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현대대륙철학 일차문헌

[니체]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11장)

현담 2023. 4. 23. 01:03

*새로운 우상(the new idol, neu Götze) : 니체의 시대비판론의 일환으로 국가에 대한 비판을 담는다. 니체는 권력국가(‘괴물’)19세기 유럽에서 새로운 우상이 되었고, 이런 사태 자체가 유럽인의 병리성의 표출이자 유럽인의 병증을 가속화시킨다고 한다. 텍스트는 특히 국가가 개인의 창조적 삶에 위협이 되는 모습에 집중한다. (역주)

  국가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우상이 되었다. 현재 여러 이념 중에서도 인류 대부분을 지배하는 건 민족주의가 아닌가. 민족주의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신처럼 숭배하는 이념이다. 한국인조차 상당히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교수님) 이하에서 니체는 민족을 긍정적으로 서술한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민족주의의 민족은 국가가 자신의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자신과 동일화한 민족(““, 즉 국가가 곧 민족이다라는 거짓말이 기어나오지.“)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에 대비되는 진짜 민족이라는 것이 있는지,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적 개념 아닌지, 민족이 국가와 구별될 수 있는 것인지, 민족 또한 하나의 우상이 될 수 있는 것 아닌지 등 여러 의문이 떠오른다. (사견)

 

이 괴물은 거짓말도 냉혹하게 해댄다. 그 괴물의 입에서는 , 즉 국가가 곧 민족이다라는 거짓말이 기어나오지. // 그건 거짓말이다! 민족을 형성해내고 그 민족 위에 하나의 믿음과 하나의 사랑을 걸어놓은 것은 창조자들이었다. 이렇게 창조자들은 삶에 이바지했던 것이다.

Coldly lies it also; and this lie creeps from its mouth: "I, the state, am the people." // It is a lie! Creators were they who created peoples, and hung a faith and a love over them: thus they served life.

Kalt lügt es auch; und diese Lüge kriecht aus seinem Munde: "Ich, der Staat, bin das Volk." // Lüge ist's! Schaffende waren es, die schufen die Völker und hängten einen Glauben und eine Liebe über sie hin: also dienten sie dem Leben.

: 차라투스트라에게 있어 민족은 하나의 믿음과 하나의 사랑”,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해 각 민족에게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규범 체계를 공유하는 규범-공동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자연 발생적 공동체로서의 민족과는 달리, “냉혹한 괴물이라는 말로 암시되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처럼 국가는 사회적 계약을 통해 인위적으로 발생한 공동체이다. 대개 여러 민족이 합쳐지면서 생겨난 국가는 자연스레 그 민족들의 가치론이 혼재한 다원주의 사회일 것이고, 차라투스트라는 이 때문에 생겨나는 언어적 혼란이야말로 국가의 징표라고 본다. (S 발제문)

  여기서 말하는 창조자로 모세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유대교라는 하나의 종교적 이념으로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민족은 그 구성원이 일정한 관습과 규범을 공유하고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적인 가치를 가지는 긍정적인 의미의 집단이다. (교수님)

 

*괴물(Ungeheuer) : 괴물로서의 국가는 홉스의 리바이어던 국가에서 따온 것이다. 홉스는 국가를 개인의 힘을 넘어서는 아주 거대한 창조물로, 성서의 욥기 41장에 나온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비유한 바 있다. 홉스, 리바이어던 13 9, 14절 참조. (역주)

  여기서 말하는 국가와 달리, 니체는 국가가 사회계약을 통해서 생겼다고 보지 않고,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 점령해서 생겼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괴물로서의 국가는 근대 국가이다. 근대 국가는 가치와 이상을 공동으로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돈(국부)과 권력(국력)만 추구하는 집단이다. (교수님)

  새로운 우상인 근대 국가는 관습이나 규범 및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었던 민족과는 달리, 오로지 돈과 권력, 국력의 증대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집단이다. 근대 국가는 자신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각 지역의 여러 풍습들을 제거해버린다. 국가가 표준어를 마련하여 각 지방의 사투리를 제거해버린다든가, 농촌의 농민들을 도시의 노동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민족들은 서로 다른 선과 악의 가치를 가지고 선을 추구했지만, 국가는 어떤 단일한 선과 악의 가치를 가지고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가치이든 표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된 표방에 불과하다. (S 프로토콜)

 

*민족(people, das Volk) : 니체는 민족 공동체에서 하나의 정신적인 가치를 같이 추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덕의 내용의 개별성이 개별 행위자뿐만 아니라 행위자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영향을 또 받을 거 같다. (D) 맞다. 백승영 교수가 특히 잘 지적해주는 부분이지만, 니체에게 있어서 고립된 사물은 없으니까. (J) 존재론과 연결된다. (D) 1885-1888사이에 구상된 힘에의 의지의 존재론이다. (J)

 

많은 사람들에게 덫을 놓고는 그것을 국가라고 부르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파괴자들이다. 그들은 사람들 위에 한 자루의 칼과 백 개의 욕망을 걸어놓곤 하지.

Destroyers, are they who lay traps for many, and call it the state: they hang a sword and a hundred cravings over them.

Vernichter sind es, die stellen Fallen auf für Viele und heissen sie Staat: sie hängen ein Schwert und hundert Begierden über sie hin.

: 국가는 다양한 민족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겠다고 유혹하고서는 칼로 그들을 다스린다. (S 발제문)

  국가가 무력을 통해서 팽창하고자 하는 자신의 야망에 부응하면 자신이 획득하는 부를 통해 국민들의 다채로운 욕망을 충족시켜주겠다고 약속을 내건다는 말로 보인다. 실제로 근대 국가는 식민지로부터 엄청난 부를 약탈해와서 자기 국민의 백 가지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다. (교수님)

 

진정, 죽음의 설교자들에게 추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Truly, it beckons to the preachers of death!

Wahrlich, es winkt den Predigern des Todes!

: 국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지게 한다. 옛날 기독교가 신을 위해 순교하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의 국가는 자신을 위해 순교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교수님)

 

*기다란 귀(the long-eared and short-sighted, Langgeohrte und Kurzgeäugte) : 기다란lang)과 짧은(kurz), (Ohr)와 눈(Auge)을 대립시킨 언어유희. 듣기만 하는 자와 멀리 보지 못하는 자는 창조자일 수 없다. (역주) 니체는 기다란 귀 또는 당나귀 귀 같은 표현으로 어리석은 자들을 의미하곤 한다. 지혜로운 자는 귀가 짧다고 말하기도 한다. (교수님)

 

*위대한 영혼들(great souls, grossen Seelen) : 국가는 잉여인간들을 위해 고안되었지만, “위대한 영혼들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뻗는다. 이들은 옛 신”, 즉 기독교적 신을 거부했지만 그 싸움으로 인해 지쳐 국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버리고는 만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는 신이 죽은 후에 나타난 새로운 우상인 것이다. 국가는 위대한 영혼들을 미끼로 너무나도-많은-자들”, 즉 잉여인간들을 꾀어낸다. (S 발제문)

  “위대한 영혼들은 초인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영혼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기꺼이 내줘버리는”, 즉 낭비하는 풍족한 심정을 가진 자들이다. 니체는 다른 곳에서 천재를 자신의 재능이 능력이 넘쳐 흘러서 기꺼이 낭비하는 자들이라고 정의한다. 국가는 이들의 심정을 이용해 국가를 위해 기꺼이 한 목숨 바치도록 이들을 이용해먹는다.

  “옛 신의 정복자들은 기독교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들은 기독교와 투쟁을 하는 가운데서 지쳤고, 이들이 허무주의에 지배당하고 있는 틈을 타 국가는 이들의 새로운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국가는 이러한 영웅들과 영예로운 자들의 지지를 받고자 하고, 그래서 부와 명예로 이들을 유혹한다. 나아가 국가는 이들을 미끼로 일반 국민들(“많은-너무나도-많은 자들”)의 충성심마저 받아내고자 한다. (교수님)

 

그대들을 미끼로 국가는 많은 너무나도 많은 자들을 꾀어내려 한다! 그렇다. 그러기 위해 지옥과도 같은 요지경, 신적인 영예로 장식되어 쩔렁거리는 죽음의 말이 고안되었다.

It seeks to allure by means of you, the many-too-many! Yes, a hellish artifice has here been devised, a death-horse jingling with the trappings of divine honors!

Ködern will er mit euch die Viel-zu-Vielen! Ja, ein Höllenkunststück ward da erfunden, ein Pferd des Todes, klirrend im Putz göttlicher Ehren!

: 처음에 지옥과 같은 요지경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고, “신적인 영예로 장식되어 쩔렁거리는 죽음의 말이 그러한 자연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절대국가라고 보아, 니체가 이 대목에서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비판하는 것으로 읽었다. 하지만 이렇게 읽었을 때 국가가 위대한 영혼들을 미끼로 일반 국민들까지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앞의 맥락과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원문을 보니 애초에 지옥과 같은 요지경지옥과 같은 계책으로 번역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니체는 이 대목에서 국가가 위대한 영혼들을 앞세워 일반 국민들까지 충성시키는 것이 저 옛날 트로이 목마 계책과 유사한 지옥과 같은 계책임을 말하고 있다고 읽어야 할 것이다. (사견)

 

*잉여인간들(superfluous ones, Überflüssigen) : 차라투스트라는 국가 속 잉여인간들의 행태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열거하며 비판한다. 1) ‘교양(Bildung; culture)’ - 잉여인간들의 교양/교육/문화는 이들이 직접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국가 이전에 있던 민족의 창조자들의 양속을 훔쳐온 것에 불과하다. 2) ‘신문’ - 잉여인간들이 신문에 의견이랍시고 싣는 것들은 사실상 아무것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담즙에 불과하다. , 여러 민족들의 가치 체계들이 하나로 융화되지 못한 채 언어적 혼란만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3) 축재와 권력다툼 - 잉여인간들은 권력을 위한 도구로서 재산을 축적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정신은 더욱 가난해져갈 뿐이다. 왕좌에 오르기 위해 권력다툼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서로 뒤엉켜 진창으로 떨어지는 원숭이와도 같다. (S 발제문)

  1) 흔히 비판되는 근대인의 교양은 지식을 위한 교양, 즉 내면을 풍부하게 만들지 않고 머리만 커지게 하는 교양이다. 그런데 여기서 교양은 그런 의미의 교양보다는 국가를 정당화하고 국가를 찬양하는 데에 사용되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보인다. 2) 여기서 담즙은 여러 가지 이해집단이 가지고 있는 불만과 분노를 가리킨다. (독일어 Galle는 비유적으로 분노, 불쾌, 악의를 의미한다. - 네이버 독일어사전) 신문은 서로를 헐뜯고 다투기만 한다. 우리나라 신문들도 그렇다. 진영이 완전히 나눠져있다. 조선일보와 한겨례를 같이 읽어보면 서로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의아할 수준이다. 이들은 결코 서로 입장을 이해하여 합일점에 도달하지 못한다(“서로를 집어삼키기만 할뿐 소화하지는 못한다.”). 3) 원숭이들이 뒤엉키는 꼴은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교수님)

  앞선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에 대하여에서 누런 사람들에 대한 교수님 해석과 여기서 담즙에 대한 교수님 해석은 수업 중에는 솔직히 과잉해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런 사람들은 영혼이 병든 사람들, “담즙은 더러운 의견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 결과 교수님 해석이 각각 기독교 문화와 독일어 관용 표현에 기반하고 있는 해석임을 깨닫고 정말 놀랐다. 탁월한 해석은 탁월한 논증만큼 해내기 어렵다. (사견)

 

위대한 영혼들에게 대지는 아직 활짝 열려 있다. 고요한 바다 내음이 감도는 자리는, 홀로 사는 자나 둘이서 사는 자들을 위한 자리는 아직도 많이 비어 있다. // 위대한 영혼들에게 자유로운 삶은 아직 활짝 열려 있다. 진정, 적게 소유하는 자는 사로잡히는 일도 그만큼 적을 것이다. 복 있도다, 조촐한 가난은!

Open still remains the earth for great souls. There are still many empty seats for the lonesome and the twosome, fanned by the fragrance of silent seas. // Open still remains a free life for great souls. Truly, he who possesses little is so much the less possessed: praised be a little poverty!

Frei steht grossen Seelen auch jetzt noch die Erde. Leer sind noch viele Sitze für Einsame und Zweisame, um die der Geruch stiller Meere weht. // Frei steht noch grossen Seelen ein freies Leben. Wahrlich, wer wenig besitzt, wird um so weniger besessen: gelobt sei die kleine Armuth!

: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국가 속, 이 모든 악취나는 잉여인간들의 행태를 보고서도 희망을 거두지 않는다. 이미 한 번 옛 신을 이겨낸 위대한 영혼들에게는 아직 대지와 자유로운 삶이 열려 있다. 이들이 국가라는 새로운 우상을 섬기기를 그만둘 때, 그는 초인이 되어갈 수 있을 것이다. (S 발제문)

  “홀로 사는 자나 둘이서 사는 자는 고독한 자나 우정을 나누는 자를 의미한다. “조촐한 가난”, 즉 청빈을 권유하는 이유는 소유물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교수님)

 

 

(수업 : 박찬국, <존재론연습> (2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