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고대철학 일차문헌

아리스토텔레스, 「제3권」 6-9장, 『니코마코스 윤리학』

현담 2023. 2. 10. 17:22

<3권 목차>

 

1장 자발성과 비자발성

2장 합리적 선택

3장 숙고

4장 바람

5장 책임의 문제

6장 용기

7장 용기와 비겁, 무모

8장 용기라고 불리는 것들

9장 용기와 고통

10장 절제

11장 절제와 무절제

12장 무절제와 자발성

 

6장 용기 (1115a6-1115b6)

 

Main Question : 용기란 무엇인가?

Main Answer : 두려움과 대담함에 관련하는 중용이다. (1)

 

우리가 두려운 것들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것들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나쁜 것들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나쁜 것에 대한 예감으로 규정한다.”(1115a7-9)

 

Q : 두려움이 나쁜 것에 대한 예감이라면, 그 나쁜 것 혹은 두려움이 관계하는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1. 두려운 것 (1115a10-34)

 

a. 마땅히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

  : 가난, 병 등 악덕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이거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닌 것

b.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는 것

  : 불명예, 친애 관계의 결여 등 두려워하는 것이 고귀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것

 

a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고 b를 두려워한다고 해서 용감한 사람인 것은 아님. “물론 용감하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사용”(1115a15)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면 용감한 사람의 두려움이 관계하는 두려운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기말 보고서 발췌

 

  그렇다면 우리는 용감한 사람이 관련하는 두려운 것이 어떤 나쁜 것인지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야 한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부정적 기준 혹은 용감한 사람이 관련하지 않는 두려운 것의 기준을 제시한다. 용감한 사람은 악덕에서 나온 것이 아니거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라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EN 1115a17-18), 이에 따라 가난이나 병은 용감한 사람이 관련하는 두려운 것에서 명확하게 제외된다(EN 1115a27). 그렇다면 부정적 기준의 역, 곧 악덕에서 나온 것이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곧 용감한 사람이 관련하는 두려운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악덕에서 나온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예컨대 자신의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모욕이나 시샘 혹은 그와 같은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인 것도 아니”(EN 1115a22-23)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용감한 사람이라 말하지도 않는다. 용감한 사람은 부정적 기준에 해당하는 두려운 것들에 관련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부정적 기준의 역에 해당하는 두려운 것에 관련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용감한 사람은 어떤 종류의 두려운 것에 관련한다는 말인가?”(EN 1115a25)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긍정적 기준 혹은 용감한 사람이 관련하는 두려운 것의 기준 또한 제시한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운 것들 중 가장 큰 것”(EN 1115a25)이자 본성상 삶을 파괴할 것으로 보이는 고통(EE 1129a39)에 관련한다. 이 기준은 죽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곧 더 정확한 기준을 제시한다. 용감한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의 죽음이 아닌 가장 고귀한 상황에서의 죽음(EN 1115a18-21)에 관련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기준에 해당하는 두려운 것은 전쟁에서의 죽음이라 말한다(EN 1115a33).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감한 사람이 관련하는 두려운 것의 주된 기준으로 고귀한 상황에서의 죽음을 둔 후 그에 따라 주된 의미에서 용감한 사람이 관련하는 두려운 것을 전쟁에서의 죽음으로 한정한다.

  이제 우리도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전쟁에서의 죽음으로 용감한 사람이 관련하는 두려운 것을 명확히 하고 논의를 이어나가자.

 

그렇다면 고귀한 죽음과 관련해서, 또 죽음을 임박한 것으로 가져오는 모든 위험들과 관련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주된 의미에서 용감한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1115a33-34)

 

2. 전쟁에서의 죽음 vs 바다에서의 죽음 (1115a35-1115b6)

 

Q : 용감한 사람은 뱃사람들이 바다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는가?

A : 뱃사람들은 사람들의 경험 때문에 [살아남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바다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

  그러나 용감한 사람들살아남게 될 것을 단념하고 이렇게 죽게 되는 것을 가슴 아파하면서 바다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 + 용감한 사람은 자신이 물리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나, 죽는 것이 고귀한 경우에 용기를 발휘하지만, 바다에서 죽는 경우에는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음.

 

7장 용기와 비겁, 무모 (1115b6-1116a16)

 

1. 두려운 것의 구별 (1115b6-13)

 

a. 인간을 넘어서는 나쁜 것 (적어도 지각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것)

b.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나쁜 것 (사람에게 정도 차이를 가지는 두려운 것)

 

[용감한 사람][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두려운 것들은 물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두려운] 것들도 두려워할 수는 있겠지만, 마땅히 그래야 하는 방식으로, 또 이성이 명하는 대로 고귀한 것을 위해 그것들을 견뎌 낼 것이다.”(1115b12-14)

 

2. 용감한 사람이 마땅히 두려워하는 방식 (1115b14-23)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과 마땅히 그래야 할 때 견뎌 내고 두려워하며, 또한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담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다. [...] [부딪히는 사안의] 가치에 걸맞게, 또 이성이 그럴 것 같은 방식으로 느끼고 행위 [...]”(1115b18-20)

 

마땅히 두려워해야/대담해야 할 것을 : 가장 고귀한 상황에서의 죽음 (전쟁에서의 죽음)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 : 고귀한 것 (폴리스의 수호, 평화)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 : 이성이 명하는 대로, 이성이 그럴 것 같은 방식 (아래 참고)

마땅히 그래야 할 때 : 전쟁 (자신이 물리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나 죽는 것이 고귀한 경우)

 

3. 이름 없는 사람, 무모한 사람, 비겁한 사람 (1115b24-1116a16)

 

  지나침 중용 모자람
두려움 비겁함 용기 [이름 없음]
대담함 무모함 용기 비겁함

 

a. 이름 없는 사람 : 지나치게 두려움이 없는 사람 (미친 사람,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사람)

  ex. 지진이든 큰 파도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켈트인

 

b. 무모한 사람 : 지나치게 대담한 사람 (허풍을 떠는 사람, 용감한 척하는 사람으로 보임)

  - 용감한 사람이 두려운 것들에 관해 가지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길 바람

  - 대개 무모한 겁쟁이, 즉 무모하게 버티다가 두려운 것들을 실제로 견뎌 내지는 못함

  - 경솔해서 위험이 닥쳐오기 전에는 위험을 바라지만, 실제 위험에 처해서는 물러섬

  ↔ 용감한 사람 : 그전에는 평정을 유지하다가 행동을 취할 때는 빠르고 강렬한 사람

 

c. 비겁한 사람 :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 or 대담함이 모자란 사람

  - 대담함이 모자람보다 고통에 있어 지나치게 두려워함에서 잘 알아볼 수 있음

  - 대담한 사람은 희망을 가진 사람, 비겁한 사람은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의기소침한 사람

 

비겁한 사람, 무모한 사람, 용감한 사람 모두 동일한 것들에 관련하지만 그것들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련하는 것이다. 둘은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방면, 셋째는 중간의 방식으로,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1116a4-7)

 

용기란 우리가 언급했던 상황들에서 두려운 것들과 대담함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에 관련한 중용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고귀하기 때문에, 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선택하고 견뎌낸다.”(1116a10-13)

 

cf. 가난을 피하기 위해/성적인 열망을 위해/어떤 고통스러운 것을 피하기 위해 죽는 사람 그렇게 하는 것이 고귀하기 때문에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회피하려고 죽음을 수용하는 사람 유약한 사람, 비겁한 사람

 

용감한 사람의 포인트는 죽음의 수용 자체가 아니라, 고귀한 것을 위해 나쁜 것을 견디는 과정에서 가장 큰 나쁜 것인 죽음을 수용하는 것. 나쁜 것을 견디지 못하고 피하기 위해 다른 나쁜 것을 견디는 과정에서 죽음을 수용하는 것은 (물론 전쟁에서의 죽음이라는 두려운 것과 관련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 즉 비겁한 사람.

 

8장 용기라고 불리는 것들 (1116a17-1117a27)

 

용기는 물론 이러한 성격을 가진 것이지만, 다른 것들 또한 다섯 가지 방식에 따라 용기라고 불린다.”(1116a16)

 

Aristotle has explained that bravery demands the proper training of the feelings, and demands the right motives; action must be for the sake of the fine. He now considers the appearances. He explains why commonly accepted types of bravery are not genuine bravery, and why they can easily seem to be. (Irwin, 213)

 

1) 시민적 용기

2) 각각의 것들에 대한 경험(empeiria)

3) 분노(thymos)

4) 희망(elpis)

5) 무지

 

1. 시민적 용기 (1116a17-1116b3)

 

법률에 의해 받게 될 처벌이나 비난 혹은 명예 때문에 위험에 맞서 견뎌 내는 것 [...] 이것은 탁월성으로 말미암아 생겼기 때문에 앞에서 이야기했던 용기와 가장 유사하다. 수치심 때문에, 혹은 고귀한 것, 즉 명예에 대한 욕구 때문에, 또 치욕적인 것인 비난을 회피하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까.”(1116a18-29)

 

통치자들에 의해 강요된 사람들 또한 동일한 부류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공포 때문에 이렇게 행위하고, 또 수치스러운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행위하는 만큼 그들이 열등한 것은 물론 사실이다.”(1116a30-33)

 

These citizen soldiers aim at honor, which is fine. But they do not aim at fine, as the virtuous person does. If they aimed at the fine, they would recognize that the action itself is fine whether or not it receives honor. (Irwin, 213)

from fear of what others will think, not the moral person’s autonomous sense of what would be shameful. Shame is not an excellence, but is a major factor in the formation of good character. (B&R, 324)

결국 남의 시선에 의해, 혹은 남의 강요에 의해 용감한 사람이 했을 일을 하는 것. 법률, 비난, 명예 등은 탁월성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고, 그것들을 따름으로써 시민의 덕성 함양이 가능하지만, 그것들을 따르는 것을 넘어 스스로 행위의 고귀함을 인지하고 그것들이 없어도 스스로 그런 행위를 할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그러나 강제로 인해 용감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 고귀한 일이기 때문에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1116b2-3)

 

2. 각각의 것들에 대한 경험 (1116b4-22)

 

이렇게[이런 의미의] 용기 있는 사람은 각각의 경우마다 서로 다른 사람이며, 전쟁에서는 군인들이 [이런 의미의] 용감한 사람이다. 전쟁에는 사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공포의 대상들이 많이 있는데, 경험을 통해 이것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군인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용감하게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사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공포의 대상들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1116b5-8)

 

그러나 군인들은 위험이 지나치게 크고, 인원수와 장비 면에서 뒤떨어지는 경우에는 비겁한 사람이 된다. [...] 가장 먼저 도망친 자들이 그들[군인들]이며, 버티다가 죽는 것은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에게는 도망가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고, 도망으로 얻어지는 안위보다 죽음이 더 선택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군인들은 애초에는 자신들이 더 우세하다는 생각으로 위험을 무릅쓴 것이지만, 실제 상황을 알고는 수치스러운 것보다 죽음을 더 두려워해서 그만 도망치고 만 것이다.”(1116b17-22)

 

결국 싸워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경험적 판단에 의해, 그리고 싸워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는 것들을 가지고 있으며 잘 다룰 줄 알기 때문에 용감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전쟁에 참여하여 전투하는 것. 그러나 이런 군인들은 어떤 개별적 경우에 그런 판단이 들지 않으면, 그리고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경우, 패배 후 죽음을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비겁한 자들임. 고귀한 목적을 위해 싸우며, 승리할 확률이 낮든 어쨌든 그런 싸움을 피하고 도망치는 것이 수치스러워 차라리 싸우다 죽기를 택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용감한 사람.

 

3. () (1116b23-1117a8)

 

용감한 사람 역시 분노의 면모(thymoeidēs)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분노가 가장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게 하는 것이다.”(1116b24-26)

 

용감한 사람들은 고귀한 것 때문에 행위하며, 분노는 옆에서 거든다. 짐승들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혹은 두려워하기 때문에 행위한다. (그들이 숲 속에 있는 경우라면, 굳이 사람에게 접근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인하여, 혹은 분노로 인하여 추동되어, 또 어떤 끔찍한 일이 있는지를 전혀 예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위험으로 돌진해 나가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1116b30-35)

 

분노로 인한 용기가 가장 본성적인 것으로 보이며, 합리적 선택과 [왜 용기를 내는지] 그 목적을 추가적으로 취한다면 참된 용기가 되는 것 같다. 사람들 또한 화가 나면 고통을 느끼고 보복을 하면 즐거워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은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기는 용감한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귀한 것 때문에 싸우는 것도, 이성이 명한 바에 따라 싸우는 것도 아니며, 감정 때문에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1117a3-8)

 

분은 두려움과 같은 심리적 고통이나 상처와 같은 물리적 고통에 의해 추동되거나, 욕구를 향한 기개나 욕구의 좌절에 따른 분노의 형태로 발현되면서 무작정 위험을 무릅쓰게 함. 위험을 무릅쓴다는 점에서 용기와 유사하지만, 고귀한 목적도 없고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용기와 다름.

 

4. 희망

 

그들은 여러 차례 많은 적들을 이긴 적이 있기 때문에 위험에 대담할 뿐이니까. 양자 모두 대담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진정 용감한 사람과 유사하기는 하다.”(1117a9-11)

 

낙천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강하고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담한 사람들이다. [...] 그러나 그들이 낙관했던 것이 그렇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도망친다. 인간에게 실제로 두려운 것들, 혹은 두려운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견뎌내는 것이 용감한 사람이 하는 일이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고귀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1117a13-17)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각각의 상황에 대한 판단에 의존하는 2.와 달리, 경험을 토대로 자기 자신의 강함에 대한 신뢰와 무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위험을 수용함. 그러나 그러한 신뢰와 기대를 무너뜨리는 위험이 실제로 닥치면 그들은 도망침. 이들은 제대로 죽음의 두려움을 견디면서 죽음을 각오한 것이 아니라 승리에 대한 희망만 가지기 때문.

 

그런 까닭에 예상치 못한 두려운 것들 속에서 두려움이나 흔들림이 없는 것, 예견된 두려움 속에서 그러는 것보다 더 용감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준비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적은 만큼 품성상태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사실 미리 드러나는 것들의 경우에는 이성적 따짐(logismos)과 이성에 토대를 두고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지만, 돌연한 일들에 있어서는 품성상태에 따라 선택하니까.”(1117a18-22)

 

Someone’s decision to meet danger forms his state of character, so that when a danger arises suddenly he does not need still further deliberation to cause him to act. [...] Aristotle implies that the virtuous person’s action sometimes results from his decision even if deliberation and decision do not immediately precede it. (Irwin, 214)

 

5. 무지

 

낙천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감(axiōma)을 갖고 있지 못한 그만큼 그들보다 못하다. 이런 경우에 낙천적인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은 견뎌 내는 것이다. 반면 무지해서 용감한 사람들은 속아서 그런 사람들로서,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거나 의심되기만 하면 도망친다.”(1117a23-26)

 

The ignorant ones here are said to be ‘inferior’ to the optimistic because their factual error is the only reason they place themselves in danger at all. (B&R, 324) 희망을 가진 사람들(euelpis)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음.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은 위험 자체가 없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어서 토대가 더 부실하기 때문에 희망을 가진 사람들보다 못하고 더 짧은 시간만 용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

 

9장 용기와 고통 (1117a29-1117b23)

 

This portion, which emphasizes the painfulness, both pysical and mental, of courageous action, is surely placed last to point up the contrast with moderation, to be discussed next. The ideally moderate person feels nothing when he or she refrains from taking too much. (B&R, 325)

 

1. 대담함보다는 두려움에 더 많이 관계하는 용기 (1117a29-32)

 

용기는 대담함과 두려움에 관계하는 것이지만 양자에 대해 동등하게 관계하지는 않고 두려운 것들에 대해 더 많이 관계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또 이런 것들과 관련해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대담한 것들과 관련해서 그러는 사람보다 더 용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1117a29-32)

 

Aristotle here appears to contrast being unafraid in the face of danger with keeping one’s head in the face of situations which inspire boldness, e.g. not getting over-excited at the prospect of victory and glory. Both are require of the courageous person, but courage consists rather in the former than in the latter. This presumably picks up the point made at 1108b35-1109a19, that of the two opposed extremes, cowardice is more opposed to courage than overboldness is. (Taylor, 190-191)

 

Q : 왜 용기는 대담함보다는 두려움에 더 많이 관계하는가?

A : 앞서 23장에서 왜 즐거움과 싸우는 것이 분노와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울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분노는 자기 보존 본능이 저지를 돕지만 즐거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변했었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보임. 두려움은 죽음을 피하게끔 만드는 것이기에, 두려움에 관한 중용인 용기는 자기 보존 본능을 적당한만큼 거슬러야 함. 그러나 대담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담함이 정확히 어떤 것과 관계하는지에 관해서 자세히 말하지는 않지만 짧은 언급들로 추론컨대) 승리에 대한 희망과 자기에 대한 자신감에 기초하는데, 대담함에 관한 중용인 용기는 자기 보존 본능에 크게 상관없어 보임. 그렇다면 두려움에 관한 중용을 지키기가 대담함에 관한 중용을 지키기보다 어렵기 때문에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에 더 많이 관계할 수밖에 없을 것.

  또 이 질문이 제기된 제9장의 맥락에 따라 살펴보자면, 두려움은 고통은 야기하지만 대담함은 그렇지 않음. 그래서 두려움은 견뎌야 하고, 대담함은 견딜 필요가 없음. 무언가를 견디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힘든 일이므로, 용기의 덕의 획득에는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할 것. “그렇다면 이미 말한 바와 같이(64) 고통스러운 것들을 견뎌냄으로써 용감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이다.”(2)(두려움이 고통을 야기하고 대담함이 그렇지 않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자기 보존 본능 떄문으로 보임)

 

2. 용기의 역설 (1117a33-1117b23)

 

2-1. 용기의 역설 1 : 용기 있는 행위의 목적은 즐거운 것이다.

 

1. 용기 있는 행위의 목적은 즐거운 것이다.

2. 용기 있는 행위는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Q : 용기 있는 행위는 즐거운 것을 추구하는데, 왜 고통을 피하지 않고 견디는가? 즐거운 것이 목적이라면 그냥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면 용기 있는 행위보다 용기 있는 행위의 목적을 더 잘 달성하게 되는 것 아닌가?

 

(1. 용기 있는 행위의 목적은 고귀한 것이다.

2. 고귀한 것은 즐거운 것이다.

3. 그러므로, 용기 있는 행위의 목적은 즐거운 것이다.

 

A : 용기 있는 행위의 목적은 고귀한 것인 한 즐거운 것이지 즐거운 것 일반이 아니기 때문. 나아가 신실한 사람(spoudaios)에게는 탁월성에 따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즐겁고, 좋기도 하고, 고귀하기도 하되, 각각의 경우마다 최고로 그러할 것이기 때문에 (18) 다른 즐거운 것을 추구할 이유가 없음.)

 

2-2. 용기의 역설 2 : 용기 있는 행위는 그 목적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즐겁지 않다.

 

권투선수들의 목적은, 다시 말해 그들이 그런 일을 하는 목표인 월계관이나 명예는 즐거운 것인 반면, 얻어 맞는 것은 그들의 몸이 살로 되어 있는 한- 괴로운 일이며 고통스러운 일이다. 또 그들이 겪는 일은 어떤 일이든 역시 고통스럽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은 까닭에 안 그래도 작은 그들의 목표는 즐거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1117b2-6)

 

Q1 : It is not clear that this provides an adequate answer. First, it presents the value of courage as purely instrumental, like that of a painful medical procedure. In itself, courage is something irksome, which is worth while only for the sake of subsequent rewards. Secondly, those rewards are represented as bestowed by others, which tends at the least to assimilate true courage to civic virtue, from which Aristotle has just distinguished it. (Taylor, 191)

A1 : Aristotle does not mean that the end pursed in bravery really is small, or that the brave person does not take pleasure in it. He means that the end is surrounded by evils that the brave person regrets, and that might lead someone who is not a brave person to overlook the pleasure to be found in brave action. (Irwin, 214)

 

그렇다면 탁월성의 발휘가 즐겁다는 것은, 이미 그 목적에 도달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모든 탁월성에 타당하지는 않다.”(1117b16-17)

 

1. 탁월한 행위는 그 자체로 즐겁다. (16)

2. 그러나 탁월한 행위는 그 목적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즐겁지 않다. (39)

 

Q2 : 신실한 사람(spoudaios)에게는 탁월성에 따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즐거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탁월한 행위가 자신의 목적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즐겁지 않다면, 탁월한 행위는 순전히 수단적으로 즐거운 것 아닌가? 용감한 행위는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폴리스의 평화를 지키기 전까지는 즐거운 것이 아닌가?

 

1. 탁월한 행위의 목적은 고귀한 것이다.

2. 탁월한 행위는 고귀한 것이다.

3. 고귀한 것은 즐거운 것이다.

4. 따라서, 탁월한 행위는 탁월한 행위인 한 목적에 도달하고 그 자체로 즐겁다.

 

A2 : The present passage distinguished aspects of the activity, implying that it pleases (even the agent) just in so far as it achieves the fine, and blocking the implication that the courageous take pleasure in getting wounded and the like. (B&R, 325) 탁월한 행위의 본질은 고귀한 것을 목적으로 함에 있지 부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행위, 예컨대 용감한 행위라면 검에 베이고 창에 찔려도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임.

  The difference between the courageous person and the coward is that reluctance is the latter’s overall attitude (since the value of the courageous act is either outweighted or not present to his or her mind at all), whereas for the courageous person reluctance is the response to the situation qua loss of goods, which is outweighed by the value of the situation qua courageous act. Hence the courageous person’s overall attitude is pleasure, or at leas ready acceptance. (Taylor, 192) 용감한 사람 또한 용기 있는 행위를 함에 있어 부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행위에 따른 고통을 느끼고 꺼리지만, 탁월한 행위 자체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기에 용감한 사람의 용기 있는 행위에 대한 태도는 즐거움임.

 

이런 사람들이[용감한 사람들이] 가장 뛰어난 군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이들보다 덜 용감하고 다른 좋음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가장 뛰어난 군인 될 법하다. 이들은 주저 없이 위험으로 나아가며 자신의 생명을 작은 이득과 맞바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6)

 

Really courageous people will give their lives only when it is noble to do so, whereas inferior people may be prepare to give their lives for trifling gains. (Talyor, 193)

 

2-3. 용기의 역설 3 : 절제와 비교

 

Q : 절제 있는 사람은 즐거움이 없다고 해도, 육체적 고통은 느낄지 언정, 즐거움이 없다는 사실에서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용감한 사람도 용감한 행위를 행함에 있어, 육체적 고통은 느낄지 언정,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고통을 느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러한 용감한 사람의 고통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A : 두려움의 고통(편상범, 2019)과 비자발성의 고통(구익희, 2017)이 있을 것. 이 둘의 고통이 정당한 고통인 이유는 결국 탁월한 삶의 가치 때문. 아래 기말 보고서 발췌에서 자세히.

 

기말 보고서 발췌

 

  1절에서 살펴본바, 두려움이 가진 위험의 수준을 가늠하고 행동을 정교하게 하는 적극적인 기능은 위험을 회피하고 자기를 보존하려는 소극적인 기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소극적인 기능의 심층적 의미를 파악해야만 한다. 그것은 단지 동물로서 인간이 가지는 두려움의 이기적인 측면일 뿐일까? 그래서 그것은 두려움을 나쁜 욕망과 유사한 것으로 보이게 할 뿐인가? 우리는 비판적 의문에 아니라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용감한 사람을 자제력 있는 사람이 아닌 유덕한 사람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용감한 사람이 관련하는 두려운 것이었던 전쟁에서의 죽음에 대해 그것이 왜 고통스러운지 이유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해 회피하고 싶은 마음으로서 두려움이 일종의 가치평가 작용임을 알아보도록 하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죽음은 끝이며, 죽어 버린 자에게는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EN 1115a27-28) 보이는 것이다. 그에게 죽음은 몸으로부터의 영혼의 해방 같은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의 파괴로 관찰될 뿐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라는 것은 용감한 사람에게도 고통스럽고 내키지 않는 것이 될”(EN 1117b8) 뿐만 아니라, 탁월한 자가 탁월성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또 더 행복해질수록 [...] 그를 더 괴롭힐”(EN 1117b10-11) 어떤 것이다. 용감한 사람이 더 완전한 탁월한 자에 가까워질수록 죽음의 고통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좋음들을 쌓을수록 죽음에 의해 빼앗길 좋음들이 크고 많아지기 때문이다. 삶은 탁월한 자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EN 1117b12)인데 죽음은 그에게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인 삶을 앗아가는 것이기에 그에게 명백하게 가장 큰 나쁨이다.

  따라서 두려움이 이러한 죽음의 고통에 관련하여 용감한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회피하고 싶게 만듦과 동시에 그의 생명을 보존하고 싶게 만드는 것을 단순히 이기적인 작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죽음이 가장 큰 나쁨이자 두려운 것들 중 가장 큰 것으로서 용감한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겪게 할 때, 두려움은 일종의 가치평가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전쟁에서의 죽음이 예감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용감한 사람이 수행할 행위의 목적과 생명의 가치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의 원초적인 작용은 편향된 가치평가를 산출한다. 어쨌든 겪는 두려움은 죽음을 피해 살아남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용감한 사람이 두려움을 겪은 후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히 발휘하여 용감한 행위를 하는 것은 두려움의 가치평가에 대한 의식적 그리고 습관적 교정이라 볼 수 있다. 항상 고귀한 것을 지향하는 용기를 가진 자에게서 두려움이 수행하는 가치평가는 행위자 개인에게 무엇보다 고귀한 생명보다 가장 고귀한 것인 전장에서의 용기 있는 행위를 더 좋은 것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습관화된다. 한편, 만약 용감한 사람에게 생명만큼의 가치가 없는 무엇이 죽음을 무릅쓴 행동의 목적으로 주어진다면 그것은 두려움의 가치평가에 의해 가치가 더 낮은 것으로 옳게 판단될 것이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따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의 회피 기제와 자기 보존 경향이라는 소극적 기능을 행위자의 삶에 대한 가치평가 기능이라는 것을 이해함을 넘어서 습관적으로 교정하고 마땅히 따를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기적인 것도 아니었고 나쁜 욕망과 같은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전적으로 마땅히 겪고 마땅히 발휘할 수 있는 유덕한 사람이지 자제력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용감한 사람에게 전쟁에서의 죽음이 고통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내키지 않는”(akonti)(EN 1117b8) 것이기까지 한 이유를 짚고 넘어가자. 그것은 그가 전쟁이라는 상황에 처해 비자발적인(akōn) 행위로서 용감한 행위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구익희(2017, 55)는 용감한 사람이 “‘미래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전쟁터에서 도망쳐야 하는 비겁한 행위용기에 따라 훌륭히 싸우지만 행복한 삶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 수도 있는 행위를 비교하며 각각의 행위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저울질하는 숙고를 수행해야 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러한 강제된(anagkazein) 상황에서 용감한 사람에게 주어진 두 선택지는 모두 그 자체로는 비자발적인 것이다. 따라서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지각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이 자연적인 의미에서 강제로 겪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국제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직면”(구익희, 2017, 59)하게 된 폴리스적 존재로서 인간이 정치사회적인 의미에서 강제로 겪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정리하자면, 용감한 사람의 두려움은,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그 가치가 커지는 삶을 앗아가는, 그래서 그럴수록 더욱 고통스러운 죽음에 관련하여, 삶의 가치를 항상 우선적인 가치 비교의 한 항으로 두고 행위의 목적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용감한 사람이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또한 전쟁이라는 강제된 상황에 부닥치어 죽음을 무릅쓰는 방식으로 고귀한 행위를 해야 할 수밖에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결국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통해 삶의 가치를 인지하지만 그것의 올바른 습관화를 통해 가장 고귀한 것으로서 용기에 따르는 행위의 가치와 삶의 가치의 경중을 제대로 평가하는 사람이고, 폴리스의 구성원으로서 국제정세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전쟁 상황에 처하게 되어 한편으로 더 이상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예감에 고통과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귀한 행위를 수행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