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근대철학 이차문헌

『사회계약론』 「4권」 논평

현담 2022. 4. 11. 01:04

몽매한 인민에서 현명한 농민으로 : 인민을 계몽하는 농촌적 풍습


  루소는 2권 6장에서 “인민은 언제나 알아서 좋은 것을 원하지만, 언제나 알아서 그것을 분간하는 것은 아니다.”(51), “공중은 좋은 것을 원하지만 보지는 못한다.”(52)라고 말하며 인민의 일반의지에 대한 판단력에 회의를 드러낸 후 신적인 입법자가 인민을 인도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루소는 4권 1장에서 “농민들이 떡갈나무 아래 모여 국가의 일을 결정하고 항상 지혜롭게 인도”(127)한다고 말하며 인민의 일반의지에 대한 판단에 신뢰를 드러내며 스스로 인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어떻게 몽매한 인민은 입법자 없이 현명한 인민이 되었을까? 또한 어떻게 “공간과 시간을 가로질러”(53) 보아야 하고 “쉽게 인지되는 현재 이득의 유혹과 숨겨져 있는 먼 해악의 위험을 저울질”(53)해야만 알 수 있는 일반의지가 “상식만 있으면 그것을 알아볼 수”(127) 있는 것이 될 수 있을까?

  4권에서 루소가 새로이 서술하는 인민의 일반의지에 대한 올바른 판단 가능성과 일반의지의 명확한 인식 가능성의 바탕에는 풍속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이 “바르고 단순한 사람들”이자 떡갈나무 아래 모여 의사를 결정하는 농민들이 되었을 때, 즉 일종의 농촌적 풍속이 인민을 지배할 때, 그들은 영리하진 않지만 지혜롭고 단순하지만 속임 당하지 않는 현명한 인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명한 인민 앞에 일반의지는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면 입법자 대신 인민을 계몽시키는 이러한 풍속은 무엇이고, 루소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이상적 풍속으로서 농촌적 풍속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어떤 국민의 풍속과 그들이 높이 평가하는 대상들을 구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156)라고 말하는 루소는 풍속이 인민들이 높이 평가하는 바, 혹은 아름답다고 여기는 바나 즐기는 바로 규정된다고 본다. 이는 사람들의 자연적 본성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여론이고, 순화되고 교정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루소는 인민이 현명한 일반의지의 판단자들이 되기 위해서 인민의 풍속이 농촌적 풍속으로 순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4권 4장에서 “시골사람의 단순하고 고된 삶이 로마 도시민의 한가하고 느슨한 삶보다 선호”(139)되는 초기 로마인의 농촌적 풍속을 지혜로운 제정자가 성립시켰다고 말하며 긍정한다. 그렇다면 단순하지만 고된 농촌 생활을 즐기고 아름답게 여기며 높이 평가하는 이 농촌적 풍속이 루소에게서 이상적 풍속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것이 “전쟁 때에는 이들에게 방어를 맡기고 평화로울 때에는 부양을 담당토록”(139) 할 수 있는 인민을 길러냄으로써 국가의 생존과 번영 토대를 만듦과 동시에 그것이 “평화, 단결, 평등”(127)의 가치를 지향하는 “바르고 단순한 사람들”(127)을 길러냄으로써 “이해관계가 얽히고 모순되는 일”(127)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즉, 농촌적 풍습은 사회의 물질적인 안정 및 번영의 토대와 공화국의 원만한 의사결정의 기반을 마련한다. 참고로 이와 반대로 루소에게서 지양해야 할 풍습으로는 도시적 풍습 혹은 현대적 풍습이 상정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게걸스러운 탐욕, 불안한 정신, 혼란, 끊임없는 이동, 계속 급변하는 처지”(142)나 농민이 경멸하는 “상업과 이윤 추구”로 표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