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고대철학 이차문헌

전헌상(2011),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픽테토스 윤리학에서의 프로하이레시스」, 『서양고전학연구』

현담 2023. 4. 4. 22:57

1. 들어가는 글

 

*본고의 과제

: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픽테토스의 프로하이레시스(prohairesis)론을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비교 검토하는 것

 

*본고의 시도

: 1)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픽테토스가 프로하이레시스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을 관련시키는 방식에서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점들을 가려내고 드러냄으로써 2) 두 철학자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성과 비연속성, 그리고 3) 스토아 철학의 전통 속에서 에픽테토스가 이룬 고유한 성취의 한 단면을 조명하는 것

 

2. 프로하이레시스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 아리스토텔레스

 

*프로하이레시스(합리적 선택 강상진 외, 니코마코스 윤리학)

- 행위 자체보다 행위자의 품성을 더 잘 구별해주는 표지이며, 덕은 무엇보다도 프로하이레시스와 관련된 어떤 상태(hexis prhairetikē)

- 이성 작용과 욕구의 결합체로서 실천적인 영역에서 인간이 이성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본성을 구현하는 활동

- 행위의 원천(archē)으로서 인간이 행위의 원천으로 이야기될 때 그 작용의 핵심을 이룸

 

*프로하이레시스의 작동 과정

 

1) 바람(boulēsis) : 실현을 원하는 어떤 목적에 대해서 가지게 되는 욕구 목적 설정

2) 숙고(bouleusis) :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따져 봄 즉각적으로 행할 수 있는 구체적 행위를 찾아낼 때까지 계속

3) 프로하이레시스 : 마침내 발견한 구체적 행위에 대한 욕구

 

프로하이레시스는 본성상 숙고의 과정을 전제로 하기에 숙고적 욕구(bouleutike orexis)로 규정됨

 

*프로하이레시스의 대상 : 우리에게 달려있는(eph’ hēmins) 것들

- ‘epi + 행위자 a’라는 표현은 a가 그 사태의 원인이자 그 사태까지에 이르는 인과적 계열의 시발점이 됨을 의미. , a가 가지는 인과적 효력(causal efficacy)을 표현.

- 인과적 효력은 자발성과 책임 부과의 문제라는 맥락에서 등장. 만일 그 사태가 행위자 a를 원인으로 가지고 그 원천이 a안에 있는 것이라면, 그 사태에 대한 칭찬과 비난을 a에게 가하는 것이 정당화됨. 반면 a가 그 사태의 원인과 원천이 아니라면 그러한 책임부과는 부당.

 

*프로하이레시스의 대상 :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

- 바람 : 목적에 더 관련 vs. 프로하이레시스 : 목적에 기여하는 것들에 더 관련

  ex) 우리는 건강을 바라는 반면 그것을 통해 건강을 이루는 것들은 선택

  ex) 우리는 행복을 바라지만 그것을 선택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색

- 목적에 이르는 인과적 계열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 숙고와 프로하이레시스 자체가 그런 계열이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과 구별되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지칭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프로하이레시스는 행위자 자신이 그것의 발생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영향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미칠 수 있는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하이레시스에서 주요 포인트

-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프로하이레시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대상[prohaireton]이라는 점. 그리고 그 대상은 외적으로 구현되는 어떤 구체적 행위.

에픽테토스에게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은 프로하이레시스의 대상이 아닌, 프로하이레시스 자체

- 어떤 행위가 프로하이레시스의 대상으로서 우리에게 달려있는가의 여부는 해당 행위자가 놓인 구체적 상황과 독립적으로 결정될 수 없음. ,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의 일반적이고 비맥락적인 기술을 결코 확보할 수 없음.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일.

에픽테토스에게서는 우리에 달려있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매우 중요한 실천적 함의를 가짐

 

3. 프로하이레시스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 에픽테토스

 

*프로하이레시스(선택의지 김재홍,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 단순한 활동을 넘어서 특정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나 습성을 포괄

- 개별적인 행위에 선행하는 어떤 개별적인 영혼의 활동(아리스토텔레스)이 아니라, 인간의 어떤 일반적인 태도를 지칭하며,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prohairesis보다는 hexis prohairetikē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고 이야기됨(Dihle, 1982: 60)

- 인간의 정신적 본질 전체(Bonhoeffer, 1980: 259)나 자율성의 원리(Dobbin, 1998: 76)로 규정되기도 함

- 각 개인의 자아를 구성하는 것, 그 각각의 개인 자신과 동일시되고 동일시되어야 하는 것

 

*프로하이레시스의 작용

- 크게 두 개의 영역, 즉 동의의 영역[ho synkatathetikos topos]과 충동-욕구의 영역[orektikos kai hormētikos]에서 일어남

인상들이 제시하는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 반성적인 태도를 취할 때, 그 태도가 긍정적일 때 그것은 동의라 불리고, 동의가 충동적 인상들[phantasiai hormētikai]’에 대해 이루어지는 경우 충동이 발생. 그리고 바로 이 충동이 모든 행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됨

  cf) 비이성적인 동물들은 단순히 주어진 인상들에 부응해서 충동을 가지게 되고 그것에 따라 행동

- 그 작용은 한 마디로 인상들의 올바른 사용[hē chrēsis hē orthēs tais phantasiais]”으로 설명됨

단순히 주어진 인상들로부터 촉발되어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검토하고 비판적으로 처리. 그 비판적인 처리의 과정은 때로 주어진 인상들과 맞서 싸우는 일을 수반하기도 함. 결국 인상들의 사용은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테스트하고 그것들과 맞서 싸우는 일을 포괄하는 적극적인 활동.

  cf) 대부분의 동물과 아이는 생성된 인상들이 제시하는 상황을 즉각적으로 취함으로써 그것들에 직접적으로 반응

외적인 인상들에 대해 반성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강조

 

*에픽테토스의 프로하이레시스의 도입 이유

중심부기관[to hēgemonikon] 프로하이레시스[prohairesis]
인간의 반성 능력에 대한 기존 스토아의 개념 인간의 반성 능력에 대한 에픽테토스의 개념
인간의 이성적 능력과 작용 일반을 포괄. , 외부세계로부터 촉발된 인상들을 수용하고 그것에 대해 동의하거나 판단을 보류하며, 충동을 통해 행위를 산출하는 일련의 과정 전체에 개입 -인상들의 수용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이미 주어진 인상들을 사용하는 역할
-인상의 수용 과정을 의도적으로 그 영향범위에서 배제함으로써 행위주체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개입의 영역을 훨씬 더 강조

이성적 능력 일반보다는 그것의 특정 영역, 즉 개개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실현하는 영역을 떼어내어 부각시키기 위해(Long, 2002: 211-214)

 

*에픽테토스의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 이유

- 프로하이레시스와 그것의 작용만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고, 그 밖의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들

-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은 본성적으로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고, 훼방받지 않는 반면,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들은 무력하고, 노예적이고, 방해받고, 타자에 속함

- 전자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결코 강요되거나 방해받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비난하지 않게 될 것인 반면, 후자를 추구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면 제약을 받을 것이고, 비통해하게 될 것이고, 동요하게 될 것이고 신과 인간을 탓하게 될 것

인간 고유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강조하고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을 강조한 것은 결국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 즉 완전한 자유와 행복[eleutheria kai eudaimonia]”을 실현하기 위해

 

4. 프로하이레시스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픽테토스

 

*차이점 1 : 개별 상황 의존적, 인과적 효력 vs 본성적, 전적인 통제가능성

-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우리에게 달려있음은 개별적 상황에서의 인과적 효력(causal efficacy) 여부에 의해 결정.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영혼 외적 사태이고, 영혼 외적 사태에 영혼 내적 상태가 인과적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외적 상황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

- 에픽테토스에게서 우리에게 달려있음은 전적인 통제가능성(complete controllability)에 의해 결정.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은 단순히 특정 상황에서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본성상 그러한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적 뒤나미스와 결정요인으로서 프로하이레시스

- 형이상학XI-v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뒤나미스[dynamis]를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으로 구분. 전자의 특징은 그것이 반대되는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는 점.

- 이성적 뒤나미스는 그렇기에 특정한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결정요인[to kyrion], 예컨대 욕구와 프로하이레시스를 필요로 하게 됨

- 여기에 어떤 외적인 것도 방해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이 덧붙여질 필요가 없는 것은 뒤나미스가 모든 상황에서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만[ou pantōs all’ echontōn pōs] 작용을 하고 후자의 조건 안에 외적인 어떤 것도 방해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

어떤 것이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욕구나 프로하이레시스가 그것의 실현에 결정요인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 결정요인은 그것을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 항상 주어진 외적 환경의 협조를 필요로 함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들은 항상 주어진 개별적 상황을 전제로 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음. 다시 말해, 프로하이레시스를 포함한 우리의 내적 상태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들에 대해서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 없음.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하이레시스 자체가 기본적으로 영혼 외적 사태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 프로하이레시스는 숙고의 과정을 전제로 하며, 숙고는 목적을 세우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목적은 기보적으로 숙고자가 궁극적으로 실현되기를 희망하는 어떤 외적 상태. 따라서, 태생적으로 프로하이레시스는 외적 사태를 지향하는 활동.

 

*에픽테토스의 전적으로 통제 가능한 프로하이레시스의 작용

- 가장 단순하고 즉각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걷기조차도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님. 그것은 언제나 방해받을 수 있고, 방해받게 되는 것은 우리의 동의가 아니라 우리의 육체. 육체를 사용하고 육체와 협력해야 하는 일들 중 어떤 것도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

- 오직 프로하이레시스와 프로하이레시스의 작용들만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고, 육체, 육체와 연관된 것들, 외적 사태와 관계된 것들 일체는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

 

*차이점 2 : 사실판단 vs 가치판단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의 의미
아리스토텔레스 : 사실판단의 잘못 에픽테토스 : 가치판단의 잘못
-어떤 사태의 실현 가능성과 그것에 대한 자기자신의 인과적 효력에 대한 무지의 성격
-행위자의 가치판단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
-단순히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사실적 판단의 문제가 아님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래서 추구하고, 그것들을 상실했을 때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 때문에 중요

 

*M 발제문에서 저자의 비교 요약

 

 

5.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 크뤼시포스와 에픽테토스

 

*프로하이레시스를 재도입한 철학사적 배경

: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운명[heimarmenē]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다는 스토아 학파의 주장이 도덕적 책임부여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다른 학파들로부터의 공격

 

*크리쉬포스의 방어

: 외적인 원인들, 예를 들어 외부로부터 유래한 인상들로부터 촉발되지 않으면 동의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하더라도, 동의는 그러한 것들을 단지 보조적이고 근접적인[adiuvantes et proximae] 원인들로 가질 뿐 완전하고 원천적인[perfectae et principales] 원인들로 가지지 않는다. 이때 결과로서 실현된 행위의 완전하고 원천적 원인은 여전히 동의와 그 바탕에 놓여있는 행위자의 품성이며 기것은 우리의 능력 안에[in nostra potestate = eph’ hēmin] 놓여 있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일이 빈틈없는 인과의 계열로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행위자에게 도덕적 책임을 정당하게 지울 수 있다.

ex) 원통이나 원추가 타격이 가해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지만,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그 자신의 본성에 따라 달리 움직임

 

*알렉산드로스의 비판

: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모든 인과적 요인들을 전제하고도 실제 행한 것과 달리 행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에만 그 행위는 진정으로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달리 행동할 수 없었던 것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달리 행동할 수 없던 그에게 그 행동은 너에게 달려있는 것이고 따라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한 일 아닌가?”

 

*도빈의 에픽테토스 해석

: 에픽테토스는 이런 비판에 대응하여 운명이라 불렀던 보편적 연관관계 내 단절이 존재할 수 있음을, 다시 말해서 인간은 프로하이레시스를 통해 그 필연적 인과관계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에픽테토스는 프로하이레시스 개념을 통해 기존의 스토아 학파보다 더 강한 의미에서의 자유, 더 강한 의미에서의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 : 도빈이 제시하는 문헌적 근거(“제우스조차도 프로하이레시스를 구속할 수 없다”)는 단지 한 행위자가 원하지 않는 프로하이레시스의 활동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에픽테토스 해석

: 크뤼시포스와 에픽테토스 간의 중요한 경계선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 크뤼시포스의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과, 도덕적 책임 부과를 정당화하는 근거라는 점에서, 특히 그 근거지움이 행위자의 인과적 효력에 기대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선상에 놓여있음

- 에픽테토스의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간섭받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말해 진정으로 나인 바/진정으로 나에게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있음

크뤼시포스의 동기는 결정론과 도덕적 책임의 양립가능성과 같은 이론적인 난제 해소

에픽테토스의 동기는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의 실현에 직접적으로 연관. 스토아 학파의 이상인 ataraxia로서의 행복을 구현하는데 가장 큰 방해요소인 감정들[pathē]의 영향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키고자 하는 의도인 것.

 

그런 것[나에게 속하지 않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직 어떤 상황에서도 나인 것, 나에게 속한 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것을 돌보는 것만이 ataraxia로서의 행복을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 이것이 에픽테토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이고, 이것이 그가 프로하이레시스를 새롭게 도입하고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근원적인 이유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