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근대철학 일차문헌

루소(1755), 「서문」 및 서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현담 2022. 6. 1. 22:26

*디종 아카데미가 던진 질문 (옮긴이 해제)

: “인간들 간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자연법은 불평등을 허용하는가?”

(<<Quelle est l'origine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 et si elle est autorisée par la loi naturelle?>>)

  - 루소의 의문 1 : ‘인간들 간의 불평등이라는 생각은 이미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한 다음의 문제이지 않은가? 인간이 평생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데 도대체 불평등이라는 개념이 생길 수 있는가?

  - 루소의 의문 2 : ‘자연법은 불평등을 허용하는가라는 질문은 당연히 사회에서 개인에게 고통을 주고 예속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불평등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요구. 그러나 인간이 자연 상태에 살아갈 때 불평등이란 것이 없었으니, 불평등의 문제는 이미 자연법과 무관하지 않은가?

 

*제목

: 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

  - 불평등의 기원(l’origine)과 토대(les fondement 질문에는 없었던 개념)는 소유권의 성립과 확립으로 환원될 수 있음

  - 불평등의 문제는 자연법(la loi naturelle)과 무관하기에, 제목에서 자연법이라는 개념은 빠져버림. 본문에서도 자연법에 대한 논의는 초반에만 조금 나올 뿐 많이 다루어지지 않음.

 

*학문예술론과의 비교 (옮긴이 해제)

  - 공통점 : 인간이 겪는 악의 근원을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세운 사회에서 찾으면서 문명비판가의 명성을 얻음

  - 학문예술론: 현상 공모에서 당선되고자 심사자들이 그의 논지를 차분히 판단 내리기 전에 자기가 받은 영감을 온갖 수사학적 기교의 도움으로 펼쳐 놓으며 그들의 감각부터 마비시키고자 함.

  - 인간 불평등 기원론: 현상 공모의 수상 여부가 관심이 아니었음. “학문예술론과 같은 논고가 아니라 탐구이다.” 엄정한 추론과 박식한 지식을 과시하며 예상되는 반대자들의 파상공세를 방어함.

 

*사회계약론과의 비교 (옮긴이 해제)

  - 사회계약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2부의 태어나는 사회의 불행과 사회의 설립 이후 불거지고 심화된 불평등의 기원과 추이를 바로 뛰어넘어, 정치체의 구성원들이 일반의지를 통해 사회계약을 체결하여 한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하는 전체에 복종함으로써 자연 상태의 자유를 양도하는 대신 자신과 함께 정치체를 구성하는 존재들의 일치와 통합을 얻는 문제를 다룸.

  - 단절과 모순? : 사회계약론(인간 불평등 기원론2부를 건너뛰고) 인간 불평등 기원론1부와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유를 다른 차원에서 극대화하는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나란히 놓음

  - 옮긴이의 입장 :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자연 상태를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을 통해 그려내 보았던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도서도 역시 그런 사회가 실재했는지, 혹은 앞으로라도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음. 그렇지만 그의 침묵 속에 [...] (그런 사회가 아니었던)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세상의 어느 사회도 올바른 사회가 아니며, 그 사회의 몰락은 시간문제라는 웅변이 담겨 있음. [...] 그가 예고한 격변은 정치체 구성원들이 정념의 목소리만을 듣는 대신 이성적인 합의를 통해 공동선을 위해 노력할 수 없는 어떤 사회라도 결국 내적으로 와해되어 사라져버리고 말리라는 경고이며, 이는 현재는 물론 미래의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

 

pp.29-30.

 

인간 자체를 아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고서 인간들의 불평등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이며, 시간이 흐르고 세상만사 유전하여 인간의 원래 체질이 근본부터 바뀌었는데 자연이 만든 그대로의 자신을 인간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본성에 속하는 것과 상황에 따라 또 진행에 따라 최초의 상태에 덧붙고 변화된 것을 어떻게 분간할 수 있을 것인가?” (29)

 

시간이 흐르고, 바닷물에 침식되고, 폭풍을 만나 모습이 일그러져 신이라기보다는 사나운 짐승에 더 가까워진 글라우코스 석상처럼, 인간의 영혼은 사회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나는 수만 가지 원인을 겪고, 수많은 지식과 오류를 얻고 또 얻으며, 몸의 체질이 변하고 또 변했고, 정념이 가하는 충격을 받고 또 받아 변형을 겪어, 말하자면 그 원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외관이 변했다.” (30)

 

*인간의 체질(constitution humaine) : 루소는 매번 인간 내부에서 무엇이 변화를 겪는 것인지 쓰고자 할 때마다 인간의 본성(nature humaine)보다 인간의 체질이라는 표현을 씀 (미주25)

 

*변형(défiguration) :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인간은 이미 수많은 변형을 겪었기에 처음 상태가 어떠했는지 더는 판단할 수 없게 된 존재.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 속에서 살아갔기에 자기가 습득한 관례를 인간의 본성으로, 자기가 가진 체질을 인간에게 고유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 것. [...] 수많은 변화와 타락을 겪었기에 더는 처음의 상태를 상상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렸으면서도 그렇게 갖게 된 모습이 인간의 진정한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역자 해제)

 

pp.32-44.

 

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라기보다는 그 문제를 조망해보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으로 환원해보려는 의도로 몇 가지 가설을 세워봤던 것이다.” (31)

 

인간이 가진 현재의 본성에서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과 인위적으로 추가된 것을 구분하고, 더는 존재하지 않고 아마 존재한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상태를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시도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 상태를 정확한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현재 상태를 올바로 판단할 수 없음이 틀림없다.” (32)

 

그러므로 내가 검토하는 중차대한 문제의 원인으로서의 정치와 도덕의 연구는 어떤 방식에서도 유용하고, 정부들의 가설적 역사는 모든 관점에서 인간에게 교훈을 주는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38)

 

그러니 모든 사실들을 배제하는 것으로 시작해보도록 하자. 그것들은 이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본 주제에 대해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연구들을 역사적인 진리로 간주해서는 안 되고 그저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 그러나 우리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존재들의 본성에서 끌어낸 가설들을 세워보는 것까지 종교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44)

 

*사실들(les faits) : 여기서 말하는 사실이란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 살게끔 되었으므로 애초부터 사회를 구성해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간주하는 의견. 그러므로 루소가 배제하려는 사실들은 인간이 가진 편견이며 본성과는 무관하게 합의에 의해 얻은 관습. [...] ‘사실들로부터 추론을 통해 인간은 본성상 사회를 이뤄 살도록 되어 있다거나, 최강자에게 복종하면서 자신의 자유와 자족을 잃는 대가로 생명과 재산을 보장받게 되었다는 결론을 성급히 이끌어내서는 안 됨. (역자 해제) / [...] 루소가 [...] 배제하고자 하는 사실들은 특히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적 사실들. 루소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그만의 관점을 제공하지만 그 관점은 그가 순전한 가설로 제시한 것. (미주46)

 

*가설(conjecture), 가설적 역사(lʼhistoire hypothétique),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raisonnements hypothétiques et conditionnels)

: 철학적이면서 과학적인(philosophical but scientific) 작업. 루소는 기원(archē, l’origine)이라는 말을 논리적인 선행성이 역사적인 선행성을 필연적으로 이끌어낸다는 의미로 쓰면서 (미주3) 철학적 작업을 하고 있음. 또한 루소는 당대의 가장 최신의 발견들(야만인과 유인원에 대한 보고들)을 사용하여 가설과 추론의 설득력을 높이고 있음.

디드로 역시 가설의 역사에 도움을 구하라고 권고한 바 있음. “기술공예(art méchanique)의 기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모호한 지식만 갖고 있을 뿐이다. [...] 이런 경우에는 철학적 전제에 도움을 구하고, 사실임 직한 어떤 철학적 가설이나 어떤 최초의 우연적인 사건에서 출발하고, 거기서부터 그 기술이 진척된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기술항목, 백과사전)

그의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은, 자연적 불평등에서 사회적 불평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통상적인 추론을 논박하고, 자연 상태에서 자연인이 가지는 자연적 불평등에서 나올 수 있는 효과만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이 나올 수 없음을 보임.

 

*기준으로서 자연 상태 : 자연상태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그에 대한 정의(定義)가 필요함. 그것이 문명화된 우리의 조건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 (미주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