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현대대륙철학 일차문헌

[니체] 「중력의 정신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11장)

현담 2023. 6. 1. 21:05

*중력의 정신(the spirit of gravity, Geist der Schwere) : ‘중력의 정신은 인간과 삶과 세상 전체를 무겁게 만들고 퇴락시키는 정신으로, 이것 자체가 병리성이며, 사람들도 병들게 한다, 중력의 정신은 3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에서는 차라투스트라 내면의 목소리의 형태로, 1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에서는 정신의 비극적 엄숙성으로 표명된다, 정신의 가벼움과 무거움은 천박 대 진중의 의미가 아니다. 자유로움과 구속, 경쾌함과 짓눌림, 명랑성과음울, 긍정과 부정의 대립을 의미한다. (역주)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중력의 정신과 적대적이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의 천성이다.

And especially that I am hostile to the spirit of gravity, that is bird-nature:

Und zumal, dass ich dem Geist der Schwere feind bin, das ist Vogel-Art:

: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을 중력의 정신과 적대적이라 선언하며, 이를 새의 천성이라 말한다. 중력은 신체를, 그리고 정신을 땅으로, 아래로 끌어내리고 무겁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중력의 정신에 대해 다음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W 발제문)

 

언젠가 사람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칠 자는 모든 경계석을 옮기게 된다. 모든 경계석들이 제 스스로 그가 있는 곳으로부터 공중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는 대지에 가벼운 것이라는 새로운 세례명을 줄 것이다. // 타조라는 새는 가장 빠른 말보다도 더 빨리 달리지만, 아직도 머리를 무거운 대지 속에 무겁게 처박고 있다. 아직 날지 못하는 인간도 머리를 무거운 대지 속에 무겁게 처박고 있다. // 그에게 대지와 삶은 무겁기만 하다. 바로 이것이 중력의 정신이 바라는 바다! 하지만 가벼워지기를 원하고 새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가르친다.

He who one day teaches men to fly will have shifted all landmarks; to him will all landmarks themselves fly into the air; the earth will he christen anew - as "the light body." // The ostrich runs faster than the fastest horse, but it also thrusts its head heavily into the heavy earth: thus is it with the man who cannot yet fly. // Heavy to him are earth and life, and so wills the spirit of gravity! But he who would become light, and be a bird, must love himself: - thus do I teach.

Wer die Menschen einst fliegen lehrt, der hat alle Grenzsteine verrückt; alle Grenzsteine selber werden ihm in die Luft fliegen, die Erde wird er neu taufen - als "die Leichte." // Der Vogel Strauss läuft schneller als das schnellste Pferd, aber auch er steckt noch den Kopf schwer in schwere Erde: also der Mensch, der noch nicht fliegen kann. // Schwer heisst ihm Erde und Leben; und so will es der Geist der Schwere! Wer aber leicht werden will und ein Vogel, der muss sich selber lieben: - also lehre ich.

: “가벼운 것이라는 세례명은 무거운 경계석이 의미하는 중력의 정신과 반대되는 것이다. 대지는 이 유한한 세계를 가리키며, 초월세계에서 비롯된 무거운 경계석에서 벗어나 가벼운 것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타조는 중력에서 벗어나 날지 못하며,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경계석이 늘어선 대지와 그 위의 삶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무겁기만 하다. 이러한 무거운 삶에서 벗어나 가벼워지기 위해 차라투스트라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W 발제문)

  “경계석은 인간들의 자연스런 욕망을 억압하고 악으로 타부시하는 기존의 가치관을 의미한다. 기존의 가치관에서는 선과 악을 나누어,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선, 인간의 욕망을 악이라 본다. 그런 모든 경계석을 거부하는 자는 대지에다가 가벼운 것이라는 새로운 세례명을 줄 것이다. 대지는 현실세계에서 우리의 삶이다. 기존의 가치관 하에서 우리가 너무나 무겁고 힘겨운 것이라 여기는 것이지만, “나는 법을 가르칠 자에게는 가볍고 즐겁고 기쁜 것이다.

  “타조<배후세계론자들에 대하여>에서도 등장했었다. 그때 타조는 현실의 고통과 고난을 두려워하면서 피안의 세계에 머리를 처박는 배후세계론자들을 가리켰다. 여기서도 타조는 무거운 대지 속에 머리를 무겁게 처박지만, 여기서는 피안세계도 부정하지만 현실세게를 힘겹고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염세주의자를 가리키는 것 아닌가 싶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자연스런 욕망을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이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중력의 정신과 그에서 비롯된 가치관들이다. 중력의 정신들에 의해서 사로잡힌 인간은 정신의 삼단계에서 보았던 낙타와 같다. (교수님)

 

그러니까 소유자에게 그 자신의 것들이 잘 숨겨져 있는 것이다. 모든 보물창고 중에서 자기 자신의 것이 가장 늦게 발굴되는 것이지. 중력의 정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 거의 요람에서부터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거운 말과 가치를 지참물로 넣어준다. “그리고 ”, 그 지참물은 자신을 이렇게 부르며, 그것 덕택에 우리는 생존을 허락받는다. // 사람들은 아이들의 자기 사랑을 제때 막아버리려고 아이들을 불러 저들 곁으로 오게 한다. 중력의 악령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For to its possessor is all possession well concealed, and of all treasure-pits one's own is last excavated - so causes the spirit of gravity. // Almost in the cradle are we apportioned with heavy words and worths: "good" and "evil" - so calls itself this dowry. For the sake of it we are forgiven for living. // And therefore suffers one little children to come to one, to forbid them betimes to love themselves - so causes the spirit of gravity.

Für seinen Eigener ist nämlich alles Eigene gut versteckt; und von allen Schatzgruben wird die eigne am spätesten ausgegraben, - also schafft es der Geist der Schwere. // Fast in der Wiege giebt man uns schon schwere Worte und Werthe mit: "gut" und "böse" - so heisst sich diese Mitgift. Um derentwillen vergiebt man uns, dass wir leben. // Und dazu lässt man die Kindlein zu sich kommen, dass man ihnen bei Zeiten wehre, sich selber zu lieben: also schafft es der Geist der Schwere.

: 그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덕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이기성은 악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자기 안의 보물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중력의 정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주입된다고 보았다. 선과 악의 기준을 내재화하고 그 질서에 따라야만 우리는 이 사회에서 생존을 허락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직 도덕주의가 내면화되지 않은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기회가 있었지만,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도덕적 교육은 그들에게도 중력의 정신을 부과한다. 이처럼 중력의 정신을 지니는 인간은 낙타와 같으며, 그의 삶은 황량한 사막과 같다. 그의 것이 아닌 사상과 도덕적 가치를 계속해서 몸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W 발제문)

 

실로 자기 자신의 것이라 해도 그중에는 짊어지기 어려운 것이 많다! 게다가 인간 내면에 담긴 많은 것들은 굴 같아서, 말하자면 역겹고 미끄덩거려 붙잡기가 어렵다. // 그러니 고상하게 치장한 고상한 껍질이 중재를 해야만 한다. 이 같은 기예도 사람들은 배워야만 한다. 껍질을 갖는 법과 아름다운 외관을 갖추는 법과 영리하게 눈감는 법을! // 인간의 많은 면들이 거듭 왜곡되고 있다. 많은 껍질들이 볼품없고 빈약하고 또 너무나 껍질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니 숨겨져 있는 그 많은 선의와 힘은 드러난 적이 없을 수밖에. 가장 맛있는 것이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And truly! Many a thing also that is our own is hard to bear! And many internal things in man are like the oyster - repulsive and slippery and hard to grasp;- // So that an elegant shell, with elegant adornment, must plead for them. But this art also must one learn: to have a shell, and a fine appearance, and sagacious blindness! // Again, it deceives about many things in man, that many a shell is poor and pitiable, and too much of a shell. Much concealed goodness and power is never dreamt of; the choicest dainties find no tasters!

Und wahrlich! Auch manches Eigene ist schwer zu tragen! Und viel Inwendiges am Menschen ist der Auster gleich, nämlich ekel und schlüpfrig und schwer erfasslich -, // - also dass eine edle Schale mit edler Zierath fürbitten muss. Aber auch diese Kunst muss man lernen: Schale haben und schönen Schein und kluge Blindheit! // Abermals trügt über Manches am Menschen, dass manche Schale gering und traurig und zu sehr Schale ist. Viel verborgene Güte und Kraft wird nie errathen; die köstlichsten Leckerbissen finden keine Schmecker!

: 그러나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해도 그것들을 발견하여 음미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어떤 것들은 굴처럼 역겹고 미끄덩거리기 때문에 고상하게 치장한 껍질의 중재가 필요하다. 그것이 역겹고 미끄덩거리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중력의 정신으로 인해 무거운 상태기 때문일 것이다. 중력의 정신으로 판단하기에 우리 내면의 것들은 마치 진짜 내장을 보는 것처럼 날 것의 상태이며 금기시되는 것들로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중재할 치장된 껍질, 아름다운 껍질이 필요하다. 인간의 많은 면들이 왜곡되는 것이 볼품없고 빈약한 껍질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는 금욕주의적 사상에 의해 신체, 그리고 신체에 종속된 인간의 자연성이 폄훼되고 초라한 것으로 왜곡된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의 이러한 부분을 다시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함으로써 우리는 내면의 보물, 즉 그 많은 선의와 힘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W 발제문)

  해석하기 애매한 부분이 다소 많다. “실로 자기 자신의 것이라 해도 그중에서 짊어지기 어려운 것이 많은 이유는 중력의 정신에 의해서 파악된 인간 내면이 악으로 가득하기 떄문이다. 이원론, 염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모두 다 중력의 정신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생기는 사상들인데, 그런 것들에 입각해서 보면 인간의 내면은 역겹다. “미끄덩거려서 붙잡기 힘들다는 것은 내면의 욕망과 충동들을 통제하기 힘들다, 혹은 이원론적 정신에 입각하면 근절하려고 하지만 근절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보인다.

  “껍질은 외부로 드러난 삶의 모습과 행동을 가리킨다. “고상하게 치장한 껍질이 중재를 해야만 한다.”는 말은 고상하고 기품있는 인간처럼 행동하고 살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기 내면이 고상해지고 기품있어진다는 의미로 보인다. “영리하게 눈감는 법은 자기의 약점을 무시할 필요가 있고, 자기의 긍정적인 점들과 가능성을 봐야한다는 말 같다. 우리는 외면으로라도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려고 해야 한다. 이후 부분에서 나오는데, 차라투스트라도 새처럼 날기 전에 우선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부터 배웠다고 한다. 중력의 정신을 이겨내고 새처럼 날기 위해서, 즉 경쾌하고 가볍게 살기 위해서는 그 전에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단박에 날아오를 수는 없으니 먼저 외관으로라도 건강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외부로 드러난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볼품없다. 다시 말해, 건강한 기품이라는 것이 없다. 예컨대 니체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일이 동정을 갈구하는 기품없는 일이라고 본다. 사람들의 삶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 선의와 힘”, 즉 긍정적인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은 어른들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모습을 보다 보니 고유의 잠재적 능력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결국 그동안에 우리가 보아왔던 삶의 모습들이 너무나 초라하다 보니 우리는 우리 내면의 많은 선의와 힘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자기 내면의 풍요로운 을 사람들이 맛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수님)

 

인간은 발견해내기 어려운 존재다. 자기 자신을 발견해내는 것은 가장 어렵다. 정신이 영혼에 대해 거짓말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중력의 정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 그렇지만 자기 자신을 발견해낸 자는 이것이 나의 선이요 나의 악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만인의 선과 만인의 악운운하는 두더지와 난쟁이의 입을 막아버린다.

Man is difficult to discover, and to himself most difficult of all; often lies the spirit concerning the soul. So causes the spirit of gravity. // He, however, has discovered himself who says: This is my good and evil: therewith has he silenced the mole and the dwarf, who say: "Good for all, evil for all."

Der Mensch ist schwer zu entdecken und sich selber noch am schwersten; oft lügt der Geist über die Seele. Also schafft es der Geist der Schwere. // Der aber hat sich selber entdeckt, welcher spricht: Das ist mein Gutes und Böses: damit hat er den Maulwurf und Zwerg stumm gemacht, welcher spricht "Allen gut, Allen bös."

: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중력의 정신 때문이다. 이 중력의 정신은 자신의 영혼, 즉 자신의 내면에 대해 왜곡하고 거짓말을 하여 발견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일단 자기자신을 발견해낸 자는 자신만의 도덕을 만들어낸 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력에 구속된 난쟁이나 두더지의 보편적 선과 악에 맞설 수 있다. (W 발제문)

  인간은 자기 내면의 잠재적인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발견하기 어렵다. 중력의 정신이 우리 인간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견을 심어놓기 때문이다. “정신영혼에 대해 거짓말을 자주한다. 여기서 정신은 의식적인 지성, 그중 이원론이나 염세주의에 사로잡힌 지성을 뜻한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경우 인간의 욕망을 추악한 것으로 묘사하며 그로부터 온갖 갈등과 투쟁이 생겨간다고 본다. 반면 영혼은 니체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에서 커다란 이성이라 말했던 몸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영혼은 거기서 자기(selbst)이고, 여기서 정신은 거기서 자아(ich)이다.

  “이것이 나의 선이요 나의 악이다.”는 상대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위험한 말이다. 보편적인 선악이 없고 각자에게 맞는 선악이 있다고 하면 상대주의에 빠지는 건데, 니체는 상대주의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하느냐가 문제이다, 들뢰즈식 해석은 니체가 인간의 다양성 차이를 강조했다는 식으로 이런 말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런데 니체는 어디까지나 고귀한 인간의 유형이 있다고 보았다. 건강하고 귀족적인 인간이 있고, 병적이고 노예적인 인간이 있는데, 니체는 귀족적이고 기품있는 인간이 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나의 선이요 나의 악이라는 말은 만인의 선과 만인의 악과 대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에게 각자의 개성에 고유한 선과 악이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사실 귀족적이고 기품있는 인간이 말하는 선과 악을 가리킨다. “나의 선나의 악은 각각 나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선이고, 나의 삶을 병약하게 만드는 악이다. (교수님)

 

정말이지 나는 모든 것을 다 좋다 하고 심지어는 이 세계를 최선이라고 하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자를 나는 매사에 만족하는 자라고 부른다.

Truly, neither do I like those who call everything good, and this world the best of all. Those do I call the all-satisfied.

Wahrlich, ich mag auch Solche nicht, denen jegliches Ding gut und diese Welt gar die beste heisst. Solche nenne ich die Allgenügsamen.

: 라이프니츠식의 낙관주의에 따르면, 완전한 신이 이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생각할 수 있는 세계중에 가장 좋은 세계이다. 니체도 영원회귀사상을 이야기하면서 이 세계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세게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면 니체도 낙관주의적 세계관과 상당히 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분명히 낙관주의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있다. 니체는 자신을 이 세계를 최선이라 부르는 사람, 예컨대 라이프니츠나 헤겔과 -헤겔에게 있어서 이 세계는 절대정신이 자기를 전개하는 세계니까- 구분하며, 이런 사람들을 매사에 만족하는 자라고 비판한다. (교수님)

 

*취향(taste, der Geschmack) : 자신만의 도덕을 찾아낸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좋아할 수 없다. 자신만의 좋고 나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일에 까다로우며, 분명한 취향과 선택을 가진다. 도덕주의적인 보편적 선악에 휘둘리는 자들은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으며 주변인들을 따라가기 바쁘다. 따라서 그것이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인내하며 씹어삼키는 것이다. (W 발제문)

  “모든 것을 맛있게 느끼는 전적인 만족은 가장 훌륭한 취향이 아니다. 훌륭한 취향은 기품있는 것, 우아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지, 모든 것이 다 동일하다고 보는 취향이 아니다. 요새 포스트모던적 사고방식의 경우, 클래식과 대중적인 예술 사이에 큰 차이 없다, 다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이렇게 보는 건데, 니체 같으면 취향에 있어서도 분명한 수준의 차이가 있다, 예술에서도 고상한 예술이 있고 그렇지 않은 예술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앞서 이 세계를 최선의 세계라고 하는 자들은 무엇이 고귀하고 무엇이 저열한 것인지 구분하지 않고, 그런 게 어디있냐, 모든 게 다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는 자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아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운 기품있고 고귀한 는 어떤 것은 기품있는 것이고 어떤 것은 아니다, 라고 까다롭게 구별하는 취미(“혀와 위장”)를 가진다.

  니체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보다도 취미가 그 사람의 참된 상태를 보여준다고 본다. 말로는 되게 고상한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취미가 저열하고 천박할 것일 수 있다. 취미는 여기서는 영혼이라고 표현되는 우리들의 신체의 상태가 가장 잘 드러낸다. 저열하다고 어떤 것들은 부정할 줄 모르고, 무엇이든 씹고 소화하는 것은 그건 돼지의 특성이다. 기존의 가치관에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는 것은 나귀와 나귀 정신이다. 니체는 나귀긴 귀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과 함께 어리석은 자를 가리킬 때도 쓴다. (교수님) 나귀의 울음소리로 묘사되는 -(I-a)’는 독일어의 ‘Ja’, 와 발음이 유사하다. (사견)

 

심원한 노랑과 뜨거운 빨강. 내 취향은 이것을 원한다. 내 취향은 모든 색에 피를 섞는다. 자기 집에 회칠이나 하는 자는 회칠하는 영혼을 드러낼 뿐이다. // 어떤 자는 미라에, 어떤 자는 유령에 빠져든다. 둘 다 살과 피 일체에 적대적이다. , 이 얼마나 내 취향에 거슬리는 자들인지! 내가 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Deep yellow and hot red - so wants my taste - it mixes blood with all colours. He, however, who whitewashes his house, betrays to me a whitewashed soul. // With mummies, some fall in love; others with phantoms: both alike hostile to all flesh and blood - oh, how repugnant are both to my taste! For I love blood.

Das tiefe Gelb und das heisse Roth: so will es mein Geschmack, - der mischt Blut zu allen Farben. Wer aber sein Haus weiss tüncht, der verräth mir eine weissgetünchte Seele. // In Mumien verliebt die Einen, die Andern in Gespenster; und Beide gleich feind allem Fleisch und Blute - oh wie gehen Beide mir wider den Geschmack! Denn ich liebe Blut.

: “노랑은 오류, 가상의 색이다. “심원한 노랑은 힘에의 의지가 자기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가상인데, 초인도 하나의 가상이라고 니체가 이야기하므로 초인도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병적인 가상도 있겠지만, “심원한 노랑은 건강한 의미의 가상을 의미한다. “빨강은 정열, 생명력, 건강한 힘에의 의지의 색이다. “또한 건강한 생명력을 가리킨다.

  “회칠하는 자는 실속은 없는데 외양은 꾸미는 자들이다. “미라유령은 생명력이 결여된 덕을 가리킨다. 금욕주의적 덕, 예컨대 겸허나 순결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것을 숭배하고 추종하는 자들이 자기 취미에 거슬린다고 차라투스트라가 이야기한다. 니체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기품있는 인간들의 경우, 소매치기 등 좀도둑이 하는 것들에 대하여 악하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그런 행위가 자기 취미에 거슬릴 것이다. 그런 것은 들키지 않을까봐 조바심내는 그런 인간들이 하는 것이다. 아마 기품있는 인간은 돈은 없는데 배가 너무 고프게 된다면 슈퍼 주인에게 가서 먹을 것을 좀 달라, 나중에 몇배로 갚겠다, 라고 이야기할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줄 주인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기품있는 인간은 자신을 못 믿는 데에 대해 혼을 내거나 강도질을 하고는 나중에 몇 배로 갚을 것 같다. (교수님) 도둑질이냐 강도질이냐 선택을 한다면 기품있는 인간은 강도질을 할 것 같다는 말씀으로 보이는데 예시가 다소 극단적이다. 실제로 기품있는 인간이라면 그래도 실천적 지혜를 잘 활용해서 강도질까지는 하지 않고 허기를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을까. (사견)

 

나는 모든 인간들이 침을 뱉고 토하는 곳에서 살고 싶지도 머물고 싶지도 않다. 이것이 내 취향이다. 차라리 나는 도둑과 위증자들 틈에서 살겠다. 이들 누구도 입에 금덩이를 물고 있지는 않으니.

And there will I not reside and abide where everyone spits and spews: that is now my taste, - rather would I live among thieves and perjurers. Nobody carries gold in his mouth.

Und dort will ich nicht wohnen und weilen, wo Jedermann spuckt und speit: das ist nun mein Geschmack, - lieber noch lebte ich unter Dieben und Meineidigen. Niemand trägt Gold im Munde.

: “침을 뱉고 토하는것은 너는 왜 금욕주의적으로 살지 않느냐는 식으로 서로를 기존의 가치관에 따라 중상하고 비방하는 일일 것이다. 교회에서는 할머니들이 헌금을 왜 그것밖에 안 내냐고 서로 많이들 싸운다고 하는데, 이런 일들을 니체가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다. “도둑과 위증자들은 기존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자들이다.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에서 창백한 범죄자는 나름대로 기존의 가치를 넘어서려고 하는 생명력을 가진 자였지만, 자기의 충동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에 자기의 충동을 실현할 방향을 살해나 도둑질로 오해하는 자라고 이야기했었다. 여기서도 기존의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는 자들이지만 사실 비난하는 자들보다는 나은 자들로 보인다. “황금을 물고있는 행위는 이원론적 가치관에 따라서 나는 선한 사람이다하는 식으로 자기를 치장하며 위선을 떠는 행위로 보인다. (교수님)

 

*아첨꾼들(lick-spittles, Speichellecker) : 기존의 가치관이나 기득권에 아첨하는 자들로 보인다. (W) 그렇게 볼 수도 있겠고, 이웃사람들이나 신에게 아첨하는 자들로 볼 수도 있다. 이들은 이웃이나 신을 정말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의 사랑과 위로를 받기를 원한다(“이 짐승은 사랑은 하지 않으려면서 사랑을 먹고 살기를 원했다.”). (교수님)

 

*악한 짐승(evil beasts, böse Thiere), 악한 조련사(evil beast-tamers, böse Thierbändiger) : 악한 짐승은 자신의 열정/충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들을, 악한 조련사는 열정/충동을 근절하려고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님)

 

*항상 기다려야만 하는 자들(those who have ever to wait, Die, welche immer warten müssen) : <왕들과의 대화>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왕들에게 기다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들은 기다리기만 하고 자기극복을 위한 노력을 안 하는 자들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교수님) 차라투스트라는 이들의 예시로 세리, 소상인, , 그리고 땅이나 지키고 가게나 치키는 자들을 든다. 일상적 업무에 매몰되어 자기극복의 도정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출발선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자들로 보인다. (사견)

 

*나 자신을 기다리기(waiting for myself, das Warten auf mich) : 물론 차라투스트라 역시 인내하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내면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자기의 진리에 도달하기까지 그는 다양한 길과 다양한 방법을 거쳤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창문을 기어올랐으며, ‘하나의 사다리만을 타고 오른 것도 아니었다.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또한 다양한 길을 거치며 헤매야 할 필요도 있다. 그것은 단 하나의 진리를 추종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다양한 진리들 중 하나로서 자신의 진리,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이를 통해 찾은 내 취향은 나에게만 진리이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이들에게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으며,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것도 아니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진리가 있고, 그 높은 곳에 도달하는 방법 또한 모두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보편적인 단 하나의 바로 그 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W 발제문)

  차라투스트라의 자기를 기다림은 그저 수동적인 기다림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적극적인 자기찾기이며, 그것을 위해 그는 여러 가지를 배워야 했고, 그 후에야 비로소 그는 최고의 지혜와 가벼움과 명랑성을 동시에 갖춘 자유정신(‘새의 정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최고 지혜를 얻고서도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자신의 최고 지혜뿐만 아니라 그의 자기찾기 과정마저 세상과 공유하고자 한다. 인간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역주)

 

이것이 이제 내 길인데 그대들의 길은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내게 길에 대해물었던 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말하자면 바로 그 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This - is now my way, - where is yours?" Thus did I answer those who asked me "the way." For the way - it does not exist!

"Das - ist nun mein Weg, - wo ist der eure?" so antwortete ich Denen, welche mich "nach dem Wege" fragten. Den Weg nämlich - den giebt es nicht!

: 니체는 보편적인 길을 부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자의 취미는 주관적인 것이고 무엇이 건강하고 무엇이 병적인지를 따질 수가 없다는 주관주의/상대주의는 아니다. 초인적인 인간들, 기품있는 인간들의 경우 독특한 취미가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런 이상적인 인간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의 단계들에 위치한다. 그 위치에 따라 각 사람의 수준에 맞는 자기극복의 방식들이 있겠다. 그러므로 취미나 자기극복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기보다는 수준마다 다르다고 말하는 게 니체가 원래 말하고자 하는 바에 부합하는 거 아닌가 싶다. 정신의 삼단계에서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성숙해지는 어느 정도의 보편적인 단계들을 이야기했다. 여기서도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 싶다. 요새 사람들이 다양성, 차이를 내세우면서, 자기네 입장을 정당화하는 철학자로서 니체를 끌어들이는데, 그런 식의 해석은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어긋나는 것 같다. 니체가 말하는 귀족적인 자-노예적인 자, 기품있는 자-저열한 자, 건강한 자병적인 자의 구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교수님)

 

Q: 취미가 있다면 건강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 아닌가? 낮은 수준의 취미라는 것이 성립하는가? (W)

A: 니체가 단계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법을 배우려는 자는 우선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건강한 취향이라 하더라도 단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처음부터 완전한 인간은 없는 것이고 점차 완전한 수준으로 올라가는 구도로 보았을 때 수준마다 취미라는 것이 성립한다. (교수님)

 
 
(수업 : 박찬국, <존재론연습> (2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