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현상학 일차문헌

[후설] 『사물과 공간』 3부 "운동적 지각 종합 분석. 지각 변화와 현출 변화" - 주요 인용

현담 2023. 8. 23. 21:10

5장 정지한 사물이 지각의 연속적 경과에서 주어짐

 

이제까지는 현상학적으로 불변하는 지각을 다루었다. 그리하여 불변하는 지각에서는 불변하는 대상이 현출함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대상의 변화가 현출의 변화에서만 구성될 수 있음은, (선현상적 의미에서) 그 자체 변화하는 지각에서만 주어질 수 있음은, 쉽게 통찰되고 명증해지기 때문이다. 불변 지각에는 시간적 연장이 있으나, 시간적 연장은 연속적으로 동일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불변하는 지각은 [변화하는 지각의] 한계사례로서, 일종의 이념화하는 허구로 보인다. 왜냐하면 위치와 자세의 변화들이 없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안구] 조절에서 움직이는 시선에서의 변화는 결코 없을 수 없기 떄문이다. (2(3, 4)의 연구 지대 획정 : 불변하는 지각 / 추가 연구의 가능성 한계사례와 이념화하는 허구의 현상학적 분석에서의 지위 / 가장 기초적인 시각적 운동 : 안구 조절 운동. §26 지각 변화의 여러 가능성)

*조절(Akkommodation) : 대상의 원근변화 등에 따라, 초점을 맞추기 위해(망막에 선명한 상이 맺히게 하기 위해) 안구가 수정체 두께나 동공 크기 등을 자동적으로 조절하는 현상. (역주)

 

여기에서 우리는 연속성에 대해서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재차 이중적 의미에서 이야기한다. [1] 한편으로 연속성은 (모든 신장 일반과 마찬가지로) 시간적 신장 자체의 본질이다. [2] 다른 한편 연속성은 신장을 채우는 것에 관계하며, 여기에서는 시간을 채우는 것에 관계한다. [2-1] 지각이 변화할 때, 이 변화는 순간적 도약일 수도 있다. [...] [2-2] 그러나 [지각의] 변화는 연속적 변화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이 연속적 변화는 [2-2-1] 한결같을 수도 있고, [2-2-2] 몇몇 도약들에 의해 단절될 수도 있다. (구별 : 시간적 신장 자체의 연속성과 시간을 채우는 것의 연속성. §26 지각 변화의 여러 가능성)

*공간적 연속성의 이중적 의미(공간적 연장 자체에 속하는 연속성과 공간적 연장을 충족하는 규정들의 연속성)에 대해서는 §21을 참조. (역주)

 

시간을 채우는 것은 매 순간마다 진정 동일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절대적 같음의 자리에 단적인 같음을 두어야 하는데, 이러한 같음이 내포하는, 감지되지 않는 다름이나 비슷함에서는 간극들이 감지될만큼 드러나지 않는다. (구별 : 절대적 같음과 단적인 같음. §26 지각 변화의 여러 가능성)

 

변화하는 지각에서 현출하는 개별 사물대상에 있어서는, 다음의 가능성들이 있다. [...]

 

(요약) (역주)

. 운동 : a. 자아 운동, b. 대상 운동, c. 자아 및 대상 운동

. 대상의 성질 변화 : [a.] 기하학적 규정(몸체) 변화 [b.] 질료적 규정 변화

. 대상의 운동(.b.) 및 성질 변화(.) (구별 : 변화하는 지각에서의 사물 현출 가능성들 삼분. §26 지각 변화의 여러 가능성)

 

보다 완전하게 서술하려면, 사물지각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사물은 시간에서 존재하고 자신의 시간을 지닌다. 사물은 이 시간 속에서 지속하고 생성하고 소멸하며 움직이거나 질적으로 변한다. 사물은 시간 안에 있지만, 시간을 본래적 의미에서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성은 사물을 구성하는 규정이 아니다. 이에 비해 시간성은 시간적으로 펼쳐진 대상들, 사건들, 변화들을 구성하는 규정이다. 우리가 변화하는 대상이 아니라 대상의 변화를 지각의 대상으로 삼을 때 그러하다. 여기에서는 이를 도외시하도록 하자. (연구 지대의 획정 : 시간성의 도외시 / 추가 연구의 가능성 : 시간성은 사물성의 본질이지만(§19-20) 사물을 구성하는 규정이 아니다? §26 지각 변화의 여러 가능성)

 

우리는 [변화하는 지각현출 중에서도] 이제까지 다루었던 불변하는 지각현출 사례와 최대한 비슷한 사례를 우선 선택했다. 이는 연속적으로 통일적인 현출 다양체를 고찰하는 것인데, 이 다양체에서는 불변하는 대상이 연속적으로 현시된다. [...]

우리는 여기에 관련된 종류의 지각 변화가 진행할 때, 변화 구간들 사이에는 정지 구간들이 끼어 있다고 생각한다. [...] 예를 들어, 가령 나는 눈을 움직여서 대상의 한 점을 주시하다가 다른 점을 주시하고, 그다음에는 눈을 멈춘 채로 이 정지 대상을 응시한다. [...] 그러면 우리는 연속적 통일체인 전체지각을 불변 지각들이 이루는 하나의 사슬로 간주할 수 있다. 이 사슬은 [각각의 불변 지각들을 잇는] 연속적 이행현상들에 의해 이어지는데, 이 이행현상들 자체도 지각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연구 지대의 획정 : 불변하는 대상이 연속적으로 현시되는 연속적으로 통일적인 현출 다양체. §27 불변 사물의 다양한 현출, 상세규정의 과정)

*앞서 §26의 서술에 따르면, 지각의 변화는 1. 순간적 도약이거나 2. 연속적 변화이며, 이때 연속적 변화는 2.1. 한결같은 연속적 변화이거나 2.2. 몇몇 도약에 의해 단절된 연속적 변화이다. 여기에서는 불변과 최대한 비슷한 사례로서, 도약이 없는 한결같은 연속적 변화를 취하고 있다. (역주)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잠재적] 성향들이 새로이 각성되면 이 성향들에 대응하는 새로운 파악계기들이 덧붙여지며, 이에 의해 대상 표상이 풍부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풍부화는 전혀 원리적으로 필연적이지 않으므로 도외시할 수 있다. 또한 주의의 변양이 초래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기술도 일단 도외시하자.

방금 기술한 주의의 변양들 및 이와 교직되는 국부적 동일화에서는 대상의 세목들이 전체현출의 대상 안에서나 이 대상에 덧붙여져 현출하는데, 이러한 주의의 변양들 및 국부적 동일화는 (불변하는 지각에서나 변화하는 지각에서나) 지각 과정에 (그것의 서로 다른 국면들에서) 동반한다. (연구 지대의 획정 : 주의의 변양의 도외시. §27 불변 사물의 다양한 현출, 상세규정의 과정)

 

이제 이러한 변양들은 도외시하자.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변양들이다. [...] 여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현출 변화들은 분명 현시하는 내용들의 변화이면서 파악의 변화이다. [...] 이러한 파악내용의 변화에 평행하여 파악 변화도 일어난다. [...] 가령 주사위라는 대상을 예로 들어보자. 하나의 현출이 제공한 주사위의 빨간 면이 다른 현출에서는 더 이상 본래적으로 현출하지 않는다. (연구 지대의 획정 : 파악내용의 변화와 그에 따른 파악 변화. §28 현시내용의 변화와 파악의 변화)

 

우리들의 사례에 있어서는, 동일화 종합 일반(현출의 관점에서 대상에의 관계의 동일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의 관계의 의미의 동일성도 있다. 왜냐하면 각 현출은 말하자면 동일 대상을 일반적으로 의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 대상을 동일 방식으로 규정된 대상으로서 의향하기 때문이다. [...] 하나의 현출에서, 정방 평면이 빨간지 아니면 다른 색인지가 열려 있다고 해보자. 또는 하나의 현출에서, (다른 현출에서는 규정적으로 의향되던) 몸체 형태의 상세규정이 규정되지 않는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대상에의 관계는 동일하더라도 의미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구별 : 대상에의 관계의 동일성(Identität der gegenständlichen Beziehung)과 대상에의 관계의 의미의 동일성(Identität des Sinnes der gegenständlichen Beziehung). §28 현시내용의 변화와 파악의 변화)

 

일반적 부합에 토대를 두고, 그다음에 서로 다른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 총체적 부합, 의미의 종속 및 포섭, 규정적 다름, (일반적으로 보아 본질적으로 포함되는 가능성들과 관련하여) 소여의 다른 차이화가 그것이다. 이러한 차이화는 꼭 최종적이지는 않다. 새로운 지각은 (‘다르게현출하는 계기라는 견지에서) 아직 미규정적일 수 있고 추가적인 상세한 차이화를 아직 열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

여기 서술한 모든 사건은 지각의 본질에 토대를 둔 일반적 가능성이다. [...] 그러니까 모든 본래적 현출은,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 제한된 방식으로 (규정성의 의미에서나 미규정성의 의미에서나) 하나의 완전한 사물지각으로 전개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모든 일면적 지각은 (이념적 가능성에 있어서, 즉 그 본질에 있어서) 입증되지 않고 반증될 수 있다. (지각의 본질 : 일반적 부합을 토대로 한 불합의 가능성. §29 상세규정과 재규정)

 

[...] 내 움직임의 속도에 따라, 동일한 변화 간격이 채우는 시간구간의 길이는 다를 수 있다. 이처럼 시간구간들에서 서로 다른 밀도로 늘어나는 채움은 그대로 유지되더라도, 시간관계들의 변주가 가능하다. 이것은 연속적이고 통일적인 사물지각의 일반적 본질이다. 이러한 [시간관계 변주] 가능성은 대상 구성에 있어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사물 자체의 고유한 구성과 관련해서가 아니다. 이 사물은 여전히 불변하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의미는 운동 자체의 현출 및 (빠르거나 느리고, 균일하거나 균일하지 않은) 운동 속도의 현출과 관련된 것이다. 이제 이러한 변주는 논외로 하자. (지각의 본질 : 시간관계 변주에 따른 채움의 밀도 변화 가능성 / 연구 지대의 획정 : 시간관계 변주의 도외시. §30 다양한 지각들의 연속적 종합)

*내가 빨리 움직일수록, 동일한 변화 간격이 채우는 시간구간 길이가 짧아진다. 거꾸로 말해, 동일한 시간구간 동안 변화 간격이 더 커진다. (역주)

 

그러면 이 부분들은 정지한 현출 구간들과 비슷하다. 다만 이들에는 (물론 수학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한갓된 시간점이 대응한다. [...] 현출 변화가 위상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위상들은 불변 지각들에 상응하여 배정될 수 있고, 따라서 (시간적 확장을 제외하면) 양자의 본질이 동일함은 이러한 현출 변화의 본질이다. 역으로, 지각의 정지 구간이 (그 시간연장이 한 점으로 수축됨에 따라) 위상으로 전환하여, 이제 정합적 지각 전체가 (정지라는 휴지기를 더 이상 품지 않는) 연속적 변화인 것도 상상할 수 있다.

[...] 어떤 두 위상이 서로 관계 맺을 가능성도 (어떤 중간단편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두 불변 현출이 서로 관계 맺을 가능성과 전체적으로 같다. 그러니까 두 위상이 추출 강조되면, 동일화의 종합과 구별의 종합을 수행할 수 있다. (현출 변화의 본질 : 불변 지각들에 상응한 위상들의 배정 영화 프레임 모델. §30 다양한 지각들의 연속적 종합)

 

이제 연속체에 있어서 위상에서 위상으로 이행해보자. 현출 변화는 (적어도 일반적으로는) 연속적 변화이다. 몇몇 불연속성도 있을 텐데, 이는 현출 연관의 연속적 통일성에서 등장하되 말하자면 지양된다. 이러한 불연속성은 일단 도외시하고, 현실적 연속체의 구간들을 계속 살펴보자. (연구 지대의 획정 : 연속적 현출 통일체에서 등장하지만 지양되는 몇몇 불연속성(눈깜빡임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함)의 제외. §30 다양한 지각들의 연속적 종합)

*앞서 §26의 서술에 따르면, 지각의 변화는 1. 순간적 도약이거나 2. 연속적 변화이며, 이때 연속적 변화는 2.1. 한결같은 연속적 변화이거나 2.2. 몇몇 도약에 의해 단절된 연속적 변화이다. 여기에서는 2.2.를 제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견)

 

본래적으로 현출하는 각 대상계기마다, [이 대상계기를] 구성하는 현출 계기들의 연속체가 대응한다. 이 연속체는 (미소한 차이들을 지니며 계속 나아가는) 위상 계열에서 드러난다. [...]

그러므로 정사각형 평면에도 어떤 의미에서는 들이 있으며, 정사각형 평면은 들이라는 형식, 곧 음영들이라는 형식에서만 소여되고 소유된다. 이 평면은 다양체에서의 통일성이며 연속체에서의 동일성이다. 이 평면은 (대상성의 음영 연속체인) 현출 연속체에서 현시되며, 오직 이런 현시에서만 이 평면으로서 증시되고 소여된다. [...] 이 내용들은 또한 파악들을 적재한다. 이 파악들 덕분에 육면체의 정사각형 평면 자체의 현존이 부단히 계속 구성되며, 그것도 각 위상에서 각 변화단편과 변화미분(초기정립)에서 구성된다. 즉 정사각형 평면은 관점적 음영 형식을 지닌채 자체현존한다. 파악들이나 현출들 전체는 연속적으로 흘러가면서 부단한 부합 관계를 맺음이 분명하다. (현시의 본질 : 대상계기의 음영적 소여. §30 다양한 지각들의 연속적 종합)

*파악이 파악내용에 의미를 부여(‘생기화’)하여 대상을 구성할 때, 파악내용은 파악을 적재한다(tragen)’거나 겪는다(erfahren)’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역주)

 

그러나 이러한 현시의 본질에는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지각에서 현출 계열이 연속적 통일을 이루며 경과할 때, 변화의 최초의 초기정립, 곧 이른바 운동미분이 이미 이러한 경과의 뱡향을 규정한다. 이와 더불어 연속적으로 시작되고 충족되는 지향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가 주어진다. 정상적 지각에서 이 지향들은 예상 지향들이다. (현출 계열은 어떤 목적론에 의해 철저히 지배된다.) [...] 각 음영은 연속성을 지닌 채 대상적으로 앞을 향해 지시하며, 그러한 앞으로의 지시에서 각 음영은 이제 올 것에 대한 예감이다. 이 예감, 이 암시, 이 지향은 충족된다. 그러면 일면적 조망은 전면적(allseitig)’ 조망으로 확대된다. [...] 이 단일 규정은 음영들이 다 흘러가야 비로소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완전한 소여는 통일성 의식에서 구성되는데, 이 의식은 지향과 충족의 연속적 상호내속이다. (현시의 본질 : 목적론적 체계(예상(예감, 암시, 지향)-충족 or 예지-근원인상)에 의한 지배. §30 다양한 지각들의 연속적 종합)

 

그러나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완전성에는 다양한 정도와 단계가 있는 것이다. 연속적 계열 중 큰 단편은 작은 단편 및 불변 현출보다 소여가 풍부함을 뜻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육면체의 정사각형을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에서부터 다시 사라지는 순간까지) 따라간다면, 이는 (닫힌 계열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으로 완전한 소여를 구성하는 연속체는 아니다. 육면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르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현출은 언제나 다르게 변화할 수 있다. 더 좁혀 말하면, 우리가 사례로 든 정사각형 평면의 음영들은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 모든 연속적 계열들은 서로 간에 법칙적인 본질 연관을 맺고 있다. 이 계열들 자체가 서로에게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열들을 모두 아우르는 통일체에서야 비로소 정사각형은 현실적으로(wirklich, 참으로) ‘전면에서완전하게 주어진다. (현시의 본질 : 완전성의 정도와 단계, 연속적 계열들 간 법칙적 본질 연관, 절대적으로 완전한 소여의 이념. §30 다양한 지각들의 연속적 종합)

*하나의 가능한 현출 계열은 그 자체로 다수 현출들의 연관이지만, 이 현출 계열은 또 다른 가능한 현출 계열과도 어떤 연관을 맺고 있다. 이후에 상론하는 것처럼, 이러한 현출 계열들은 키네스테제 계열들(가령 가까워짐이나 멀어짐’)에 의해 동기화되므로, 현출 계열들 간의 연관은 키네스테제 계열들 간의 연관과 함수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가능한 현출 계열들을 모두 아우르는 어떤 이념적 통일체에서야 비로소 하나의 대상이 완전하게 주어질 텐데, 물론 이는 하나의 이념(Idee)일 뿐이다. (역주)

 

연속적 질서가 역전(Umkehr, 방향전환)되더라도, 다시 말해 정확히 역전된 일련의 현출들이 시간의 진행을 채우더라도, (현출 연속체에 있어서 주어지는 것으로서) 현시되는 대상성은 여전히 동일하다. 더 낫게 표현해보자. 이 구성하는 현시의 본질은, 역전된 현시가 동일 대상성을 내어주는 것이 이념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역전되는 현시는 완전한 소여 구성을 위한 본질적 요소이다. [...] 그러니까 이는 우리가 공간사물(Raumding)이라고 부르는 대상성들의 종별적 특유함이다. (공간사물 현시의 본질 : 현출 계열의 역전 가능성, 역전된 현출 계열이 완전한 소여 구성을 위해 필요함. §31 시간 대상성과 달리 공간 대상성에서의 현출 계열의 역전 가능성)

 

우리가 예로 든 음들의 잇따름은 수반 규정이라는 방식으로 대상성들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 넓은 의미에서 채우는 수반 규정들은 제외하는 편이 낫다. [...] 우리의 관심은 모든 사물성의 핵(이른바 근본사물(Urding))에 있는데, 이는 수반 규정이 없다고 치부해도 이미 완전한 사물성을 이루는 것이다. (연구 지대의 획정 : 수반 규정의 제외, 근본사물(사물성의 핵). / 후설 비판의 가능성 - “근본사물”, “완전한 사물성을 이루는 것”, 자주 등장하는 이런 언명들을 토대로 후설은 실재적 사물 구성에 대한 이념들 Ⅱ』에서의 관심을 적어도 사물과 공간에서는 가지지 않았다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그래도 물상(환영, Phantom)”이라는 용어가 한 번 등장하기는 함. §31 시간 대상성과 달리 공간 대상성에서의 현출 계열의 역전 가능성)

 

6장 공간사물의 충전적 지각의 가능성과 의미

 

파악 연속체에는 끊임없는 지향과 충족의 놀이(Spiel)가 일어난다. 우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이행에 있어서 운동미분에 의해 방향이 지시되자마자, 예기(Vordeutung)들과 예기들에 대한 충족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 그러나 여기에서 서로 얽힌 지향과 충족의 놀이에는 보다 좁은 다른 놀이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 우리는 처음부터 색채를 보지만, 색채는 점점 더, 정말 그러한 대로드러난다. 우리는 색채를 점점 잘 보고 마침내 가장 잘 보게 된다. (유리한 경우에는 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데) 정말 그러한 대로 보게 된다.

[...] 앞서 이야기한 것은 임의의 변화 계열로서, 이 계열 자체에 지향들(그때그때 위상들을 따라가며 위상에서 위상으로 나아가는 지시들)의 연관이 속했다. 그것은 친숙한 연관에서, 연속적 공속의 노선에서, ‘앞으로 이끌림이었다. 그리고 이 움직임은 이리로 갈 수도 있고 저리로 갈 수도 있었으며, 좋은 소여나 나쁜 소여를 실현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일관적 지향의 토대를 제공하는) 통일성 형식은 모든 연속적 종합 일반의 본질에 속하는 일반적 형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례에서 지향은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출의 의미(Sinn)’를 장악하고 이 의미를 지배하며 관통하는 지향들이다. 처음 떠오르는 현출도 이미 뜻(Bedeutung)이고 이미 소여를 뜻한다. 그러나 이 현출은 아직 어떤 것을 향해(auf) 가리키고자(deuten) 한다. 어떤 것을 향해 가리키는가? (비록 이미 첫 현출과 그다음의 각 현시 위상들에서 대상적으로 현시되지만) 아직 그것이 현시되어야 하는 그대로 현시되지 않은 어떤 것을 향해 가리킨다. [...] 이 지시는 뜻 안에 살아 있으면서 뜻을 관통하고 뜻 연속체를 관통하는 지향이며, (해당 방향과 관점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또 드러내야 하는) 완전한 자체를 향한 지향이다. (놀이(목적론적 체계)의 구별 : 예상-충족의 놀이(일반적 의미의 놀이)와 완전한 자체를 향한 지향의 놀이(좁은 의미의 놀이). §32 지각 과정에서의 지향과 충족. 소여의 채움의 증가와 감소)

 

이런 관계는 촉각 사물에도 없지 않다.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글을 쓸 때 이 손이 촉각적으로 지각하는) 바로 이 책상을 더 잘 지각하려면, 손가락 끝으로 책상 표면을 만지면서 훑어야 한다. 여기에서도 각 대상성이 현시할 가능성은 여럿이며, 여기에는 (최선의 전체현시이거나 최선의 국부현시이거나 간에) 최선의 현시가 있다. [...] 그러나 여기에서 (여러 현시들이 단지 그 자체로 서로에게 연속적으로 넘어감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시들의 동일성을 포착하는 데에는, 시각 공간의 연속체 및 (이와 더불어 일어나는) 변화 계열의 연속체가 상당히 유용한 매개가 된다. (서로 다른 현시들의 동일성 포착에 있어 촉각에 대한 시각의 상대적 유용성 §32 지각 과정에서의 지향과 충족. 소여의 채움의 증가와 감소)

 

이러한 계기들[비본래적 현출 계기들]의 복합체는 이제 흐르면서 계속 비본래적 현출로 남을 수도 있는데, 이때 변하거나 변하지 않을 수 있으며, 변하는 경우에는 풍부화나 상세규정이라는 형식일 수 있다. 이것이 풍부화인 이유는, 파악의 전체 틀에 새로운 파악계기들의 채움이 끼워지기 때문(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새로운 연상 성향들이 각성되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풍부해진 파악의 의미에서 이 대상성은 더 많은 규정들과 결부될 뿐만 아니라, 변화하지는 않았더라도 어떤 관점에서는 다른 것이며 이전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 그러므로 풍부화는 필연적으로 상이규정(Anderbestimmung)이기도 하다. (연구 지대의 재획정 : §27에서 도외시하기로 했던 풍부화가 연구 지대에 들어옴. §33 상세규정 과정에서의 비본래적 현출의 역할. 충전적 지각이라는 이상)

 

그러나 또 다른 종합의 사건은 [이를테면 뒷면의] 비본래성이 본래성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빈 지향이 찬 지향으로 전환된다. (적어도 그것의 선경험적 확장이라는 견지에서는 필연적으로 연속적인) 그때그때 현시하는 내용 복합체가 변양하여 빈 파악요소들을 채우고, 비본래적 파악 자리에 본래적 파악을 만든다. 그러나 이와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그때그때 변화 계열의 유형에 따라) [이를테면 앞면의] 본래적 현출계기들이 비본래적 현출계기들로 거꾸로 전환할 수 있고 전환해야 한다. [...]

따라서 우리는 연속적 종합의 내적 구조를 연구하면 (풍부해지거나 빈약해지거나, 연속적 이행의 모든 위상들에서) 언제나 어떤 견지에서는 이것[풍부해짐], 다른 견지에서는 저것[빈약해짐]을 발견한다. 소여의식은 어떤 견지에서는 더 완전해져서 대상적 계기를 더 잘 나타나게 하지만, 다른 견지에서는 더 나빠진다. (연속적 종합의 내적 구조의 본질 : 언제나 어떤 견지에서는 풍부해지고 다른 견지에서는 빈약해짐. §33 상세규정 과정에서의 비본래적 현출의 역할. 충전적 지각이라는 이상)

 

사물지각은 모두 비충적이다. 정지한 사물지각은 그것이 단지 일면적이라는 이유 때문에라도 이미 비충전적이다. 변이하는 사물지각은 (물론 점차적으로나 단계적으로 점점 더 다양하고 더 풍부하게 대상을 내어주지만) 절대적 소여라는 목표에 결코 이를 수 없기 때문에 비충전적이다. 이러한 사물지각에서 주어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산발적 방식으로 주어질 뿐이다.

[...] 이는 인간의 지각이 지닌 우연인가? [아니다, 필연이다.] 아니면, 이러한 사태는 우리가 외부지각이라는 명칭으로 포괄하는 지각 유형의 본질인가? [그렇다, 지각 유형의 본질이다.] 비충전적 지각은 충전적 지각의 가능성을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으로서) 지시하지 않는가? [지시한다. 그러나 단순히 도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 본질적으로/원칙적으로 도달 불가능하다.]

이러한 물음의 저변에는 포화 관계라는 견지에서 구축된 어떤 이상(Ideal)이 놓여 있다. 이 이상은 지각 소여에 대한 (우리의 친숙한 삶을 지배하는) 소박한 해석에 의해 정향된 것이다. (지각의 본질 : 비충전성 / 지각의 이상 : 충전적 지각. §33 상세규정 과정에서의 비본래적 현출의 역할. 충전적 지각이라는 이상)

 

[...] 우리가 운동적 변화에 제한하여 사물을 [운동 외에는] 불변하는 것으로 전제한다면, 실로 포화 차이를, 더 완전하거나 덜 완전한 소여 차이를 발견하고, 특정 방향에서는 완전함의 최대점을 발견한다. [...] 사물이 완전하고 전체적으로 주어지지는 않더라도, [사물의] 규정은 그 자체대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충전적으로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제 이 이상(Ideal)은 가능하고 정당한 이상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와 같은 것을 모든 규정들에 있어서, 전체적이고 완전한 사물에 있어서 성취하는 소여라는 이상이다. [...]

그러나 사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회의적이 된다. [...] 이 소여에는 비본래적 소여라고는 전혀 없을 것이어서, 뒷면도 없을 것이고 현시 없는 내부도 없을 것이다. 이것에는 미규정성도 없을 것이고, 이것은 철두철미 본래적 현출이자 완전히 규정하는 현출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현출, 현출하는 것, 이로써 정립되는 초재자라는 구별이 여전히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현출은 한갓된 음영이 아니고, 충족되지 않으며 말하자면 스스로를 넘어가는 파악계기가 조금도 들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충전적 지각이라는 이상의 본질적 도달 불가능성. §33 상세규정 과정에서의 비본래적 현출의 역할. 충전적 지각이라는 이상)

 

무한하게 완전한 지성이라면 사물과 세계 전체에 대해 순수한 직관을 가질 것이다. 이 지성의 시각장에는 질적으로 이러저러하게 다 채워진 이러저러한 형상들이 있는데, 이들이 사물이다. 물론 우리의 시각장은 이차원적이지만, 이제 무한한 지성의 시각장은 삼차원이다. 이는 객관적 공간이다. [...] 그렇지만 이런 사태에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시각장은 공간이 아니고, 이러한 장의 절편은 사물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고 전능한 신에게도 그렇다. (충전적 지각이라는 이상의 본질적 도달 불가능성. §33 상세규정 과정에서의 비본래적 현출의 역할. 충전적 지각이라는 이상)

 

[...] 시각장의 절편은 운동을 겪을 수 있을 사물 대상이 아니다. 이 절편을 매개로 현시되는 사물은 운동하는데, 우리는 이에 평행하게 이러저러한 형태를 지닌 이 내재적 내용도 운동한다고 여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미 장을 공간의 한 평면으로 바꿔치기하여, 이 장의 내용이 마치 종이 면 위의 유색 그림자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은 움직이지 않는다.

[...] 다음과 같은 때라야 비로소 운동이 나타난다. (매 순간 시각장 절편인) 유사운동하는 내용 자체는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현시이고, 사물은 이러한 현시들의 연속적 변화 중에도 동일한 것일 때라야 비로소 운동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장은 그 자체가 공간이 아니라, 모든 공간적인 것과 (이를 통해) 모든 사물적인 것을 위한 현시장(Darstellungsfeld)이다. (구별 : 장의 절편(내재적 내용)과 사물(경험적 대상), (선경험적 공간)(경험적) 공간. §34 장에서의 운동과 위치 객관적 운동과 위치)

 

우리는 이렇게도 물어야 한다. 다양한 장에 속하는 장 단편들이 어떻게 동일 사물의 현시들일 수 있는가? 다양한 근본사물들이 어떻게 상호침투하기에, 시각적 사물과 촉각적 사물이 (개체적으로 하나의 공간몸체를 지닌) 동일한 공간사물일 수 있는가? 하나의 사물이 지닌 (질료화하는) 근본질들의 군은, 이념적으로 말한다면 매우 상이할 수 있다. 하짐나 (각 군에 속하는 질들을 매개로 완전하게 질료화되는, 즉 장들이 있는 그만큼 다양하게 덮이는) 하나의 동일한 몸체를 지님은 사물의 본질이다. (§22에서 제기되었던 침투문제를 다시 제기. §34 장에서의 운동과 위치 객관적 운동과 위치)

장이 제공하는 현시매체의 수가 유한함은 확실하고, 장은 두 가지 견지에서 [무한한 위치들 및 무한한 위치변화들을 현시하는] 현시매체로 충분할 수 없음이 확실하다. 첫째, 하나의 장 단편에서는 하나의 연속적 몸체가 현시되는데, 장 단편은 구별 가능한 점들의 내적 무한성을 제공할 수 없으므로 (이 장 단편이 매개하는) 기하학적 몸체는 비충전적으로 현시할 수밖에 없다. [...]

이와 마찬가지로 장 범위의 외연적 유한성 때문에, 두 번째 종류의 비충전성이 요청된다. [...] 어쨌든 공간의 내포와 외연에서의 (모든 사물이 나름의 방식대로 거기 참여하는) 무한성은 충전적 방식으로 현시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장의 본질 : 사물이 참여하는 공간의 무한성의 충전적 현시 불가능성. §35 유한한 현시매체인 장. 사물지각은 필연적으로 비충전적임)

 

가능한 각 현시는 제한된 현시매체를 경제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이는 다양성에 있어 유한한 동일한 현시매체가 되풀이 활동하고, 이런 작동들의 질서가 지닌 순서형식에 의해 무한성이 현시될 때에야 가능하다. 여기에는 비충전성이 반드시 결부된다. 단일 현출은 가능한 작동들과 현시들의 무한함을 지시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한다면 이는 바로 이 단일 현출이 [충전성이라는] 지도적 이상의 의미에서 비충전적이라는 것이다. (무한성의 현시 : 비충전적인 단일 현출에서 가능한 작동들과 현시들의 지시. §35 유한한 현시매체인 장. 사물지각은 필연적으로 비충전적임)

 

사물지각은 다양한 규정의 견지에서 최대점 혹은 최대지대를 지시한다. [...] 이러한 현출 계열에 있어서 본래적 현출은 증가의 의미에서 색조들을 지니며, 우리는 (증가의 목표가 달성되고 소여가 완전하며 그 자체로 있는) 그러한 한계점이나 한계구역을 향해 간다. [...] 가장 본래적인 소여의식이 지각의식의 목표이다. [...] 이러한 의향의 본질은 그 종점에 유사충족하는 상상현출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각의 본질 : 규정들의 견지에서 최대점 혹은 최대지대를 지시, 즉 가장 본래적인 소여의식을 겨냥함. §36 최적 소여와 관심 방향)

*유사충족하는 상상현출에 대한 후설의 설명 : “예를 들어 내가 육면체의 한 평면을 불완전한 방식으로, 한갓된 투영에 의해 본다고 하자. 내가 (상상에서) 육면체를 적절하게 회전시킬 때, 나는 이 평면이 정면의 평면과 평행한 위치에 올 때 (물론 빛이 잘 들 경우에) 나타날 방식으로 이 평면을 표상함으로써, 이 의향을 이해하고 내게 분명하게 만든다. 이렇게 나타나는 평면이 곧 현행 현출에서 의향되는 평면임은 명증하다.”

 

하지만 관심이 변하면, 이제까지 완전하게 간주되던 현출에 있어서 어쩌면 어떤 암시가 새로운 방향을 현시하면, 완전히 충분하던 현출 권역은 불충분한 권역으로 전환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전에는 무관했던 현출 차이들이 이제 유관하게 된다. [...]

그래서 우리는 관심의 차이를 만난다. 어떤 [완전한 현출들의 권역을 향하는] ‘지향의 차이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물이 원래 모습에 대한] ‘재현(Repräsentation)’의 차이가 이러한 관심의 차이에 결부된다. [...] 관심의 방향에 따라 재현은 달라진다. 그러면 이에 따라 이 관심의 충족이나 만족이 종결되는 현출도 서로 다르다. 완전한 소여의 권역이 서로 다르다. 이때 충족이라는 명칭하에서 분명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한다.

1) 목표에 도달했다는 의식. 이 의식의 토대는 충족 과정을 종결시키는 현출들이다. 이는 이 현출들이 재현자(Repräsentant)’인 한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 현출하는 대상이 바로 이 현시 방식에서 의향되는 대상이고, 이처럼 의향되는 대로 이제 자체소여되는 한에서 그렇다.

2) 관심 자체에 속하는 만족(Befriedigung). 이 만족은 (이에 대한 가능한 부정적 상관자인) 결핍이 전혀 없다는 의식에 토대를 둔다. (지각의 본질 : 관심의 변화에 의한 최대점 혹은 최대지대의 전환 가능성 / 추가 연구의 가능성 - 충족의 구별 : 재현(자체소여)과 만족(결핍 없음). §36 최적 소여와 관심 방향)

 

의향과 (의향 목표를 규정하는) 관심을 구별함에는 분명 경험적인 개념 형성이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꽃이라는 개념, 즉 이 단어의 뜻은 어떤 것을 의향하고, 이 의향에서 이것을 지시한다. 이 어떤 것은 의향을 충족하는 (지각현출이든 상상현출이든 간에) 현출들에서 주어지는데, 이 현출들은 의향된 것에 대한 직관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무엇이 의향되는가는 (의향되는 대상성을 구성하는) 현출 다양체를 관통하는 지향에서, 혹은 완전성 의식에서의 이 지향의 충족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단어의 뜻에서의 의향, 현출들에서의 의향, 현출들에서 최종 충족하는 의향이 각각 있다. 개념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개념 형성을 지배하고 일반성 의식의 구성을 지배하는 관심이다. (개념 형성에 따른 의향의 구별 : 단어의 뜻에서의 의향, 현출들에서의 의향, 현출들에서 최종 충족하는 의향 / 개념 형성을 지배하는 관심. §37 관심 방향과 개념 형성)

 

현출 자체에는 한계가 전혀 없다. 현출의 본질은 통일적 경과의 가능성들을 미리 지정하는 것이다. 하나의 현출이 앞서 전제되면, 이와 더불어 (하나의 동일한 사물의 현출 계열들일) 현출 계열들의 가능성은 무한히 크게 열려 있다.

가능성이 무한히 큰 현출이라고 해서 모든 가능한 현출 일반인 것은 아니다. (해당 현출들이 그 안으로 편입되어야 하는) 어떤 가능한 지각 종합 일반의 통일체는 이러한 통일체에서 가능한 현출들의 규칙과 법칙을 미리 지정한다. 이 규범이 준수된다면, 우리는 언제나 (지각 종합의 위상인 각 현출에 선험적 가능성으로 속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생각해야 한다. (현출의 본질 : 어떤 가능한 지각 종합 일반의 통일체 내에서의 무한한 가능성. §37 관심 방향과 개념 형성)

 

우리는 다음을 구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현출을 주재하는 (달라지는) 의향에 관련된 충족 관계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출의 본질에서 나오는 증가와 감소로 짜인 편물이, 그 중에서도 우리가 포화라는 명칭으로 다른 연속적 증가가 있다. 이 현출의 본질에는 절대적 포화의 가능성이 없다. 이념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포화는 추가적 포화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러나 물론 증가되는 계기, 증가되는 현출, 또는 이와 유관한 현출 권역은, 이와는 전혀 다른 관심의 포화 및 탁월한 의향의 충족에 의해서 탁월해질 수 있다. (현출의 본질 : 절대적 포화의 불가능성, 추가적 포화의 무한성(여기서 포화는 관심의 충족으로서 포화가 아님). §37 관심 방향과 개념 형성)

 

[...] 본래적 현출 구역 안에는 나아가 명료함(Klarheit)’의 차이가, 더 나은 표현으로는 분명함(Deutlichkeit)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분명함은 내적 풍부함에 관련된다. [...]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명료함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시각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구역과 (시각장 테두리로 가면서) 분명함이 점점 줄어드는 계조들 사이의 차이이다. 이와 비슷한 차이는 촉각장에도 있다. [...] 어쨌든 우리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구역으로 대상이 말하자면 입장하는 것은, 더 이상 증가할 것이 남지 않은 변양이라는 점이다. 이는 경험적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도 그러하다. 이에 비해 불분명함의 계조는 무한정(in indefinitum)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적 현출의 본질 : 불분명함의 계조의 무한성. §38 지각사물의 소여에서의 명료함과 분명함)

 

[...] 대상의 본질은, 대상이 모든 분명한 현출마다 주어지며, (이 대상이 전체 면에 있어서 완전하게 증시되려면) 분명한 현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한 소여를 구성하려면, 아주 이상적이고 무제한의 현출 연관이 필요하다. [...] 우리의 고찰을 통해 이제 이해하게 된 것은, 신칸트주의가 궁극적 대상 규정을 무한한 과제(unendliche Aufgabe)라고 부른 것이 어디까지 정당한가, 그리고 이러한 규정의 현상학적 근거가 어디 있는가이다. [...] 사물 규정에는 무한히 많은 가능성과 늘 새로운 가능성이 선험적으로 있는데, 물론 나는 이러한 사물 규정을 무한한 과제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바로 이러한 사태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물을 절대적으로 규정함을 이성적 목표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사물 규정은 이성적으로 실천적인 관심들에 의해 인도되고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개체적 사물 규정이 아니라 일반적 사물 규정의 (여기에서 상론할 수 없는) 또다른 이상에 있어서도 그렇다. 사물성을 지배하는 형태론적 법칙들에 대한 탐구가 그러한 이상이다. 그러나 물리학의 정밀한 자연법칙들이 이와 다른지에 대해서는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 (절대적(궁극적) 사물(대상) 규정의 본질 : 무한한 과제? 무한하지만 과제는 아니다. 이성적으로 실천적인 관심들에 의해 인도되고 [그 무한성이] 제한되어야 할 실현불가능한 이상이다. §38 지각사물의 소여에서의 명료함과 분명함)

 

오히려 사물성의 본질은 (그것의 모든 계기들에 있어) 무한정한 연속적 흐름이며, 선차적으로(a parte ante) 열린 가능성들의 무한정한 영토이다. 이 가능성들은 후차적으로(a parte post) 계속해서 상세히 규정되고 한정되고 풍부해질 수 있지만, 또다시 무한성에 직면한다. 이는 모든 규정들과 모든 종의 규정군들에 해당한다. (사물성의 본질 : 자신의 모든 계기들에 있어 무한정한 연속적 흐름. §39 요약: 사물지각은 원칙적으로 종결되지 않는 과정임)

 

사물(그리고 사물성 구역 일반에 속하는 모든 것)은 결코 최종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주어질 수도 없다. [...] 오로지 무한한 과정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더 적절하게 표현한다면) 그 본질상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이성에 의거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이 과제가 절대적으로 완전한 소여의 생산에 있다면 이것이 해결 불가능함은 선험적이다. 그것은 비이성적으로 제기된 과제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로부터 이끌어낼 것은 실재에 대한 인식이 애당초 이런 이상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식이 진정 이성적인 것을 수행한다고, 그리고 이성적 목표를 세우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믿어도 좋기 때문이다. (사물의 최종적 소여라는 비이성적 과제는 인식에 의한 것이 아님. / 추가적 연구의 가능성 사물 지각에서 인식의 역할은 사물을 삼차원적인 것으로 뚝딱 만들어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전적 사물 지각이라는 비이성적인 과제를 실천적인 견지에서 제한하는 데에 있음. §39 요약: 사물지각은 원칙적으로 종결되지 않는 과정임)

 

7장 정리 현상학적 환원의 틀 안에서의 지각분석

 

다시 정리해보자. 우리는 지각에서 사물 대상의 구성에 대한 분석적이면서 철저하게 명료한 이해를 꾀했는데, 이는 지각에 속하는 지향성에 대한 이해를 꾀한 것이고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물 소여에 대한 이해를 꾀한 것이다. (연구 과제의 요약. §40 현상학적 지각분석의 의미)

 

이것[주관적 체험] 자체는 (주관 바깥에 있어야 하는) 사물이 아니므로, 우리가 저 바깥의 사물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추론임에 틀림없다. 이런 추론은 어떻게 정식화해야 하는가? 주관적 지각 체험이라는 홀로 주어지는 구역 내부에서 이러한 추론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주관적인 것의 현실성은 (오직 가설로만 받아들여야 할) 객관적인 것의 현실성, 외부세계에 있는 것의 현실성을 어떻게 보장하는가?

이런 물음들이 분명 정당하고 절실하다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우리는 이런 물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 우리는 형이상학에서 제기하는 사물 자체에 대해서는 미결로 둔다. 물리학의 사물들과 (마음, 인격, 성향과 체험 등) 심리학의 현실성들에 대해서도 미결로 둔다. 일상생활의 사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미결이라는 것은 현실적 실존에 대한 판단을 모두 삼간다는 뜻이다. (방법론 : 현상학적 환원 내지는 판단중지 / 방법론에 의해 미결로 남게 되는 물음들. §40 현상학적 지각분석의 의미)

 

말하자면 우리의 세계는 절대적 소여들의 세계이고 절대적 의심 불가능성들의 세계이며 현상들의 세계이자 본질들의 세계이다. 한마디로, 현실적 실존이나 비실존의 정립과 무관한 것이다. [...] 지각되는 것의 실존, 그리고 어떤 현실적 실존 일반에 대해 묻지 않으며 어렴풋하게라도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각의 본질, 판단의 본질, 명증의 본질 등에 대해, 그러니까 심리학이나 생리학이나 형이상학이 아니라 현상학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존재현상학(Onto-Phänomenologie)이며, 그것도 그것의 첫 번째 층위이다. (방법론 : 현상학적 환원 내지는 판단중지 / 연구 지대 : 현상학적 환원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세계 / 주요 연구 지대 : 존재현상학의 첫 번째 층위. §40 현상학적 지각분석의 의미)

*이 분석은 실재하는 존재에 대한 분석(존재론)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나타남에 대한 분석이기 때문에 존재현상학이라고 명할 수 있다. (역주)

 

[...] 주된 목표는 지각이 어떻게 어떤 (사물) 대상이 주어짐에 대한 의식이기를 (말하자면) 시도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현상학적 태도를 취하면, (집의 지각 같은) 사물지각은 바로 어떤 사물을, 어떤 공간대상을 의향하는 것이고, 지각에서 의향되고 정립되는 이 사물대상의 의미에는 이러저러한 것들이 속한다는 것은 명증하다.

그러나 이렇게 의향되는 것이 지각에 내실적으로 내재하는 것이 아님도 명증하다. 어떻게 어떤 계기들에서, 지각의 이러한 지향성이 구성되는가? 지각의 성격을 이루는 자체소여는 지각의 본질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어떻게, 어떤 분석적 계기들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증시되는가? (연구 과제의 요약. §40 현상학적 지각분석의 의미)

 

현출은 현시내용과 파악의 통일로 표현되었다. 물론 이 통일은 어떤 합계도 아니고, 상호결합한 이원성도 아니다. 이는 가장 내밀한 통일체인데, 우리는 이것의 성격을 생기화라는 말로 규정하고자 했다. 현시하는 내용이 따로 있고 거기에 파악성격이 끼워지는 것이 아니다. 파악은 현시내용에 의미를 증여하여 생기화한다. 현시내용은 이 의미 안에 그 자체로 단순하게 있다. (방법론 : 현시내용(감각내용)-파악(작용) 도식. §40 현상학적 지각분석의 의미)

 

이와 관련하여 본래적 현출과 비본래적 현출도 구별했다. 이런 구별은 홑겹지각이 사물을 한 에서만 현출시키면서도, (그 면이 아니라) 사물을 의향한다는 것과 관련된다. 우리는, 사물 중에서 (이 사물에 특별하게 귀속되는 현시내용에 의거하여) 본래적으로 현시되는 것과 (특별히 귀속되는 현시내용이 없어서) 본래적 현출이 없는 것을 구별한 것이다. 그러니까 파악은 현시보다 더 멀리 미친다. 이처럼 더 멀리 미치는 것(Witerreichende)도 본래적 파악에 그저 덧붙은 것, 그래서 잘라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 그러니까 개별적 대상에의 의향은 (대상의 으로서 이른바 눈에 띄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 중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에도 관계한다. 그리고 의향은 현시되지 않는 면들과의 관계를 함축한다. (구별 : 본래적 현출과 비본래적 현출 / 파악의 본질 : [현시보다] 더 멀리 미치는 것 / 대상 의향의 본질 : 현시되지 않는 면들과의 관계를 함축. §40 현상학적 지각분석의 의미)

 

물론 현상학적 의미에서 단 하나만 있다. 하나의 절대적 소여만 있다. 그러나 명증하게 서로 다른 두 판단 방향이 있다. 하나는 현출하는 대상에 대한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현출에 대한 판단이다. 우리는 현출들을 수적으로 구별할 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구별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모두 동일 사물의 현출들이라고 말한다. [...] 그러니까 나는 현출(Erscheinung)과 현출자(Erscheinendes)를 구별한다. (구별 : 현출하는 대상과 현출, 현출자와 현출. §41 사물에의 태도와 사물의 현출(주어지는 면)에의 태도)

 

이와 관련되는 것이, 현출을 사물의 면으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

이는 어떤 유의 대상화인가? 무엇을 구별해야 하는가?

a) 언덕 자체. 이것은 면에서, 자기의 면에서 현시된다.

b) . 이것에서 언덕은 현시되고 현출한다.

[...]

1) 최초의 태도, 자연스러운 태도는 내가 사물을 가령 말로 서술할 때 토대에 놓인 태도이다. [...] 나는 지각하면서이 동일한 것을 의향한다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2) 나는 현출에 주목한다. 현출이 나의 대상이다. , 즉 음영, 공간적 음영, 이러저러하게 채워진 음영(본래적 현출).

이처럼 변화된 태도 취함이란 어떤 것인가?

꽃핀 언덕에 주목함과 본래적 현출에 주목함은 서로 대조된다. (구별 : 사물 자체(현출하는 대상)(사물의) (현출) / 구별 : 사물을 대상화하는 태도(자연스러운 태도)와 현출을 대상화하는 태도. §41 사물에의 태도와 사물의 현출(주어지는 면)에의 태도)

 

사물현출은 늘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사물현출은 때로는 대상화되고 때로는 대상화되지 않는다. 사물현출이 대상화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대상이 되는 것이고 주제인 대해지는 것이 되는 것이다. 사물현출이 대상화되지 않더라도, 이 사물현출은 대상화하는 것이고 주의의 토대가 되며 (때로는) 판단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은 현출할 뿐 아니라, 주제인 대해지는 것이다. (구별 : 사물현출이 대상화되다와 사물현출이 대상화되지 않다 / 구별 : 사물현출이 대상화되다와 사물현출이 대상화하다 / §15에서 초월론적 환원과 명상의 가능성과 연결됨. 물리적 자료가 반드시 파악을 요청하는 것은 아님. §41 사물에의 태도와 사물의 현출(주어지는 면)에의 태도)

 

불변하는 지각(현상학적 지속 중에 불변하는 지각)과 변화하는 지각을 구별했다. 이때 변화와 불변은 (지각의 토대에 놓인) 현출과 관련된다. 불변 지각은 대상성을 불변하는 것으로 현시하며, 하나의 동일 면에서만 계속 현시한다. 이 지각은 일면적(einseitig)이고 홑겹(einfältig)이다. 이에 비해 변화 지각은 변화하는 대상성을 현시할 수도 있고, 불변하는 대상성을 현시할 수도 있다. 이 지각은 일반적으로는 다면적(mehrseitig)이고, 어떤 경우에든 다중적(mehrfältig)이다. [...] 이 현출연속체의 각 위상을 시간적으로 늘리기만 하면, 이 각 위상마다 하나의 가능한 불변 현출이 상응한다. 그러므로 현출연속체는 여러 겹(vielfältig)이고, 연속적으로 여러 겹이다. (구별 : 불변 지각과 변화 지각 (영화 프레임 모델에서의 구별 : 같은 프레임이 지속되는 불변 영화와 다른 프레임이 연속되는 변화 영화). §42 변화하는 지각과 불변하는 지각)

 

아마 이는[현출은] 철두철미 이루어지는 변양들이면서도, 다른 한편 어떤 추상적으로 동일한 것을 현출이라는 용어 아래 내포하는 변양들일 것이다. 따라서 현출들의 연속적 종합은 이러한 높은 단계의 지성적 성격이라는 견지에서도 통일성을 가지는데, 사물성 구성에 있어 이러한 통일성이 아무래도 좋은 것은 분명히 아니다. [...] 무한하다고 간주되는 이 종합은 무한함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규정된 종합이다. 이 종합은 (다른 사물이 아니라 바로 이 사물을 구성하는 종합으로서) 이 규정적 사물에 귀속되는 종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그 자체로 견고하고 자기동일적인 사물을 구성한다는, 이러한 종합의 견고함(Festigkeit)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이런 현출 연쇄에서 되풀이 확인되고 증시되며 경험의 통일성을 이루는 믿음의 통일성에서 올 것이다.

물론 믿음은 따로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믿음은 통일적 성격으로서, 연속체의 현출들을 관통하고 이 현출들의 모든 대상화 계기들을 관통한다. 이 현출들은 이 연속체 안에서 통일적으로 결합하는데, 바로 그래서 이 연속체가 연속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현출들이 통일적인 것은 (늘 새로이 동기화되고 늘 새로이 충족되는) 믿음이라는 양상에서이다. (후설 비판의 가능성 후설이 지성주의적이라고 많이 비판을 받는 부분. 자기동일적 사물은 결국엔 믿음의 통일성 부여를 통해 구성된다는 것. §43 운동적 지각 종합에서의 믿음정립의 역할)

 

그러니까 통일적 경험은 현출들의 연속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출들의 연속체를 전제로 하는 것일 뿐이다. 사물은 한낱 표상통일체가 아니라 판단통일체’”이다.

따라서 근본적 연구들의 어떤 방향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은 여기에서 나아갈 길은 아니다. 다만 경험을 산출하는 판단통일체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의 현출 분석이 올바른 의미로, 그리고 적절한 제한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후설 비판의 가능성 위와 동일. §43 운동적 지각 종합에서의 믿음정립의 역할)