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고대철학 일차문헌

플라톤, 「의인화한 법률의 연설」 후반부 및 「종결부」 (51c-54e), 『크리톤』

현담 2023. 3. 12. 22:16

<목차>

 

1. 도입부 (43a-44b)

2. 크리톤의 탈옥 권유 (44b-46a)

3. 크리톤의 권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응수 (46b-50a)

4. 의인화한 법률의 연설 (50a-54d)

  4-1. 정의의 원칙들의 적용 (50a-50c)

  4-2. 정의의 원칙들의 검토 (1) : 보복금지 원칙은 정당한 것인가? (50c-51c)

 

  4-3. 정의의 원칙들의 검토 (2) : 합의의 원칙은 정당한 것인가? (51c-53a)

  4-4. 탈옥에 관한 기타 문제에 대한 응수 (53a-54b)

  4-5. 신화 (54b-d)

5. 종결부 (54d-e)

 

4. 의인화한 법률의 연설 (50a-54d)

 

4-3. 정의의 원칙들의 검토 (2) : 합의의 원칙은 정당한가? (51c-53a)

 

4-3-1. 합의의 내용

 

그리고 복종하지 않는 자는 [...]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오. [...] 우리에게 복종하기로 합의하고서 복종하지도 않고, 우리가 뭔가를 잘못하는 경우 우리를 설득하지도 않기 때문이오. 우리는[법률은] 두 선택지 중 하나를, 즉 설득하거나 아니면 이행하는 걸 허용했는데, 그는[당신들 가운데 누구라도] 이것들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 것이오.” (51e-52a)

 

합의의 내용은 단순하다. “국가의 명령을 이행하라. 아니면 국가를 설득하라.” 앞서 살펴보았듯이 설득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여기서 법률은 만약 소크라테스가 탈옥한다면, 설득이나 이행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국가로 하여금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도록 설득했던 것 아니었던가? 여기서 설득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나왔다. 설득은 부당한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는 국가가 설복되어 그 명령이 내려지지 않아야만 설득이고, 부당한 명령이 내려진 후에는 국가가 설복되어 그 명령이 철회되어야만 설득인 것이다. , 개인이 국가를 설득한다는 것은 개인이 국가에게 국가가 내릴/내린 명령이 부당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결국 국가가 개인에게 설복되어 자신이 내릴/내린 명령을 거두는 것까지를 포괄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만약 소크라테스가 탈옥한다면, 그는 판결을 이행하는 것도 아니고 판결을 철회하도록 설득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법률이 여기서 하고 있는 말이다.

  명령의 취소 전까지 설득이 아니라면, 변명에서 언급되었던, 정의로운 자 레온의 연행 명령 거부 사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자 이기백은 신의 명령과 국가의 명령이 상충한다면 신의 명령을 따라야 하며 이때 국가의 명령에 대한 설득도 이행도 아닌 행위인 시민 불복종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의아한 점은 레온도 정의로운 자이지만 소크라테스도 정의로운 자일텐데 자신의 사형 명령을 소크라테스가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자를 죽이는 것이 신의 명령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소크라테스 자신이 정의로운 자인 이상 신의 명령에 어긋나지 않게 탈옥하는 것이 마땅치 않은가? 이렇게 신의 명령에 따른 행위가 표면적으로는 어떤 정의로운 자는 살리고 다른 어떤 정의로운 자는 죽이게 됨으로써 신의 명령 자체가 모순적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신의 명령은 사실 정의로운 자를 죽이거나 살리라는 명령이 아닐 수 있다. 신의 명령은 어쩌면 국가에 정의가 충만하게 되도록 하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자 레온은 살리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여 국가의 명령에 불복하고, 또다른 정의로운 자 소크라테스 자신은 죽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여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리라. 소크라테스는 정의의 이데아를 분유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아테네의 모든 개별자들이 정의의 이데아를 분유하길 바랬으리라 짐작해본다.

 

4-3-2. 합의의 절차

 

일단 아테네인이 시민으로 인정받고 나라에서 시행되는 일들과 법률인 우리를 살펴보고 나면,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일정한 권한을 부여받아, 우리가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면 자신의 소유물을 갖고서 원하는 것으로 떠날 수 있다” (51d)

 

우리가 판결을 내리는 방식이나 그 밖의 일들에서 나라를 경영하는 방식을 보면서도 머물러 있다면, 이미 그는 우리가 명하는 것들을 이행하기로 그런 행위에 의해 우리와 합의한 것이라고 우리는 말하오.” (51e)

 

1) 아테네 시민이 아테네와 설득 or 이행합의를 맺기 싫으면 아테네를 떠나버림으로써 합의를 맺지 않아도 된다. 이런 기회가 있는데 아테네를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은 암묵적으로 합의를 맺은 것이라 봐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머물렀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당신이 마음먹고 있는 것을 정말 행한다면 당신도 그 비난들을 받되, 아테네인들 가운데서 가장 적게 받는 게 아니라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 가장 많이 받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주장이오.”(52a)

 

만일 이 나라가 당신에게 특별히 만족스러웠던 게 아니라면, 당신이 다른 어떤 아테네인보다도 특별히 이 나라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오.”(52b)

 

2) 합의 이후에 합의에 대한 시민의 만족도에 따라 시민의 합의 이행 의무의 당위성이 가중된다. 아테네를 떠나 다른 나라로 구경가기는커녕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아테네에 머무르면서 크산티페와 결혼하고 아이도 셋이나 낳은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와 아테네와 맺은 합의에 특별히 만족스러웠던 것이고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아테네에 대한 강한 사랑이 느껴짐ㅜㅜ) 따라서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시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바로 재판 당시 당신이 원했다면 당신은 추방형을 제의할 수 있었을 것이오.”(52c)

 

3) 합의가 예상치 못한 불합리하고 불리한 귀결을 가져다줄 것이 임박한 경우에도 (분명 억울하긴 하겠지만) 추방형을 선택함으로써 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추방보다는 죽음을 택했다. 이는 죽을 때까지 아테네와의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당신이 강요에 의해 합의한 것도, 기만당해 합의한 것도, 잠시만 숙고하도록 강제된 상태에서 합의한 것도 아니고, 70년을 숙고한 끝에 합의한 것인데도 말이오.” (52e)

 

4) 합의는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었고(협박이 아니었고), 기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고(사기가 아니었고), 촉구받은 것이 아니라 충분한 숙고의 시간(무려 70년간) 끝에 결정된 것이었다.

 

합의의 정당성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절차에도 있다. 에서는 합의의 내용이 정의로울 것만이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합의의 정당한 절차 내지는 조건을 상세히 규명한다. 이처럼 합의의 내용의 정의로움과 합의 행위 자체의 정의로움을 구별할 때, 후자가 정의로울 수 있는 조건 속에서만 합의의 원칙은 정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4-4. 탈옥에 관한 기타 문제에 대한 응수 (53a-54b)

 

4-4-1.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의 경우

 

당신 친구들의 경우는, 그 자신들이 추방되고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재산을 잃을 위험에 처하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오.” (53b)

 

4-4-2. 소크라테스 자신의 경우

 

1) 탈옥자는 법률의 파괴자이고, 법률의 파괴자는 젊은이들이나 어리석은 자들을 타락시키는 자로 간주될 수 있으니 사형 선고를 내린 재판관들에게 그들의 판단을 확증해 줄 것

 

2) 탈옥하여 훌륭한 법을 갖춘 나라(ex. 테베, 메가라)로 간다면, 그곳의 정치체제에 대해 적이 된 입장에서 그곳에 도착할 것이고 그곳 국민들은 법률의 파괴자로 간주하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것

 

3) 탈옥하여 훌륭한 법을 갖춘 나라들과 아주 반듯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대화를 하더라도, 법률의 파괴자의 입으로 어떻게 덕과 정의와 법적 제도와 법률이 사람들에게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화제로 삼는다면 그 나라 사람들에게 볼썽사납게 보일 것

 

4) 탈옥하여 훌륭한 법을 갖춘 나라들과 아주 반듯한 사람들을 피해 극도의 무질서와 방종이 있는 나라(ex. 테살리아)로 간다면, 그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 탈옥한 이야기에나 흥미를 가질 것. (소크라테스가 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자신이 이야기거리가 될 것. 나현)

  나아가 그 나라에서도 탐욕스럽게 살고자 욕심을 부려 가장 중대한 것인 법률을 어기면서까지 탈옥한 자라 비난할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며,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는다면(아테네에서처럼 덕을 화제로 등애처럼 이야기하고 다니지 않는다면) 그럴 가능성(비난할 사람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있으나, 누군가를 괴롭힌다면 심하게 비난받을 것. 그러니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노예살이하며 살 것.

 

4-4-3. 아이들의 경우

 

1) 탈옥하여 아이들을 테살리아로 데려가 외국인으로 만들어서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게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는 방법이 아님 (테살리아는 극도의 무질서와 방종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

 

2) 탈옥한 후 (아테네에 있을 순 없으니) 자신은 테살리아로 가더라도 아이들은 그대로 아테네에서 양육시킨다면 결국 친구들이 아이들을 돌볼텐데, 이렇게 되면 소크라테스가 죽어 하데스로 가서 친구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나 별 다를 바가 없음

 

, 소크라테스, 당신의 양육자인 우리의 말에 따라, 자식도, 사는 것도, 그 밖의 어떤 것도 정의로운 것보다 더 중시하지 마시오.”(54b)

 

4-4-1. ~ 4-4.3.은 사실 탈옥의 정의로움과 무관한 일을 따지는 것이니, 설령 이런 문제에 대해 더 그럴듯하게 처신할 방법이 떠오르더라도 탈옥이 부정의한 일인 이상 단념하라는 것

 

4-5. 신화 (54b-54d)

 

, 소크라테스, 당신의 양육자인 우리의 말에 따라, 자식도, 사는 것도, 그 밖의 어떤 것도 정의로운 것보다 더 중시하지 마시오. 우리가 보기에, 당신이 하데스에 갔을 때 거기서 다스리는 자들 앞에서 당신 자신을 변호하여 이 모든 것을 내세울 수 있도록 말이오.”(54b)

 

현 상태에서 당신이 [저승으로] 떠나간다면, 당신은 정의롭지 못한 일을 당한 상태로 떠나갈 것이오. 법률인 우리한테서가 아니라 사람들한테서 그런 일을 당한 상태로 말이오.” (54b-c)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511장에서 부정의를 당하는 것 내지는 겪는 것보다 부정의를 행하는 것이 더 나쁜 것임을 논증한다.

여기서 의인화한 법률은 부정의를 행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 사람들임을 밝힌다. 앞에서는 설령 법률이 소크라테스를 파멸시키려 했다손 치더라도 소크라테스가 법률을 똑같이 파멸시키려 하면 안 되었음을 논증했는데, 여기서는 법률이 심지어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등의 죄를 저지른 자를 엄하게 다스리는 법률 자체보다는 그 법률을 엉뚱하게 적용한 판결자들의 잘못이 직관적으로 더 커보인다.

 

그런가 하면 당신이 아주 부끄럽게도 보복으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고, [...] 당신 자신과 친구들과 조국과 우리에게 해를 주고서 여기서[이승에서] 나간다면, 우리는 당신이 살아 있을 땐 당신에게 화를 낼 것이고, 저승에서는 우리의 형제인 하데스의 법률이 당신을 반겨 맞이하지 않을 것이오. 당신이 관여할 수 있는 한 우리마저 파멸시키려 한 것을 알고서 말이오.” (54c)

 

만약 소크라테스가 탈옥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보복 대상이 엉뚱해진다, 아니 보복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해를 끼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에게 해를 끼친 장본인은 잘못 판결내린 사람들인데, 소크라테스가 탈옥으로 해를 끼치게 되는 대상은 자기 자신과 친구들과 조국과 법률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신화를 도입하면서 탈옥해서 조금 더 살래. 어짜피 죽으면 그만이야.’ 같은 생각을 차단한다. 죽음은 부정의한 사람의 도피처가 아니라 심판처라는 믿음은 산 사람이 삶을 더 정의롭게 살도록 촉구한다.

 

5. 종결부 (54d-e)

 

소크라테스 : [...]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관한 한, 자네가 그것들에 반대하는 주장을 편다면, 자네의 주장은 헛된 게 될 것이네. 하지만 자네가 뭔가 더 해 볼 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해 보게.

크리톤 : 소크라테스, 나는 할 말이 없다네.

소크라테스 : 그러면 이쯤 해 두게, 크리톤. 그리고 신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니, 그대로 하세나.

 

3.4.의 논의는 앞서 밝혔듯 크리톤의 탈옥 실행에 대한 열의가 옳음을 동반하고 있는지고찰하는 작업이었음. , 소크라테스는 단지 자신의 탈옥이 옳고 그른지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고찰을 통해 친애하는 크리톤의 열의가 가치 있는 것인지를 평가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고 있었음. 3.4.의 논의를 거치면서 크리톤의 열의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크라테스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임이 드러났고, 이것을 자각한 크리톤은 열의를 잃으며 더 이상 소크라테스를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함을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더 말하지 않음. 소크라테스는 신이 인도하는 자신과 크리톤의 운명을 받아들이자고 대화를 마무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