등이라는 미덕, 바르고 단순한 농촌적 풍습 등.

 

*proposition de loi : 루소는 법의 제안을 일반 시민의 역할로도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 이것은 입법자에 대해 논하는 27장에서 논의되는 입법자의 역할을 건국 등의 특수한 상황에 한정시키는 해석과 호응. (역자주)

  역자는 여러 텍스트적 근거를 통해 루소의 정치 이론에서 시민이 법의 제안까지 할 수 있다는 소수설을 채택하고 있음. 하지만 역자 자신의 엄격한 타락 이전 사회와 타락 이후 사회의 구분에 입각하면 다음과 같이 비판할 수 있음. , 타락 이전 사회에서는 시민이 법의 제안까지 할 수 있지만, 타락 이후 현실 사회에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들-예를 들어, 시민들 간 단순한 이해관계와 공동이익이 지배하는 풍습-이 갖추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함. 또한 입법자의 역할이 엄격하게 건국 시기에 한정되어 있다고 해서 건국 이후의 입법이 자동적으로 시민들에게 맡겨져야 하는 것을 함축하는 것은 아님. 건국 이후에는 정부의 설립이 이루어지고 시민들은 정부에 법의 제안을 위임할 수도 있는 것. 법의 제안을 위임했다고 해서 입법권이 정부로 양도되는 것은 아님.

 

pp.130-133. (2)

 

이 최초의 계약을 제외하면, 언제나 다수의 의견이 다른 모든 의견을 구속한다.” (131)

 

인민집회에서 어떤 법이 제안될 때, 시민들에게 묻는 것은 정확하게는 그들이 법을 승인할지 혹은 거부할지 여부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의지이기도 한 일반의지에 법이 부합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여부다. 각자가 투표를 통해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표를 계산해서 그로부터 일반의지의 선언이 도출된다. 따라서 나와 반대되는 의견이 우세하다면, 그것은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 내가 일반의지로 여겼던 것이 일반의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다.” (132)

 

그렇다, 이것은 일반의지의 모든 특징이 어쨌든 다수성에 있음을 상정한다. 그것이 더 이상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결정되든 자유는 없다.” (132)

 

*pluralité : 원리적으로 만장일치의 의사결정을 전제하고 지향하는 일반의지는, 현실에서 다수결 제도의 토대이자 이념으로 작동. [...] 루소의 주권이론의 현실적 실행의 측면에서 마지막 문제가 결국 다수결 원리로 수렴됨을 보여줌. 그런데 이 원리의 원칙들은 선험적으로 도출되지 않고 여러 역사적 경험과 조건에 달려 있음. 이상적 원리로서의 주권이론과 다수결 원리 사이의 갈등과, 이런 주권이론을 규범적 모델로 삼는 현실 정치에서 다수결 원리의 필연적 요청과 경험적 적용은 루소 정치철학의 복합성을 동시에 드러내며, 사회계약론의 구조를 재검토하도록 유도. 다수결 원리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고찰은 현실의 큰 정치체를 검토하는 폴란드 정부론9장에서 제시될 것. (역자주)

 

*pluralité의 이해 1 : 루소는 어떤 법안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해당 법안이 일반의지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아님. 루소는 2권 초반부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만장일치를 이야기함. “의견들이 만장일치에 가까워질수록, 일반의지의 지배 또한 더 공고해진다. 하지만 긴 토론, 대립, 소란은 개별이익이 위세를 부리고 국가가 쇠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만장일치 1, p.130), “원의 반대쪽 끝으로 가도 만장일치에 이른다. 시민들이 예속에 빠져 더 이상 자유도 의지도 갖지 않을 때가 그런 경우다. 이때 투표는 두려움과 아첨에 의해 환호성을 지르는 일로 바뀌고, 사람들은 더 이상 심의하지 않고 숭배하거나 저주한다.”(만장일치 2, p.130). 따라서 루소는 다수성 또한 정치체의 건강 혹은 풍속에 따라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볼 것.

 

*pluralité의 이해 2 : 루소의 다수성은 과반수(simple majority)로 이해해서는 안 됨. 루소는 2권 후반부에 다음과 같은 다수결의 두 가지 일반 원칙을 제시함. “하나는, 더 중요하고 중대한 심의일수록 우세한 의견이 만장일치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다.”(다수결의 원칙 1, p.133), “다른 하나는, 갑론을박되는 사안이 신속함을 요구할수록 의견 분할에서 더 작게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다수결의 원칙 2, p.133) 결국 루소는 다수결에 맡겨지는 사안의 중요성이 클수록 다수성을 강하게 규정하고, 사안의 신속성이 요구될수록 다수성을 약하게 규정함.

 

*pluralité의 이해 3 : 다수표를 통해 일반의지의 선언, 이게 바로 일반의지다!’라는 선언이 도출될 뿐 진짜 일반의지가 도출되는 것은 아님. 다시 말해, 투표 절차가 기계적으로 공동선을 산출하는 것은 아님. 일반의지는 투표와 같은 경험적인 절차로 밝혀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님.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투표를 없앤다면 누군가 일반의지를 참칭하는 문제가 발생하며, 더 일반의지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짐. 일반의지는 구체적인 개인들의 의지들 밖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에 다수의 의지로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일 지도 모름. 또한 어쨌든 일반의지의 선언과 그에 따른 집행이 있어야 정부의 월권을 방지하고 공동체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음. 그래서 일반의지에 부합하지 않을 위험을 안더라도 일반의지의 선언을 도출하고 신민들을 강제하는 다수결 투표가 필요함. 루소의 정치체에는 일반의지의 발견 문제와 일반의지의 선언 및 강제 문제가 동시에 존재하는데, 그 두 문제를 가장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이 다수결 투표.

 

p.134. (3)

 

왜 추첨이라는 방식이 민주정의 본성에 더 부합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 모든 진정한 민주정에서 행정관직은 특혜가 아니라 책무이므로, 다른 개별자가 아니라 이 개별자에게 책무를 부과하는 것은 정당할 수 없다. 법만이 추첨에 의해 뽑힌 사람에게 이런 책무를 부과할 수 있다.”

 

귀족정에서는 군주가 군주를 선택하고 정부는 스스로 자신을 유지하기에, 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맞다.”

 

*le suffrage par le sort(la voie du sort) : 선거(suffrage)를 통해 대표를 선출(election)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추첨에 의한 선출(le suffrage par le sort)은 모든 시민의 동등한 정치 참여를 민주정의 본질로 규정하는 고대 그리스에서 널리 행해진 제도였음. 또한 추첨은 제한적으로 로마와 심지어 근대 초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도 활용됨. 추첨이 민주정에 호응하고, 선거가 귀족정에 호응한다는 관념은 매우 오래된 것. (역자주)

 

p.136-149. (4)

 

*4장의 논의 : 루소는 1, 2권에서 인민집회의 정당성과 원리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의 구체적인 실행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음. 이것은 이 주제가 정치법의 원리에 속하지 않고, 개별 정치체에서 역사적 조건에 맞게 논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함축함. [...] 루소는 여기에서 자신의 정치 이론에 적합한 전형적인 작은 도시국가(스파르타나 제네바)의 사례를 논하지 않고, 비록 제국 시기 이전이기는 하나 다양한 민족과 계층이 뒤섞여 있으며 거대함에 대한 본능을 간지하고 있는 로마의 경우를 검토. 그러므로 루소는 제국 이전 로마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통해 구체적인 현실에 최대의 복잡성을 부여하려 함. (역자주 1)

  최초 로마 인민의 편제가 로물루스의 군대를 구성하던 민족들에게서 유래했다는 것은 루소의 제한된 지식. 또한 루소의 묘사를 읽으면 로마 인민이 처음에는 로물루스의 군대와 같이 알바인, 사바니인,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임. 하지만 역사가들은 최초 로마 인민이 라티움, 사비니, 에트루리아의 민족들로 구성되었다고 밝힘. 우리는 고대에 대한 루소의 지식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선 안 됨. (역자주 2)

 

마지막 계층에서도 무산자와 카피테 켄시라 불린 자들은 구분되었다. 무산자는 완전히 쓸모없지는 않아서 적어도 국가에 시민들을 제공하며, 때로는 긴급한 경우에 군인을 내놓기도 한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머릿수로만 세야 하는 자들은 완전히 없는 사람처럼 간주되었으니, 그들을 처음으로 병적에 등록시켜 준 사람이 마리우스였다.” (142)

 

모든 시민은 쿠리아건, 켄투리아건, 트리부스건 어딘가에는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따라서 어떤 시민두 투표권에서 배제되지 않았으며, 로마 인민은 권리상으로나 사실상으로나 진정한 주권자였다.” (143)

 

보호자와 피호민이라는 경탄할 만한 제도는 정치와 인간성의 걸작이었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귀족 계층은 공화국의 정신과 너무나 상반되어 존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144)

 

*les prolétaires, capite censi : ‘무산자’(proletarii)는 어원상 자식 양육자라는 뜻으로, 자손 생산을 통해서만 국가에 기여하는 가난한 시민을 뜻함. ‘카피테 켄시’(capite censi)머릿수로 세는 자들이라는 뜻. 처음에는 무산자와 동의어로 쓰였으나 이후에는 무산자보다 더 가난한 하층민을 뜻하는 말이 됨. (역자주)

 

*institutions des patrons et des clients : ‘보호자’(patronus, patron)피호민’(cliens, client)은 고대 로마의 사회제도로, 부유하고 힘 있는 귀족과 그렇지 않은 자유민 사이의 일종의 계약관계. 이 관계를 통해 보호자는 피호민을 보호하고, 피호민은 보호자의 정치적·군사적 활동을 지원. “피호민의 영향력이란, 이렇게 귀족에게 보호받는 피호민들이 그들의 보호자를 위해 투표하는 것을 뜻함. 이 제도에 대한 루소의 우호적인 평가는 백과사전피호민”(client) 항목과 비교됨. “후원에 대한 이런 권리는 로물루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의 의도는 부자와 빈자를 결합시켜, 빈자는 경멸을 받지 않도록 하고 부자는 시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호민의 조건은 점점 일종의 순화된 노예상태가 되어 갔다.” (역자주)

 

*빈부격차와 보호자-피호민 관계 :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빈부격차는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정치체를 약화시킴. 첫째, 빈자는 국가의 존속에 거의 아무 기여도 못 함.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버겁기 때문에, 국가가 위급할 때 군인을 제공할 수 없으며, 국가가 위급하지 않을 때 식량을 생산할 수 없음. 그에 따라 부자가 국가 존속의 부담을 모두 짊어지게 되고 또한 국가 차원의 모든 권리와 혜택을 독점하게 됨. 둘째, 부자는 빈자를 경멸하고 빈자는 부자를 시기하게 되어 사회적 여론이 악화 혹은 양극화되고 사회의 화합이 깨짐.

  하지만 로마는 보호자-피호민 제도를 통해 빈자에게 피호민으로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비록 보호자를 위해 투표하겠지만 투표할 권리 또한 부여함. 그리고 부자에게는 국가 존속의 부담을 덜게 하고 공적 권리를 빈자에게 일부 양도하도록 함. 해당 제도를 순화된 노예상태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로마는 이 제도를 통해 적어도 빈부격차가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는 상태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했으며 모든 인민이 주권자로서 최소한의 의무와 권리를 가지도록 만듦.

 

트리부스 민회는 인민정부에 가장 유리하며, 켄투리아 민회는 귀족정에 가장 유리하다. 로마의 하층민이 다수를 이루는 쿠리아 민회는 그것이 오직 폭정과 사악한 계략에만 이롭기 때문에 신망을 잃었고, 뫈자들조차 계획을 뻔히 노출시키는 이런 수단을 쓰지 않았다. 로마 인민의 존엄 전체가 오직 켄투리아 민회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켄투리아 민회만이 완전했으니, 쿠리아 민회에는 농촌 트리부스가 없고 트리부스 민회에는 원로원과 귀족이 없었다.” (147)

 

*왜 켄투리아 민회가 로마 인민의 존엄 전체를 담당했을까? : 켄투리아 민회는 굉장히 귀족정스러운 민회. 부자로 구성된 켄투리아 계층이 다른 켄투리아 계층을 마음만 먹으면 투표에서 압살할 수 있음. “첫 번째 계층의 모든 켄투리아가 합의하면 표를 집계하는 일조차 그만두었다.”(p.145)

  우선, 쿠리아 민회는 농촌 트리부스가 배제하였고, 트리부스 민회는 귀족을 배제하였기에, 부자와 빈자, 농촌과 도시가 모두 참여하는 켄투리아 민회가 상대적으로 가장 공화정의 정신을 잘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음. 그러나 굳이 공화정이 부자로 구성된 소수에 의해 주도될 필요는 없음. 조금 더 적극적인 설명이 필요함.

  일단, 부자는 부를 바탕으로 인민을 화합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짐. 보호자-피호민 제도는 부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조금의 부와 조금의 권리를 교환하는 제도로 사회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사회를 보다 상호의존적으로 만듦. 나아가, 루소는 국가가 강한 국가가 되는 것도 자유로운 국가가 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김. 그래서 루소는 이 지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강력한 인민이 어떻게 주권을 행사했는지 조사하면서”(p.137) 부자가 근대 국가의 경제적/군사적 안정과 번영을 책임질 수 있는 계층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음. 마지막으로, 루소가 묘사하는 초기 로마의 부자는 빈자를 경멸하고 자신의 부를 으스대면서 사치하는 저열한 계층이 아니라 일종의 모범 시민이기 때문에 다른 시민의 귀감이 될 수 있어 중요하게 여겼을 수 있음. 루소는 초기 로마인들의 단순한 풍속, 그들의 무사무욕, 농업에 대한 취향과 상업과 이윤 추구에 대한 경멸이 아니었다면 이 편제 방식의 실행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p.142)이라고 말하며, 로마의 부자가 부를 남용하지 않을뿐더러 금전욕이나 이기심이 없는 풍속에 젖어 들어 있는 것으로 묘사. 그들은 오히려 농촌에서 경작하는 것을 큰 명예로 여김. “로마의 모든 저명한 자들은 전원에서 살며 땅을 경작했으니, 공화국의 버팀대를 찾기 위해서는 농촌을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p.139)

 

pp.149-158. (5-7)

 

*호민관 제도의 특징

 

“[...] 군주와 인민 사이에 혹은 군주와 주권자 사이에 혹은 필요하다면 동시에 두 측면에서 어떤 연관 혹은 중간항을 형성한다. 이 단체를 나는 호민관직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것은 법과 입법권의 수호자다.” (149)

 

호민관 제도는 결코 도시국가를 구성하는 부분이 아니기에, 입법권과 행정권 어디에도 몫이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호민관 제도는 더 큰 힘을 가진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이라도 하지 못하게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0)

 

*독재관 제도의 특징

 

공적 안전을 지키기 위해 특수한 행위를 통해 가장 적합한 자에게 그 책임을 넘긴다.” (152)

 

그리고 만약 위험을 모면하려고 할 때 법제가 장애물이 된다면, 그때에는 최고 지도자를 임명해 그가 모든 법을 침묵시키고 일정 기간 주권을 정지시키도록 한다.” (152-153)

 

*감찰관 제도의 특징

 

따라서 감찰관 제도의 쓰임은 풍속을 보존하는 것이지, 풍속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다.” (157)

 

감찰관 제도가 풍속을 유지하는 방식은 여론이 타락하는 것을 막고, 지혜로운 적용을 통해 바른 여론을 보존하는 것이다. 때론 여론이 아직 망설이고 있을 땐 여론을 고정시키기도 한다.” (157)

 

*각 제도에 대한 고찰

: 호민관 제도는 입법과 행정 둘 중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는 않지만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큰 힘을 가진다는 점에서 현대의 대법원(미국)이나 헌법재판소(한국)와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음.

  독재관의 경우, 현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행정권의 일시적으로 비대해지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음. 루소는 독재관 제도에 각종 제한을 걸고 있지만, 독재관의 필요성 판단과 임명이 비주권적 행위이기 때문에 정부가 제도를 남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

  감찰관은 풍속을 보존하고 때로는 고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법을 만들어서 풍속을 강제하거나 여론에 상반되는 풍속을 내세우는 기관이 아님. 여론 안에서 미덕을 찾아 시민들의 풍속을 좋은 방향으로 유도해야 함. 현대의 포상 제도, 애국심 고취 제도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음.

 

p.164. (8)

 

사회는 일반적이거나 개별적이므로, 사회와 연관해 고찰해 보면 종교 또한 두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 즉 인간의 종교와 시민의 종교가 있다. 신전도 제단도 제례도 없으며, 최고신에 대한 순수하게 내적인 숭배와 도덕의 영원한 의무에 국한되어 있는 인간의 종교는 순수하고 단순한 복음의 종교이고 참된 유신론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신법이라 부를 수 있다. 시민의 종교는 오직 한 나라에 수용되어 그 나라에 알맞고 그 나라를 후견하는 신과 수호자들을 제공한다. [...] 초기 인민들의 모든 종교가 그러했으며, 이 종교들에는 국가신법 혹은 실정신법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société générale”, “société particulière” : 루소에게 일반사회란 인류 전체의 사회를 말하고, ‘개별사회란 특수한 정치체를 뜻함. ‘일반성의 이런 용법은 루소에게 고유한 것은 아니어서,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 형성에 영향을 준 백과사전자연법”(droit naturel) 항목에서 저자인 디드로는 인류의 이성적인 삶의 원리 혹은 규범으로서의 일반의지를 말함. 하지만 루소는 디드로의 일반의지 개념을 개별 정치체의 구성주의적 원리로 엄격하게 정의. (역자주)

 

*droit divin : 백과사전신법항목은 다음과 같이 서술.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계시하고 성서를 통해 발견되는 법과 계율이다. [...] 신법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과 같이 어떤 이유에 근거한 것이다. 실정신법(droit divin positif)이라 불리는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의 예법과 같이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신의 의지에만 근거한다. 신법이라는 용어는 인간이 만든 것인 인간법(droit humain)이라는 용어와 반대된다. 교회법 혹은 종교법(droit ecclésiastique ou canonique)과 신법을 혼동해선 안 된다. 교회법은 실상 신법을 포함하지만, 또한 교회법에는 교회가 만든 법들도 포함된다. [...]” 루소는 실정신법을 단 하나의 정치체와 관련된 신법으로 규정하고 이것을 국가신법’(droit divin civil)이라는 낯선 용어와 연결함. (역자주)

 

pp.170-171. (8)

 

정치종교의 교의들은 단순해야 하고, 수가 적어야 하며, 설명이나 주석 없이 분명하게 진술되어야 한다. 막강하며, 현명하고, 자비로우며, 예견하고 예비하는 신성의 존재, 내세의 삶, 정의로운 자의 행복, 악인의 징벌, 사회계약과 법의 신성함, 이런 것들이 긍정적 교의들이다. 부정적 교의를 나는 단 하나로 한정하니, 그것은 불관용이다. 불관용은 우리가 배제한 신앙에 속한다.”

 

내가 보기에 사회적 불관용과 신학적 불관용을 구별하는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 두 가지 불관용은 분리될 수 없다. 지옥에 갈 것 같은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은 회심시키든지 학대하든지 반드시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신학적 불관용이 허락된 모든 곳에서는 그것이 어떤 사회적 효과를 갖지 않기가 불가능하다.”

 

*religion civile : 정치종교는 정치체의 구성과 운영을 위해 요청되며,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인 종교제도를 지시. 이 개념은 본질적으로 정치법의 원리에 속하는바, 사회계약과 정치법의 보존을 위해 요청되는 국가 단위의 종교를 뜻함.

  [...] ‘religion civile’을 시민종교로 번역하면 어쩔 수 없이 텍스트의 논리를 배반하게 됨. 왜냐하면 [...] 루소는 ‘religion civile’‘religion du citoyen’을 구별하면서 ‘civil’이라는 형용사와 ‘du citoyen’이라는 수식어를 분리하기 때문. [...] 둘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du citoyen’과 다른 ‘civil’의 함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텍스트의 흐름을 더 명확하게 전달한다고 판단함.

  정치종교의 기본 전제를 상기하자면, [...] 사회가 인간의 운명이라면, 종교의 사회성을 생각하는 것 또한 인간의 운명임. 루소는 이 운명을 신에 대한 복종으로 표현. (역자주)

 

*les dogmes positif : “긍정적 교의들은 루소의 사유 안에서 정치종교의 개념으로 온전히 종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임. [...] 마지막 요소(사회계약과 법의 신성함)를 제외한다면 모두 사부아 신부의 신앙고백에서 참된 유신론의 요소들로 해설됨. 그렇다면 루소의 정치종교는 인간의 종교에 사회계약과 법에 대한 신조를 추가한 형태가 될 것. 즉 권리의 차원에서 고찰된 정치종교는 인간의 종교를 기본으로 하되 사회계약과 법의 신성함을 통해 순수한 보편주의를 완화시켜야 함. [...] 문제는 인간의 종교의 보편성 추구와 사회계약과 법의 신성함이라는 특수성 추구가 어떻게 종합되어 서로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지 밝히는 것. 하지만 루소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루소의 정치종교 개념은 논리적 난관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임. (역자주)

 

*intolérance : 디드로가 쓴 백과사전의 불관용에서 디드로의 정의를 참고하자면, 교회의 불관용(intolérance théologique)은 공언되는 것과 다른 모든 종교를 거짓 종교로 간주하는 것. [...] 사회적 불관용은 정치적 이념에 근거한 차별과 비종교적 불관용이 아니라, 종교 문제를 근거로 다른 영역에서도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 디드로가 이렇게 두 가지 불관용을 구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신학적 불관용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적 불관용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기 위함. [...] 디드로는 종교와 세속의 엄격한 구별을 통해, 종교가 세속의 문제에 개입하고 부당한 행위의 근거가 되는 것을 경계. [...] 하지만 루소는 이들과 달리 불관용이 아무리 종교 내적인 문제에 한정된다 하더라도 정치체에 끼치는 해가 결코 작지 않다고 주장함. (역자주)

 

p.172. (8)

 

이제 배타적 국민종교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기에, 어떤 교의도 시민의 의무와 대립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다른 종교를 관용하는 모든 종교를 관용해야 한다. [...] 감히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자는 누가 되었든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정치종교는 과연 종교인가? : 앞선 정치종교의 긍정적 교의를 살펴볼 때 정치종교는 인간의 종교로서(사제의 종교로서x) 기독교를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임. 그리고 루소가 시민의 종교를 오류와 거짓말 위에 세워졌기에 사람들을 속이고, 사람들이 쉽게 믿음에 빠져 맹신토록 하며 신성에 대한 참된 숭배를 공허한 예식에 파묻히게 한다는 점에서 나쁘다.”(p.165)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기독교의 참됨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임.

  그런데 정치종교는 특정 종교로 하여금 다른 종교를 관용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이며, 그런 한에서 모든 종교를 관용하는 제도. 나아가 불관용하는 종교는 그것이 기독교이든 뭐든 국가에서 추방시켜버림. 이런 점에서 정치종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종교를 관할하는 하나의 제도 혹은 넓게는 관용의 풍습처럼 보임. 나는 앞선 역자주에서 다루었던 긍정적 교의 내의 충돌보다도 긍정적 교의와 부정적 교의 사이의 이러한 충돌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함. 정치종교는 종교의 탈을 쓴 교묘한 정치제도일 뿐일까, 정치제도로 모든 것이 환원되지 않는 종교의 속성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정치종교가 종교의 속성을 가진다면 루소가 말하는 관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그가 의도적으로 기독교에 친화적인 척을 하면서 결국에는 정치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관용의 제도를 설립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됨. 루소가 언급한 긍정적 교의는 사실 정치종교의 긍정적 교의가 아니라 단순해야 하고, 수가 적어야 하며, 설명이나 주석 없이 분명하게 진술되어야하는 긍정적 교의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예시들로 이해할 수도 있음. 또한 시민의 종교가 오류인 이유는 애국과 신앙심을 구별하지 못하는 종교이기 때문이지 참된 종교인 기독교를 믿지 않기 때문임은 아닐 수도 있음.

 

p.173. (9)

 

정치법의 참된 원리를 제시하여 국가를 기반 위에 세우기 위해 노력했으니, 이제 대외관계를 통해 국가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 이 일에는 만민법, 교역, 정복, 공법, 동맹, 협상, 협약 등이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 내 좁은 시야에는 너무 거대한 새로운 대상이다. 나는 시야를 언제나 내 주변에 더 가까이 고정시켜야만 했다.”

 

*droit des gens : 마지막 장에서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정리하기보다 정치법의 원리이후의 작업들을 예상함. 만민법(droit des gens)의 영역으로 포괄될 이 작업 대상들은 미완의 정치학 강요를 완성시켰을 것. 드라테는 만민법을 큰 주제로 두고, 교역을 만민법의 첫 번째 영역으로, 전쟁법, 정복을 두 번째 영역으로, 공법, 동맹, 협상, 협약을 세 번째 영역으로 분류할 것을 제안. 그는 따라서 루소가 말하는 공법”(droit public)이 현대적 용법에서는 국제공법’(droit international public)에 해당한다고 해석. (역자주)

 

*루소의 전체 기획 : 사회계약론결론의 짧은 계획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루소의 법 이론을 그의 주요 텍스트에 대응시킬 수 있음. 루소에게 자연법은 불평등기원론에서 논의되었으며, 정치법은 사회계약론에서 막 검토되었음. 그리고 만민법은 정치학 강요의 나머지 부분에서 다루어질 예정이었음. 하지만 법 이론을 포함한 루소의 정치학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학문예술론, 정치경제, -피에르 신부 관련 텍스트들,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 제네바원고, 산에서 쓴 편지, 코르시카 헌법 구상, 폴란드 정부론등을 참고해야 할 것이며, 루소의 정치하글 그의 체계 안에 정확하게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언어기원론, 신 엘로이즈, 에밀, 고백, 대화, 몽상등으로 독서의 범위를 넓혀야 할 것. (역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