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근대철학 이차문헌

『에밀』 「2부」 논평

현담 2022. 4. 15. 14:59

소유권의 정당한 조건과 적선의 약속에 대한 이해

 

  루소에 따르면, 부자가 빈자에게 적선하는 이유는 부자들은, 재산에 의해서도 노동력에 의해서도 먹을 것을 얻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리기로 약속”(183)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그 약속을 체결한 이유는 내 손에 들어오는 재산의 주인이 되려면 그 재산의 소유권에 따른 조건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183)이다. , 소유권의 정당한 조건에 따라 부자와 빈자 사이 적선의 약속(여기서 적선은 부자가 빈자에게 현금을 주는 행위로 좁게 이해하기보다는 부자가 빈자의 결핍을 충족시키는 복지 행위로 넓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이 체결되었으며, 부자가 빈자에게 적선하는 이유는 바로 이 약속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선의 약속을 정초하는 소유권의 정당한 조건은 무엇일까?

 

  루소는 사회 상태에서는 한 사람의 행복은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불행을 주는 일”(185)로 전제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도덕적 교훈으로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184)는 해악 원칙을 내세운다. 그런데 루소가 전제하는 사회에서는 한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이상 타인을 불행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해악 원칙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문제점을 스스로 인식하였기에 루소는 해악 원칙이 가능한 한 인간 사회와 관계를 맺지 말라는 교훈을 포함하고 있다”(185)라고 해명하기는 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이 아닌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사회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인간 사회와 관계를 맺지 않는 자연인처럼 굴다간 우연히 길 한 가운데에 태어나 행인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밟혀 으깨짐으로써 죽게 되는 한 그루 관목”(61)과 같이 파멸해버리기 때문에 위와 같은 해명은 충분치 않다. 그래서 루소는 사회 상태에서 한 인간이 소유를 통해 행복을 누릴 권리는 적선과 같은 배상 행위로써 타인에게 끼친 불행 혹은 해악을 만회한다는 조건에서만 정당하다는 식으로 소유권을 제한함으로써 해악 원칙을 미흡하게나마 사회 상태와 양립시킨 것으로 보인다. 결국 소유권의 정당한 조건은 소유로써 타인에게 끼친 해악의 배상이며, 이러한 조건에 따라 부자와 빈자는 적선의 약속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악 원칙과 그것에 기반한 소유권의 정당한 조건은 충분히 일반의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적선의 약속을 법 제정을 통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강제하는 게 옳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루소는 사회계약론이나 에밀어디서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부자의 적선은 인간의 의무이기는 하지만 강제되지는 않는 명예로운 행위이다. 그렇다면 루소는 왜 부자의 적선이 강제되기보다는 추구되게끔 두었을까? 소유권의 정당한 조건은 순수하게 해악 원칙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루소는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가 달리기 경주에서 자주 승리하면서 포상물인 과자를 패자들과 나누어 먹는 상황을 관찰하면서 관용의 근원이 진정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254)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정된 자원에 대한 사회 구성원 사이의 정당한 경쟁의 결과로서 한 인간이 소유할 수 있어야 함을 또 다른 소유권의 정당한 조건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루소가 소유에 대한 관념이 노동과 노동을 최초로 투입한 점유자의 권리로 소급됨(175)을 언급했을 때 소유는 노동의 정당한 결과물로도 이해된다. 결국 루소에게서 소유는 경쟁과 노동의 정당한 결과물로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부자에게 적선을 강제하는 것은 제일원칙으로 제시되는 인간의 자유로운 자기보존 행위를 억압하는 측면이 있어서 강제하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결국 적선은 약속에 따른 의무이지만 정당한 보상을 나누는 관용이기도 한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