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근대철학 이차문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서문」 및 서론 논평

현담 2022. 6. 1. 22:33

자연 상태와 자연인 : 루소 인간학/정치학의 아르케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곳곳(31, 38, 44, 98)에서 자신의 연구를 시작하는 자연 상태와 자연인은 가설적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역사적인 진리로 간주해서는 안 되고 그저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44)고 언급한다. 그래서 혹자가 루소가 말하는 자연 상태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한 인류학적 혹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해도 그것은 루소에게 올바른 비판이 될 수 없다. 루소 자신조차 자신이 어떤 경험적 진리, 역사적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루소는 어떤 이유로 자연 상태에서 시작하는 가설적 역사를 자신의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그것의 특징은 무엇일까?

 

  루소는 그로부터 소급하여 추론하면 인간과 사회에 대해 내리는 결론들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 수 있는(172) 인간학적/정치학적 추론의 제일전제로서 자연 상태와 자연인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루소에 따르면 그것을 통해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다루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뿐만 아니라 인생의 선과 악”(172), “정치체의 실질적인 토대, 정치체의 구성원들의 상호 권리”(37)의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으며, 루소에게는 그것만이 수많은 다른 난점들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올바른 방법이다.”(37) “모든 것은 창조자의 수중에서 나올 때는 선한데 인간의 수중에서 모두 타락한다.”(에밀, 61),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사회계약론, 11)와 같은 루소의 다른 저작에서 등장하는 언명들은, 루소가 인간의 교육에 관한 연구이건 정치체의 올바른 원칙에 관한 탐구이건 가설적 역사를 전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인과 자연 상태가 추론의 제일전제로서 신뢰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의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 루소는 자신의 가설이 인간의 본성(44, 98)에서 끌어낸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자기애와 연민(36, 81-89)을 가지는 자연인과 그들이 흩어져서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자족적으로 사는 자연 상태(93)는 루소가 발견한 인간의 본성과 본성적 삶의 양태인 것이다. 핵심은 루소가 본성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그는 인류가 오직 홀로 남겨진 채였다면 어떤 모습을 하게 되었을지”(44)를 고민하며 인간이라는 건축물 주위에서 사회라는 모래언덕에서 비롯된 먼지와 모래를 최대한 제거하고자 한다(38). 그 작업은 본문과 주석에 풍부하게 제시되는 야만인과 인류에 가까운 유인원들에 대한 당대의 관찰과 보고에 기반하는 동시에 주로 홉스와 로크를 향하는 당대의 가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루어진다. 루소는 이성의 흔적과 우리와 같은 언어가 전혀 없는 야만인과 유인원들(161)과 그들의 삶을 고려하며 이성적 성찰, 언어에서 비롯되는 추상 관념, 파괴적인 정념들을 소거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는 홉스나 로크의 자연인과 자연 상태가 사회 상태에서 비롯되는 정념들을 미리 전제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통해 현재 사회를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선결문제의 오류라는 식으로 비판한다. 또한 자기보존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전쟁상태로 치닫지 않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는 비판과 어떤 것이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을 각각 홉스와 로크에 제시한다. 결국 루소의 자연인과 자연 상태가 인간학적/정치학적 추론의 제일전제로서 타당하게 사용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며, 인간의 본성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야만인과 유인원을 포함하는 가장 광범위한 인간에 대한 관찰과 기존 가설의 문제에 대한 논리적 비판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