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근대철학 일차문헌

루소(1762), 「4부」(「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 『에밀』

현담 2022. 4. 24. 13:25

p.475.

 

나는 그의 고백을 얼른 듣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 그 평화주의자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은 액자식 구성으로 에밀내에 삽입되었을까?

: 1) 루소가 출판 후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인한 박해를 예상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더라~’ 식으로 구성한 것 2) 루소는 종교 교육을 진부하고 이해할 수 없는 교리문답 식으로 하는 것을 비판(570)한 만큼 독자가 흥미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 3) 루소가 자신의 이해에 관해서만 이야기함으로써 청자를 감동시키는 종교 교육을 주창(584)한 만큼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행동의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583) 구성한 것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에밀내에 삽입되었을까?

: 1) 도덕 교육 이후 착한 사람이 도덕적 의무를 다했는데도 고통을 겪는 문제 혹은 나쁜 사람이 도덕적 의무를 어겼는데도 즐거운 문제가 남았기 때문에 종교를 끌어들여 그들이 내세에서 심판받는다는 내용을 통해 그 문제를 해소하려는 것. “하지만 그들은 이승에서는 고통을 겪었네. 그러므로 저승에서는 보상을 받을 게야.” (509) “지고의 정의는 악을 초래한 죄를 벌하기 위해 당신들이 당신들 자신에게 행하는 악을 이용한다.” (509) 2) 루소에게서 도덕은 질서에서 적합한 위치를 알고 위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인데, 종교를 통해 형이상학적으로 신 중심의 질서를 세워 도덕의 체계를 잡으려는 것. 루소는 신 중심의 질서가 없으면 도덕의 체계가 무너질 것으로 보는 것 같음. “무종교와 보통 말해지는 추론을 좋아하는 철학적인 정신은 삶에 집착하게 하고 영혼을 나약하고 비열하게 만들며, 모든 정념을 비열한 개인적인 이해와 비천한 인간의 자아에 집중시키며, 모든 사회의 진정한 토대를 소리 없이 그렇게 서서히 파괴한다.” (564)

 

*에밀의 후반부에서야 종교 교육이 시작될까?

: 에밀이 스무 살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직 신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만큼 에밀의 이성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 교육이 헛수고이기 때문. 나아가 에밀이 그의 이성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신에 대한 이상한 관념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신을 모르느니만 못하게 되기 때문. “한 아이가 신을 믿는다고 할 때, 그가 믿는 것은 신이 아니다. 그가 믿는 것은 신이라고 불리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그에게 말하는 베드로나 야곱이다.” (462), “진리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 진리를 전하는 것을 주의하자.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를 오류로 대체하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에 대해 저속하고 이상야릇하며 모욕적인 생각들을 가질 바에야 아무 생각없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신을 모욕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죄가 덜하다.” (464)

 

pp.489-502.

 

따라서 나는 어떤 의지가 우주를 움직이며, 자연에 생명을 준다고 생각한다네. 바로 그것이 나의 첫 번째 교의 또는 나의 첫 번째 신앙 조목일세.” (489)

 

움직이는 물질이 내게 어떤 의지를 보여준다면, 어떤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물질은 내게 어떤 예지를 보여주지. 그것이 나의 두 번째 신앙 조목일세.” (491)

 

그러므로 인간은 그의 행동에서 자유로우며,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비물질적인 어떤 실체에서 생명을 얻고 있지. 그것이 바로 나의 세 번째 신앙 조목이라네. 그 세 항목으로부터 자네는 내가 그후의 모든 조목에 대해 말하지 않더라도 쉽게 추론할 걸세.” (502)

 

*자연종교의 신앙 조목 : 1)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 의지(will)로서 신이 있다. 2) 우주를 법칙/질서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예지/지성(intelligence)로서 신이 있다. 3) 영혼으로서 인간은 자유(freedom)롭다.

 

*불가지한 부분 : 1) 의지는 어떻게 물질을 움직이게 하는가? 내 감각이 내 정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489) 2) 우주는 처음부터 있어왔던 것일까 창조된 것일까? 만물에는 다 단 하나의 근원이 있을까? (494) 3) 영혼은 본질적으로 영원 불멸한 것인가? (507)

 

p.503

 

하지만 신은 인간이 악을 행하는 것은 막지 않네. [...] 아니면 그것을 방해하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게 되어 더 큰 악을 행함으로써 그의 본성을 더욱 격하(타락 오역, degrade)시키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

 

인간의 악을 신이 막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것은, 신이 인간을 뛰어난 본성을 가진 존재로 만든 것과 인간의 행동에 그 행동을 고상하게 만드는 도덕성을 부여한 것, 그리고 미덕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 것 등을 불평하는 것과 같네.”

 

최고의 즐거움은 자족에 있지. 우리가 자유를 부여받아 지상에 살고 있는 것은, 정념에 의해 유혹받으면서도 양심에 의해 억제받는 것은 바로 그런 자족을 누릴 만한 자가 되기 위해서이지.”

 

도대체 인간이 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본능에만 만족하게 하여 짐승처럼 만들 필요가 있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내 영혼의 신이여, 나는 내가 당신처럼 자유롭고 선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인간을 당신의 모습으로 만든 당신에 대해 전혀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악의 문제 : “신은 왜 악을 세상에 존재하게 했는가?”, “신은 왜 인간을 자유롭게 하여 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는가?” 자유롭지 않은 존재는 자유로운 존재보다 그 본성의 격이 낮기 때문. 자유로운 존재는 신과 닮은 고귀한 존재. 그리고 자유로운 존재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고 즐거움. + 신이 악을 존재하게 했다고 해서 악을 바란 것은 아님 (503), 인간의 악은 우주 전체 질서 내에서 매우 미약함 (503), 악은 인간 자신의 능력 남용으로부터(스스로에게서) 발원함 (503-504)

 

pp.498-501.

 

인간의 본성을 사색하면서 나는 그로부터 전혀 다른 두 가지 원리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드네. 그 하나는 인간을 높이고, 영원한 진리를 탐구하게 하며, 정의와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사랑 [..] 다른 하나는 인간 자신에게 비천함을 가져다주며, 관능의 지배에 굴복시키며, 그 관능의 수행 기관인 정념에 예속시키며, 그 정념에 의해 전자의 원리인 감정이 인간에게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방해하네.” (498)

 

이성에 귀를 기울이면 나는 능동적이 되지만, 정념에 끌려다니면 수동적이 된다. 그리고 내가 굴복할 때 받는 가장 큰 고통은 저항할 수도 있었는데 하고 느끼는 것이다.” (498)

 

나는 원하는 힘을 항상 가지고 있지만, 실행하는 힘은 꼭 그렇지 않아. 내가 유혹에 몸을 내맡기면 나는 외부 대상의 충동에 따라 행동하지. 내가 나 자신의 그 나약함을 질책할 때 나는 내 의지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네. 나는 내 악덕에 의해 노예가 되며 내 양심의 가책에 의해 자유인이 된다네. 자유에 대한 감정은 내가 타락하여 마침내 영혼의 목소리가 신체의 법칙에 반대해 일어서는 것을 막을 때만 내게서 사라질 뿐이지.” (501)

 

*인간의 자유 : 원하는 힘과 실행하는 힘의 괴리 인정. 의지/영혼과 신체의 대비. 자유에 대한 감정, 양심, 이성에 따라 인간은 자유롭게 선을 행할 수 있음.

 

pp.559-562.

 

정치종교의 교의들은 단순해야 하고, 수가 적어야 하며, 설명이나 주석 없이 분명하게 진술되어야 한다. 막강하며, 현명하고, 자비로우며, 예견하고 예비하는 신성의 존재, 내세의 삶, 정의로운 자의 행복, 악인의 징벌, 사회계약과 법의 신성함, 이런 것들이 긍정적 교의들이다. 부정적 교의를 나는 단 하나로 한정하니, 그것은 불관용이다. 불관용은 우리가 배제한 신앙에 속한다.” (171, 사회계약론)

 

나는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게 할 것이며, 형제처럼 존경하게 할 것이며, 모든 종교를 존중하게 하여, 모두가 자신의 종교 안에서 평화롭게 살도록 할 것이네.” (559)

 

더 위대한 빛을 기다리면서 공공의 질서를 지켜나가야 할 걸세. 어느 나라에 있든 법을 준수하며, 그 법이 명령하는 종교를 혼란에 빠뜨리지 말아야 하며, 시민에게 불복종을 가르치지 말아야 할 걸세. 왜냐하면 자신들의 의견을 버리고 다른 의견을 따르는 것이 그들에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우리는 법에 불복종하는 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기 때문이네.” (559)

 

종교의 진정한 의무는 인간의 제도와는 별개이며, 정의로운 마음이 신의 진정한 교회이며, [...] 도덕적 의무가 면제된 종교는 없으며, 그 도덕적 의무 외에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없으며, 내면적인 신앙이 그 의무들 중 첫째이며, 그리고 신앙 없이는 어떤 참된 미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등을 명심하게.” (562)

 

*정치종교는 자연종교로 환원되는가? : 긍정적 교의들 중 사회계약과 법의 신성함이 환원되지 않는 것으로 보임. 전쟁 상황과 같은 한계 상황(limit case)에서 자연종교만을 가지고는 애국심을 가지고 적국의 병사를 무찌르고 승리를 쟁취하기 힘들다는 사회계약론의 분석이 있음. 또한 559에서 말한 법도 맥락상 종교에 대한 법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일반의지를 표현한 법 전체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