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고대철학 일차문헌

[에피쿠로스] DL, X,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현담 2023. 6. 4. 21:42

DL, X, 122-123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

 

젊다고 해서 철학하는 것을 미루어서도 안 되고 늙었다고 해서 철학하는 것을 피곤해해서도 안 된다.

 

1. 행복이 곁에 있다면[행복을 가지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2. 행복이 곁에 없다면[행복을 가지지 못하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기 위해 모든 것을 행한다.

(행복의 궁극성)

3.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익혀야 한다.

 

1.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행복을 가지는 데에는] 너무 이른 나이도 없고 너무 늦은 나이도 없다. [젊은이든 늙은이든 행복을 가질 수 있다.]

  1-1. 젊을 때는 앞으로 있을 것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음으로 젊음과 나이듦을 동시에 유지[하여 행복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1-2. 늙어서는 지난 일들의 즐거움으로 인해 좋은 것들로 젊음을 유지[하여 행복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철학은 1-1.1-2.의 방법으로 젊은이든 늙은이든 행복을 가져다준다.)

3. 그러므로, 젊은이든 늙은이든 철학을 해야 한다[철학을 익혀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자네에게 끊임없이 지시했던 것들을 훌륭한 삶의 원리로 견지하고서 그것들을 실천하고 익히도록 하게.

 

DL, X, 123-124

 

a. 신에 관한 지각(공통관념)(명증한 인식)

: 신은 불멸이며, 지복한 존재이다.

 

b. 신에 관한 거짓된 추정

 

1. 사람들은[신들은] 자신들 고유의 덕목들에 언제나 친숙한 까닭에 자신들과 닮은 자들은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낯선 것으로 간주한다.

(2. 신들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신들로부터 가장 큰 유익을 받는다는 것이고, 신들이 낯선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신들로부터 가장 큰 해악을 받는다는 것이다.

3. 신들은 좋은 사람들[신들]이다.)

4. 따라서, 좋은 사람들에게는 신들로부터 가장 큰 유익이 주어지고, 나쁜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해악이 주어진다.

 

(여기서 DL이 신들을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거짓된 추정을 하는 사람들이 신들을 자신들과 같은 존재로 암묵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에게는 잘 해주고 낯선 존재에게는 잘 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신들은 사람들이 아니며, 사람들처럼 그렇게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b. 신에 관한 거짓된 추정 반박

 

[a.] 신은 불멸이며 지복한 존재이다.

불멸이며 지복한 존재는 자신들과 닮은 자들은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낯선 것으로 간주하는 존재가 아니다. [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신에 대한 불경이다.]

따라서, 좋은 사람들에게는 신들로부터 가장 큰 유익이 주어지고 나쁜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해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에 관해서는 신의 불멸성과 지복성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믿도록 하게.

 

DL, X, 124-127 죽음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게.

 

1)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1.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모두 감각에 달려 있다.

(1.` 어떤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기 위해서는 감각되어야 한다.)

2.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다.

(2.` 살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감각을 잃는다.)

3. 따라서,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3.` 살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 있지 않은 상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일 수 없다.)

(`논증으로 일단 이해해야 할 필요는 불사에 대한 동경 제거를 위해서. 1) 가장 아래 부분 참고.)

 

(Q: 그렇다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살아 있지 않은 상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래는 예상 대응]

1.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살아 있지 않은 상태는 감각되지 않는다.

2. 따라서,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살아 있지 않은 상태는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이 문제를 3)에서 대응)

 

(O. 죽음은 단지 살아 있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삶의 중단이다.

Q: Since, however, untimely death prevents say thirty-five years of pleasure from being extended to seventy, why is the loss of the extra good not to be shunned? (LS, p.154.)

A: He would no doubt reply that the cessation of pleasure is normally a pain, and hence to be shunned as an evil, but that this cannot possibly apply to death, which is the cessation of pleasure and pain, of good and evil. No doubt the prolongation of good is still preferable to its cessation: hence Epicurus advises us against positively courting death. But equally its cessation is not an evil, so that death is not to be feared. If you believed otherwise, you might marginally improve your chances of completing seventy years instead of thirty-five, but the fear of death would make them far less pleasant. And we should judge a life more by quality than by quantity. Since avoidances are justified only if based on correct hedonistic calculation, Epicurus is surely right that a fear becomes irrational when by its presence it diminishes our pleasure more than its object would if realized. (LS, p.154.)

에피쿠로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 4)에서 대응)

 

(Q: 쾌락 상태에 있고 미래에도 높은 확률로 그렇게 있으리라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사람에게 죽음은 고통과 쾌락의 중단이라기보다는 쾌락의 중단으로 여겨져야 하는 것 아닌가? [아래는 예상 대응]

A: 1-1) 죽음을 쾌락의 중단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쾌락 상태를 해친다. 쾌락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거짓 믿음에 근거. 좋은 전략은 아님. 1-2) 정적 쾌락이 중단되는 것은 악이 아니다. 정적 쾌락 상태의 인간은 그 상태가 중단되지 않기를 원하지 않고, 중단되더라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상태’.

기말보고서?)

 

(1. 불사에 대한 동경은 죽게 되어 있는 삶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

2.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은 불사에 대한 동경을 제거한다.

3. 따라서,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은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Q.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은 어떻게 불사에 대한 동경을 제거하는가?)

A. 살아 있지 않은 상태에는 두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자에게는 삶에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두려운 것이 없다면,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피하지 못하는 삶을 두려워하고, 살아 있지 않은 상태에 영원히 도달하지 않고자 불사를 염원할 필요가 없어진다.]

 

2)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1. 죽음은 현실로 닥쳐도 괴로움을 주지 않는다.)

2. [현실로 닥쳤을 때 괴로움을 주는 것을 미리 예상함으로써 괴로워하는 것은 근거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니지만,] 현실로 닥쳤음에도 괴로움을 주지 않는 것을 미리 예상함으로써 괴로워하는 것은 근거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3. 죽음에 임했을 때 그것이 고통을 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고 닥쳐올 죽음이 고통을 주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것이다. [=죽음이 현실로 닥쳤을 때 괴로움을 준다면 죽음을 미리 예상함으로써 괴로워하는 것은 근거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니지만, 죽음이 현실로 닥쳤을 때 괴로움을 주지 않는다면 죽음을 미리 예상함으로써 괴로워하는 것은 근거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4. 따라서, 죽음을 미리 예상함으로써 괴로워하는 것은 근거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 어리석은 것이다.)

 

3) 죽음은 우리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우리와 관계 없다.

 

죽음은 우리에게 나쁜 것들 중에서 가장 전율할 만한 것이 전혀 아니다.

 

1.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지 않다.

2.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3. 따라서, 죽음은 우리가 살아 있든 죽어있든 우리와 관계 없다.

 

1.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2. 죽은 자들은 그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3. 따라서,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과도 관계가 없고 죽은 자들과도 관계가 없다.

 

4) 현자는 삶을 회피하지도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들 : a) 죽음을 나쁜 것들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여겨 기피하고, b) 때로는 삶 속의 나쁜 것들로부터의 휴식으로 여겨 선택한다.

 

현자 : b) 삶을 회피하지도 않고 a)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b) 삶은 거슬리는 일이 아니며 a) 삶의 중단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a`) 사람들은 먹을 것을 택할 때 무조건 더 많은 것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것을 택한다.

a) 현자는 시간을 즐길 때 가장 긴 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유쾌한 시간을 즐긴다.

 

5) 훌륭하게 사는 것은 훌륭하게 죽는 연습이다.

 

(1. 내용이 똑같지만 말만 서로 다른 두 가지 충고를 내용이 다르다고 이해하여 각각 두 부류의 사람에게 다르게 충고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2. 훌륭하게 살고 훌륭하게 죽는 연습은 같은 것이다.

3. 따라서, 젊은이에게 훌륭하게 살 것을 충고하고 늙은이에게는 훌륭하게 삶을 마감할 것[훌륭하게 죽는 연습]을 충고하는 자는 어리석다.

 

2. 원문 : 단순히 삶은 반길 만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고 훌륭하게 살고 훌륭하게 죽는 연습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반길 만한 것이지만, 언제나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아야 한다.)

 

6) 염세주의자의 삶은 자기모순적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태어난 이상 최대한 빨리 하데스의 문을 통과하도록 할 것.” [테오그네스의 시, 427]

 

(태어난 이상 최대한 빨리 삶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는 최대한 빨리 삶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왜 그는 삶을 떠나지 않는가?

 

DL, X, 127 미래의 일

 

(1. 미래의 일이 틀림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일을 기대할 것이다.

2. 우리가 미래의 일을 기대를 하면, 우리는 실망을 할 일이 많을 것이다.

3. 미래의 일이 틀림없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일에 희망을 버릴 것이다.

4. 미래의 일에 희망을 버리면, 우리는 매사에 실망한 채로 살 것이다.

5. 실망을 할 일이 많은 삶이나 매사에 실망하는 삶은 고통스러운 삶이다.)

 

미래의 일은 전적으로 우리 것도 아니고 우리 것이 아닌 것도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DL, X, 127-132 욕망과 쾌락

 

1) 욕망의 종류

 

a. 자연적인 것

  a-1. 자연적이면서 필수적인 것

    a-1-1. 자연적이면서 필수적이면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

    a-1-2. 자연적이면서 필수적이면서 몸의 평정을 위해 필요한 것

    a-1-3. 자연적이면서 필수적이면서 삶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

  a-2. 단순히 자연적인 것

b. 근거 없는 것

 

욕망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자연적인 것이고 어떤 것들은 근거 없는 것들임을 고려해야 한다. [...] 이것들에 관한 흔들림 없는 고찰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선택과 기피를 몸의 건강과 영혼의 평정에 연관시킬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2) 복된 삶의 목적(행복)

 

복된 삶의 목적 (행복) : 몸의 건강과 영혼의 평정

모든 행위의 목적 (행복) : [몸의] 고통과 [영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우리에게 이것이 생기면, (행복한 상태) : 영혼의 폭풍은 완전히 진정된다.

영혼의 폭풍 (행복하지 않은 상태) : 살아 있는 것은[] 부족한 것이라도 있는 양 무언가를 찾아 돌아다니거나 영혼의 좋음과 몸의 좋음을 충족시켜 줄 다른 것을 쫓아[가는 상태]

 

(지복에 이르지 못한 상태) : 쾌락이 없어서 괴로워할 때 우리는 쾌락의 필요를 느낀다.

(지복에 이른 상태) : 괴로워하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쾌락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쾌락을 지복한 삶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말한다.

 

3) 쾌락의 특성과 선택

 

3-1) 쾌락의 특성

  - 첫 번째로 좋은 것이자 선천적인 것

  - 출발점으로 삼아 모든 선택과 기피를 행함

  - 다시 돌아가서 기준으로 삼아 좋은 것을 모두 판정

  

3-2) 쾌락의 선택

 

a) 어떤 쾌락들로부터는 불쾌감이 더 많이 뒤따른다. 이때 우리는 그런 쾌락들을 지나친다.

a`) 때때로 우리는 좋은 것을[쾌락을] [괴로움을 더 많이 가져오기에] 나쁜 것으로 취급한다.

 

b) 어떤 괴로움들을 견디면 쾌감이 더 많이 뒤따른다. 이때 우리는 그런 괴로움들을 쾌락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b`) 때때로 우리는 나쁜 것을[괴로움을] [쾌락을 더 많이 가져오기에] 좋은 것으로 취급한다.

 

모든 쾌락은 우리에게 친숙한 본성을 갖고 있는 탓에 좋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쾌락이 선택할만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괴로움은 나쁜 것이지만, 그것들을 모두 본래부터 언제나 회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쾌락과 괴로움을 상호 비교 측정하여 이익[전체적인 쾌락]과 불이익[전체적인 괴로움]에 주목함으로써 이 모든 것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판정해야 한다.

 

4) 큰 선으로서 자족

 

또한 우리는 자족을 큰 선으로 생각하는데, [...]

 

자족의 목적 : 어떤 경우에도 적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적게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많은 것을 가지지 않을 경우에 적은 것으로 만족하기 위함[적게 가지는 경우에조차 적게 사용하면서도 만족을 얻기 위함]

 

자족적 인식 : 사치를 가장 적게 필요로 하는 자들이 가장 즐겁게 사치를 누린다는 것을, 그리고 자연적인 것은 모두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쓸모없는 것은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진정으로 확신 (이렇게 확신하고 있을 때 자족이 가능)

 

단순하고 사치스럽지 않은 식사에 익숙해지는 것 (식사에 있어서 자족)

- 건강을 충분히 제공

-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필수 요건들에 주저 없이 대응

- 오랜만에 사치스러운 성찬을 접했을 때 우리를 더 나은 상태에서 그것을 즐기게 함

- 운명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로 만들어 줌

 

5) 가장 큰 선으로서 분별

 

무지하거나 우리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거나 오해하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쾌락과 유쾌한 삶을 낳는 것

- 방탕한 자의 쾌락이나 관능적 향락(apolausis 해석에 따라 향유의 과정에서 주어지는 쾌락으로 번역 가능)에서 주어지는 쾌락

- 계속해서 술판을 벌이고 흥청거리기, 소년이나 여인들과의 성적 교제를 즐기기, 생선이나 그 밖에 사치스러운 식탁의 진미를 즐기기

 

유쾌한 삶을 낳는 것 : 각성한 헤아림의 능력 [=분별]

- 모든 선택과 회피의 원인들을 찾아냄

- 가장 큰 소동이 영혼을 장악하는 데 근거가 되는 의견들을 몰아냄

 

이 모든 것들의 출발점이자 가장 큰 선은 분별이다.

 

분별의 중요성

- 철학보다 더 귀중한 것이며, 분별로부터 나머지 모든 덕들이 자라난 것

- a) 분별 있게, 훌륭하게 그리고 정의롭게 살지 않고서는 유쾌하게 살 수 없으며, b) 유쾌하게 살지 않고서는 분별 있게, 훌륭하게 그리고 정의롭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줌

- b) 모든 덕은 유쾌하게 사는 것과 함께 자랐으며, a) 유쾌한 삶은 이것들과 떨어질 수 없음

 

DL, X, 133 분별 있는 자[현자] (중간 요약)

 

도대체 이런 사람보다 우월한 자가 누구라고 자네는 생각하는가? 신들에 대해 경건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며 자연이 정한 목적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보다 말일세. 이 사람은 좋은 것들의 한계는 쉽게 충족되고 쉽게 달성될 수 있지만 나쁜 것들의 지속 시간과 힘듦은 짧고 가볍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으며, 일부의 사람들이 만물의 군주로 도입하는 운명을 비웃는다.

 

DL, X, 133-135 운명

 

1) 발생하는 것들의 분류

 

a.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

b.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 불안정한 것

c. 우리에 의해 발생하는 것 : 우리의 능력 내에 있는 것, [운명에] 지배받지 않는 것

c.야말로 본래부터 비난도 뒤따를 수 있고 그 반대의 것[칭찬]도 뒤따를 수 있다.

 

2) 운명론 거부 [a. 일원론 거부]

 

1. 운명은 기도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진다.

2. 그러므로, 자연철학자들이 말하는 [운명론은 인간이] 운명의 노예가 되는 것[을 시사한다.]

3. 신들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이] 신들을 공경함으로써 기도가 받아들여진다는 희망을 시사한다.

4. 운명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신들을 공경함으로써 기도가 받아들여진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더 낫다.

5. 따라서, 자연철학자들이 말하는 운명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이 더 낫다. [=자연철학자들의 운명론을 믿느니 차라리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믿는 것이 더 낫다.

(인간에게 주는 희망이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참인 근거이며 인간에게 주는 절망이 자연철학자들의 운명론이 거짓인 근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이미 거짓인데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적 입장에서 둘 중 하나를 꼭 믿어야 한다면 차라리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믿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둘 다 믿지 않는다.)

 

3) 신들에 관한 이야기 거부 및 b. 일원론 거부

 

1. 신의 행위에는 무질서한 것이 전혀 없다.

(2. 우연이 신의 행위라면, 신의 행위에는 무질서한 것이 있어야 한다.)

3. 따라서, 우연은 신이[신의 행위가] 아니다.

 

1. 지복의 삶을 위해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은 우연에 의해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2.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해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면, 지복의 삶을 위해서 좋은 것이나 나쁜 것 또한 우연에 의해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3. 따라서, 우연은 모든 것들의 불확실한 원인이 아니다.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 대단히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의 출발점은 우연에 의해 제공된다.

 

4) (분별 있는 자가 불운을 대하는 법)

 

이성적으로 행동하면서 불운한 것이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행운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그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행위를 함에 있어 훌륭하게 판단했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쪽이 잘못 판단했는데 우연으로 인해 성공하는 쪽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DL, X, 135 신처럼 살게 될 것

 

위의 가르침과 이런 종류의 가르침들을 밤낮으로 익히도록 하게. 자네 혼자도 하고 자네와 비슷한 자와 같이도 하게. 그렇게 하면 자네는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결코 영혼이 동요하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신처럼 살게 될 것이네. 왜냐하면 불사하는 좋은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죽어야 할 생명들과는 닮은 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김주일 외 역, 나남, 2021, pp.386-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