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근대철학 일차문헌

루소(1762), 「4부」(「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 이전 부분), 『에밀』

현담 2022. 4. 16. 15:37

아래 내용에는 근대서양정치사상(서울대학교 2022-1 김주형) 강의 및 토론 내용, 개인적 생각 등이 섞여 있음

 

p.377.

 

말하자면 우리는 두 번 세상에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서이며, 다른 한 번은 살기 위해서이다. 전자는 인간이라는 종()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후자는 자신의 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 기질의 변화, 잦은 흥분, 끊임없는 정신의 동요 등이 아이를 거의 다루기 힘들게 만든다. [...] 이를테면 그는 열병에 걸려 있는 사자이다.” (377)

 

*, 사랑 : 에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1, 2, 3부와 4, 5부로 나눌 수 있을 것. 전자는 사춘기 이전(before puberty), 후자는 사춘기 이후(after puberty). 인간의 성은 에너지, 활력, 힘의 원천이고, 그것을 연민과 인류애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4부에서 이루어진다고 해석가들이 많이 이야기함.

 

pp.379-380.

 

정념의 근원은 자연임이 사실이다. [...] 우리의 자연에서 오는 정념은 아주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의 도구이며, 결국 우리를 보존하게 한다. 우리를 억압하고 파멸하게 하는 모든 정념은 다른 곳에서 온 것들이다.” (379)

 

우리 정념의 근원, 다른 모든 정념의 기원이자 시말인 것, 인간과 함께 태어나서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인간을 떠나지 않는 유일한 정념이 있다면 그것은 곧 자기애이다. [...] 하지만 그 변형물들 가운데 대부분은 외부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어서, 그 원인이 없으면 전혀 생겨나지 않는다. 또한 그와 같은 변형물들은 우리에게 이롭기는커녕 해롭다.” (380)

 

*자연적인 정념, 자기애 : 정념을 자연적인 정념과 비자연적인 정념으로 구별. 자연적인 정념은 우리를 보존하고 우리 자유를 실현하지만, 비자연적인 정념은 우리를 파멸시키고 우리를 억압함. 자연적인 정념은 바로 자기애이며, 비자연적인 정념은 외부적인 원인으로 인한 자기애의 변형물.

 

pp.383-419.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면 우리는 그에게서 그만한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 적어도 사랑하는 상대 앞에서만이라도 다른 누구보다 더 자신을 사랑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그 때문에 자신과 같은 인간에게 처음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고, 그 때문에 처음으로 자신을 그들과 비교해보게 된다.” (383)

 

사랑을 하게 되면 그는 이내 애착을 갖는 것에 속박된다. 그렇게 하여 그를 인간에게 묶어두는 최초의 끈이 만들어진다. 싹트기 시작한 감수성을 사랑 쪽으로 이끌어간다고 해서 처음부터 그가 모든 인간을 포용하며, ‘인류라는 말이 그에게 그에 상당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416)

 

주의 깊게 키워진 청년이 가질 수 있는 최초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다. 깨어나기 시작하는 상상력의 최초의 행위는 그에게 자신과 닮은 동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종이 이성보다 먼저 그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순수성이 연장되는 데서 오는 또 다른 이점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나타나기 시작하는 감수성을 이용하여 청년기의 젊은 가슴에 인간애의 최초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393)

 

나는 일찍부터 타락하여 여자에게 몰두하고 방탕에 몸을 던지는 청년은 비인간적이며 잔인하다는 것을 끊임업싱 보아왔다. [...] 그는 동정도 연민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하찮은 쾌락을 위해 부모와 우주 전체까지도 희생시킬 것이다. [...] 소박하게 잘 키워진 청년은 자연의 최초의 감정들에 의해 부드럽고 애정 어린 정념으로 인도된다. [...] 청년기는 복수의 시기도, 증오의 시기도 아니다. 그 시기는 연민과 관용과 동정의 시기이다.” (394)

 

우정의 목소리보다 인간의 마음에 더 중요한 것은 없다.” (419)

 

*사랑, 우정, 인류애 : 사랑은 자기가 아닌 다른 인간과 자기를 잇는 끈의 역할을 하는 정념. 그 사랑을 통해서 남과 비교를 하고, 애착을 갖게 되며, 각종 사회적 정념들이 발생하게 됨. 하지만 사랑이 인류애로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랑보다 우정이라는 정념이 선행해야 함. 사춘기 이전 상상력이 싹트던 시기에 이성(異姓)보다 동료 인간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그들과의 관계를 의식하게 된다면, 사춘기가 되어 사랑이 싹튼 후 이성에 눈이 멀어 쾌락에 눈이 멀어 배타적인 정념에 휘둘리는 일이 없게 됨. 우정에 기반한 인간의 사랑은 주변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고, 상상력이 연민을 끝까지 확장할 때 사랑은 인류애로 재지향(redirection)/변형(transformation)/승화(sublimation). 연민은 서로를 타락시키지 않는 사회적 관계의 양상(mode). 그리고 그 연민이 자기 자신과 자기가 가지는 이해관계를 초월할 때 인류애로 나아감.

 

p.395.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약함이다. 우리의 마음에 인간애를 갖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바로 그 비참함이다. [...] 모든 애정은 부족함의 표시이다. 우리 각자가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타인과 협력하는 것을 거의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우리 자신의 약함으로부터 우리의 덧없는 행복은 생겨난다. 진정으로 행복한 인간은 고독한 인간이다. 신만이 절대적인 행복을 향유한다. [...] 어떤 불완전한 존재가 자기 자신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 그는 고독할 것이고 비참할 것이다. 나는 무엇 하나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엇 하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공통적인 욕구가 이해에 의해 우리를 결속시킨다면, 우리에게 공통적인 불행은 애정에 의해 우리를 결속시킨다.”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행복 :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래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약함. 우리는 항상 고통스럽고 그 점에서 비참함. 따라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해의 차원에서건 애정의 차원에서건) 타인과 협력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음. 이것이 사물관계의 필연성과 다른 차원의 필연성은 인간관계의 필연성. 그래서 고독한 인간은 자족적으로 절대적인 행복을 향유하는 신이 아닌 이상 비참할 수밖에 없음. 우리 인간의 행복은 자족적일 수 없기에 신의 행복에 비해 덧없지만, 함께 해야만 하는 조건 아래에서 꽃필 수 있음. 인간은 서로서로 사랑 혹은 연민하면서 그 불완전한 행복을 누림.

 

pp.382-436.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자기애는 자신의 진짜 욕구만 충족되면 만족한다. 하지만 자기편애(이기심, amour proper)는 자기를 남들과 비교하기 때문에 절대 만족하지 않으며 만족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타인보다 자신을 더 아끼는 그 감정은, 타인으로 하여금 그 자신보다 자기를 더 아껴주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온화하고 애정이 넘치는 정념은 자기애에서 유래하며, 앙심 깊고 성을 잘 내는 정념은 이기심에서 유래한다.” (382)

 

그 비교가 그의 마음속에서 자극하는 최초의 감정은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감정이다. 바로 그것이 자기애가 자기편애로 변하는 시점이며, 그 자기편애에 관련된 모든 정념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그 정념들 가운데 그의 성격 속에서 지배적이 될 정념들이 인간적이고 유용한 것인지 아니면 잔인하고 유해한 것인지, 선행과 자비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질투와 탐욕에 대한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자리(지위 오역, position)에 있다고 느끼고 있는지, 그가 원하는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420)

 

자기편애가 발달하자마자 상관적인 자아가 끊임없이 작용하여, 그 젊은이는 자신으로 돌아와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는 결코 그 타인을 관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라. 그러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검토한 뒤 자신을 그들 사이의 어떤 자리에 위치시켜야 할지를 아는 일이다.” (436)

 

cf) “인간에게 유일한 자연적인 정념은 자기애 또는 광의에서의 자기편애이다. 그 자기편애는 그 자체로 또는 우리에게 관계되는 한 좋고 유익한 것이다. 자기편애(아이)(타인에게 오역, 원문에는 이런 말 없음) 필연적인 관계를 (전혀 오역, 원문에는 이런 말 없음)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본질적으로(천성적으로 오역, naturally) 중립적이다(무관심하다 오역, neutral). 자기편애의 안내자인 이성이 생겨날 수 있을 대까지 아이는 타인과 관계하여 행동하지 말고 오로지 자연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그는 오로지 선한 일만 할 것이다.” (161-162, 2) (중요한 대목을 끔찍한 오역으로 망쳐놓음, 다른 대목에서도 오역이 상당히 많이 발견됨, 역주의 수준도 사회계약론과 비교하면 상당히 떨어짐)

 

*자기편애는 나쁜 정념인가? : 가장 위 구절만 읽으면 자기애와 달리 자기편애는 나쁜 정념들을 파생시키는 본질적으로 나쁜 정념으로 읽힘. 그러나 여러 구절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자기편애는 타인과 비교를 통해 발생하는 상관적 자아가 갖는 자기애의 변형물인데, 그 발생 시점에서는 중립적이나, 사회적 지위, 사회적 평등의 정도, 교육과 풍습(에밀은 장자크의 교육과 농촌적 풍습을 통해 자기편애가 정제된 인간), 나이에 따른 이성의 안내 여부(에밀은 이성의 안내가 가능하지 않은 나이에는 철저하게 사물과 관계하면서 자기편애를 제한함) 등에 의해 좋은 정념을 파생시킬 수도 있고 나쁜 정념을 파생시킬 수도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음.

 

pp.448.

 

사람은 선행을 행함으로써 선해진다. [...] 당신의 학생으로 하여금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행에 전념하도록 하라. 항상 가난한 사람들의 이해가 그의 이해가 되도록 하라. [...] 그들에게 자신의 몸과 시간을 희생하게 하라.” (448)

 

그는 귀족들과 부유한 사람들의 문을 열게 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온통 주위가 가난으로 찌든 불행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왕좌의 발치까지 달려나갈 것이다.” (448)

 

그렇다고 우리는 에밀을 떠도는 기사, 부정을 바로잡는 자, 의협가로 만들 것인가? 그는 국사에 개입하거나, 귀족과 고관 대작과 왕 사이에서 현자 노릇을 하며 법의 수호자가 되거나, 법정의 판사들 사이에서 탄원자가 될 것인가? 그런 것은 나와는 전혀 관계 없다. [...] 그는 유익하며 선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 이상의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448-449)

 

동료들 사이에 불화가 감도는 것을 보면 그는 그들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 그는 어떤 술책으로 그 학대가 행해지는지 알아볼 것이다. [...] 그들의 고통에 종지부를 찍는 수단에 대해서도 언제나 무관심하지 않다.” (450-451)

 

*에밀은 시민으로서 정치적인 행위를 할 것인가? : 적어도 에밀이 불행한 자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그들을 도우려 도울 것은 명백함. 또한 에밀은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어떤 부당한 명령이나 착취도 거부하거나 피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것도 명백함. 그러나 시민으로서 어떤 정치적인 행위를 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는 않음. 불행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노력을 하고자 하며, 학대와 착취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그것의 종지부를 찍는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짐. 그러나 그가 적극적으로 부조리한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투쟁에 나설까? 혹은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올라 큰 권한을 가지고 사회의 체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할까? 그러한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의 가능성은 에밀에게서 읽기 힘듦. 하지만 적어도 에밀과 같은 사람들은 퇴락한 사회에 부역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들이 모인 사회는 좋은 사회일 것. 에밀이 최대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명령과 복종 따위 없이 동료 시민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살면서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좋은 사회가 필요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