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근대철학 일차문헌

[피히테] 첫째 정리 후반부 (『자연법의 토대』 1부 1절) 번역

현담 2023. 10. 16. 22:06

따름정리들

 

  1. [위에서] 주장되는 것은, 실천적 자아는 근원적인 자기의식의 자아라는 것이다. [,] 이성적 존재자는 오직 의욕함에서 직접적으로 자기를 지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서 또한 세계를 지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지어 지성조차 아니게 될 것이다-, 그것이[이성적 존재자가] 실천적 존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의욕함은 이성의 본래적이고 본질적인 특징이다. 철학자들의 통찰에 따르면, 표상함은 그것과[의욕함과] 함께 존립한다. [표상함은] 물론 [의욕함과의] 상호작용 속에 [존립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표상함은] 우연한 것으로서 정립된다. 실천적 능력은 자아의 가장 심원한 근원이다. 이러한 것[실천적 능력] 위에 비로소 [실천적 능력 외에] 모든 다른 것은 부여되고, [실천적 능력]에 부착된다.

  자기의식 내에 자아를 연역하고자 한 모든 다른 시도들은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모든 다른 시도들은] 언제나 그것들이 연역하고자 하는 것을 전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왜 그것들이 실패했어야만 하는지 보여준다. - 어떻게 누군가가 도대체 가정할 수 있는가, 그 안에 자아가 놓여 있지 않은 여러 표상들의 연결을 통해, 단지 그 여럿이 합쳐진다면, 하나의 자아가 발생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선 자아가 거기 있고나서야, 그것[자아] 안으로 무언가가 연결될 수 있다. 그것은[자아는] 따라서 모든 연결 전에, 자명하게도, 여기서 언제나처럼 [그러하듯이], 자아에 대하여, 거기 있어야만 한다. (원주)

 

  (원주) 반성한다는 어떤 종류의 자아는 (작용을 위해 자기를 규정한다는 어떤 종류의, 세계를 직관한다는 어떤 종류의, 등등의 [어떤 종류의] 자아 또한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것들에] 선행한다. - 이는 자명하다, 철학함 내에 반성하는 자아에 대하여. [반성하는 자아는] 그렇지만 확실히 또한 자아이고, 자신의 존재의 법칙에 구속되어, 이러한 법칙에만 의거해서, 특히 [자아이다]. 그리고 이것이[반성하는 자아가] 학문론의 첫째 원리에서 논하는 그것이다.

  이러한 반성하는 자아에 대하여 이제 하나의 다른 자아가, 다시 말해, 이러한 자아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객관이 돼야 한다. 어떻게 이것이[자아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객관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 이에 관하여 여기서 논의된다. - 주의깊은 독자들은 나의 이 주()를 용서하라. 이것은[이 주는] 그들을[주의깊은 독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이 주가] 여기서 필요한, 오히려 피상적이고 산만한 [읽기를 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자들[피상적이고 산만한 읽기를 하는 독자들]은 이것을[이 주를] 어디에서나 참고할 것을 요청받는다, 그들이 다시 이것을[이 주를] 필요로 하게 될 경우에. (원주 끝)

 

  2. 따라서 의욕함과 표상함은 항구적이고 필연적인 상호작용 속에 존립한다. 그리고 양자 중 어느것도 가능하지 않다, 동시에 다른 것이 존재함 없이는. [모든] 의욕함이 어떤 표상함을 통해 조건지어짐은, 누구든 어렵지 않게 인정할 것이고, 오랫동안 인정된 것이다: 나는 내가 의욕하는 것을 표상해야만 한다. 역으로, [모든] 표상함이 어떤 의욕함을 통해 조건지어진다는 식의 주장은 어려움을 발견하였을 것 같다. 그러나 어떤 표상함도 어떤 표상하는 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어떤 표상함도] 표상하는 자의 정립됨 없이는 의식으로써 정립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표상하는 자는] 그것이 이제 표상하는 한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다음에 한해서] 실체적인 것이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존재하고, 다음 중 하나의 무언가인 한에서. [,] 실제로 의욕하는 자이거나, 그것의 의욕능력을 통하여 정립되고 특성지어지는 자[인 한에서]. - 한낱 [이론적] 지성은 이성적 존재자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한낱 이론적 지성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낱 실천적 능력 역시 이성적 존재자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도[한낱 실천적 능력도] 마찬가지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된 양자가 비로소 그것을[이성적 존재자를] 완성하고, 그것을[이성적 존재자를] 하나의 전체로 만들어낸다.

 

  3. 자아의 직관함과 의욕함 사이의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비로소 자아 자신, 그리고 자아에 대하여 (이성에 대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 , 도대체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자아 자신. -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으로 보인다. 자아의 직관함과 의욕함이 자아 자신의 가능성에 선행해야 한다고. 상호작용 속에 존립하는 무언가가 자아 안에 있어야 한다. 자아 자신이 있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이는 모순적이다. 그러나 정확히 여기에 멀리되어야 할 착각이 놓여 있다. 직관함과 의욕함은 자아에 앞서지도 뒤따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직관함과 의욕함] 자체가 자아이다. 양자[직관함과 의욕함]는 오직 일어난다, 자아가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한에서. [정확히 말하면, 양자는] 오직 이러한 정립[자아의 자기 정립] 속에서 일어나고, 그것이[양자가] 일어난다는 정립을 통해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 정립의 외부에, 그리고 그것에[이 정립에] 독립적인 하나의 일어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헛되다. 역으로, 자아는 자기를 정립한다, 양자가 일어나는 한에서, 그리고 그것이[자아가] 양자가 일어난다는 것을 정립하는 한에서. 그리고 자아의 다른 어떤 정립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헛되다. 자아가 동시적으로 그것의 행위와 그것의 산물임 외에 그래도 무언가라고 믿는 것은 적어도 비철학적이다. 우리가 자아에 관해 활동적이라고 듣자마자, 우리는 즉시 그 안에 한낱 능력으로서 활동성이 내재할 하나의 기체를 공상하는 데에 주저없다. 이것은 자아가 아니다. 외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공상력의 산물이다. 그것은 자아를 상상하라는 요구의 추동에 의해 고안한 것이다. 자아는 능력을 가지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결코 능력이 아니다. 외려 그것은 행위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이 행위하는 그것이고, 만약 그것이 행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누군가 물었다. 어떻게 표상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확신에 이르는가, 그것의[표상하는 자의] 표상함 외부에 [표상되는 것과] 같은 어떤 객관이 존재한다는, 그리고 그것이[객관이] 표상되어지는 바대로 그것이[객관이] 그러하게 있다는. 만약 누군가가 단지 올바르고 신중하게 이 물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졌다면[알았다면], 그는 이미 이러한 숙고로부터 올바른 개념들로 빠져나왔을 것이다. - 자아 자신은 그것의 행위를 통해 객관을 만들어낸다. 그것의 행위의 형식은 객관 자체이다. 그리고 그 외에 다른 객관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의 행위양태가 필연적으로 하나의 객관이 되는 그것은 하나의 자아이다. 그리고 그 자아 자신은 그것의 한낱 행위양태가 하나의 객관이 되는 그러한 어떤 것일 뿐이다. 만약 그것이[자아가] 그것의 완전한 능력으로써 행위한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잘 표현해야만 한다, 대관절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객관이다. 만약 그것이[자아가] 오직 그것의[능력의] 일부로써 행위한다면, 그것은 객관으로서 그것의 외부에 있어야 할 무언가를 갖는다.

  자기 자신을, 행위하는 것과 행위되어지는 것의 이러한 동일성 속에서, ([,] 행위하는 것 속에서가 아니고, 행위되어지는 것 속에서도 아니고, 외려 양자의 동일성 속에서,) 붙든다는 것, 말하자면 행위를 붙잡는다는 것은, 순수 자아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모든 초월론적 철학의 관점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질은 어떤 이들에게서는 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양자[행위하는 것과 행위되어지는 것]를 오직 개별적으로 그리고 분리적으로 간주하는 누군가는, 그리고 설령 그가 가리켜지는 사유들을 이해하고자 애쓴다 하더라도, 언제나 오직 활동하는 자나 활동성의 객관 중 어느 하나를 붙드는 일이 일어나면서, 그것들[활동하는 자와 활동성의 객관]의 분리 속에서 양자를 통하여 완전히 모순적인 결과들을 얻는다. [이런 결과들은] 겉보기로 합일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시작부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